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03화 (103/332)

# 103

103. 아픈 소녀의 사랑(1)

나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저게 만약 지수라면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까.

1회차의 나는 지수가 고블린에게 당하는 걸 봤음에도 두고 도망쳤다.

비록 나에게 도망치라고 말했던 지수지만, 그런 나를 보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는 알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이번에 1회차에 들어오고 독무에 정신을 잃을 뻔했을 때.

본래라면 나는 거기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정신을 잃은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전갈이 있던 곳에서 떨어진 장소에서 루크에게 구조받을 수 있었지.

설마 그때 나를 옮겨줬던 인물이 지수였던 건가?

억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수였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게 정말로 녀석이라면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건지 알고 싶었다.

스윽.

나는 숨을 죽이고 천천히 지수로 추측되는 인물을 향해 접근했다.

녀석은 아직도 나를 찾는지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짐승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가까이 온 순간, 나는 지수의 팔을 잡아당겨 그대로 바닥에 매쳤다.

“갹?!”

설마 갑자기 내가 나타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는지 녀석은 팔을 꺾여 쓰러진 채 바둥거렸다.

‘재생능력이 없으니 무리해서 몸을 빼려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2회차의 지수라면 자신의 관절을 부서서라도 빠져나갔을 테지만 지금의 지수는 그저 바둥거릴 뿐 몸에 무리가 갈 만한 동작은 하지 않았다. 더불어 나를 공격하는 등의 적의를 비치지도 않았다.

보이는 건 오로지 당황뿐.

나는 바르작거리는 녀석을 오른팔로 꽉 누른 뒤, 왼손으로 녀석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극, 그으으윽.”

붉은 눈동자가 선연히 빛났다.

더러워져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반듯한 코와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은 내가 아는 지수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정말로 지수구나.”

“…….”

지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겁먹은 짐승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동공을 살며시 위로 올려볼 뿐이었다.

손을 떼자 풀려난 지수는 후다닥 물러나 나를 보았다.

그건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묘한 기대감을 지닌 시선이기도 했다.

‘얘가 왜 이렇게 된 거야?’

인간이라기보단 동물 같다.

진짜 반 동물인 백설이보다 훨씬 동물 같았다.

‘이지를 상실에 미쳤던 건 2회차의 지수도 마찬가지인데…….’

2회차의 지수는 모든 인간들을 죽일 기세였다.

하지만 눈앞의 지수는 그런 기색은 없어 보였다.

분명 이지를 상실한 건 동일했음에도.

“진정해 한지수.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진정해.”

“…….”

그제야 지수의 얼굴에 미미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아마 기쁨이라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런 지수를 향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따라와. 말은 이해할 수 있지?”

“…….”

지수의 머리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그거면 됐다.

녀석이 어째서 저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주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우선 저 봐주기 힘든 몰골부터 처리를 해야 될 것 같았다.

***

천살성을 지닌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든 인류에 대한 증오를 지니게 된다.

간단히 말해 인류를 위협하는 적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을 타고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혈마가 그런 인물이다.

지수와 같은 경우에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지수의 특성 때문이리라 생각했고, 파티원으로 삼아 나의 틀에 두었다.

천살성 스킬을 받기 위함도 있지만 만약 있을 일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사건은 터졌고 상황은 이렇게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아마 이 녀석도 비슷한 케이스겠지.’

다른 점은 이성을 잃고 광기로 치환되지 않았다는 점.

분명 눈앞의 지수는 특성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었다.

비록 이성은 잃었을지언정 인류를 향한 증오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아──아.”

다만 내 옆에서 개처럼 몸을 비벼대는 건 부담스러웠다.

이럴 거면 왜 아까는 그렇게 도망 다녔던 거냐.

“마치 개 같구나.”

이드라가 정확히 이 상황을 표현했다.

현재 지수는 깔끔하게 씻기고 제대로 된 옷을 입힌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내 허리에 몸을 비비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을 돌렸다.

“내 추측이지만 아마 고블린에게 받았던 상처가 원인이 되어 지수의 인격이 잠들고, 내면에 잠들어있던 천살성으로서의 인격이 나왔을 확률이 높아.”

“2회차의 그 아이처럼?”

“그래. 그때의 지수는 자신의 인격과 천살성의 본능이 하나가 된 상태였어. 그러니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건 그것과 달라.”

‘인격’ 자체가 소실된 모습이다.

이것도 지수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천살성으로서의 방어기제인지, 혹은 그 둘이 합쳐져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도 모른다.

확실한 점은 지수가 내 주변을 맴돌았던 게 내가 목적이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을 꺼려하리라 생각해서 접근을 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쓰지 않자 사정없이 달라 붙어오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행동이 난감하긴 했지만 동시에 조금 씁쓸했다.

1회차의 나는 이런 지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국 지수는 나를 따라다니다 어느 시점에 목숨을 잃었다는 거겠지.

현재 지수가 나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내가 모르던 위험에서 나를 지키다가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못하고 그렇게 죽었겠지.

‘아마 내가 전갈의 독기에 정신을 잃었을 때 구해줬던 인물도 지수일 확률이 높아.’

“……미안.”

“?”

나는 지수의 검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슬슬 쓸며 사과했다.

물론 지수는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내가 만져주는 게 좋은지 그르릉거리며 몸을 맡겼다.

‘2회차의 너는 반드시 구해줄게.’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

“현수야. 역시 이건 좋지 않아. 거기는 위험해.”

“어머니. 그만하세요.”

한현수는 자신의 어머니 채연의 말에 귀찮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요. 강자에게 빌붙어야 한다고요. 어머니도 그렇게 사셨잖아요?”

“그건, 그건 그럴지 모르지만 거긴 안 돼. 현수야. 느낌이 좋지 않아.”

느낌은 무슨 느낌.

한현수는 자신의 어머니를 귀찮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어머니, 길드장님이 어머니에게 호의를 표하셔서 그러는 건가요?”

“아, 아니, 아니야.”

“언제나 피하시기만 하면서 무슨.”

사납게 쏘아붙이는 현수의 말에 채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대로다. 그녀는 길드장인 김주원이 무서웠다.

‘진짜 길드장님만 아니었어도.’

한현수는 겁을 집어먹은 채연을 보며 혀를 찼다.

예전에는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귀찮은 짐덩이다.

남에게 무척 의존적인 성격이라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었다.

‘길드장님도 취향이 독특하시지.’

문제는 길드장인 김주원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자신의 어머니는 외모는 아름다운 편이었다.

이제 40대 중반이지만, 외모만 보면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동안이기도 했다.

‘길드장님 나이가 몇이더라.’

아마 30대 중후반쯤이었지.

사실 현수가 신입임에도 더 씬의 본거지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건 김주원의 입김이 컸기 때문이다. 그가 현수의 어머니인 채연을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오늘 길드장님이 부르셨어요. 같이 가시죠?”

“나, 나는…….”

“싫으세요?”

“아니, 가, 갈게.”

참 심약한 어머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누나를 무서워했었지.

현수는 혀를 차며 자신의 누이를 떠올렸다.

과연 뭐든지 잘하던 누이는 살아 있을까 궁금했다.

그녀가 죽는다는 건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누나보다 뛰어나.’

자신은 곧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다고 주원이 말했다.

악마와 계약을 맺게 되고, 더 씬의 간부가 된다면 누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성가시기만 할 뿐인 어머니는 주원에게 줘버리면 해결될 것이다.

주원의 성벽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이제 자유나 만찬가지였으니까.

***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혀를 차며 골목에 숨어 주변의 기척을 감지했다.

당장 근처에 돌아다니던 플레이어들을 모두 쓰러트린 탓에 딱히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미, 미친 새끼. 네가 이러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하냐?”

“어.”

“커, 컥! 이 개, 개자…….”

우득!

쓰러져서 욕설을 내뱉는 더 씬의 길드원의 목을 발로 밟아 부러트렸다.

뒷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녀석들은 어떻게 된 게 하는 말이 다 비슷하다.

“한지수.”

“?”

“그거 더러워. 물어뜯지 마.”

뒤에서 쓰러져있는 더 씬의 길드원들의 팔을 물어뜯고 있던 지수가 입을 떼었다.

입가에 피가 묻어있어서 섬뜩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어린애가 아무거나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성은 상실했어도 전투센스가 사라진 건 아니란 말이야.’

원래는 두고 오려 했지만 지수가 막무가내로 따라온 탓에 이렇게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의외인 점은 야생동물 같은 지수도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다.

재생능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천살성이라 웬만한 상처는 무시할 수 있었고, 본인도 피해가면서 움직인 탓에 제법 괜찮게 싸웠다.

‘아무튼 결국 이렇게 더 씬의 본거지에 오게 되는 구나.’

홍대에 있던 더 씬의 지부에는 한현수는 없었지만, 길드원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한현수의 거주지는 물론, 녀석이 현재 더 씬의 본거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한현수의 거주지로 찾아갔다.

하지만 녀석은 그곳에 없었고,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하는 수 없이 장소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 늦은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현재 다른 쉴 수 있을 만한 장소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현재 서울이 박살 나고 있는 와중에 안전한 장소는 별로 없지.’

예를 들어 거대 길드이지만 유일하게 이번 사태에 휘말리지 않은 더 씬의 본거지라거나.

거기까지 생각하자마자 바로 이곳에 온 것이다.

쓰러트린 길드원들로부터 한현수가 현재 안에 있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힐끗 하늘 위에서 이쪽을 촬영 중인 이드라의 옵저버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옵저버를 이용해 둘러본다면 간단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드라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상태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까마귀의 눈이 그립구나.’

2회차의 내가 얼마나 이지 난이도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알았고, 맵핵이나 마찬가지인 까마귀의 눈을 상시 서울 전역에 띄워둔 상태였다.

그중 까마귀의 눈을 사용할 수 없으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이제 안에 들어갈 거야. 이젠 정말 가라.”

“아──우─아.”

“고개 흔들어도 안 돼. 너까지 지켜줄 수는 없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수의 머리가 한층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리곤 떠듬떠듬 말했다.

“내─가.”

“네가 뭐.”

“지─ 켜요.”

어눌하게 말하는 지수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설마 이렇게 말할 줄은 못했으니까.

1회 차에서도 지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나를 위해 대신 검을 맞았고, 저런 모습이 되어서도 내 주변을 지켰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그랬겠지.

생각해 보면 내가 약했던 시절에도 큰 위기는 없었다. 당시에는 무섭고 지옥 같은 상황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위기는 없었다.

아마 그 이유는 눈앞의 지수가 나를 몰래 지켜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 진짜 미치겠네.’

이제 녀석과 제대로 마주친 지는 몇 시간도 않았지만 그세 말이 늘었다.

처음에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만 내었지만 나와 만난 게 조금 자극이 됐던 모양이다.

“……마음대로 해라.”

결국 나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지수는 그 말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팔에 머리를 비볐다.

방금 신나게 싸운 탓에 옷에 피가 묻었지만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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