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098. 천살성(1)
“그런데 누나는 어머니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 거야?”
“특……별히 생각해 둔 건 없어.”
지수는 조금 망설이며 대답했다.
그 말처럼 어머니를 만났을 때 무슨 대화를 할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엄마가 도망치지 않는 것으로 족해.’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수는 내심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본래의 어머니였다면 굳이 이렇게 만나자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세상이 달라지며 심경의 변화가 온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죽었고, 어쩌면 의지할 곳이 하나 더 필요했을 확률도 있다.
그건 지수로선 대환영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의존해 준다면, 이제야 완벽한 양방향이 되지 않는가!
“아, 왔다.”
아까 전 한현수의 손짓에 황급히 뭔가를 가지러 갔던 하수인이 돌아왔다.
한현수는 그런 그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져 왔어?”
“예, 옙. 지부장님. 여기 있습니다.”
연신 말을 더듬던 하수인은 뻣뻣한 움직임으로 상자를 내밀었다.
그리 큰 상자는 아니었다. 적당한 크기의 볼링공이 들어갈 만한 상자였다.
세한은 그 상차를 보는 순간 얼굴을 굳혔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어쩐지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너무나 끔찍한 생각이었으니까.
“……어?”
지수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녀는 상자를 보며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비릿하고 무언가가 썩는 악취가 상자 안에서 났다.
“누나.”
“응?”
“자, 이거 받아.”
한현수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부모님처럼 인자한 얼굴로 상자를 내밀었다.
지수는 그것을 머뭇거리며 받아들었다.
상자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저 이 안에서 나는 악취가 신경 쓰였다.
“열어봐, 내 선물.”
지수의 직감은 날카롭다. 야생동물의 그것과 비슷할 정도로 지수의 직감은 뛰어났다.
그 직감이 지금 말하고 있었다.
이 상자를 열지 말라고.
절대 열어선 안 된다고.
‘………. ………. ………아냐. 동생은 어머니를 좋아했어. 그럴 리가. 그럴 리…….’
어쩐지 손이 떨렸다.
이렇게 망설임을 느끼는 건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지수는 공포라는 감정이 옅다.
이 세계가 바뀐 초기, 목숨을 걸고 고블린들을 유인했을 때도 그다지 큰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약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공포’라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천천히, 지수는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반쯤 썩어 있는, 어머니의 머리를.
“누나? 하하하, 누나? 큭, 크크크큭. 놀랐지? 내 깜짝 선물 어때? 누나가 그렇게 좋아하던 어머니야! 어머니는 누나를 무서워했지만 말이야. 나 잘했지? 내가 복수를 해줬다니까? 그렇게 누나를 때리던 어머니를 죽였어.”
낄낄 거리며 말하는 한현수의 말에 지수는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 되나.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게 이런 기분인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지수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왜.”
“응?”
“왜, 왜, 그랬어? 어머니는 그래도 너를…….”
“응, 날 의지했지. 근데 세계가 이렇게 되고나니까 그냥 귀찮더라.”
한현수는 떨고 있는 자신의 누나를 보았다.
언제나 자신의 위에 있던 누나였다. 뭘 해도 누나가 했던 일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이를 먹고 평범해진 누나였지만 그것이 연기라는 걸 자신은 알 수 있었다.
그런 누나의 행동이 더 짜증났지만, 덕분에 부모님의 시선이 자신에게 왔으니 외면했다.
이걸로 됐다, 라고 생각했다.
“알잖아, 누나도.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거. 아버지에게 연락이 안 되니까 나한테 계속 매달렸어. 처음엔 나도 지켜드리려 했지. 근데 플레이어도 아닌 벌레가, 계속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더라. 난 악마와도 계약한 몸이었는데.”
부모의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았다.
남는 건 허무감뿐이었다. 뭘 해도 결국 자신은 누나를 넘지 못했고 대체재였을 뿐이다.
어머니도 누나를 무서워했지만 사랑했다는 걸 알았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자신에게서 누나를 찾고 있는 걸 깨달았을 때는 정말 죽이고 싶었다.
마치 옆에 있는 게 한현수가 아니라 한지수였다면 괜찮았다는 것처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역겨웠다.
“그래서 죽였어.”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한현수의 모습은 마치 오늘 저녁이 뭔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태연했다.
‘미친 새끼.’
세한은 그런 그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정말로 상자에 어머니의 머리를 넣어뒀을 줄이야.
심지어 그것을 지수에게 보여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지수는 동생에게 손대기 힘들겠지.’
이건 아무래도 자신이 처리해야될 것 같았다.
상자를 들고 얼어있는 지수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울 테니까.
“누나. 누나~~? 걱정 마. 이제 누나도 같이 어머니와 함께하게 해줄 테니까. 누나가 바라는 것처럼 이제 어머니는 도망치지 않고 계속 옆에 있을 거야. 나 역시 그렇게 되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즉, 지수를 죽여 어머니와 같이 상자에 넣어두겠단 소리다.
예상은 했지만 아주 미친놈이었다.
‘이걸 죽여, 말아.’
마음 같아서는 바로 죽이고 싶었지만 지수의 동생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우선 지수에게 한번 말해보려던 그때.
지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지수?”
툭.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고
지수 어머니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렀다.
‘안 돼.’
데굴데굴 굴러가는 어머니의 머리를 지수는 계속해서 바라봤다.
눈을 감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눈은 반쯤 썩어버린 어머니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대로 표정도 알아볼 수도 없을 어머니의 머리였지만, 마치 어머니가 울부짖고 있는 것 같았다. 겁에 질려 소리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며 살려달라 외치는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한지수.’
심장이 뛰었다.
좋지 않은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참자, 참아야지. 계속, 참아야 해. 옆에 세한 오빠도 있어.’
눈에 핏발이 서고 동공이 단번에 붉게 물들었다.
숨이 거칠어지고 전신의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참자.
지수는 계속 그렇게 되뇌었다. 자신을 억누르고 참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참을 수 없어.’
어머니가 죽었다.
언제나 자신을 피하던 이였지만 자신의 유일한 어머니였다.
자신의 이상함을 알지 못했을 때는 평범하게 자신을 사랑해 주던 그런 어머니였다.
지수가 의존하고, 사랑하던 어머니가 죽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
지수가 사랑하는 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안 돼.’
그것에 생각에 미친 순간 머릿속이 붉게 타올랐다.
이제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순간, 억지로 만들던 이성의 방벽이 부서졌다.
‘참으면, 안 돼.’
자신이 참아서 어머니가 죽은 거다.
적어도 남은 하나는 지켜야만 했다.
언제나 그의 곁에 서서, 그를 지켜야만 했다.
그가 자신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두 다리를 끊어서라도.
‘하지만 그걸로 부족해.’
자신의 곁에 두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이 세계는 게임이 됐고, 강자가 너무 많으니까.
게임이 되어버린 세계 자체가 지수의 적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은 간단했다.
‘모두 죽여야 해.’
어떤 게 위협이 될지 모른다.
지수의 머리가 움직였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모두, 모두 위험해.
동생도 어머니를 죽였는걸.
누가 세한 오빠를 죽일지 몰라. 그리고 모든 플레이어들을 죽인다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 게임도 종료가 될 테니 안전해질 거다.
지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참지 말자고
동시에 시야가 붉게 물들며 내면에 잠들어있던 이면이 완벽히 깨어났다.
“조용하네.”
가만히 멈춰서 있는 지수를 지켜보던 한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나? 뭐야, 조금은 반항은 해줘야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한지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또각, 또각 거리는 앵클 구두의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오, 이제야 정신 차렸구나. 좋아, 그럼 누나.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줄게.”
한현수는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긴 검을 꺼내들었다.
어머니를 죽일 때 사용했던 검이다.
그 뒤로는 사용하지 않은 탓에 아직도 검에는 어머니의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이게 어머니를 죽였던 검이야. 누나도 이걸로 죽는 게 좋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걸로…… 켁!”
한현수의 목이 지수의 손에 잡혀서 들려졌다.
갑작스런 공격에 한현수는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른팔이 움직이며 검이 휘둘러졌다.
‘바보 같긴.’
기습을 한다면 죽일 각오로 했어야지.
새까만 마력으로 뒤덮인 검은 강철도 두부처럼 자를 수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지수의 허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푹!
“어, 엉?”
현수의 검은 살갗을 찢고 박혔다.
지수의 허리춤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한현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검이 여기서 멈췄지?’
그대로 반 토막을 내버릴 생각이었는데, 검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팔에 아무리 힘을 넣어도 검은 지수의 허리를 더 이상 벨 수 없었다.
‘대체 내구력이 어떻게 되먹었기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바타도 아니고, 악마의 계약자도 아닌 플레이어치곤 능력치가 지나치게 높았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목을 쥔 지수의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으로 아무리 공격해도 겉만을 찢을 뿐 제대로 된 상처를 줄 수 없었다.
심지어 재생능력까지 있는지, 찢어졌던 상처들도 금방 아물었다.
“누, 누나? 이거 놔주지 않을래?”
“…….”
“누나?”
“고마워.”
뜬금없는 감사인사에 한현수는 그제야 자신의 누나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붉게 빛나는 안광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언제나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에는 묘한 희열이 감돌았다.
자신의 누나는 지금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나? 누나? 자, 잠깐. 누나 이거 놔……!”
지수의 손이 움직였다. 오른손은 한현수의 목을 잡고, 다른 손은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수직으로 당겼다.
“너, 너희들 뭐하는 거야?! 보, 보고만 있을 거야?! 당장 공격해!”
한현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느끼고 있었다.
실내를 잠식하는 강렬할 살기에 숨을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 안 ㄷ……!”
찌지직!
한현수의 비명과 함께 몸이 뜯겨졌다.
목과 다리를 당겨져 머리가 뽑히고 다리 관절이 뒤틀렸다.
지수는 손에 들린 동생의 머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동생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안녕.”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바로 세한이 있었다.
굳은 얼굴로 바라보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
‘일 터졌네.’
완전히 광기로 물들어 버린 지수의 눈동자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마 여태 억제하던 천살성의 광기와 지수의 내면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혈천수라공을 수련하는 마인들이 간혹 빠지게 되는 심마가 바로 저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죽이려고 하는 광기.
다만 다른 점은 지수가 나를 보며 짓고 있는 미소였다.
“세한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왜?”
“후, 후후후, 대답했다. 네, 네네. 제가…… 지켜드릴게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절대, 절대로 어머니처럼 되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 절대로.”
‘지키긴 뭘 지켜.’
뭘 말해도 지금 지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지금 광기에 빠진 지수가, 이 뒷골목을 빠져나가는 걸 막는 것이다.
저 상태로 도시에 갔다간 대형 참사가 터질 게 분명했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네요. 역시 주변에 있는 벌레들 때문이죠?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저만 믿으세요. 저만, 저만 믿으셔야 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지수가 상자를 받아드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았어야만 했다.
설마 그 미친놈이 정말로 어머니의 머리를 들이밀 줄 알았겠는가.
‘막을 수 있겠지?’
인벤토리에서 흉성의 학살자를 꺼내드는 지수를 보며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련으로 싸워본 적은 있었지만, 대련과 실전은 다르다.
지수는 대련보다 실전 쪽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내가 다른 플레이어들과 우위로 내세우는 압도적인 능력치도 지수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인간형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천살성과 능력치 부스트는 나조차 능가한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지수의 능력치는 마력수치를 제외하고 나와 동등한 수준이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남은 건 기량과 지닌 스킬정도인데…….
‘스킬은 지수도 충분히 빵빵하단 말이지.’
이길 수야 있겠지만 제 때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선 나로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수를 막지 못해 최악까지 가게 된다면.
지수를 죽여야 할지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