# 104
104. 아픈 소녀의 사랑(2)
“오늘따라 뭔가 조용한데.”
“조용하다니?”
“그냥…… 기분 탓인가?”
두 사내가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조금 주변이 조용한 것이 신경 쓰였지만 깊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야 지금 두 명이 있는 장소는 더 씬 길드 본거지이니 당연하다.
현재 서울의 어둠을 지배하는 무리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길드.
사신 김주원이 이끄는 더 씬은 무적이었다.
본래부터 흉악한 범죄자였던 김주원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하데스의 아바타가 되며 압도적인 힘마저 손에 넣었다.
더군다나 머리까지 좋으니 사실상 뒷세계의 황제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그런 그가 있는 더 씬을 건드릴 멍청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서울에서 날뛰는 전갈 덕에 우리가 이득을…… 뭐야? 어디 갔어?”
막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던 사내는 갑자기 조용해지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옆에 있었던 동료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아, 이 새끼 또 장난치려고 하나.”
보나 마나 어디 잠깐 숨어 있다가 놀라게 해주려는 모양이다.
어린애도 하지 않을 유치한 장난이라고 생각한 그가 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을 때였다.
우드득!
‘뭐야, 뭔가 이상한데.’
갑자기 시야가 빙글 돌았다.
몸이 어디론가 끌려간다고 느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약간의 충격이 느껴지자 자신의 시야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목이 돌아간 자신의 동료가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자신도 동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누가 있다.”
더 씬 길드의 본거지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멀쩡히 걸어가던 동료가 잠깐 시선을 떼면 사라졌다.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는 터라 이야기가 퍼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건물 안에 있던 인원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의 길드원들이 당하자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뭉쳐, 모두 뭉쳐!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소수의 인원만을 노리고 있다!”
그들도 습격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었다.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밖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연락을 넣은 후, 남은 길드원들끼리 뭉쳐 정비했다.
‘소수의 인원만 노려 기습한다면 정면으로 싸울 자신이 없다는 거겠지.’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분명 상대는 소수다. 한 명인지 두 명인지 모르겠지만, 세 명 이상의 적을 노리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상대의 노림수였다.
쾅콰쾅! 쾅!!
뭉쳐 있던 플레이어들이 있던 방이 폭발했다.
바닥이 부서지며 뭉쳐 있던 이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이, 이런 시발 갑자기 뭐야? 갑자기 바닥이 왜 부서져?”
“멍청한 새끼들, 플레이어가 이런 폭발 따위로 죽을 거라 생각하나…….”
특별한 스킬이나 아이템으로 인한 폭발이었끼에 큰 상처를 입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대부분이 상처 없이 몸을 일으키며 이런 사태를 일으킨 인물에 대한 욕을 할 때였다.
“어쩐지 주변이 뿌연 거 같은데?”
“폭발 때문에 생긴 연기겠지.”
자욱하게 깔린 연기에 플레이어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를 밀치고 나오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폭발의 충격 때문인가 싶었지만, 하나 같이 입술이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서, 설마. 이 연기…….”
그제야 코와 입을 막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주변이 뿌연건 연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독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이 주변은 독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저, 저 검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거야.’
그제야 방 귀퉁이에 열려 있는 새까만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폭발로 일어난 연기는 위장이었어. 진짜는 이 독무다.’
알았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이미 대부분의 길드원들은 바닥에 쓰러져 차가운 시체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 그들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세한은 씩 웃었다.
‘생각보다 잘 풀려서 다행이네.’
이미 독무는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세한은 주변에 쓰러진 더 씬의 길드원들 중 살아 있는 자가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대부분은 죽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손수 목숨을 끊어주었다.
“김주원까지 같이 보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이미 현재 위치를 파악해 둔 터라 그럴 일은 없었다.
녀석은 현재 자신의 집무실에 있었다.
세한이 찾는 한현수와 송채연과 함께.
‘처음 해본 건데 잘돼서 다행이군.’
온갖 물건을 허수 공간을 사용해 집어넣은 적은 많았지만 독무는 처음이다.
이곳에 오기 전, 세한은 날뛰고 있는 전갈들에게 잠깐 들렸다.
그리곤 허수 공간을 열어 녀석이 뿜어내는 독무를 상당량 담았다.
그리곤 본거지에 들어가 소수의 조직원들을 죽여 소문이 퍼지길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소수로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을 습격한다는 사실을 한 길드원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그때를 노려 플레이어들을 폭발로 공격했다.
폭발로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폭발은 어디까지나 위장. 그것으로 녀석들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진짜 목적은 폭발로 일어난 연기로 독무를 숨기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연기 속에 섞인 독무를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이걸로 독무는 바닥나기는 했지만, 더 씬 본거지의 플레이어들을 괴멸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이제 남은 건 하나.’
현재 더 씬 본거지에 있는 플레이어 중 남은 이는 김주원과 한현수뿐이었다.
***
“밖이 소란스럽군.”
“아, 예. 아무래도 밖에 벌레가 침입한 모양입니다.”
한현수는 나른하게 말하는 김주원의 모습에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아까 전 도착한 쪽지를 보니 더 씬의 본거지를 습격한 미친놈들이 있는 모양이다.
연속해서 들려오는 폭발 소리를 보면 제법 준비를 갖추고 쳐들어온 녀석들인 게 분명했다.
‘불안해. 왜 쪽지가 더 안 오지?’
더 씬 길드원들의 실력을 잘 아는 한현수는 당혹스러웠다.
설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다 당한 건가?
“꽤 쓸 만한 놈들이 온 모양이군. 현재 이 건물에 살아 있는 기척은 고작 다섯뿐이다.”
“예……? 그럼 상대는 둘이라는 겁니까?”
“그래, 재밌군.”
김주원은 하데스의 아바타다.
살아 있는 인간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스킬 또한 지니고 있었다.
좀 전의 폭발 소리와 함께 길드원들의 기척이 우수수 사라졌다.
단순히 폭발로 죽인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다른 방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어차피 길드원들이야 또 모으면 그만.’
본거지에는 제법 뛰어난 이들로 추려놨지만 이렇게 간단히 당할 정도라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던 모양이다.
주원은 점차 집무실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꺅!”
덕분에 그의 곁에 있던 송채연이 깜짝 놀라 떨어졌다.
김주원은 그런 송채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런 놀라게 했군.”
“아, 아니에요.”
주원은 겁을 집어먹고 떨고 있는 송채연을 보았다.
정말 40대 중반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아름다운 외모다.
자신보다 조금 연상이었지만, 주원은 이 약한 여성에게 끌렸다.
“기, 길드장님. 직접 나서실 것도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호오, 자신 있는 모양이지?”
“예!”
한현수는 주원이 직접 나서려 하자 황급히 말했다.
그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으니까.
‘저 멍청한 여자에게 모든 걸 맡겼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현재 자신의 어머니가 주원의 총애를 받는 건 분명하지만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만나기 무서워하며 지금처럼 피하기만 하는 그녀에게 주원은 금방 싫증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했다.
‘나는 강하다. 예전의 한현수가 아니야.’
곧 신이든 악마든 계약할 자가 나타날 거라고 모두가 말했다.
어떻게 길드원들을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특별한 아이템을 사용한 거겠지.
문을 열자마자 습격한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온다.’
한현수는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새까만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 순간, 손에 검을 쥐고 내달려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죽어라!”
확실히 한현수의 공격은 강맹했다.
습격도 적절했다.
하지만 문제는 세한이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뭐래.”
주원이 공격한 게 아니라 한현수가 덤볐다는 점은 예상외였지만, 상관없었다.
세한은 휘둘러진 검을 능숙하게 피한 후, 검을 휘둘러 한현수의 목을 검등으로 후려쳤다.
퍼억!!
“컥!”
그리곤 녀석이 고통에 몸이 꺾이는 순간, 왼손을 휘둘러 목 뒤를 후려쳤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한현수는 깔끔하게 기절해서 바닥에 쓰러졌다.
“과연 대단한 실력이야. 길드원들이 당한 것도 이해되는군. 하지만 의외야 녀석을 죽이지 않다니.”
그런 현수의 모습에도 주원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만 그의 곁에 있던 송채연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주원이 죽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자 그나마 안색이 나아졌다.
물론 여전히 얼굴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나는 강자를 좋아하지.”
주원은 자신의 사슬낫을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나와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거든.”
“…….”
“그래. 아웃라이징의 강태성도 내게는 피라미일 뿐. 서울에서 나를 긴장하게 만든 플레이어는 없었다.”
마치 자신이 절대자라도 되는 양 말한 주원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가 자랑하는 죽음의 선고를 날리기 위한 준비 자세다.
“과연 너는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주원은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진 서늘한 감촉에 황급히 몸을 돌리며 팔을 휘둘렀다. 등 뒤로 허수공간이 열리며 날카로운 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너 몰랐는데, 말이 되게 많다?”
“?!”
하지만 그건 실책이었다.
몸을 돌린 탓에 달려드는 세한의 공격을 전혀 보지 못했다.
촤악!
“이 새끼가 감히!”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 공격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몸을 뺀 탓에 동맥을 긁고 지나갔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치명적인 상처였지만 플레이어라면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는 상처였다.
다만 그런 깊은 상처보다 주원은 자신의 자존심에 난 상처가 더 중요했다.
촤르륵!!
사슬낫이 반 회전을 하며 세한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확실히 현재 능력치는 녀석이 우월해.’
그래도 녀석이 방심한 탓에 목에 제법 큰 상처를 줄 수 있었다.
한현수 같은 놈이라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원은 무리였다.
‘최대한 죽음의 선고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다.’
주원에게는 다른 강력한 스킬도 많았지만, 세한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죽음의 선고였다.
능력치가 상당히 떨어지는 그로선 주원의 죽음의 선고에 저항할 수 없었다.
캉, 카앙!
하지만 전투기술은 세한이 월등히 뛰어났다.
부족한 능력치를 채울 만큼 압도적인 기술에 주원은 내심 당황했다.
그도 전투기술이라면 누구에게 뒤떨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플레이어는 분명 자신보다 뛰어났다. 자신이 이렇게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능력치가 더 높기 때문.
그 점이 주원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죽음의 선고로 단번에 찢어 발겨주마.’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잡기 무섭게 허공에 검은 공간이 생기며 검이 떨어졌다.
당연히 제대로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고 도리어 세한의 반격에 팔에 자상을 여럿 입어야만 했다.
“크, 크크크. 그래. 네놈이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역시 강자와 싸우는 건 즐거운 일이지.”
“즐거운 것 치고는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건방진 놈!!”
그에게는 하데스로 받은 전승 스킬이 세 가지나 있었다.
자신보다 격하의 상대에게 확정적인 죽음을 줄 수 있는 죽음의 선고.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의 기척을 알 수는 명왕의 눈.
마지막으로 막대한 마력이 소모하지만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퀴네에’가 그것이다.
‘이것까지는 쓰고 싶지 않았다만.’
그러니 주원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면 자신은 진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더 씬의 수장이라는 게 겨우 이 정도인가?”
이죽거리며 자신을 도발하는 세한의 모습에 주원은 마음을 정했다.
이 건방진 놈을 당장에 두 조각 내기로.
‘퀴네에!’
사슬낫을 휘두르며 덤벼들던 주원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세한은 갑자기 사라진 주원의 모습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마력소모가 심하다 단번에 끝내야 해!’
세한은 자신을 찾는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주원은 몸을 숙이고 미끄러지듯 움직여 세한의 대각선으로 덤벼들었다.
일반적으로 공격한다면 분명 뒤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등 뒤에 대한 공격은 대비하고 있을 터.
주원은 그런 생각의 허를 찔러 도리어 대각선 앞쪽을 노려 사슬낫을 휘둘렀다.
세한의 쇄골을 향해서.
푸욱!!
피육을 뚫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어째서.”
사라졌던 주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가슴팍에는 세한의 검이 박혀 있었다.
자운의 사슬낫은 세한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보, 보였던 건가?”
“아니.”
“……그럼 어떻, 게 안 거냐?”
“그냥 거기로 올 줄 알았지.”
사실 세한은 이미 이 공격을 당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상처를 입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모든 기척을 지워주는 퀴네에라도 주원의 버릇까지 고쳐주지는 못하니까.
“이런 개 같은…….”
명왕의 아바타라도 심장에 검이 꽂히고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주원의 신형이 스르르 무너져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