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086. 이벤트 퀘스트(1)
마계.
색욕의 궁.
그곳에 들어선 한 명의 존재가 있었다.
인간이라기엔 거대한 신체와, 인간과 닮았지만 이마에 박힌 보석이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카터스.
현재 지구 대한민국 서버를 운영하는 GM이었다.
‘망할 새끼.’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궁의 문을 열었다.
아카터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명의 플레이어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김세한.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는 망할 놈.
같이 다니는 플레이어들도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아서 더더욱 껄끄러운 놈.
거기다 운도 좋은지 궁기 건도 걸려서 한참 동안 자숙을 해야만 했다.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신들이 거기서 클레임을 걸어올 줄이야.
‘하필 지구의 신들은 쓸데없이 신격이 높아서.’
작은 별치고는 지나치게 강한 신격이 많았다.
애초에 황도 12궁도 지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위치 아닌가.
문명권이 형성된 다른 별에도 신은 있었지만, 지구 출신의 신들은 지나치게 신격이 높았다.
다행인 점은 이미 지구의 인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사라진 터라 무슨 짓을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점이 편했다.
다른 별의 경우에는 신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허나 지구의 경우에는 몇 명의 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지구 출신 신의 숫자가 무척 많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반발이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왜냐면 대부분의 신들은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신들을 져버린 인간을 괘씸하게 봤기 때문이다.
신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또한 자신의 신도를 모으고 숭배받는 걸 즐긴다.
그러나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영웅들은 사라졌으며 신들을 향한 숭배도 사라졌다.
물론 살아남은 종교도 있었지만 그 수는 극히 희박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은 꽤 재미난 오락이었다.
인간은 다시 신들을 찾았고, 그들의 은총을 갈구했다.
그 속에서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카터스는 그런 신들을 보며 생각했다.
‘성격파탄자들.’
아카터스는 게임을 운영하는 운영자의 입장이지만 지구의 신들은 영 껄끄러웠다.
비위를 맞추기 보통 힘든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퍼블려셔와 같이 게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최고의 고객이다.
신격이 높은 신들인지라 포인트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많은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었고, 자신들의 신앙이 형성된 고향이나 마찬가지인지라 관심도도 최고조였다.
말 그대로 최고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화려한 궁전이야.’
취향은 아니었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을 지배하는 건 바로 대악마다.
그것도 마계 서열 제6위의 악마.
신으로 치자면 최상위 신격에 위치한 존재다.
사실 말이 최상급 신격이지 대악마라 불릴 수 있는 일곱 악마는 일반적인 최상위 신격보다 윗선이다.
단지 신격을 나타낼 때 단위가 최상위가 끝이기 때문에 최상위 신격으로 취급할 뿐이다.
물론, 그건 신들도 마찬가지다.
대악마와 동급의 힘을 가진 신은 각 신화의 정점에 이른 신들밖에 없었다.
그만큼 퍼블리셔도 설설 길 만한 위치에 있는 악마이니 아카터스도 표정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재미난 방문객이로군.”
고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
길게 흘러내린 은발이 빛났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기 힘들 얼굴이었지만 놀랄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가슴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남자인 건 확실했지만 여자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게임을 재밌게 즐기고 있네. 아카터스.”
“영광입니다.”
“후후후.”
고상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아카터스는 순간 머리가 찡하고 울리는 걸 느꼈다.
순간적으로 매혹에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예.”
아카터스는 신중하게 말하며 악마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기분이 나쁜 기색은 없었다.
“무엇인지 말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색욕의 악마라면 앞으로 있을 퀘스트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면 그놈은 죄 없는 플레이어들을 죽이지 않으니까.
“색욕의 악마, 마라 파피야스 님.”
그가 처음 말했던 것처럼 지금 자신들이 진행하는 게임에는 그의 계약자가 존재했다.
색욕의 악마이자 마군(魔軍), 마구니(魔仇尼) 혹은 제육천마왕(第六天魔王)이라 불리는 강대한 존재.
그런 악마의 계약자라면 분명 강력한 우군이 되리라.
***
[스킬 ‘정신약체 내성(A)(성장형)’을 습득하셨습니다.]
머리 위로 떠오르는 알람을 보며 나는 만족했다.
익히기 가장 어려운 스킬 중 하나인 정신약체 내성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
정신약체 내성(A)(성장형)
정신에 피해를 주는 대부분의 효과에 저항한다.
B급 이하의 정신공격은 완전히 무효화.
A급 이상의 공격 시 피해를 완화한다.
==
“A급 스킬 선택권이 좋긴 좋네.”
어떤 스킬을 익힐지 정하고 사용하니 바로 습득되었다.
보통 A급 스킬 정도가 되면 노가다로 익히기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보통은 퀘스트 보상으로 얻거나 그런 스킬이 붙은 장비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혹은 몬스터가 아주 희박한 확률로 떨구는 A급 그리모어를 사용하거나.
정신약체 내성은 그중에서도 어려운 편이다.
왜냐면 스킬을 발생시키는 행동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스킬 발생 확률이 올라가는데 정신약체 내성은 그 행동 자체가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신공격을 가하는 몬스터 자체가 극히 드물다.
그렇다보니 게임의 후반을 가서도 정신약체 내성 스킬을 익힌 플레이어는 드물었다.
‘독 내성을 익힐지도 고민했지만.’
독은 그래도 엘릭서나 해독 마법 같은 대체 수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신을 보호하는 스킬은 지속시간도 짧을뿐더러 이미 발생한 이후에는 대처가 힘들다.
내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당사자가 당해 버리면 속수무책으로 나머지도 당하게 되니까.
거기다 무려 성장형.
정신약체 내성은 처음 습득할 시 D랭크다.
거기서 A까지 올리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A급 스킬 선택권으로 A급 정신약체 내성을 받았으니 노가다가 필요 없어졌다.
심지어 정신약체 내성은 S급까지 올릴 수 있다.
보통 성장형 스킬 중 A급 스킬이 끝인 경우도 다수 있지만 정신약체 내성은 S급까지 가능하다.
아마 S급이 되면 A급 이하의 정신공격을 완벽히 무효화하겠지.
그 정도면 사실상 정신공격은 면역이라고 봐야했다.
나는 새롭게 익힌 정신약체 내성 스킬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곧 시작하겠지.’
바로 이벤트 퀘스트.
메인 퀘스트나 서브 퀘스트와는 다르다.
왜냐면 그 둘은 하나의 서버 내에서 일정 스테이지에 한정해 진행된다.
또한 모든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퀘스트다.
하지만 이벤트 퀘스트는 다르다.
모든 서버, 즉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참여하게 되며 그것에 참여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수도 한정된다.
‘한국에서 아마 100명이었지.’
아마 디어사이드 길드원들은 대부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여태 습득한 포인트 양에 따라 참여 여부가 갈리니까.
만약 부족한 사람을 찾자면 루크 정도.
최근 던전 순회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평균적인 위치에 있던 플레이어다보니 100위 안에 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전생에도 참여하지 못했었지?’
물론 나도 참여하지 못해서 말로만 들은 퀘스트다.
당시의 나는 상당히 위로 치고 올라온 상태이긴 했지만 한국 서버 100위 안에 들지는 못했다.
‘지금은 당연히 1위겠지.’
물론 아직 랭킹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지 않은 탓에 정확한 순위는 알 수 없다.
당시에도 마찬가지라 그때의 내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기 힘들었지만 대략 200위쯤은 되지 않았을까 추측중이다.
당시의 나는 꽤 위로 치고 올라간 상태였으니.
아무튼 정신약체 내성은 그 이벤트 퀘스트에 필요하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만날 사람에게 줄 스킬이다.
‘세 번째 파티원.’
내가 처음 멀티플레이 패키지를 얻었을 때부터 생각해 뒀던 인물.
아서.
성은 모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아서라고 자칭하고 다녔으니까.
본명은 맞는 것 같다.
스스로 영웅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한다고 했었으니까.
아무튼 그는 반드시 파티원으로 얻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럼 이제…… 퀘스트가 시작하기 전까지 노가다나 해볼까.”
장비는 대부분 당장 만들 수 있는 건 전부 만들었다.
특별히 얻을 스킬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남는 시간 동안 이번에 익힌 정신약체 내성을 S급까지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아까 말했듯 정신약체 내성은 익히기도 등급을 올리기도 힘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대상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정신공격 마법을 익힌 플레이어도 극히 드무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답은 간단하다.
“한지수.”
“네?”
“잠깐 좀 도와줄 수 있어?”
나는 수련실에 있던 지수를 불렀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요?”
지수는 자신의 무기를 닦고 있었다.
에스더와 미스릴, 그리고 소량의 오리하르콘과 소량의 만년한철이 들어간 무기다.
되도록 오리하르콘으로 떡칠을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 각인시킨 던전에서도 워낙 조금밖에 얻지 못한 터라 소량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에스더를 사용하고 거기에 S급 소재인 흉성의 암옥을 박아 만든 무기는 상상 이상의 흉악함을 자랑했다.
무려 현존하는 유일무이한 S급 무기였으니까.
‘흉성의 학살자’
물론 S급 무기에 턱걸이를 한 상태였지만, 그건 나중에 추가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 될 일이다. 얼마든지 강화할 여력을 남겨뒀다고 시우도 말했으니까.
아무튼 지수의 무기는 거대한 둔기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잘하게 튀어나온 요철이 많았다. 상대의 몸에 스치더라도 최대한 상처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거기다 무기도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위력이 증가하는 스킬이 붙어 있어, 천살성 스킬에 최적화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무기의 구조상 살점이나 핏덩이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청소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여기에 앉아봐.”
“그냥 앉아 있으면 돼요?”
언제나 그렇듯 지수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어, 그 다음에 나를 가만히 봐봐.”
“네? 오빠를요? 그냥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지수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눈을 살며시 피했다.
아무래도 거리가 좀 가까웠던지라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내가 지수에게 부탁할 것은 부끄러운 요소가 조금도 없다.
“아니, 그냥 보진 말고, 천살성 살기 방출할 수 있어?”
“……네?”
“네가 악마 쪽 애들 족칠 때 하던 것처럼 해봐.”
내 말에 지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곤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또 뭐라고. 보나마나 이상한 스킬을 익혔나 보네요.”
“비슷하지.”
“하아, 알겠어요.”
지수는 답지 않게 한숨을 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떴다.
‘오우.’
새빨개진 지수의 눈이 향해진 순간 전신에 엄청난 압박감이 가해졌다.
평소 대련 때보다 훨씬 강하다. 아마 그것도 악마의 계약자나 하수인을 죽일 때에 비하면 억제하고 있었던 거겠지.
[정신약체 내성 스킬이 발동합니다.]
천살성의 살기가 몸에 닿기 무섭게 스킬이 발동했다.
정신약체 내성 스킬은 자동 발동이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상관없어. 혹시 더 강하게도 가능해?”
“네, 아마.”
지수가 그렇게 답하기 무섭게 붉은 눈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붉은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달아오르며 은은한 빛을 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지만 어둠속이라면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확연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정신약체 내성 스킬이 없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순간 몸을 움츠릴 정도의 살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정신 쪽에는 강한 내성을 지닌 나다.
스킬 없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정도.
그런데도 이 정도면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으리라.
‘예상대로 천살성의 살기는 그 자체로 정신공격 취급이군.’
덕분에 정신약체 내성이 열일을 하는 중이다.
이렇게 며칠 간 살기를 쐰다면 S급으로 올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대략 세 시간 정도를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지 않았다면 계속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마워. 혹시 지수는 뭔가 부탁하고 싶은 거 없어? 매번 나만 부탁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런데.”
“아니요, 괜찮아요. 귀한 무기도 이미 주셨으니 그걸로 퉁치죠.”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나와 달리 계속 살기를 쏴야 했던 지수는 피곤할 텐데도 무척 쌩쌩한 기색이었다. 도리어 뭔가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건 내가 예전에 무기를 주기로 했으니까 준 거고. 거기다 이거 당분간 계속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당분간이요?”
“어, 대략 일주일 정도?”
일주일이라는 말에 지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무리 지수라도 일주일간 이런 일을 하는 건 무리겠지.
그러니 나도 대충 일수를 나눠서 지수의 시간이 되는 대로 부탁할 생각이었다.
“알겠어요.”
“나도 무리인거 알아, 그러니…… 뭐?”
“알겠다고 했는데요.”
“그러니까 나눠서 하자는 거지?”
“아뇨, 전 매일 해도 상관없어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지수는 무척이나 기꺼운 눈치였다.
얼굴도 묘하게 상기된 게 간만에 보는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저번 신자운의 일로 조금 심통이 났던 이후로는 처음이다.
“아, 대신 저도 하나 부탁해도 되요?”
“……물론.”
환한 얼굴로 웃는 지수의 모습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수련실이 아니라 세한 오빠 방이나 제 방에서 단둘이 하도록 해요.”
“왜? 아, 다른 애들이 오면 피해를 볼까 봐?”
“비슷해요.”
지수의 살기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자칫 잘못해서 백설이나 린이 살기를 받았다가는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오늘은 아무 일이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알겠어, 근데 그건 특별히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지 않나?”
“으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그걸로 좋아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어쩐지 지수의 눈이 여전히 붉었지만 계속 살기를 쏜 영향인가 싶어 넘어갔다.
하지만 뭔가 미묘한 열기가 담겨 있는 건 분명했다.
어째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지수가 이 상황을 반기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럼 내일부터 하도록 해요. 방에서 기다릴게요. 아니면 제가 오빠 방으로 가거나.”
그렇게 나와 지수는 정신약체 내성을 올리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지수의 방에서 하거나, 혹은 내 방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오늘 있었던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서로 마주보는 것뿐.
그렇게 일주일 후.
나는 정신약체 내성 스킬을 S급으로 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