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4화 (84/332)

# 84

084. 악마를 찾는 자(3)

“왜 나를 따라오는 거지?”

자운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초리에 뒤에서 따라오던 여성 두 명이 움찔거렸다.

“그게……, 저희도 어쩌다보니 여기에 오게 된 거거든요? 혹시 오빠랑 같이 가면 나갈 수 있을까 해서…….”

어쩐지 암천 길드에 어울리지 않더니 휩쓸렸던 모양이다.

“아, 그리고 저랑 얘 이름은 혜미랑 지선이에요. 이혜미, 박지선.”

“안 물어봤다.”

아까 쫄았던 것이 거짓말처럼 말을 늘어놓는 두 여성,

지선과 혜미의 모습에 자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한 명은 긴장한 얼굴로 떠듬떠듬 내뱉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적응이 빨랐다.

‘이런 녀석들이 자발적으로 암천 길드에 들어왔을 리 없지.’

악마의 하수인을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잡거나 혹은 신의 아바타가 되게 해준다고 꼬시는 경우가 있었다.

후자는 아바타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다면 통하지 않는 수단이었지만, 아마 이 여자애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길드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이겠지.

물론 그것과 자신을 따라오는 건 별개였다.

“너희.”

“수호 오빠!”

자운이 뭐라 입을 열던 순간 수아가 소리치며 다다다 뛰어갔다.

녹슨 문을 열자 철창에 갇혀 있는 10대 후반의 남성이 보였다.

지금 자운의 뒤를 따라오던 두 명, 지선과 혜미와 비슷한 또래다.

“……이 녀석이 너의 오빠인가?”

“네. 맞아요. 오빠예요!”

민수호는 옅은 숨을 내쉬며 정신을 잃고 있었다.

자운은 철창을 구부리며 안으로 들어가 수호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이 심하군.’

몸 상태도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내버려 두면 딱 보기에도 위험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야겠군.’

민수호의 상태를 보니 우선 한번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수아가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자신은 암천 길드를 뒷정리할 생각이었다.

괜히 성가신 것들을 남겨놔서 좋을 것 없었다.

자운은 정신을 잃은 민수호를 적당히 들고 1층으로 올라왔다.

혹시나 덮쳐오는 길드원이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 1층으로 돌아올 때까지 특별한 기척은 없었다.

‘역시 이상한데.’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사람이 없다.

자신이 온다고 미리 전했는데 단체로 소풍을 나갔을 리는 없고.

설마 이 나사 빠진 여자애들이 조직원의 전부일리는 없지 않은가.

쿠웅.

쿠우웅.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지배할 무렵, 아까 들었던 이상한 소리가 재차 울렸다.

무언가가 내려오는 것 같은 소리.

그다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피해요!”

“응? 왜?”

갑자기 민수아가 소리쳤다.

그런 수아의 말에 지선과 혜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운의 행동은 빨랐다.

자운도 느꼈던 것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무언가를.

“꺅!”

자운은 들고 있던 민수호를 어느새 멀찍이 대기하는 수아에게 던진 뒤, 다른 두 명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당겼다. 갑작스런 자운의 행동에 지선과 혜미는 인형처럼 입구 쪽으로 붕 날아갔다.

수아는 그래도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인지라 날아온 민수호를 무사히 받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은 입구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씨잉, 갑자기 뭐야?”

그래도 몸은 제법 튼튼해서 다친 곳은 없었다.

지선은 부딪친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던지다니 너무해!’

아무리 자신들이 갑자기 따라왔지만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다니.

악마의 계약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건 더 강한 악마뿐이다. 자운과 계약한 악마라면 분명 철마 박도영보다 강한 악마이리라 생각하고 쫓아온 거였다.

당연히 자신들의 취급이 좋지 않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냅다 던져버릴 줄이야!

“저기 이게 무슨 짓……!”

콰아아앙!!

1층의 천장을 부수며 무언가가 떨어졌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후두둑.

부서진 천장에서 핏물이 마치 비처럼 쏟아졌다.

한 방울 두 방울, 계속해서 떨어졌다.

“…….”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던가.

그것을 지선과 혜미는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천장을 뚫고 떨어진 건 한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자였다.

문제는 남자쪽은 지선과 혜미가 아주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길드장 박도영 아냐?’

지선과 혜미는 말단 중에 말단이었지만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걸 곁눈질로 봤기 때문이다.

강인한 턱선과 떡 벌어진 어깨.

근육질이 잡힌 몸은 어디로 봐도 박도영이었다.

그런 그의 머리가 하얗고 작은 손에 잡혀 들려 있었다.

철마(鐵魔)라는 이명을 가진 만큼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는 그의 몸이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비틀려 있었다.

여성은 박도영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은 채, 바닥에 쿵쿵쿵 찍었다.

그때마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커다란 구멍이 난 천장에서 떨어지는 핏방울과 박도영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 때문에 바닥에는 금방 시뻘건 웅덩이가 고였다.

“죽었나.”

여성은 몇 번을 더 내리치다가 상대가 미동이 없자 가볍게 손을 놨다.

털썩, 박도영은 쓰러져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암천 길드의 길드장이자 철마 박도영이라 불리던 상위 플레이어의 최후라기엔 심히 끔찍했다.

“응?”

여성은 뒤늦게 이쪽의 시선을 깨달은 듯 시선을 돌렸다.

입구에 있는 지선과 혜미를 훑고, 민수아와 민수호를 바라본 뒤, 마지막에 신자운을 보았다.

그를 확인한 여성의 붉은 동공이 조금이지만 커졌다.

그리고 머리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설마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요.”

“나도 마찬가지다.”

여성, 지수는 눈을 살며시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왼손을 한번 쥐락펴락한 뒤, 오른손에 든 둔기를 붕붕 휘둘렀다.

‘특별히 지친 거 같지는 않으니.’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운 역시 그런 지수의 모습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주먹이 단번에 시커멓게 물들었다.

왜 싸우는지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았다.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많은 이유가 있었으니까.

쿠웅!

먼저 움직인 건 지수였다.

쿵쿵쿵! 둔기의 무게 때문에 지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큰 충격이 울렸다.

강력한 각력에 대리석이 부서졌다.

‘이번엔 제대로 무기를 들고 있군.’

그런 지수를 보며 자운은 몸을 긴장시켰다.

이전에는 맨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검붉은 거대한 둔기.

뾰족뾰족한 날붙이가 튀어나온 기괴한 형태의 둔기에는 인간의 살점이 붙어 있었다.

저것에는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리라.

자운은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둔기를 숙여서 피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지수의 턱을 노렸다.

팡!

지수의 왼손이 자운의 손을 쳐낸 후, 달려온 가속으로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큭!!”

무슨 이런 무대포가!

이렇게 터프하게 공격을 하는 타입은 흔치 않다.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드는 광전사와도 같은 타입.

두두두!

튕겨 날아가는 와중에도 자운의 양손이 지수의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지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자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금 턱으로 휘둘러지는 주먹을 막았던 건, 뇌에 타격이 오면 행동에 방해가 되었기에 막았던 것이다. 그 증거로 다른 장소로 가해지는 공격은 전혀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굳이 막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지수의 재생 스킬은 B랭크에 이르렀다.

천살성과 B랭크에 이른 회복능력은 그녀에게 멈추지 않는 체력과 가공할 재생능력을 주었다.

“……!!”

재차 휘둘러지는 둔기의 모습에 자운이 양팔을 들고 비껴 막았다.

마인화로 인해 극도로 경화된 자운의 피부가 찢겨지며 검은 핏방울이 흩어졌다.

‘단 한 방인가.’

한 방만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

자운은 철마 박도영의 시체를 보았다. 사지가 뒤틀린 모습.

아마 그도 저 둔기를 막으려고 했던 거겠지.

그래도 사지가 무사히 붙어 있는 걸 보면 그가 왜 철마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이미 죽었지만 자운은 그가 생각보다 강한 적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저, 저게 악마야?”

“그, 그런 거 아닐까?”

지수와 혜미는 덜덜 떨면서 그런 둘의 싸움을 보았다.

이미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탓에 건물 안에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또한 지수가 전등을 죄다 날뛰며 부수는 탓에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럴수록 또렷하게 보였다.

어둠에서 그어지는 붉은빛이.

지수의 붉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안광이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자운은 지수의 강함을 느꼈다.

단순히 능력치적으로 강해진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싸움법을 익히고 대응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런 단시일 내에 이 정도로 할 수 있다니.

솔직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콰콰쾅!!

지수가 휘두른 둔기에 건물의 철골과 벽이 뜯겨져 나갔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건물이 통째로 부서졌다.

‘성가시게 됐군.’

역시 이 여자와 싸우는 건 손해다.

그렇다고 몸을 빼기엔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고, 입구에 있는 녀석들이 마음에 걸렸다.

저들은 자신과 연관되어 있었고, 심지어 둘은 악마의 하수인이다.

이 여자가 여태 다른 악마의 하수인들을 죽였던 걸 생각하면 무사하긴 힘들겠지.

결국 자운은 단번에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한 발 정도라면.’

가면의 마력을 통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른팔에 집중해서 카운터를 노린다.

단 한방에 저 여자를 침묵시키지 못한다면 지는 건 자신이었다.

시뻘건 안광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지수는 둔기를 휘둘러 재차 건물을 부쉈다.

휘어져 날아가는 철근과,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더미.

그중 가장 커다란 걸 왼팔로 받치고 달리며 자운을 향해 던졌다.

쾅! 콰앙!

주먹을 휘둘러 그것을 부순다.

그 빈틈을 노려 거대한 둔기가 자운을 향해 낙하했다.

완벽한 시간차를 노린 공격.

그건, 자운 역시 바라던 바였다.

자운의 전신을 감싸던 검은색 빛이 옅어지며 오른팔에 모였다.

지수의 둔기를 미끄러지듯 피하며 파고들었다.

자운의 장기인 카운터.

그것을 지수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휘둘렀다.

단순한 타격이라면 지수에게 무의미.

그러니 모든 마력을 끌어 모아 한쪽 팔의 근력을 극도로 상승시킨다.

기본적으로 높은 자운의 근력수치가 카운터 스톱 수치로 돌입하며 지수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아무리 지수라도 그것을 막지는 못할 터.

자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자운의 생각은 맞았다.

지수는 그걸 막을 생각이 없었다.

‘뭐?!’

붉은 눈동자가 자운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신의 얼굴로 휘둘러지는 주먹 따위는 보지도 않았다.

왜냐면 어차피 피하지 못하니까.

그러니 지수는 도리어 공격을 했다.

콘크리트 더미를 던졌던 왼손에는 길쭉한 철근이 들려있었고, 그것을 몽둥이처럼 자운을 향해 휘둘렀다.

자운보다 분명 출발이 늦은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운의 몸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충격과 함께 지수와 자운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커억!”

건물 더미에 처박힌 자운은 몸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계약자가 아니었으면 분명 죽었다.

‘녀석은……?’

뿌연 연기가 내려앉자 자운은 지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수는 자운의 반대편에 쓰러져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머리는 180도로 돌아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팔과 다리도 미묘하게 꺾여 있었다. 충격파로 부러진 모양이다.

‘……이걸로 끝났겠지.’

자운은 지수의 모습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목이 완전히 부러진 지수의 모습에 조금 씁쓸함이 느껴졌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었을 것이다.

자운은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수아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어, 저 괜찮아요?!”

“저, 저 사람은 죽은 거예요?”

“아마.”

호들갑 떨며 말하는 혜미와 지선의 말에 자운은 신음처럼 대답했다.

솔직히 걷는 것도 힘들었다. 당장 쓰러져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그런데요.”

지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사람 움직이는데요?”

“뭐?”

설마 말도 안 된다.

목뼈가 완전히 부러져 머리가 180도 돌아간 인간이 살아 있을 턱이 없다.

거기에 움직인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목이 부러진 인간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덜그럭.

자운은 황급히 지수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손가락이, 그다음은 팔과 다리의 관절이.

마치 구체관절인형처럼 덜그럭 덜그럭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상체가 일어나고 다리가 움직이며 몸을 일으켜 대지에 섰다.

처음엔 비틀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또렷하게 몸을 세우고 자운이 있는 장소로 몸을 돌렸다.

머리가 거꾸로 돌아가 앞을 볼 수 없음에도.

“미친…….”

이번만큼은 자운조차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수의 오른팔이 삐걱삐걱 움직이며 거꾸로 돌아간 머리를 잡았다.

현재 지수의 얼굴은 그녀의 등 쪽으로 향해 있었다.

인간의 목이 움직일 수 없는 각도로 꺾여 있었다.

하지만.

우두둑. 인간의 뼈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며 지수는 자신의 머리를 반대로 돌렸다.

등 쪽으로 향해있던 지수의 얼굴이 정면으로 돌아왔다.

지수의 얼굴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눈을 감고 잠든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

뚜두둑, 소리가 나고 목뼈가 완전히 맞춰지며 지수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자운을 향하며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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