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087. 이벤트 퀘스트(2)
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가 끝나고 거의 두 달이 넘게 지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공백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거나, 던전을 돌며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거나.
퀘스트가 시작되면 던전을 돌 여유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무렵, 퀘스트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그토록 플레이어들이 기다리던 퀘스트였지만 알람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메인 퀘스트가 아닌 ‘이벤트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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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퀘스트: 서버 대항전
각 서버마다 100인의 대표가 선발되어 특정한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벤트입니다.
이번에 주어진 퀘스트는 보물찾기입니다.
추가적인 설명은 이벤트 장소에서 GM을 통해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벤트 장소는 랜덤한 하나의 서버로 결정되며, 퀘스트 종료 시 본인의 서버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벤트의 기간은 총 2주입니다.
그럼 선택되신 분들은 모두 힘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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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타나는 메인 퀘스트의 내용과는 달랐다.
어조가 좀 더 정중했고, 내용도 비교적 자세했다.
그건 시스템이 직접 관여하는 메인 퀘스트나 서브 퀘스트와는 달리 이벤트 퀘스트는 퍼블리셔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퀘스트 내용에 ‘GM이 안내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장소는 분명…….’
랜덤하게 결정되는 서버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경쟁을 하며 퀘스트를 진행하게 되지.
그리고 이 이벤트에는 전에 말했듯 아서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행색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글라스톤베리에 아서라 불리는 절름발이 플레이어가 있었다는 목격담을 들었으니까.
“슬슬 시작될 것 같은데.”
공지가 뜨고 이틀의 유예가 있었다.
이제 대략 1분 정도가 있으면 정확히 48시간.
그러면 각 서버 대표 100인은 자신의 서버를 떠나 영국 서버의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참고로 이동되어 떨어지는 위치는 제각각이다.
그래봐야 특정 스테이지 내라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으, 긴장된다. 근데 나 100위 안에 드는 거 맞아?”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민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100위 안에 드냐?”
“아, 근데 난 이런 이벤트 굳이 참여하기 싫은데. 혜미나 지선이는 100위에 들지 않았겠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는 민아는 진심으로 이벤트 참여가 꺼려지는 모양이다.
그야 퀘스트에 참여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거기다 최근에야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으니 더 그렇겠지.’
자운과 함께 간 두 명은 뒤늦게 민아와 연락이 닿았다.
물론 내가 우연을 가장해서 연결시켜 준 거지만.
덕분에 민아는 한결 밝아진 얼굴이었다.
친구를 찾은 이후에도 늘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본인 말로는 이제 익숙해져서 이게 편하다나.
“우선 떨어지면 서로 모이는 방향으로 가는 건가요?”
“아니. 그건 퀘스트 내용을 보고 생각하자.”
“알겠어요.”
지수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옆에 앉아있었다.
그나마 지수는 민아에 비하면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얘가 긴장하는 모습을 본 건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말고는 없는 것 같다만.
“지수 씨는 태연하군요. 전 상당히 긴장되는데 말입니다.”
“형도 분명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장비도 만들어 줬잖아.”
“하하…….”
도리어 창우의 얼굴이 창백했다.
시우가 계속 옆에서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반응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여간 긴장한 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창우라면 걱정 없다.
100위 안에도 분명 너끈히 들겠지. 내가 최근 몰아서 준 포인트가 얼만데.
지수가 심각하게 강해서 인지를 못하는 모양이지만 창우도 충분히 대단한 실력자다.
‘그럼 대충 이동될 만한 인원은 나, 지수, 민아. 창우. 이렇게 네 명인가?’
네 명도 충분히 많긴 했다.
물론 대형 길드의 경우에는 그 숫자가 좀 더 많을 수도 있겠지.
대형 길드일수록 아바타의 수도 많고, 포인트를 얻기도 용이하니까.
‘아이들만 남기는 게 좀 불안하긴 하지만.’
그나마 루크가 남으니 괜찮겠지.
본인은 포인트가 미묘하게 부족한 탓에 시무룩하긴 하지만 말이야.
[지금부터 서버 대항전 이벤트가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분들은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가만히 있어주세요.]
부우우──
이제야 시작인가.
귓가에 들리는 알림과 함께 공기가 떨리며 주변이 빛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 전체가 이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 느껴도 그다지 기분 좋은 감각은 아니다.
몸이 붕 뜨며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도착했나.”
새하얀 빛 때문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풍경이 변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디어사이드의 건물이 아닌 넓은 풀밭이다.
나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감싸인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영국, 글라스톤베리.”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 카운티에 위치한 소읍이다.
본래부터 인구는 그다지 없는 마을이었던지라 이 세계가 게임으로 바뀌며 깔끔하게 쓸려나간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이번 이벤트의 주요 스테이지다.
“……저기.”
언덕 위에서 속속히 나타나는 플레이어들이 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바람에 너울거리는 상아빛 머리칼과 길쭉한 뿔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왜 여기 있는 거죠.”
멍한 얼굴로 백설이가 말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너 왜 여기 있냐.”
“린과 놀고 있었는데 여기로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백설이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녀석이 이 정도로 감정을 내비칠 정도면 보통 당황한 게 아닌 모양이다.
“미치겠네.”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백설이가 이곳으로 이동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백설이는 내가 기린의 알로 탄생시킨 펫이었으니까.
인간의 모습이라 펫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게임 상에서는 펫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은 최대한 보호하는 쪽으로 가야겠군.’
이벤트 처음엔 따로 움직이려 했지만, 우선 민아나 지수를 찾은 뒤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피슝!
동시에 내 귓불을 스치며 새하얀 광선이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면 머리가 사라진 몬스터가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보통 몬스터가 아니다.
무려 ‘트롤’이라 불리는 괴물이었다.
강력한 재생 능력과 오크보다 강한 신체 능력을 지닌 몬스터.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덩치를 보아하니 트롤 중에서는 하위에 속하는 녀석이었지만 단 한 방에 이승에서 작별시켜 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서…….”
“……그래.”
“근데 뭔가 하실 말이 있습니까?”
“있었는데, 없어졌다.”
그래. 백설이도 실전 경험을 한번 할 때가 되긴 했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글라스톤베리는 아서왕의 전설이 숨 쉬는 장소다.
멀리 보이는 토르 언덕이 바로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뽑았던 장소.
전체적으로 나무가 많고 굽이진 능선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나와 백설이는 그중 꽤 높은 언덕 위에서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제 대부분 나타난 것 같군.”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각 서버에서 소수의 인원만 선별했다고 해도 전 서버에서 불린 플레이어들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지.”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00명 정도는 될 것이다.
까마귀의 눈을 사용해 대략적인 인원을 체크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무척 푸르렀다.
무척 평화로운 분위기였지만 지상은 아니었다.
글라스톤베리에 소환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 덮치는 몬스터를 상대해야만 했으니까.
인간들이 살던 마을은 지극히 작고, 대부분이 자연의 모습으로 보존된 장소다보니 몬스터의 수도 무척 많았다.
이곳의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대응할 시간도 없이 쓸려나갔던 게 분명하다.
‘갑작스런 상황임에도 다들 대처를 잘하는군.’
갑자기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능숙하게 쓰러트리는 모습은 과연 각 서버의 대표라고 할 만했다.
까마귀로 민아와 지수, 그리고 창우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류하실 건가요?”
“아니.”
어차피 보물찾기는 흩어져서 해야 된다.
나는 언덕 위에서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들의 손에 처단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대충 정리가 끝났을 무렵, 푸르던 하늘이 조금 어둡게 변했다.
웅웅웅.
대기가 미세하게 울리며 허공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 속에서 나타난 건, 어떤 존재였다.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신장은 3미터가 넘어 보였다.
또한 이마에는 둥근 보석이 반짝였다.
당연히 이마에 보석이 박힌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저건 바로 GM.
‘아마 영국서버를 관리하는 놈이겠지.’
아카터스였다면 까마귀로 뒤통수라도 때려줬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안녕하십니까, 플레이어 여러분.”
녀석은 과장된 어조로 말하며 양팔을 넓게 펼쳤다.
“각 서버를 대표하시는 플레이어분들 이렇게 보게 되다니 영광이군요. 저는 영국 서버의 GM 아키넨이라고 합니다.”
녀석의 말은 글라스톤베리 전역에 울려 퍼졌다.
몬스터를 잡고 휴식을 취하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모였다.
처음 보는 GM의 모습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신기하다는 시선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와는 관련이 없는 이벤트 퀘스트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너스 타임이죠. 각 서버를 대표하는 플레이어분들에게 저희가 드리는 선물 같은 겁니다.”
아키네은 허공에 네모난 스크린을 띄웠다.
글라스톤베리 전역이 표시된 지도다.
그곳에는 현재 플레이어들이 있는 장소가 표시됐다.
“퀘스트에서 소개해 드린 것처럼 이벤트 퀘스트는 보물찾기입니다. 이 글라스톤베리 전역에는 보물들이 숨어 있죠. 최소 D급 이상의 아이템이 사방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물 상자에 들어있는 경우도 있고, 땅속이나 나무 위에 있는 경우도 있다.
혹은 특정한 몬스터를 쓰러트렸을 때 있는 것도 있다고 아키넨은 설명했다.
“아, 주의할 점을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보물찾기라도 센티넬에게 덤비시면 안 됩니다. 이 글라스톤베리의 센티넬은 용이거든요. 무조건 피해 다니길 바랍니다.”
용이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이 크게 술렁였다.
개중에는 도리어 호승심을 불태우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한 플레이어가 아키넨을 향해 외쳤다.
“그 센티넬은 죽일 수 있다면 죽여도 되는 건가?”
자신감이 넘치는 외침이었다.
외모도 눈에 띄었다. 적색으로 염색한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려서 마치 불꽃처럼 보였다.
나도 아는 녀석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플레이어 중 하나인 에릭 샌더스였다.
호전적인 성격이며 화염 마법을 즐겨 사용하는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였다.
‘아폴론의 아바타였지.’
태양신의 선택을 받은 만큼 확실히 불에 관해선 탑티어의 플레이어였다.
아가트람의 강준식을 라이벌로 생각하던 놈이었다.
그래서인지 강준식이 죽은 이후에 만났을 때는 꽤 침체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아가트람의 간부들도 몇 명이 있겠군.’
민수호는 후발자이니 없을 테고, 강준식과 천상환, 그리고 이수린은 분명 이곳에 있다고 봐야 했다.
그 세 명은 초창기부터 이름을 날리던 플레이어들이었으니까.
“플레이어 에릭. 당신의 위명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센티넬을 사냥했다고 하더군요.”
“물론이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그의 말에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크게 경악한 모습이었다.
센티넬은 보통 절대로 죽일 수 없는 몬스터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이 돕기는 했습니다만, 가장 활약했다고 들었습니다.”
즉, 열 명의 플레이어가 단체로 공격을 해서 이겼다는 뜻이다.
그래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고작 열 명의 플레이어가 센티넬을 죽인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었으니.
에릭도 그 사실을 알기에 가뜩이나 높은 코가 더욱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만약, 이어진 아키넨의 말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센티넬을 죽인 플레이어가 한 명 더 있군요.”
“……뭐?”
“참고로 플레이어 에릭이 센티넬을 죽인 건 네 번째입니다. 그전에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단 한 명의 플레이어가 센티넬을 죽였죠. 약간의 조력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혼자서 말입니다.”
싱긋 웃으면서 말한 아키넨은 하늘에 돌아다니는 까마귀를 본 뒤에 내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덕분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나를 언급할 줄은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