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93화 (93/332)

# 93

093. 베히모스(2)

“우와, 저게 대체 뭐야.”

민아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한숨 자고 일어나니 거대 괴수 두 마리가 글라스톤베리에서 포효하고 있는 거다.

솔직히 무슨 괴수 영화의 한복판인가 싶었다.

“여태까지의 센티넬과는 스케일이 다르군요.”

민아의 옆에 있던 창우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이기에 둘의 강함을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이건 세한 오빠가 와도 안 되겠다.’

일반적으로 센티넬은 절대 이길 수 없는 몬스터다.

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민아는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여태 만났던 센티넬은 죄다 세한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아의 인식은 꽤 강하긴 하지만 세한의 걸리면 죽는 정도의 몬스터였다.

그런데 눈앞의 괴수들은 세한이 온다고 해도 딱히 방법이 없어 보였다.

파일 벙커?

그걸로 머리든 눈이든 어디를 공격해도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비주얼이다.

그나마 저 거대 멧돼지 같은 베히모스는 그럴 구석이라도 있었지만 용에게는 전혀 소용도 없어 보였다.

“……입을 벌렸을 때 몸속으로 들어가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지수가 말을 꺼냈다.

용의 비늘이나 베히모스의 가죽은 무척 강인해 보였다.

외부로부터 공격을 가해봐야 큰 타격을 줄 수 없겠지. 그렇다면 궁기를 죽일 때처럼 내부에서 날뛰면 어떨까 생각해 본 것이다.

물론 민아는 그런 지수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언니가 재생력이 제법 뛰어난 건 알지만 제네 입장에선 별거 없을걸? 입으로 들어가면 그냥 조금 질긴 껌 정도가 되지 않으려나. 아니, 몸이 좀 튼튼하니 엿 정도는 되겠다.”

“질긴 껌…… 엿이라니…….”

그렇게 비유하니 지수도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지수 씨. 혹시 세한 씨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이야기는 없습니까?”

“네.”

지수는 우울한 어조로 말했다.

눈에서 옅은 붉은기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없어요.”

지수는 맵에 표시된 세한의 마커를 보았다.

계속 확인하고 있었지만 용과 베히모스가 나타난 후로 세한은 초기에 갔던 숲으로 이동했다.

이후로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대체 왜 거기에 간 건지 지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

“저거 네가 깨운 거니?”

“그럴 리가 있나. 나도 내 목숨이 아까운 건 안다.”

모르간의 말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 보았지만 이번 만큼은 정말 아니다.

내가 미쳤다고 저 둘을 깨워?

“저게 신수군요. 저와 같은…….”

백설이는 모르간이 비춘 영상에서 나오는 드라이그 고흐와 베히모스를 보며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야 진짜 기린은 저 둘에 비해 전혀 꿇리지 않은 환상의 성수이기는 하다.

“그래서 여긴 왜 왔어? 이상한 남자까지 데리고. 여기가 네 집도 아닌데 너무 편히 오는 거 아니야?”

“모르간.”

투덜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내 뒤에 잠자코 서 있는 아서의 등을 떠밀었다.

아서는 방금 전에 막 제정신을 차린 참이었다.

그는 모르간을 본 순간부터 뭐라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자의 이름은 아서다.”

“그래서?”

마치 아서라는 이름이 뭔 대수냐는 눈치였다.

하기야 아서라는 이름은 제법 흔하기는 하다.

“엑스칼리버의 주인이지.”

“그래, 그래, 아서라면 엑스칼리버를…… 뭐?”

“네가 지키고 있던 엑스칼리버의 주인이라고.”

모르간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 말이 사실이냐는 눈치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직접 보기 전에는 안 믿어.”

“그렇겠지. 그래서 직접 네 앞에서 뽑으려고 했다.”

나는 허수공간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아 앞에 내려놓았다.

모르간은 엑스칼리버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눈으로 보다가, 이내 아서를 돌아보았다.

아서는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아직 검을 뽑는다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텐데?”

“웬만하면 나도 너의 의견을 존중해 줄 생각이고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영상을 가리켰다. 드라이그 고흐와 베히모스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저것들이 나타난 시점에서 나는 아서를 기다려 주기로 한 생각을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졌지. 너는 저것을 보고서도 망설임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나 보군.”

“그렇지만 내가 검을 뽑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나는 있다. 네가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언제 녀석들이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죽이게 될지 몰라. 너는 그걸 바라나?”

아서는 입을 다물었다.

복잡한 얼굴이다. 아마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서를 기다려 줄 수 없었다.

“……알겠다.”

아서는 영상을 한번 보고, 내 얼굴을 본 뒤 엑스칼리버에게 다가갔다.

“해 봐.”

모르간도 그런 아서에게 짤막하게 답했다.

어디 한번 자신에게 자격을 증명해 보라는 것이다.

가볍게 말하긴 하지만 그녀는 아발론을 지배하는 마녀.

신화시대의 존재였다.

아서는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검을 쥐었다.

팔에 힘을 넣고, 천천히 검을 위로 올렸다. 내가 했을 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엑스칼리버가 천천히 뽑히기 시작했다.

비석과 함께 들어올리는 것이 아닌, 오직 엑스칼리버만이 뽑히고 있었다.

스릉.

맑은 검명이 울리며 엑스칼리버가 비석에서 뽑혔다.

하얀 검날이 모르간의 공방을 밝게 비추며 광체를 발했다.

[최초의 SS급 장비 엑스칼리버의 주인이 탄생하였습니다!]

아마 이 메시지는 전 세계 모든 서버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초로 등장한 SS급 장비의 주인.

아서는 자신의 손에 들린 엑스칼리버를 보며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생각을 전부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검을 뽑았다.

“놀라워라.”

모르간은 감탄한 얼굴로 그런 아서를 바라보았다.

또한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싱긋 웃었네.

“까마귀, 안목이 좀 있네?”

“너보다는.”

“건방지기도 하지.”

모르간은 깔깔 웃으며 멀리 놓여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손으로 불러들였다.

손에든 지팡이를 쿵, 하고 지면에 내리찍자 자색의 마법이 아서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구부러졌던 등이 펴지고, 다리의 상처가 나았다.

“와아.”

그 엄청난 치료마법에 백설이가 감탄한 눈치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겐 순식간에 오랜 장애를 치료하는 걸 보면 성녀 신유화보다도 치유 스킬에 능숙한 건지 모른다.

“세한.”

몸의 장애가 나은 것을 느낀 아서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는 눈치다.

물론 나의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우선 계약부터 맺죠.”

***

각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모으던 것도 멈추고 최대한 몸을 숨겼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라이그 고흐와 대지를 돌아다니는 베히모스가 있는데 이벤트 따위가 중요하겠는가.

포인트 세 배는 중요하긴 했지만 그보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했다.

“요즘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아웃라이징의 길드 마스터 강태성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던전 레이스부터 뭔가 운이 안 좋긴했다. 그때도 갑자기 감당이 불가능한 재해가 자신을 덮쳤었지. 그 뒤로는 만용을 부리지 않고 최대한 조심조심 활동해온 강태성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용과 베히모스란다.

앞발에만 밟혀도 강태성은 골로 갈 것이 분명했다.

“길드장님이 있었다면 뭔가 좋은 계획을 짜셨을 텐데.”

“아서라, 그놈이라도 저런 것들을 상대로는 기도밖에 할 수 없을 거다.”

제네시스의 부길드장 홍가은의 말에 강태성이 투덜거렸다.

서울에서 만났다면 철천지원수처럼 대했을 둘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참고로 박성혁은 본신의 무력은 대단치 않아 이번 이벤트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자, 우선은 베히모스부터 토벌해야 합니다. 용은 어떻게 하기 힘들지만 베히모스는 죽일 수 있어요.”

가장 먼저 둘의 움직임을 감지했던 독일 서버 율리안이 말에 주변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각 서버 10위 안에 드는 플레이어분들이 앞에 서셔야겠습니다. 제가 몬스터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스킬을 지니고 있는데, 베히모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거대해진다고 하더군요.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내버려두면 큰 위협이 될 겁니다.”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플레이어 에릭. 이미 센티넬을 사냥해본 경험이 있는 당신이 선봉에 서주셔야겠습니다. 가능하죠?”

“내, 내가?”

“그럼 누가 센티넬을 잡은 에릭이 또 있겠습니까?”

“끄응.”

에릭은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잘난 척하던 당시의 자신을 패고 싶었다.

‘이번 이벤트는 최악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센티넬 처치도 빛이 바랬고, 이벤트 중에는 악마의 계약자에게 유혹당해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저 괴물들을 잡기 위한 선봉의 역할을 수행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잡은 건 저런 괴물이 아니라고!’

어디까지나 싸워볼 만한 크기였다.

저건 열 명이 아니라 백 명이 덤벼도 까딱하지 않을 괴물들이었다.

각 서버의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강한 이가 많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대략적인 작전을 끝낸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무기를 점검했다.

베히모스가 비교적 넓은 들판으로 향했을 때, 습격할 요량이었다.

“그럼 모두 준비하세요. 에릭 베히모스의 눈을 노려주세요.”

“아, 알겠다.”

두근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에릭은 선봉에 섰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가장 앞에 섰지만 짜릿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저런 괴물에게 자신의 스킬이 먹힐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릭은 공포를 잊고자, 숨을 가다듬고 목청을 높였다.

“그럼 모두 돌……!”

돌격! 이라고 외치려던 에릭의 말이 멈췄다.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말을 멈춘 그의 모습에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갑자기 겁이라도 집어먹은 건가?

“저거 뭐야.”

에릭의 중얼거림에 그제야 플레이어들은 베히모스를 향해 걸어가는 단 한 명의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영국의 플레이어 중 몇몇은 그가 누군지 알았다.

“절름발이 아서잖아, 저거?”

워낙 눈이 좋은 플레이어들인지라 모습을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다리를 안 절어.”

굽어 있던 등도 곧게 펴져 있었다.

또한 손에는 본적없는 검이 손에 들려있었다.

딱 보기에도 비범해 보이는 검이.

“저건…….”

문득 아까 들었던 한 알림을 떠올렸다.

최초의 SS급 장비 엑스칼리버를 얻었다는 알림.

현재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아서의 검을 보니 그것이 떠올랐다.

에이, 설마.

모든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크릉?」

대지를 쿵쿵, 울리며 걸어가던 베히모스의 거대한 머리가 돌아갔다.

자신에게 걸어오는 어리석은 인간을 발견한 것이다.

「크아아아아!!」

인간에게 겁을 주기 위해 포효를 내질렀지만 전혀 겁을 먹은 기색은 없어보였다.

그쯤 되니 베히모스도 슬슬 열이 받았다.

무거운 몸을 움직여 뒷발에 힘을 넣었다.

저 작은 인간을 짓밟아 버리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쿵쿵쿵! 베히모스가 한발한발을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렸다.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은 아서가 핏덩이가 되어 뭉개지리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베히모스에겐 그 정도의 기백이 있었다.

“후우.”

그럼에도 아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베히모스를 보며 검을 들어 올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괴수의 턱을 피하고, 도리어 앞으로 파고 들었다.

마치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녀석의 다리를 향해.

“으아아아아!!”

기합이라기보단 비명과 같았다.

온 힘을 다한 아서의 검이 베히모스의 다리를 향해 베어져 들어갔다.

베히모스에겐 고작 이쑤시개와도 같은 크기의 검이 다리에 파고들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거대한 다리가 쩍, 갈라지며 베히모스의 몸이 지면에 처박혔으니까.

「그아아아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베히모스가 비명을 질렀다.

몸을 일으키려 해도 앞다리가 하나 사라진 탓에 제대로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세한!!”

아서가 베히모스가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정확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향해.

아니, 정확히는 까마귀가 아니었다.

새까만 날개를 펼친 세한이 하늘에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거대한 뭔가가 들려 있었다.

검이라기보단 거대한 괴수의 목을 찍어 부수기 위한 병기가.

세한은 지상으로 활강하며 거대한 무기를 치켜들고 베히모스의 목을 향해 내리찍었다.

으직.

베히모스의 두터운 가죽을 찢고 목뼈에 파고드는 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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