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5화 (85/332)

# 85

085. 악마를 찾는 자(4)

“딱 예상한 정도의 충격이네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풀었다.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자운에게 맞는 시점에서 대략 어느 정도의 데미지가 들어올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데미지가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으리라.

왜냐면 자운의 주먹에 얻어맞는 순간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비켜 맞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조금 날아가며 다른 부분이 부러지긴 했지만, 전혀 문제없었다.

왜냐면 그 정도는 이미 나았으니까.

저벅, 저벅.

지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런 지수의 모습을 본 자운은 마른침을 삼켰다.

솔직히 이젠 방도가 없었다.

마력은 남아 있었지만 육신의 부담이 너무 컸다.

당장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싸워봤자 지수를 이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숨겨져 있던 힘 따위는 없다.

남겨둔 비장의 수도 없다.

자운은 자신의 등 뒤에 있던 혜미와 지선도 숨을 죽이며 떨고 있다는 걸 느꼈다.

선명하게 다가온 죽음의 공포.

새빨간 눈동자가 자운을 비롯한 일행들을 보았다.

지극히 무심한 눈이다.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것 같이 가치 없는 것을 보는 시선.

자운은 알 수 있었다.

이 여자에게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가치 없는 돌멩이.

얼마든지 죽여도 하등 상관이 없는 존재.

솔직히 악마의 계약자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직 순수한 광기.

그것의 결정체와도 같은 여성.

“그럼…….”

검은 둔기가 높이 치켜 올라갔다.

가까이 다가온 지수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며 자운을 향했다.

‘끝인가.’

저번에는 아자젤의 도움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런 기적을 바라긴 힘들었다.

아무리 아자젤이라도 두 번이나 인간에게 봉사할 리는 없으니까.

부웅!

바람을 가르며 지수의 둔기가 휘둘러졌다.

자운은 각오했다. 막는다는 방법도, 피한다는 선택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툭.

“……?”

딱딱한 것이 이마에 살짝 닿았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핏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적어도 둔기에 얻어맞은 느낌은 아니었다.

“뭐냐.”

자운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지수를 향해 말했다.

둔기는 그의 이마 앞에 멈춰 있었다.

당연히 그대로 찍어 부수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네요.”

“뭐?”

“제가 이겼다고요. 더 해볼래요?”

지금 지수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 자운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겼다니?

‘설마 저번의 일을 말하는 건가?’

일행을 습격했던 당시의 일.

그렇다면 오히려 자신을 죽여야 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때 아무도 죽이지 않았던 걸로 알아요. 그럴 수 있었음에도 말이죠. 뭐, 솔직히 전 죽이고 싶은데요. 뒤에 있는 사람도 있고…….”

지수의 시선이 우측 상단으로 올라갔다.

암천 길드의 건물 옆에 있는 빌딩의 위로.

거기다 쪽지도 하나 와 있었다.

세한으로부터 온 쪽지다.

자운을 죽이지 말라는 쪽지.

“아무래도 그러길 바라는 것 같지 않아서요.”

“우리를 안 죽이겠다는 건가?”

자운의 말에 지수는 인상을 살며시 찡그렸다.

그건 여태까지의 살벌한 표정이 아닌 심통이 난 여성의 얼굴이었다.

“내가 무슨 살인마인가? 아무나 막 죽이는 줄 알아.”

“……그런가.”

“전 악의에 민감해요. 적어도 지금 당신에게서는 죽일 정도의 악의는 보이지 않네요.”

지수는 그렇게 말한 후, 둔기를 인벤토리로 던져 넣었다.

죽일 마음이 사라진 건 자운이 보호하는 세 명의 여성을 본 후다.

덜덜 떨고 있는 악마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여성들.

대략 민아의 또래로 보이는 그녀들에겐 조금의 악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우연히 악마의 길드에 들어오게 됐으리라.

지수는 자운이 그런 그녀들을 구출하던 것으로 판단했다.

왜냐면 두 여성은 자운을 자신과 싸울 때 응원하는 눈치였고 자발적으로 따라 붙었으니까.

그러니 지수는 자운을 죽이려던 마음을 접었다.

여기서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럼 저 여자애들을 보호해 줄 존재가 사라지니까.

뭣보다 세한이 그러길 바라는 것 같았다.

‘아마 이 남자가 보호해 주길 바라는 거겠지.’

적어도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확한 이유는 세한이 알 테니 지수는 관심을 끊었다.

“근데 당신도 적의가 상당히 옅네요. 전에는 복수하러 오지 않았었나?”

“형님을 죽인 건 네가 아니니까.”

“그 사람의 동료인데요.”

“동료와 당사자는 다르지. 만약 내 앞에 있는 게 네가 아니라 그자였다면 나는 다시 덤볐을 거다. 네 말처럼 악의를 가졌을지도 모르지.”

“그럼 전과 같은 짓을 하겠다는 말?”

지수의 말에 자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때의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다. 굳이 찾아가서 싸움을 걸 생각은 없군. 현격한 실력 차가 나는 상대를 습격할 정도로 난 어리석지 않다. 그래도 마주친다면 싸우겠지만.”

“이상한 곳에서 고지식하네요.”

지수는 자운을 이상한 사람이라 결론을 내렸다.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하려 했던 주제에 한 번의 승부로 끝내다니.

지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계속 죽이려 했을 텐데.

“전 당신이 그냥 평범한 악마의 계약자였으면 좋았어요. 그냥 죽이면 되니까. 근데 우선은 보내줄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새치름한 눈으로 재차 건물 위를 보았다.

역시 조금 심통이 났다.

분명 자신은 구분을 한다고 했는데 설마 다 죽이리라 생각한 건가?

다시 말하지만 자신은 살인마가 아니다.

악의를 품은 인간만을 죽인다. 적어도 여태까지는 그랬다.

천살성을 가진 지수는 인간의 살의나 악의에 민감하니까.

“이해할 수 없군.”

“어차피 적의를 보이면 그때 가서 죽이면 되니까요.”

마치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태도다.

그리고 자운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여자도, 그리고 건물 위에 있는 누군가도.

‘분명 그자겠지.’

까마귀, 라고 하던가.

그때보다 꽤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아자젤이 보면 얼마나 비웃을는지.

“빚으로 생각하세요. 제가 당신 목숨 살려준 걸로.”

“……알겠다.”

애초에 먼저 싸움을 건 당사자는 지수였지만 자운은 여기서 차마 고개를 흔들 수 없었다.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통제 불능으로 보이는 괴물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렇게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너는 왜 그를 따라다니는 거지? 혼자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을 텐데?”

“그?”

“까마귀 말이다. 그가 강한 건 맞지만 너 역시 특출하게 강하지. 그런데 넌 그에게 이상할 정도로 순종적인 것 같군.”

“그래요?”

“그렇다. 적어도 나는 죽일 수 있음에도 그의 눈치를 보며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지.”

“흐음.”

지수는 자운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그 뒤에 있는 여성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신장이 작은 꼬마.

저 아이에게선 뭔가 있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비밀이에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자운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차피 볼 일은 끝났다.

암천 길드도 청소하면서 기분전환도 했으니 디어사이드의 본거지로 돌아가 쉴 생각이었다.

“하아.”

지수는 천천히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댔다.

이상할 정도로 두근거리는 가슴.

방금 자운의 말이 자신의 가슴 속에 내제된 뭔가를 건드린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순종적이다라…….’

겨우 그것만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다니.

감이 좋다고 할지, 예민하다고 말해야 할지.

근데 틀린 말은 아니다.

지수는 여태 세한의 말에 특별한 반박을 한 적은 없었다.

이 세계가 갑자기 게임으로 되어버렸을 때부터 지수는 얌전히 그의 말을 따랐다.

갑자기 바뀐 세계에 빠르게 적응했던 게 아니다.

단지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기실 지수에게 세계의 변화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혹여 그가 의심할까 봐 최소한의 지적만 했을 뿐이다.

그가 무엇을 하자고 했을 때 부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냐면, 인간은 순종적인 존재를 버리지 않으니까.

지수는 그것을 부모에게서 배웠다.

‘아직, 아직은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버려지는 건 싫다.

이런 세상이 되고 그는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챙겨줬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언제 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순종적으로 숨을 죽이고 기다릴 거다.

자신이 강해질 때를.

지금의 자신은 아직 ‘그’보다 약하지만, 언젠가 강해지게 된다면.

그가 도망치려고 해도 붙잡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럼 좋을 텐데.”

지수는 황홀하게 웃었다.

어쩐지 자운의 말에 여태 억눌러뒀던 뭔가가 조금 비어져 나온 것 같았다.

그건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지수의 이면(裏面)이었다.

***

멀리서 지수가 돌아서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내심 안도했다.

순순히 물러선 걸 보면 녀석의 말처럼 나름 구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쪽지도 확인해 준 것 같고.

“후우.”

나는 한숨을 쉬며 자운에게 몰려든 두 명의 여성을 보았다.

민아와는 달리 교복차림은 아니었지만 분명 내가 몽상의 던전에서 보았던 영정 사진.

당시 죽어 있던 민아의 친구 두 명이 확실했다. 얼굴이 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허공에 열었던 허수 공간을 닫은 뒤,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사람, 아니 악마가 서있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

나는 이 소녀를 알고 있다.

“아자젤, 네가 신자운이 계약한 악마였군.”

나태의 악마 아자젤,

마계의 7대 악마 중 세 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대악마.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심 긴장했다.

신으로 치면 최상위 신격에 위치한 존재다.

한번 대화를 했던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보다 아득히 윗선이다.

나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지구가 아니었다.

마계에서 멀찍이 본 게 전부였지.

‘이 녀석은 분명 전생에 계약자를 정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미래가 달라져 신자운을 계약했다는 것이 된다.

더불어 전생의 신자운은 어떤 이유든 아자젤과 만나기 전에 일찍 죽었다는 것이 되겠고.

저 정도의 녀석이 아자젤과 계약하고 소리 소문 없이 죽었을 리는 없다.

신자운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자젤은 너무 거물이었으니까.

‘마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악마가 가지는 자리.’

그것이 나태의 위(位)다.

전대 나태의 악마 벨페고르의 딸이자, 나태의 위를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계승한 악마.

그 자리를 아자젤은 수천 년이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아자젤이 계약자를 고르다니.

녀석은 분명 나태의 자리에 있는 만큼 상당히 게으른 성격이었을 텐데?

“놀라워라. 아직 자기소개도 안했는데 내가 누군지 아는구나?”

“다 아는 법이 있지.”

“그래, 아는 법은 많지. 미래를 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정한 키워드를 알 수 있는 스킬을 지녔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이 세계는 의미 불명의 것들이 워낙 많으니까.”

그래서 둘러대기도 쉽다.

아자젤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런 모습만 보면 그저 가녀린 소녀 같다.

“그나저나…… 솔직히 난 네가 내 계약자를 죽이려 할 줄 알았어.”

“그럴 수도 있었지.”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거지?”

“저 두 아이를 살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신자운과 함께 있는 민아의 친구 두 명을 가리켰다.

저 둘이 만약 죽는다면 민아는 고향으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얽히게 된 것도 인연이니 굳이 죽게 내버려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계약 때문이구나.”

“그래. 이미 악마와 계약한 아이들이다. 더 상위의 악마의 계약만이 그것을 덮을 수 있지.”

철마 박도영과 계약한 악마는 상당히 급수가 높은 악마다.

그런 악마보다 급이 높은 악마는 찾기 힘들뿐더러 그 계약자는 더더욱 드물다.

그런 점에서 신자운은 꽤 괜찮은 상대역이지.

본인도 악마의 계약자치고는 이상하게 성실한 놈이니까.

저 두 아이들의 보호자로선 적당한 위치다.

아자젤의 계약자보다 든든한 보호자는 찾기 힘드니.

마음 같아선 디어사이드 길드로 데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관리하기도 힘들뿐더러 다른 적당한 악마의 계약자를 찾기도 어렵다.

“좋아. 이번엔 특별히 손을 쓰지 않아도 되니 나도 편하지. 하수인 한둘이 늘어난다한들 내겐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마침 시녀 같은 애가 필요하기도 했어.”

아자젤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꽤나 쉽게 승낙하는걸.”

“너란 존재도 꽤 흥미로우니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 악마는 쾌락주의가 대부분이잖아?”

그렇게 말한 그녀는 힐끗 내 머리 위를 보았다.

“물론, 흥미를 가진 건 나만이 아닌 것 같지만.”

“……으음.”

“너도 참 귀찮은 것에게 관심을 받고 있구나.”

내 머리 위에는 수많은 옵저버가 있었지만 아자젤이 말하는 건 그런 단순한 신들이 아닐 것이다.

저들 틈에 끼어있는 이드라의 옵저버를 말하는 거겠지.

내게 특별히 말을 거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녀석의 존재감을 선명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전승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걸 알 텐데, 왜 말을 걸지 않는 거지?’

덕분에 이상한 건 나였다.

솔직히 너무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녀석에게 말을 걸어봐야 하나 고민할 정도다.

아자젤은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슬슬 나도 계약자에게 돌아가 봐야겠네. 그럼 잘 있어, 까마귀. 또 봐?”

싱긋 웃으면서 말한 아자젤은 내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애초에 나는 녀석에게 조금 흥미로운 존재일 뿐이니까.

“그다지 또 보고 싶지는 않은데.”

태연하게 대화했지만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아무리 지구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초상의 존재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진다.

‘우선 자운 쪽으로 까마귀를 한 마리 붙여뒀으니.’

만약의 일은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자젤도 그 사실을 알면서 내버려 둔 걸 보면 상관없는 것 같고.

‘어차피 당분간은 만날 일이 없겠지.’

아마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된 다면 꽤 시일이 흐른 후일 것이다.

마계에서 열리는 강자들의 축제.

마계무투제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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