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099. 천살성(2)
“모두 치워야 해, 모두, 모두 치워 버려야 해.”
지수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혈천수라공이 전신을 타고 흐르며 신체에 미세한 붉은 실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문신처럼 지수의 팔과 다리에 붉은 선이 뻗어나가며 은은한 빛을 냈다.
지수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언가에 저항하는 것처럼 지수의 몸이 꿈틀거리다 몸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아아──아아아아───!!”
쿵!
지수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비어져 나온 이면에 삼켜진 지수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죄책감이 잠시 얼굴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눈물을 흘리며 울던 얼굴은 무표정해졌고, 이후 짙은 미소를 지었다.
완벽히 이성이 상실된 지수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그녀의 입에선 더 이상 사람의 말이 아닌,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어어어.”
그 시선을 마주친 조직원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젠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지수는 그런 그들을 쫓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지수가 발을 내딛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이 쩌저적 갈라졌다.
오른손에는 흉성의 학살자를 들고, 다가오는 지수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악마와 같았다.
저것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일 리가 없었다.
“시, 시발!”
조직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악마 학살자를 이곳에 들여보낸다고 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지부장인 한현수가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
쾅!
지수의 허리가 숙여지며 무릎이 굽혀졌다.
그리곤 발을 박차며 조직원들이 도망치는 문 쪽을 향해 달렸다.
“아, 안 돼!”
콰콰쾅!!
비명과 함께 지수의 둔기가 조직원들은 덮쳤다.
건물의 벽과 함께 조직원들의 육체가 산산이 파괴되며 새하얀 벽면이 붉은 피로 칠해졌다.
“사, 살려줘!”
플레이어가 아닌 민간인이 된 것처럼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저항한다는 생각 따위는 머릿속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저것과는 대화조차 통하지 않았고 오로지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세한은 자신에게 덤벼드리라 생각했던 지수가 조직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믐달에 속한 조직원들인 만큼 이대로 죽게 되는 편이 좋았지만,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그것만으로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한지수, 멈춰!”
쾅쾅쾅! 지수가 달리며 무차별적으로 둔기를 휘두르자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육편과 피가 흩날렸다. 자욱하게 끼기 시작한 피 안개 속에서 지수는 싱긋 웃었다.
“──아아.”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지수의 모습에 세한은 자신에게 남겨진 답이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싸워서 막는 것.
“너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어.”
세한은 지수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지수의 양쪽에 새까만 공간이 열리며 백련정강으로 만들어진 창 두 개가 쏘아졌다.
지수는 그것을 고개를 숙여 피한 후, 자신을 스쳐지나가던 창 하나를 왼손으로 잡아 몸을 회전시키며 도망치던 조직원의 등을 향해 던졌다.
“켁!”
콰콰콱!!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창은 그대로 조직원의 등을 꿰뚫은 건 물론, 벽을 꿰뚫으며 도망치던 다른 조직원들 서넛의 몸을 꿰뚫으며 벽에 박혔다.
마치 짐승 같은 움직임에 세한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지수는 세한을 한번 바라본 후, 도망치는 조직원들을 쫓기 위해 달렸다.
세한과는 전혀 싸울 생각도 없다는 듯, 애초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뭐?!”
이렇게 깔끔하게 무시할 줄은 몰랐던 세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은 없지만 사람을 구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젠장!”
달려가는 지수는 전차와도 같았다. 맨몸으로 그대로 벽을 부수고 달려 도망치는 조직원들을 학살했다. 거기다 천살성의 효과 탓에 주변에 있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 숨을 수도 없었다.
간혹 덤비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저 달려가는 지수의 몸에 부딪친 것만으로 몸이 찢겨졌으니 싸움이 성립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압도적인 능력치 차이가 만들어낸 괴물을 막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세한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세한조차 지수의 뒤를 쫓을 뿐. 제대로 공격 한번 할 수 없었다.
‘이쪽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건가?’
세한이 뒤에서 어떤 공격을 가하건 지수는 세한을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다.
발을 멈추고 덤벼들지도 않았다.
도리어 조직원들이 세한을 향해 덤벼들면 어떻게 알았는지 역으로 죽여 버렸다.
‘이거 난감한데.’
상황이 꼬이고 있다는 걸 세한은 인지했다.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지수를 공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민첩 수치는 자신과 동등했고, 천살성으로 받는 부스트는 세한보다 훨씬 높았다.
단순 달리기 싸움이 되면 세한이 지수를 잡는 건 무리다.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서 쫓아가 공격도 해봤지만, 두 차례 이상 교전할 수 없었다.
한번 공격을 받기 무섭게 피해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잡아서 몸을 멈춰 보려했지만, 그조차 불가능했다.
자신의 몸을 억지로 꺾어 부수며 관절기 마저 빠져나와 버리는 탓에 소용이 없었다.
‘관절부위에 창을 꽂아 넣어 지면에 박는다고 해도…….’
과연 지수를 억류할 수 있을까.
솔직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장 지수를 막을 수 있는 무기나 장비는 준비해 두지 않았던 탓이 컸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건물 안에 있던 조직원들을 죄다 죽여 버린 지수가 외부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아──아아.”
건물의 외벽을 그대로 몸으로 부딪쳐 부순 뒤, 길거리로 나온 지수는 주변에 돌아다니는 악마의 하수인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그들은 갑자기 건물을 부수고 나온 지수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뭐, 뭐야? 저거…… 몸에 묻은 거 피야?”
설마 그믐달 지부를 개박살 내고 나온 괴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몇몇은 지수가 악마 학살자를 깨달았는지 주춤주춤 물러서며 피하는 이들도 있었다.
“도망쳐! 저년 악마 학살…… 칵!”
남자의 말이 체 끝나기 전에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지수의 왼손에 들린 손도끼가 날아가 그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렸기 때문이다.
주변의 분위기가 일변한 것도 순식간이었다.
늑대를 만난 양떼처럼 근처 플레이어들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뒷골목에 있는 건 주로 악마의 하수인이나 계약자, 혹은 뒤가 구린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기존에 지수가 주로 죽이고 다니던 이들이기도 했다.
“정신 차려, 병신들아! 한 명한테 쫄아서 도망갈 거냐?!”
몇몇은 플레이어들을 모아 덤벼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기를 쥐고 덤볐던 이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구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까.
‘모두, 모두 죽여야 해.’
지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말만이 떠돌았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모두 죽이려하는 천살성의 본능이 지수를 움직였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착한아이’라는 특성을 지닌 지수라면 본능을 억제하고 자신의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특성에는 함정이 있었다.
지수가 착한아이로서 보이고 싶은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 것.
굳이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면 본능을 억제할 필요도 없다.
지수에게 소중한 사람이란 어머니와 세한뿐.
그중 하나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특성으로 제대로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남은 세한 하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참았던 본능과 이면을 드러냈다.
자신이 다시 착한아이가 되기 위해선, 소중한 존재를 지켜야만 한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
그때, 무기를 휘두르던 지수의 손목에 둥근 팔찌가 채워졌다.
익숙한 팔찌다. 예전에 박동권의 목에 채웠던 것과 같은 팔찌.
그것이 지금 지수의 양손에 채워져 있었다.
“……!!”
쿠우웅!
지수의 팔에 어마어마한 하중이 걸리며 무릎이 굽혀졌다.
양쪽 팔에 채워진 팔찌가 족히 몇 톤이나 되는 무게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으? 아아.”
이지가 상실된 지수의 눈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자신의 양팔을 바라보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설마 이걸 다시 쓰게 될 줄이야.”
바질리스크를 잡을 때 썼고, 박동권의 목에 채워둔 적이 있는 훈련용 팔찌였다.
무려 최대 10톤까지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팔찌니, 지수가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세한은 무릎을 꿇고 낑낑거리는 지수에게 다가갔다.
문제는 이제 지수의 이성을 어떻게 돌려놓는데 있었다.
‘민아라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녀석이 가진 스킬 중에 정신계 스킬이 있을지 모르겠다.
세한은 DLC 상점을 둘러보며 지수의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다.
으직.
“엉?”
그때 귓가에 울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세한은 시선을 돌렸다.
낑낑 거리던 지수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한지수?”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있는 부위를 연신 물어뜯은 지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을 주고 팔을 잡아당겼다. 뚜드득, 소리가 나며 어깨와 팔의 관절이 탈골됐고 이어서 손목이 길게 늘어지며 뜯겨져 나갔다.
콰지직!
손목을 연신 물어뜯은 뒤, 잡아당겨 찢어버린 것이다.
‘저게 무슨…….’
갑작스런 지수의 행동에 세한은 움직이지 못했다.
설마 저런 식으로 빠져나오리라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수는 얼어버린 세한 에게 시선한번 주지 않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양손을 이빨로 물어 하나하나 들어 올렸다.
하얗게 뼈가 드러난 손목을 뜯겨진 손에 대자 근육과 신경이 연결되며 붙기 시작했다.
삐뚤어졌던 골격도 자연스럽게 맞춰지며 어긋나있던 손목의 관절이 올바르게 붙었다.
무시무시한 재생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재생이 A급까지 되면 저런 것도 되는 건가?”
설령 된다고 해도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세한조차 처음 봤다.
인간에게는 고통이란 감각이 있다. 손목을 물어뜯어 힘으로 뽑아버릴 정도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쇼크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덜컥.
손목이 완전히 낫은 것을 확인한 지수는 떨어졌던 자신의 둔기를 들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 방향은 도심지 쪽이었다.
그곳에는 평범한 플레이어나 민간인들이 대부분인 지역이었다.
당연히 지금의 지수가 그들을 구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젠장.’
이젠 방도가 없었다.
한번 훈련용 팔찌에 속박됐던 지수가 또 같은 방법에 당해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망설이던 세한은 오른 손에 파일벙커를 장착했다.
안타깝지만 다른 무기로는 지수에게 온전한 피해를 줄 수 없었다.
평범한 공격으로 때려봤자 재생과 천살성 때문에 금방 회복되어 버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지수를 멈추기 위해선 상반신을 날려버릴 수밖에 없다고.
도심지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하는 지수를 보며 세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수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고 소중한 파티원이다.
하지만 지금 다른 방법을 찾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이대로 두면 지수는 도심지의 사람들을 모두 죽일 것이고, 나아가 서울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죽일 것이다.
어쩌면 디어사이드 길드원들 까지도.
그것만큼은 놔둘 수 없었다.
세한은 심호흡을 하며 파일벙커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신념의 응집까지 사용하여 최대한도로 에너지를 모은 뒤 도심지를 향해 달려가는 지수에게로 이동했다.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 단번에 지수의 앞으로 온 것이다.
갑자기 세한이 앞에 나타나자 지수의 붉은 동공이 크게 떠졌다.
“미안하다.”
세한은 쓰게 웃으며 지수의 가슴팍에 파일벙커를 대고 사출했다.
아무리 지수의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신념의 응집까지 가해진 파일벙커를 맨몸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아앙!!
폭음이 울리며 지수의 신형이 튕겨져 날아갔다.
근처에 있던 건물의 외벽을 부수며 가녀린 몸이 처박혔다.
새빨간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
세한은 쓰러진 지수를 멍하니 보았다.
반사적으로 피하려고 했던 것인지 지수의 몸은 예상과 달리 좌측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그렇다 해도 심장을 비롯해 주요 장기는 완벽히 파괴된 상태였다.
붉은 피로 물든 지수의 얼굴에 세한은 이를 악물었다.
새빨갛게 빛나던 눈동자의 빛은 어둡게 가라앉아있었다.
“하.”
욕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다.
2회차인 이번에도 지수는 죽었다. 결과적으로 두 번 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셈이다.
‘지수를 이곳으로 데려와서는 안 됐는데.’
아까 상자를 열지 못하게 막았어도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수의 시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세한은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세한의 실수였다.
서걱!
“……어?”
갑자기 시야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세한은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양다리가 잘려버린 것이다.
무언가가 날아와 팔에 착용하고 있던 파일벙커가 부쉈고, 그것은 이어 세한의 양다리를 절단했다.
쓰러진 세한은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박혀 빛나고 있는 붉은 손도끼를.
“세한 오빠.”
투두둑, 몸에 묻었던 돌가루가 떨어지며 지수가 몸을 일으켰다.
반쯤 날아갔던 상체가 낫기 시작했다. 꺼져있던 새빨간 안광도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뚜둑, 뚜두둑.
파괴됐던 심장이 재생되고, 부서졌던 뼈가 생겨났다.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던 근육과 살점이 재생됐다. 마치 시간이 되감겨가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A급 재생 스킬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답은 간단했다.
그녀의 재생능력은, 방금 한 단계 성장해 버린 것이다.
지수는 상냥하게 말했다.
“머리를 노리셨어야죠.”
이지가 상실되어 있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일그러졌던 입매는 말려 올라가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을 기다려 왔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