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8화 (88/332)

# 88

088. 이벤트 퀘스트(3)

글라스톤베리에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 센티넬을 죽였다는 에릭의 말에 시끄러워졌던 게 거짓말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그런 플레이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소리친 건 바로 에릭이었다.

그는 자신의 붉은 머리칼을 거칠게 넘기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혼자서 센티넬을 죽인다고? 그것도 세 마리나? 내가 네 번째인 건 넘어가더라도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

아키넨은 나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누구인지는 본인이 밝히지 않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곳에는 센티넬을 세 마리나 죽인 플레이어가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럴 수가.”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체 센티넬을 세 마리나 죽인 플레이어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방금 전 아키넨이 시선을 돌렸던 방향을 보는 이들도 있었기에 나는 황급히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제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혹시 천리안 같은 스킬을 지닌 플레이어가 있다면 들킬 수도 있었다.

“왜 숨는 건가요?”

“들키면 성가셔져.”

플레이어들이 날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성가신 건 성가신 거였다.

‘GM 아카터스가 어지간히 떠들고 다닌 모양이군.’

영국 서버 GM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이 게임의 GM들은 전부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리라.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은 방금 전 내게 향했던 아키넨의 시선에 호의가 담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녀석들의 입장에서 나는 거슬리는 존재인 게 분명할 텐데 호의라니.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키넨은 박수를 짝짝 쳤다.

단순한 박수였지만 글라스톤베리 전역에 울려 퍼질 만큼 큰 소리가 났다.

덕분에 웅성거리던 플레이어들의 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다시 모여든 플레이어들의 시선에 아키넨은 가볍게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벤트에 대한 설명을 이어서 하도록 하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글라스톤베리에는 아이템이 퍼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모아서 소유하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또한 아이템의 등급별로 점수가 있죠. 자, 이걸 보세요.”

아키넨은 허공에 띄워두었던 화면을 바꿨다.

이번에 나타난 건 간단한 점수표였다.

D급 1점이었고, 한 등급이 올라갈수록 점수가 크게 상승했다.

C급은 5점, B급은 10점. A급은 무려 20점이었다.

“S급 이상의 아이템은 없는 건가?”

“후후, S급 아이템은 딱 하나 있습니다. 이 보물찾기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되겠군요. 점수도 무려 50점이나 되니까요.”

“그게 끝인가? 내가 알기로 아이템은 최대 SS급까지 있는 걸로 아는데?”

“SS급은 아쉽지만 없습니다. 벌써 SS급 아이템이 풀리면 곤란하거든요. 만약 있다면 SS급은 100점 정도가 되겠군요.”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였다.

점수를 생각하면 D급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사실상 C급부터 A급 사이를 노리는 게 좋아 보였다.

“자, 그럼 왜 점수가 있느냐. 그건 이벤트가 모두 끝났을 때 정산을 하게 됩니다. 가장 점수를 많이 차지한 서버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돌아가게 되죠. 일정 기간 동안 포인트 두 배를 습득할 수 있는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포인트 두 배?!”

포인트 두 배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포인트는 성장의 원천이나 마찬가지.

장비를 구매할 수도 있고, 능력치를 올릴 수도 있으니 가장 소중한 자원이었다.

“예. 그러니 분발해 주세요.”

아키넨은 싱긋 웃으며 경쾌하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화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충 보물찾기는 이 정도입니다. 거기다 단순히 보물만 찾으면 재미없겠죠? 그 외에도 다양한 기믹이나 서브 퀘스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정말 설명 해줘야 할 부분은 그 다양한 기믹과 서브 퀘스트인 것 같지만 설명을 얼렁뚱땅 넘겨 버렸다. 원래 그런 놈들인지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특별한 반발은 없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전생에 들었던 내용을 생각하면 낮과 밤에 돌아다니는 몬스터가 달라진다는 점과, 근처에 생존자의 마을이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 마을에 가게 되면 마을을 수호하는 서브 퀘스트를 받게 된다.

밤에 나타나는 몬스터가 특히 강하며 이곳에 있는 센티넬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사실이었다.

대충 가장 중요한 점은 외우고 있으니 내가 대비할 점은 예상치 못한 변경점이었다.

갑자기 시스템이 관여해서 센티넬이 하나가 더 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예상외의 전개가 진행될 수도 있었다.

‘우선 기본 틀은 전생에 들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움직여야 하겠지.’

그래야 사태가 급변해도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찾아가야 할 곳도 있고.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 한 가지. 이곳에서 얻은 아이템은 본래 서버로 귀환하기 전까지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자루에 담든, 혹은 어떤 스킬을 사용해서 따로 보관해야 하죠. 이유는 당연히 아시겠죠?”

씩 웃는 아키넨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약탈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악마의 계약자도 있으니 옳다구나 습격을 해오겠지.

그런 플레이어간의 대립을 조장하는 건 이 게임에선 흔한 일이었다.

내가 아까 사람들의 시선을 굳이 피한 것도 이것 때문.

괜히 얼굴이 팔리면 약탈의 대상이 되기 쉽다.

“지금부터 보물찾기를 시작합니다. 퀘스트 기간은 2주! 단 하나뿐인 S급 아이템의 주인이 누가 될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어떤 서버가 1위할지도 기대 중입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아키넨은 그렇게 말한 후 자취를 감췄다.

허공에서 팡파레가 울려 퍼지며 이벤트 퀘스트의 시작을 알렸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GM이 사라지기 무섭게 이동하기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며 백설이가 물었다.

다른 길드원들과 합류할 것인지 묻는 눈치다.

“우선은 따로 움직일 거다.”

“저희들끼리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내가 없어도 다들 알아서 하겠지.”

지수가 다른 의미로 좀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창우와 합류한 것 같았다.

창우가 옆에서 지켜보면 지수도 괜한 짓을 벌이지 않을 거다.

적어도 아직 내 눈에 띄는 이상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악마와 관련된 이들도 있겠지.’

신자운은 이미 확인했다.

저 녀석은 애초에 악마의 계약자 중에서는 특이한 놈이니 신경 쓸 필요 없겠지.

혹시 몰라 까마귀는 붙여뒀지만.

‘나머지는 차차 확인해야겠어.’

퀘스트의 개요와 진행은 알아도 어떤 플레이어가 참여했는지까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유명한 플레이어 몇 명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플레이어에 아서가 있었을 뿐이다.

까마귀로 계속 확인은 하고 있었지만, 플레이어들도 계속 움직이는 터라 제대로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SS급 아이템이 100점이라.’

사실상 하나만 얻어도 게임의 승패를 기울게 만들 수 있는 점수다.

하지만 GM은 이곳에 SS급 아이템은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이벤트로 푼 아이템은 정말로 S급이 끝이라는 거다.

‘물론 절대라는 건 없는 법.’

이벤트로 뿌리는 건 S급이 끝이지만 이곳에는 SS급 아이템이 있었다.

이 퀘스트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SS급 아이템이.

“좋아, 가자.”

“가자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근처는 다 언덕뿐인데.”

“마을이 있어.”

“저기 말인가요?”

백설이는 손을 들어 폐허가 된 마을을 가리켰다.

어디를 봐도 사람이 살 것 같지는 않은 장소다.

“저긴 이미 몬스터들이 점령한 장소고 다른 곳에 있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사람의 흔적이 있었거든.”

까마귀의 눈으로 살핀 결과 최근에 사람들이 돌아다닌 흔적이 있었다.

이건 이번에 플레이어들이 나타나며 생긴 흔적이 아니다.

“그렇군요, 그럼 마을은 어딘가요?”

“그건 이제 찾아야지.”

“네?”

다 아는 것처럼 말하더니 무슨 말이냐는 눈치다.

그렇게 봐도 모르는 거다. 내가 들은 건 정보일 뿐이지 직접 본 건 아니니까.

“탐사 스킬을 쓰면 금방이야.”

까마귀의 눈을 사용해 글라스톤베리 전역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단순히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장소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일 확률이 높겠군.’

글라스톤베리에는 스테이지로 변하며 생긴 숲이 많았다.

그중, 까마귀의 눈으로 볼 때 눈에 띈 장소는 하나였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큰 호수가 있는 숲.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아서에게 들었던 어떤 힌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왜 다른 곳으로 가는 거지?’

지수는 계속 보고 있던 미니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멀티 플레이 패키지 덕분에 지수는 세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작은 지도에 표시된 세한의 마커가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었다.

문제는 이동하는 방향이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쪽이라는 거다.

또 뭔가 하려는 거구나.

지수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 세한의 이동방향을 예측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있는 숲이었다.

글라스톤베리가 스테이지화 되며 생겨난 숲.

그곳에 특별한 아이템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합류해도 되는 걸까?’

특별히 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합류하자는 말도 없었다.

만약 세한이 합류를 바랐다면 자신에게 먼저 접촉을 해왔을 것이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는 건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거겠지.

‘아직 부족해. 나는 아직 부족한 거야.’

갑자기 길드를 만들고, 주변에 사람을 하나둘씩 두기 시작한 세한에게 자신은 필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민아처럼 다양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시우처럼 특별한 장비를 만들 수도 없었다.

오직 지수에겐 전투밖에 없었다.

전투는 루크나 창우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뭣보다 가장 강한 건 세한이니 상대적으로 자신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충분한 대체제가 존재하니까.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에는 나뿐이었는데.’

특별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던 세한이다.

근데 이제는 아니었다. 친구인지는 몰라도 동료는 늘었다.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후회돼.’

세계가 이렇게 뒤틀릴 줄 알았다면, 그가 그렇게 변할 줄 알았다면 자신도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얌전히 지켜보는 것뿐.

자신이 현재 내세울 수 있는 건 무력이지만, 그건 세한보다 못하다.

그가 자신을 버리려고 한다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싫어할 짓은 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했던 것처럼 그저 얌전히 복종하고 순종적으로 그의 말에 따르자.

지수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내면을 숨겼다.

‘『나는 언제나 착한 아이』니까.’

지수가 이 게임이 시작됐을 때 받은 특성.

세한이 받은 ‘싱글 플레이어’와 같은 지수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능력치창을 공유할 때도 세한에게 이것만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궁금해하는 걸 알았지만 이것만큼은 보여줄 수 없었다.

자신이 착한아이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걸 들킬 테니까.

『나는 언제나 착한아이』의 효과는 간단하다.

언제나 ‘착한아이인 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모든 정신적 상태이상의 면역이며, 다르게 이야기하면 본인의 감정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특성. 사실 완전 면역이라기 보단, 상태이상에 걸렸지만 그것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것에 가깝다.

그 감정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며 밖으로 꺼내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투 시 천살성의 광기를 꺼내오는 것처럼.

오로지 착한 아이로서 있을 수 있는 지수의 능력.

이 스킬이 있었기에 지수는 천살성 스킬이 있었음에도 광기에 빠지지 않았다.

살인에 눈뜨게 되는 충동은 지수에게 대단치 않은 것이었다.

그것보단 차라리 그를 자신의 테두리 안에 두고 싶어 하는 감정 쪽이 난감했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을 유혹했으니까.

부모님이 자신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자고.

계속, 계속 그렇게.

‘아니야. 그래선 안 돼.’

아직은 좀 더 착한아이로 있어야 했다.

뭣보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보다 강했으니까. 밉보인다면 그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지 모른다.

지수는 그것을 아직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지수의 마음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를 지켜보기만 해야 되는데?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되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지수는 고개를 흔든다.

아니, 계속 이렇게 있는 게 좋겠지.

자신이 이상하다는 건 지수도 알고 있다.

기회가 온다면, 아니 그래도 안 돼.

얌전히 있어야겠지.

그를 가지고 싶은 만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다.

마치 위험한 줄타기처럼.

지수의 이성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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