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9화 (89/332)

# 89

089. 호수의 마을(1)

“저희는 얼마나 가야 되는 건가요? 숲에 들어온 지 꽤 된 거 같은데.”

“거의 다 왔어.”

까마귀의 눈 덕에 숲에서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보통 이런 숲들은 글라스톤베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벤트가 시작되며 임의로 생성된 숲이거나, 게임 오픈 시 스테이지에 만들어진 숲들이었다.

특히 이곳의 경우엔 어떤 존재가 관여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숲이었다.

“야! 그거 내 아이템이야! 당장 안 놔?”

“제가 할 말이에요. 이거 내가 먼저 집은 거라고요!”

숲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명의 여성이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고함 소리도 여럿 들리는 걸 보니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숲에 들어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까마귀를 보냈다.

까마귀의 시야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 녀석들은 왜 여기 있어?”

바로 피안화의 길드장인 이아영과 성녀 신유화.

그리고 함께 있는 무리는 두 여성의 추종자들이었다.

‘와, 어떻게 만나도 저렇게 둘이 만나지?’

그러고 보면 들은 기억이 있다.

이아영과 신유화는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고.

양쪽 다 자존심이 강한 여성들이라 이해가 가긴 했다.

특히 추종자를 몰고 다닌다는 공통점이 비슷했다.

이아영의 경우엔 그녀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남자들을 데리고 다녔고, 신유화의 경우에는 거의 종교였다. 성녀라고 받들어 모셔졌으니 설명할 필요도 없지.

신유화 본인은 그런 신격화를 겉으로는 귀찮아했지만 상당히 즐겼다.

왜냐면 그녀는 남들이 띄워주는 걸 무척 좋아했으니까.

그러니 굳이 해체시키지 않고 저렇게 데리고 다닌 거겠지.

“저러다가 싸움이 날 것 같습니다. 도와주실 건가요?”

“……너는 저기가 보이냐?”

“네, 마법을 사용해서 봤습니다.”

백설이의 마법 실력은 정말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건 그거고 저 둘에게 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미쳤다고 저기에 가겠냐. 알아서 해결하겠지.”

“그렇군요. 근데 같은 서버의 사람끼리 왜 다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 싸움이야 저거.”

딱 보니 그렇게 대단한 아이템을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가 먼저 집은 걸 남이 가져가는 게 싫은 거다.

어차피 싸움이 벌어져도 신유화가 있으니 다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 거다.

성가신 여자이긴 하지만 남이 다치는 꼴은 못 보니까.

“그래도 눈에 띄면 귀찮아질 수 있으니 조용히 이동하자.”

“네.”

백설이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눈치가 있다면 저기에 끼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두 집단에게 얽히지 않도록 최대한 빙 돌아 숲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숲의 중심에는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꽤나 넓은 호수가 있었을 뿐.

“강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호수를 본 백설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떤 마법이 발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몬스터를 물리는 마법인 것 같아요.”

“정확해.”

“알고 계셨던 건가요?”

“대충은.”

분명 아서가 말했던 호수는 이곳이 분명했다.

숲의 한가운데에 있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호수.

몬스터에게 쫓기던 아서는 이곳으로 오게 됐고 이곳에는 몬스터가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나가지도 못하게 되지.

뭣보다 아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결국 그는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게 되지.’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이후, 천천히 호수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호수로 들어가려 하자 백설이가 기겁했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야 되나요?”

“어. 들어가야 해.”

“저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습…… 꺅?!”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백설이가 수영을 배웠을 리 없다.

대충 예상했던 일이기에, 백설이를 대충 허리춤에 안아 들어올렸다.

어차피 수영은 내가 할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럼 눈감고 숨 참고 있어. 혹시 물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없냐?”

“네, 그런 건 익히지 않았습니다. 알다시피 마법 스킬은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발현되는 거니까요.”

마법 스킬도 일반적인 스킬과 같이 행동에 따라 익히게 된다.

특별한 건 없다. 다만 거기에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할 뿐이지.

다만 아바타의 경우엔 신들을 통해 익힐 수도 있다.

특히 마법에 능한 로키나 모리안과 같은 이들에겐 다양한 마법을 익힐 수 있다.

민아나 아가트람의 이수린이 마법에 능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럼 이제 들어간다. 숨 참아.”

“네, 넵.”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백설이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건 조금 겁이 났는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흡, 하고 양손으로 코와 입을 막는 모습도 제법 귀여워서 이런 걸 보면 과연 아직 어린애이긴 한가보다. 어차피 기린이라 물속에 들어간다고 익사하지도 않을 텐데.

‘탐사 스킬을 먼저 사용하고.’

단순히 물속에 들어간다고 그곳에 갈 수 있을 리 없다.

물속에 있는 이질적인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야만 한다.

그곳에 문이 있으니까.

‘역시 겉으로는 평범한 호수처럼 보이는군.’

물속으로 들어와 안을 보자 평범한 호수와는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단지 수심이 좀 깊다는 것 정도?

어느 정도 헤엄을 쳐 들어가자 탐사 스킬에 이질적인 뭔가가 걸렷다.

‘여기다.’

여기에 뭔가 빈 공간이 존재했다.

호수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들이 있었다.

평범한 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바로 마법사들의 글자라 불리는 룬 문자다.

‘이걸 이렇게 움직이면…….’

나도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드드드.

룬이 새겨진 돌의 배치를 바꾸자 호수에서 미묘한 진동이 일어났다.

그리곤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천천히 솟아올랐다.

이게 바로 문이다.

비석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마법적으로 만들어진 무언가.

그렇기 때문에 탐사 스킬을 사용하면 빈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파아앗!

비석에 손을 대자, 밝은 빛이 시야를 감쌌다.

동시에 육신이 어딘가로 이동되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춤에 안겨 있던 백설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렇게 대략 5초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호수의 밑바닥이 아닌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되어 있었다.

[안전지대에 진입하셨습니다.]

바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안전지대에.

***

우리의 눈앞에는 호수의 아래에 있었다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향해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던 사람이 우리를 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가 외부의 플레이어라는 걸 알게 되자 잠시 기다려 보라고 말하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셔도 괜찮다고 합니다.”

곧바로 돌아온 남자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말한 뒤 길을 안내했다.

아마 방금 전 우리를 들여보내도 되는지 물어본 당사자겠지.

“정말로 외부의 플레이어인가?”

“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다보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는 백설이의 뿔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들도 있었다.

‘들은 것처럼 글라스톤베리에 있던 마을을 그대로 복사한 것 같은 장소군.’

본래 글라스톤베리에 있는 마을은 인구가 대략 9천 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 세계가 게임으로 변하며 글라스톤베리 주변은 몬스터들의 서식지가 되어버렸고, 마을의 절반은 쓸려나가 버렸다.

개중에서는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도 있었기에 그나마 그 정도로 그친 거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글라스톤베리는 신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역이라 아바타도 나오지 않았고,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몰살당할 일만 남아있었다.

“여기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까?”

“예,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신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존재가 있었던 덕분이다.

그녀는 그들의 말을 호수의 아래로 옮겨주었고, 밖으로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설마 외부의 플레이어가 이곳에 올 줄은 몰랐어.”

안으로 들어가자 싱그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옅은 웃음기가 담겨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무척 긴 남색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었다.

“어서와, 외부의 플레이어. 내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온 건 처음 있는 일이네. 좀 더 조심해야 되려나?”

가벼운 어투가 마치 민아를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민아와 다른 점은 그 가벼움 속에도 뼈가 있다는 점이다.

대체 어떻게 멋대로 들어왔냐는 책망과 궁금증이 혼재되어 있었다.

“거기다…… 재밌는 걸 달고 들어오다니.”

“으으.”

여성은 싱긋 웃으며 백설이를 바라보았다.

백설이는 여성의 시선이 무서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냐면 백설이는 ‘마녀’를 싫어했다.

동화에서 몇 번 보더니 무섭다고 했었지.

“대화를 원한다면 우선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닌가?”

“……후후, 그러네.”

여성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열려 있던 문이 닫히고, 미묘하게 어두웠던 내부가 환하게 밝혀졌다.

온갖 신물이 널려있는 신화속 마녀의 보금자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이름은 모르간 르 페이. 최후의 마녀이자, 아발론의 주인이다.”

그녀는 평범한 일반인도, 그렇다고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신화의 말미부터 살아온 진짜배기 마녀.

살아 있는 신화의 주인이었다.

***

모르간 르 페이.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마녀이자 호수의 귀부인 중 하나로 지칭되는 여성.

그녀는 아서왕의 사촌누이라는 설도 있고, 혹은 요정이라는 설도 있다.

또는 둘 다이거나.

참고로 눈앞의 모르간은 요정족인 모양이다. 인간과는 다르게 뾰족한 귀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 묘사되는 엘프의 귀처럼 길쭉하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약간 뾰족한 정도.

애초에 ‘르 페이’라는 말은 요정을 의미하니 당연한 일이다.

“이곳이 아발론이었나.”

“그래, 모르곤 온 거였어?”

“전혀 몰랐다.”

아발론은 흔히 요정과 마법사가 떠도는 이상향으로 묘사된다.

그 땅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3명. 비비안과 니뮤에, 그리고 모르간.

다른 두 명이 보이지 않으며 본인을 최후의 마녀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다른 둘은 없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너희의 소개를 들어볼까? 까마귀자리의 신참.”

이미 까마귀자리의 주인이 바뀐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녀는 마녀라는 거겠지.

나는 모르간에게 나와 백설이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했다.

당연히 그녀는 백설이가 무척 신기했던 모양인지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머나, 유니콘인 줄 알았더니 기린이었구나.”

“정확히는 기린아다.”

“말장난 하지 말고.”

……말장난 아닌데.

안타깝지만 그녀는 플레이어가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을 잘 모른다.

강대한 마녀이지만 신격을 지닌 건 아닌지라 게임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닌 바의 마력이나 힘을 생각하면 웬만한 신도 그녀에게는 한 수 접어줘야 할 거다.

사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가 아닐까.

“하긴 게임인가 뭔가가 되어버렸으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켈트쪽 애들이 말하는 걸 얼핏 들었거든.”

그녀가 말하길 아발론이 머무는 호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지금은 글라스톤베리에 머물러 있지만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나.

간만에 고향에 왔더니 사람들이 다 죽을 판이라 이곳으로 사람들을 홧김에 피신시켰는데, 제법 즐겁게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찾아들어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눈치다.

“그나저나 마녀를 찾아왔다는 건 뭔가 부탁하고 싶다는 게 있는 거겠지? 이곳에 요정의 인도 없이 찾아온 인간은 오랜만이라 웬만한 건 들어줄게.”

“전설속의 검을 가지고 싶다고 해도?”

“그 정도는 문제없지.”

모르간은 경쾌하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주변이 어두워지고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듯 어느 한 곳을 밝혔다.

수많은 신물들이 모여 있는 보물더미.

구석에 있는 암석에 박혀 있는 검을.

만약 누구나 그 검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엑스칼리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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