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96화 (96/332)

# 96

096. 집착의 행방(2)

“꺄아아아아악!!”

서울 신림, 한 건물 안에서 십대로 보이는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야!”

“수아야, 왜 그래?!”

갑작스런 비명에 이미 일어나 잇던 다른 여성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 두 명의 이름은 지선과 혜미로, 최근 수아와 합류한 여고생들이었다.

‘자운 오빠도 지금 없는데 뭔 일 난 거 아냐?’

아자젤과 새롭게 계약을 맺은 계약자들이었지만 그 힘은 대단치 않았기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명을 지른 수아를 안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잘 봐봐, 얘가 그냥 비명 지르진 않았을 거 아냐.”

그래도 없는 건 없는 거였다.

수아는 숨을 몰아쉬다 자신을 안고 있는 지선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괘, 괜찮아요. 조금 악몽을…… 아니 미래를 봤을 뿐이에요.”

조금 민망하다는 듯 중얼거린 수아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방금 전에 보았던 광경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끔찍한 미래를 봤던 수아지만 이렇게 비명을 지른 건 오랜만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그런 수아의 마음을 느꼈는지 혜미가 긴장된 어조로 물었다.

“어, 어떤 미래인데?”

“간단히 말하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요.”

그뿐 아니라 깨어나기 직전엔 수아의 심장도 뽑힌 참이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깬 것도 그런 이유다.

“……다 죽어? 왜?”

“그때 한번 만났던 검은 옷을 입은 언니 기억하세요?”

검은 옷을 입은 언니라고 하면 기억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자운의 공격을 얻어맞고 목이 돌아갔음에도 죽지 않았던 여성.

압도적인 힘과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둘의 기억 속에도 선연히 남아있었다.

“그, 그 언니가 다 죽여?”

“네.”

“확실히 그럴 거 같은 언니이긴 했는데…….”

갑자기 어쩐 이유로?

자운의 말로는 그 여성은 까마귀라는 자에게 통제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확실하지 않아?”

“네,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솔직히 어찌될지 모르겠어요. 수많은 분기점이 있고, 그중에선 서울 사람들이 모두 죽는 미래가 보여요.”

“죽지 않는 것도 있는 거지?”

“네. 조금 불투명하지만요.”

그건 아마 그녀가 운명을 거역한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을 거역한자.

원래는 죽었어야 했지만 어떤 연유로 살아버린, 운명을 거역해 버린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수아가 붙인 말이다.

예를들어 자운이 그랬고, 자신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여성도 결정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운명이라는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 버린 존재라는 거다.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수아는 침체된 얼굴로 방금 전 자신이 보았던 꿈을 떠올렸다.

사람들을 학살하며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여성.

천살의 업을 지닌, 학살자가 그곳에 있었다.

***

이벤트 퀘스트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귀환할 수 있었다.

이번 퀘스트에서 가장 이득을 본 건 단연 이민아.

그녀는 플레이어들이 용을 잡는 동안 다른 아이템을 잔뜩 모은 것은 물론, 플레이어들이 모아둔 아이템을 몰래 가져왔다.

간단히 말해서 훔친 것이다.

오랜만에 민아의 본성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약탈이 허용되는 이벤트였으니 하등 문제는 없지.

변신능력을 가진 민아가 마음만 먹는다면 훔칠 수 없는 물건은 없다고 봐도 되니까.

“헤헤헤.”

민아는 이번 이벤트에서 얻어온 아이템들이 마음에 드는지 자기 방에 하나하나 장식해 두었다.

등급도 다양하다.

최소 C등급부터 무려 A등급 아이템까지 있었다.

아마 A등급 아이템이 플레이어들에게서 훔쳐온 물건이 아닐까 싶다.

던전 레이스도 그렇지만, 포인트를 버는 퀘스트에서 민아의 활약은 대단했다.

덕분에 이번에도 디어사이드 길드에 대한 위명이 늘어난 건 당연지사.

사실상 서울 최고는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는 디어사이드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형편이었다.

그건 그렇고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지수의 분위기가 묘한데.’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찾지 않은 탓인지 지수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상한 점은 단순히 삐진 것 같지는 않다는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 인사라도 할 겸 만날 걸 그랬나.’

변명을 하자면 나도 아서를 설득하느라 바빴다.

거기에 백설이가 모르간에게서 어떤 교육을 받는지 볼 필요도 있었다.

“아.”

그때, 지수가 묘한 감탄사를 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시선을 보면 대충 쪽지함이 있는 위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게 쪽지가 온 모양이다.

‘지수가 쪽지를 주고받을 사람이 있나?’

딱히 신의 아바타가 된 것도 아니고, 나를 제외하면 특별히 친분을 쌓은 플레이어도 없다.

아무에게나 친하게 지내는 민아 정도.

하지만 민아는 지금 이번 이벤트에서 얻은 아이템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으니 짐작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결국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수야.”

“네, 네?!”

“왜 그렇게 놀라.”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수는 묘하게 불안해 보였다.

이 녀석을 꽤 오랜 시간 봤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기껏해야 세계가 처음 게임으로 되었을 때나 이런 얼굴을 했었지.

“방금 쪽지함 보고 있었지? 혹시 누구에게 왔는지 물어도 괜찮아?”

“아, 눈치채셨나 보네요”

고개를 끄덕이자 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다지 상관없어요.”

“누군데?”

“제 동생이요.”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는 지금 처음 들었다.

“동생이 있었어?”

“네, 저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어요. 키도 크고 뭐든지 잘하던 애예요. 저랑은 다르죠.”

“내 생각에는 너도 충분히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오빠 덕이죠.”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고맙지만, 내 말은 거짓 없는 사실이다.

설마 동생은 지수 이상의 재능충이라는 말인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데.

지수 이상의 재능을 지녔다면 사실상 린을 위협할 정도의 재능을 지녔다는 이야기다.

그런 플레이어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생에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근데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뭐야?”

“한번 만나자고 해서요.”

“이런 말하긴 좀 그렇다만…… 동생과 사이가 별로 안 좋나 보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좀 복잡해요.”

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도 함께 계신다고 했거든요.”

“그럼 잘됐네. 너 전부터 어머니 찾아다녔잖아.”

“그렇죠. 근데 막상 찾아오라고 하니 발이 떨어지진 않네요.”

차마 왜냐고 묻기 힘들었다.

그만큼 지수의 표정이 어두웠으니까.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머니는 저를 별로 안 좋아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를 두려워하는 거 같아요.”

“……왜?”

“글쎄요.”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는 지수의 모습은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 웃음에 마주 웃을 수 없었다.

사람에겐 개인 사정이라는 게 있다.

솔직히 지금 내가 지수에게 질문했던 것들도 사실 무례한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말을 걸었던 건 지수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즉,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꺼려진다는 거군.”

“네. 그렇죠.”

“그럼…… 같이 가줄까? 어차피 지금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자 지수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오늘따라 친절하시네요.”

“아무래도 네 일이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수는 조금 숨을 들이켰다.

표정을 관리하고 있지만, 입가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상당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조, 좋아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조금 당황스럽지만.”

“뭘 당황할 것까지야.”

“맞아, 어머니에게 한번 소개시켜 드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요. 그리고 어머니도 저보단 옆에 세한 오빠가 있는 걸 좋게 생각할 거예요. 다만…….”

“다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건 가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여기서 또 문제가 있다?

나는 의문스러웠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지수의 가정사도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였다. 지수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튼튼해 보이긴 하지만 가족이 문제가 되면 또 다를지도 모른다.

전생의 은인이기도 하며, 우수한 자원인 지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건 나도 사양이었다.

***

내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지수의 동생이 만나자고 한 약속 장소로 가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아닌, 악마의 하수인들로 들어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뒷골목.’

말이 뒷골목이지 사실상 악마의 계약자나 하수인, 그리고 그에 준하는 무리들이 모여 있는 서울의 어둠이다.

본래라면 주원이 장악했을 구역.

보통 몬스터에게 철저히 파괴되었던 지역들이 여기에 속했고,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라면 잘 오지 않는 장소에 그들이 똬리를 틀었다.

참고로 이곳은 나도 기억에 있는 장소다.

왜냐면 본래 더 씬의 본거지가 있던 지역이었으니까.

“이거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지?”

“네.”

지수의 표정은 상당히 안 좋았다.

악마의 계약자나 하수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니 당장 무기를 꺼내지 않은 것도 잘 참고 있는 거다.

솔직히 나도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다.

악마의 계약자나 하수인, 혹은 뒷세계의 플레이어들은 되도록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굳이 우리를 건드리지도 않은 녀석들을 박살 낼 생각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해?”

“분명 이곳에 있는 할리스 벅스는 하나뿐이라고 했어요.”

할리스 벅스는 커피 체인점 중 하나다.

이런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에서 할리스 벅스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있네.’

생각보다 멀쩡한 간판이 들어왔다.

정말로 제대로 된 할리스 벅스가 이곳에 존재했다.

딸랑.

“어서옵…….”

할리스 벅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마 카페 알바생인지 주인인지 모를 남자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다가 말을 멈췄다. 눈은 점차 크게 떠지고 얼굴은 점차 파랗게 질려갔다.

그 시선은 지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 악마 학살자.”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처럼 주춤주춤 물러섰다.

왜냐면 남자는 악마의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뒷골목답게 카페 알바생마저 악마의 하수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기 힘들긴 하겠지.

‘그나저나 지수가 생각보다 되게 유명하네.’

이쪽 세계에서는 나보다 훨씬 이름이 알려져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슬슬 몸을 빼려던 남자를 본 지수가 옅은 한숨을 쉬며 오른팔을 슥 움직였다.

휘리리릭! 콱!

“히이익!”

인벤토리에서 손도끼를 꺼낸 지수가 남자를 향해 던졌다.

물론 맞출 생각으로 던진 건 아니고 단순 위협용이다. 벽에 박혀 있는 손도끼를 남자는 떨리는 눈으로 보았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네, 네?”

“아메리카노, 두. 잔.”

지수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악인을 보면 반응하는 지수는 당장에라도 상대를 죽이고 싶은 눈치였지만 참는 게 똑똑히 보였다. 카페 내부를 잠식하는 살기에 남자의 얼굴이 빠르게 끄덕여졌다.

“예, 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그런 남자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였지만, 유혈사태를 일으킬 생각은 없는지 지수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벽에 박혀있던 손도끼가 뽑혀 지수의 손에 잡혔다.

‘회수기능을 만들어둔 건가.’

흉성의 학살자를 제외하면 지수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무기는 저 손도끼다.

사용하기 쉽고 투척도 할 수 있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갈수록 무기의 질도 올라가니, 이젠 던지고 자동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기능까지 붙인 모양이다.

“여, 여기 있습니다.”

남자는 우리 둘에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건네준 뒤 슬슬 눈치를 살폈다.

지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깊숙이 고개를 숙인 후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갔다.

“동생은?”

“곧 온다고 방금 쪽지로 왔어요.”

그렇게 대략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10분 정도 기다리자, 카페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대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훤칠한 신장에 여유 있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누나, 생각보다 일찍 왔네.”

지수는 동생이 있는 곳을 살피다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아니 어머니는?”

“그건 천천히 말해줄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다 나를 발견하고는 발을 멈췄다.

“……누구?”

나한테 물은 게 아니다. 지수에게 물은 거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

지수는 덤덤하게 답했다. 너무 심플하게 답해서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다.

아니 잠깐, 오해하지 말자. 저 태도를 보면 그냥 순수하게 사람으로서 좋아한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음, 분명 그런 거겠지.

“좋아해? 누나가?”

반면 남동생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시종일관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조금 삐걱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덤덤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지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그렇지, 농담이었구나?”

마치 지수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눈치다.

지수는 그런 동생을 힐끔 바라본 뒤, 아메리카노가 담겨있는 유리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농담 아닌데.”

“어?”

“농담 아니야.”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남동생의 웃음이 사라졌다.

참고로 웃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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