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097. 집착의 행방(3)
“뭐? 진심이야?”
동생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도저히 납득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남동생으로서 누나를 걱정하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니라 누나인 지수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지수는 덤덤히 답했다.
덕분에 나 역시 할 말을 잃고 지수를 보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느낌 아닌 느낌이 있긴 했는데…….’
지수가 내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다.
내가 눈치가 없는 등신도 아니고 그 정도는 알지.
다만 그것이 이성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단순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호감인지 헷갈렸을 뿐이다.
그런 낌새가 느껴지는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
“누나가 타인을 좋아한다니, 솔직히 납득할 수가 없어.”
“……한현수.”
아마 동생의 이름이 한현수인 모양이다.
그는 지수의 말에 순간 움찔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곤 내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으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는구만.’
애초에 지수가 목적인 것 같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무시할 줄이야.
뭐 나로서도 이게 편하긴 하다.
나는 찬찬히 지수의 동생, 한현수라고 했던가? 아무튼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악마의 계약자인가, 아니면 하수인인가.’
녀석이 들어온 순간부터 알았던 사실이다.
빛을 집어삼킬 것 같은 검은 머리와 짙은 눈동자, 그리고 풍겨오는 분위기로 볼 때 계약자일 확률이 높았다.
‘지수가 말한 문제가 이거였구나.’
설마 가족 중에 악마와 관련된 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이곳에 오면 뭔지 알거라는 말도 이해는 갔다.
악마의 계약자라면 죽이고 보는 지수지만 차마 가족에게는 그럴 수 없겠지.
지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본론만 말해.”
“역시 이래야 누나답지.”
방금 전까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던 한현수는 지수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여유를 되찾은 듯, 천천히 목을 풀며 입을 열었다.
“사실 누나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나 많이 달라졌지? 예전의 한현수가 아니야. 보다시피 악마와 계약했어. 악마서열 17위의 악마지.”
악마 서열 17위면 네비로스보다 높다.
최상위 악마라고 할 수 있으니 한현수가 거만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누나는…… 보아하니 누구와도 계약하지 못했구나.”
“…….”
굳이 말하자면 나와 계약했지만 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말을 꺼낼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겠지.
하지만 녀석은 그것이 기뻤는지 입고리가 말려 올라갔다.
‘누나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군.’
나는 직감했다.
이놈은 지수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입은 여유 있는 척 말하고 웃어도, 눈은 그렇지 않았다.
눈동자는 언제나 지수를 훑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아마 아까 지수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보였던 얼굴이 진짜 녀석의 맨얼굴이리라.
“누나가 없어지니까 어머니가 나를 물고 늘어지더라. 알지?”
“……엄마는 겁이 많으니까.”
“겁? 그 사람이? 하하하! 하긴 그래. 그러니까 누나한테 연락이 왔을 때 그렇게 벌벌 떨었지.”
“어머니는 네가 모시고 있는 거 맞니?”
“응, 나와 함께 있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 만나게 해줄 생각이야.”
한현수는 그렇게 말하며 히죽 웃었다.
“누나와, 엄마와 감동적인 재회를 해줄 생각이야. 내가 여기로 누나를 왜 불렀겠어.”
“그래. 그렇다면 안심이네.”
지수는 이질적인 동생의 반응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건 동생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동생이 이런 태도로 나오리라 예상했기에 할 수 있는 반응이다.
“누나는 지금도 착한 척이네.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화낼 수도 있잖아? 언제나 참고, 또 참고. 부모님이 그렇게 행동해도. 무슨 짓을 하더라도 착한 척했었지. 솔직히 나는 세상이 이렇게 돼서 조금은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게 편하니까.”
“누나는 괴물이야.”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지수는 그런 동생의 폭언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여태 내가 봐온 지수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반응에 솔직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얘가 내가 아는 지수가 맞나?’
애초에 천살성을 지닌 지수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었음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건 이상했다. 분명 지수가 타인에게 순종적인 면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화를 낼 때는 낼 줄 아는 녀석이었으니까.
“뭐, 좋아. 그럼 어머니를 만나러 가볼까?”
“……정말?”
지수는 아무래도 동생이 만나지 못하게 막을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지수의 말에 동생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 어머니도 기다리고 계실거야.”
그리 말하는 녀석의 모습을 나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난 녀석의 눈에서 광기를 읽을 수 있었다.
‘정상인의 눈이 아니다.’
나는 저런 눈을 여럿 보았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 인간들이 저런 눈을 지니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나는 그 느낌이 부디 기우이길 바랐다.
***
‘불안해.’
세한이 한현수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듯, 지수 역시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본 동생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것을 글라스톤베리에서 재회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렇게 다시 대화를 해보니 더더욱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악마의 영향일까?’
역시 악마란 존재는 나쁘다.
지수의 동생은 절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니, 이젠 스무 살이니 아이라고 부를 수도 없나.
‘엄마가 동생에게도 그런 짓을 한 건지도 몰라.’
지수,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대했을지도 모른다.
방파제의 역할을 하던 자신이 사라졌으니 어머니의 히스테리는 모두 동생이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지수의 어머니는 나약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나약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시키는 그대로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어린 시절부터 지수는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무엇을 하든 잘했고, 또래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소녀였다.
처음엔 부모님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수가 점차 평범한 사람과는 격이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자 태도가 달라졌다.
평범한 아이와는 다른 지수를 두려워한 것이다.
묘하게 지수를 피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경기마저 일으켰다.
하지만 그건 잘못되지 않았다.
확실히 지수, 자신은 조금 이상한 아이이긴 했다.
지나치게 의존적인 성격이었고, 어머니의 사소한 말에도 지나치게 반응하던 그런 아이였다.
어머니가 자신을 피했던 것도 이해는 간다.
반면 아버지는 지수가 잘하면 잘할수록 다른 아이들을 무시했고, 지수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며 채찍질했다.
넌 더 잘할 수 있다.
이게 너의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면 어머니는 그런 지수를 두려워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충족시키는 지수를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은 폭력성으로 변질됐다.
때리고 또 때려서, 눈물을 흘리는 지수를 봐야 간신히 안도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머니에게 미소 짓는 지수의 모습을 보면 다시 공포를 느꼈다.
그 정도로 지수는 어머니에게 의존했다.
때려도 웃었고, 어머니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다.
지수에게 폭력이란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어떤 고통도 지수에게 공포를 주지 못했다.
그 이상함을 어머니는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다.
스스로의 이상함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순종하고 참는 걸 배운 것도 그때다.
적당히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최대한 순종적으로 행동했다.
아버지의 요구도 외면하며 스스로를 낮췄다.
그렇게 지수는 적당히 재능이 있는 아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는 지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대는 동생에게로 넘어갔고, 어머니의 사랑도 동생에게로 향했다.
지수는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도망치지 않는 것만으로 지수는 만족했으니까.
다만, 동생이 조금 불쌍했다.
어린 자신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던 동생은, 그제야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지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성과를 내었고, 아버지는 계속 닦달했다.
그 광경은 지수가 다른 이보다 1년 일찍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수는 알지 못한다.
대학교는 기숙사에서 다녔고, 집에는 연락 한번 한적 없었다.
어머니를 볼 수 없는 건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가 과거의 자신을 잊을 때까지 참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잊었을 때 다시 다가가 볼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이상하지 않도록.
하지만 갑자기 세상은 변해 버렸다.
자신을 폭행하던 아버지는 죽었고, 자신을 두려워하던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을 피했다.
그런데 이제서 자신을 만나준다고 말하다니.
‘이상해.’
너무나 이상했다.
지수는 불안한 마음에 옆에서 걷고 있는 세한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제야 조금 안도가 되었다.
대학교에 와서 만난 자신의 새로운 버팀목.
그는 아마 알지 못하리라, 왜 자신이 그를 쫓아다니게 되었는지.
“한지수.”
“네, 네?”
“왜 그래? 역시 신경 쓰여?”
지수는 그가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입꼬리가 말려 올라갈 뻔했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답했다.
그는 경박한 사람을 싫어한다.
“괜찮아요. 전에 말했듯, 저는 보인다고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악의가 느껴지는데…….”
“지금은 동생이 보고 있으니 참을게요.”
최대한 태연히 말한다.
착한 척.
침착한 척.
부모님에게 하던 연기는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한지수 자체가 되어버렸다.
본래의 자신이 어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참 우습지.
만들어진 연기가 ‘한지수’의 성격 그 자체가 될 줄이야.
자극 없는 무채색의 자신.
특색 없는 이 모습이 지금의 한지수다.
‘아마 세한 오빠도 모를 거야.’
몰라야 한다.
자신의 이상한 모습을 보고도 다가와 준 사람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미 잊은 것 같지만 다시 생각날지도 모르잖아.
응, 그래. 그러니 계속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
“근데 누나가 악마 학살자라는 게 진짜야?”
앞서 걸어가던 한현수가 물었다.
지수는 세한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리며 덤덤히 답했다.
“아마, 맞을 거야.”
“신기하네. 아바타도 아니고, 계약자도 아닌 거 같은데…… 하긴 당한 녀석들은 약한 녀석들이었지.”
지수가 처치한 이중에선 철마 박도영도 있었지만, 현수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아바타나 계약자가 아닌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건 한계가 있으니 현수의 반응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현재 지수는 동생의 앞이라 최대한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주변에 워낙 악마의 하수인들이 많이 있었기에 혹여나 본능적으로 살기가 흘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강한 녀석은 없군.’
세한은 건물 안을 살피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했다.
현재 세한과 지수는 한현수의 안내에 따라 한 건물에 들어온 참이었다.
기존에 머물던 이들을 전부 죽이고 뺏은 듯, 건물 벽면에는 군데군데 핏자국이 있었지만 세한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끼익.
건물의 위로 한참 올라가, 금속으로 된 문을 열자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고, 그들은 한현수를 보기 무섭게 고개를 숙였다.
“한현수 지부장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그래. 모두 고생이 많네.”
마치 조폭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세한은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뭐하자는 거지?’
악마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한현수가 고개를 들라고 하자마자 온갖 아부를 떨기 바빴다. 지수와 세한은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고 오로지 한현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딱딱한 그들의 얼굴에서 평소 한현수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부장?”
“응, 누나. 나 지부장이야. 그믐달이라는 길드 들어봤지? 거기에 간부 중 하나가 됐어.”
지수가 말하기 무섭게 한현수가 양팔을 벌리며 몸을 돌렸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라는 제스처다.
한층 지수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믐달이라고 하면 지수가 심심하면 박살 내러 다니는 곳이었으니까.
설마 그 길드의 지부장이 동생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새롭게 신설된 강남지부 지부장이 나야. 아무것도 아닌 누나랑은 다르다는 거지.”
“그래.”
“……뭐야, 질투나? 풉. 크크큭. 이제 내가 누나보다 위라는 게 제대로 실감 나지?”
얼마나 즐거운지 몸을 부르르 떠는 현수의 모습에 세한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반면 지수는 덤덤했다. 이번만큼은 세한도 지수의 표정관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동생을 보고도 이렇게 태연히 있을 수 있다니.
“그보다 엄, 아니 어머니는 어디 계셔?”
“재미없네. 정말 아무 느낌도 안 드나? 정말 누나는 재미없다니까.”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하는 지수의 모습에 한현수는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깨를 으쓱한 그는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가져와.”
“네, 넵!”
‘가져와?’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세한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라기엔 어색한 말이었으니까.
그것은 마치, 물건을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