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3화 (83/332)

# 83

083. 악마를 찾는 자(2)

“좋아, 찾았다.”

나는 불과 며칠 만에 민아의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아무리 뒷세계의 조직이라고 해도 악마와 관련된 조직은 그다지 많지 않은 법.

정보상을 탈탈 털다보면 금방 찾게 되는 것도 당연한 법이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고 있으니 금방이지.’

거기다 흔치 않은 악마의 하수인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악마와의 계약을 어떻게 파기하냐는 건데…….

‘DLC 상점을 뒤져보면 뭔가 나오지 않으려나?’

신자운 녀석처럼 악마의 유물을 파괴시킨다면 가능하겠지만 그건 보통 근성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조차 1회차, 2회차를 통틀어 딱 한 번밖에 못 본 일이니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악마쪽에서 얌전히 계약을 파기시켜주는 거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다.

“아, 오셨어요?”

“어. 다른 사람들은?”

한동안 바쁘게 돌아다닌 터라 피로가 몰려왔다.

크게 하품을 하며 길드 건물로 들어가자 백설이와 놀고 있던 린이 나를 반겨왔다.

“아마 다들 포인트 얻으러 갔을 걸요? 민아 언니는 산책 간다고 했고.”

“그래? 지수도?”

창우나 루크라면 능력치를 올리느라 바쁠 테니 그렇다 쳐도 지수는 지금 한가할 텐데?

“지수 언니도 산책 간다고 하시던데요?”

“지수가?”

걔는 특별히 산책 같은 걸 하는 성격이 아닌데.

대학시절에도 공부만 했고, 이런 세상이 된 이후에는 몬스터를 잡거나 나와 대련을 하는 게 전부였다.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건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다.

“그러고 보니, 겸사겸사 어떤 길드도 다녀온다고 한 것 같은데…….”

린의 말에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왜냐면 지수는 어떤 길드에 다녀온다고 말할 만큼 특별히 아는 길드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길드간의 교섭은 내가 도맡아서 했고, 지수가 나선 일은 아예 없었다.

그런 지수가 아는 길드라고 한다면 딱 하나의 경우뿐.

한참을 고민하던 린은 이내 생각났는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암천 길드라고 하던데요? 아저씨, 혹시 아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들어온 방향으로 다시 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피곤해서 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암천 길드로 가지 않으면 대형사고가 터질 게 분명했으니까.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지수가 아는 길드는 걔가 살생부에 올려둔 길드뿐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중에 암천 길드가 있을 줄이야.

거기다 최근에는 얌전히 있어서 방심했다.

한동안 내가 바빠서 상대해 주지 않았더니 욕구불만이라도 생긴 건가?

‘그래도 지수가 보는 눈은 있으니 민아의 친구는 죽이지 않겠지.’

악마와 관련되면 다 죽이는 것 같지만 엄연히 하나하나 구분해서 죽이는 지수다.

상대가 악에 물들었는지, 아니면 억지로 하고 있는지 최소한의 구분은 했다.

……아마.

***

“신자운이 우릴 찾고 있다는 건 분명 사실이겠지?”

“예. 어제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흠, 그렇단 말이지…….”

송수근의 말에 철마 박도영은 턱을 괴었다.

어제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준비를 시작하긴 했지만 신자운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흑천회의 분파였던 암천 길드를 먹으려는 건가?

‘그럴 리가. 그놈은 그렇게 권력욕이 있는 놈이 아니었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작 덤비고도 남을 놈이다.

어쨌든 악마의 계약자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소문이 날 정도의 괴물이니까.

“마침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신자운과는 한번 싸워보고 싶던 차였다.

녀석을 꺾으면 가장 강한 악마의 계약자라는 타이틀도 자신의 것이 될 테니까.

‘그 계집애도 어서 찾아야 되는데.’

최강의 계약자라는 타이틀과 미래를 보는 계집애만 있다면 일대 전체, 아니 서울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박도영은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암천 길드는 신흥 세력 중 최고라 불릴 정도로 급격하게 세가 커져가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소녀, 민수아의 말을 토대로 움직여 어느 정도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타이밍에 민수아가 도망쳐 버렸다는 거다.

‘만약 되찾지 못하면 죽여 버려야 해.’

미래를 본다는 건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약 자신이 차지하지 못한다면 죽여서라도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만 했다.

물론 되도록 생포할 생각이다.

그 힘이 있어야만 자신들의 길드가 다른 이들을 압도하며 치고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신자운을 처리하자마자 다시 애들을 풀어야겠어.”

박도영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비친 도시의 모습을 보았다.

이 도시가 언젠가 전부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에 짜릿함이 느껴졌다.

‘제2의 흑천회, 아니. 제1의 암천 길드가 된다.’

그의 야망은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

암천 길드가 있는 장소는 저번에 민수아가 도망쳤던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공단에서 가까이에 있는 도시에 바로 암천 길드의 본 거지가 있었다.

신자운은 바이크를 적당히 세워둔 뒤 주변을 살폈다.

“너는 왜 따라온 거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자운은 수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바이크를 몇 번을 타도 익숙해지지 않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조, 조금 불안해져서요.”

“네가 따라오는 쪽이 더 불안하다만.”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어요. 적어도 오늘 저에게 위험은 없었어요.”

수아는 당당하게 가슴을 피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오늘 봤던 미래 중에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것은 없었다.

대신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오빠의 미래가 계속 변한다는 점.’

그녀 본인의 전투력은 미비하기 그지없기에 자운을 따라올 생각은 본래 없었다.

하지만 자운이 출발하기 직전 미래가 연속해서 변경된 탓에 황급히 쫓아온 것이다.

‘그런 걸 봐버리면 어쩔 수 없는걸.’

분명 불길한 뭔가가 있다.

계속 미래를 봐온 수아이기에 느낄 수 있다.

미래가 계속 변동되고 있다는 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이번 일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건 자신이나 자운만이 아니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뭔가가 있었다.

붉은 눈을 지닌 어떤 불길한 존재가.

“저 건물이군.”

“네, 맞아요.”

자운은 느긋하게 건물로 다가갔다.

건물의 높이는 대략 7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다.

당연히 포인트로 구매한 건물은 아니다.

대충 남아 있는 건물을 멋대로 점거한 거겠지.

우르르 몰려온 플레이어들을 막을 존재는 없으니까.

‘이상하군.’

자운은 암천 길드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송수근이 박도영에게 정보를 팔지 않았나?’

아니, 그렇다 쳐도 근처에 암천 길드의 길드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건 이상했다.

근처에 있는 발자국이나 흔적들을 보면 더더욱.

“들어가 보면 알겠지.”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운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면을 다루게 되며 마인화(魔人化) 스킬이 더욱 발전한 덕이다.

보통의 마인화 스킬은 신체능력을 올려줄 뿐이지만 자운의 마인화는 거기에 몸의 강도도 올려준다. 피부가 검게 물드는 것도 그런 이유.

그것이 아자젤과 계약하고, 가면의 힘을 다루게 되며 증폭값이 배로 뛰었다.

덕분에 자운의 마인화는 전승스킬 정도의 효율을 내고 있었다.

덜컹.

“……음.”

반투명한 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암천 길드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1층은 평범한 휴식 공간인지 별다른 건 없었다.

누군가 있었을 안내 데스크도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뭐지?”

분명 들어가자마자 물밀 듯이 덤벼 오리라 생각했지만 놀랍도록 조용했다.

자운은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며 귀의 감각을 집중했다.

‘위층인가?’

적어도 1층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밖도 조용하더니 안도 조용하다.

이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오빠는 지하에 있는 감금실에 있어요.”

“지하? 그걸 어떻게 알지?”

“예전에 저도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본래 민수아도 자신의 오빠와 함께 이곳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잠시 다른 지부에 갈 일이 생겼고 그 틈을 노려서 탈출했던 것이다.

“지하라.”

그러고 보면 흑천회도 아이들을 잡아 지하에 가두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지하에 두는 편이 빠져나가기도 힘들고 관리도 편하기 때문이다.

“가지.”

자운은 지하를 향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몇 명쯤 지키고 있을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음?’

지하 1층, 2층을 넘어 3층까지 왔을 무렵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암천 길드의 길드원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자 들려온 건 여성의 목소리였다.

“여기 숨어 있으면 괜찮아?”

“몰라, 지금 위에 난리가 난 거 같던데. 그냥 여기 있자.”

숙덕거리는 목소리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거기에 약간 앳된 구석이 있었다.

자운은 의문을 느꼈지만 큰 위협을 느끼진 못했다.

굳이 숨어 있는 상대를 뒤져가며 죽이는 취미는 없었다.

자운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덤비는 이들을 먼저 죽였다.

“저기, 저기로 먼저 가시는 게 어때요?”

“저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둘이다. 거기에 너희 오빠는 없다.”

“네, 저도 알아요. 근데 들렸다가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신중하게 말하는 수아의 말에 자운은 인상을 살며시 찡그렸다.

‘또 미래로 뭔가를 본 모양이군.’

미래에 끌려 다니는 건 질색이지만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다, 속닥거리는 목소리들도 거슬리긴 했다. 거기다 잠시 들렸다가 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쿵!

“히익!”

닫혀 있던 문을 열자 안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안은 여러 비품이 모여 있는 창고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비품 사이로 무언가가 꼼지락 거리는 게 보였다.

마치 머리만 감추고 숨어 있는 것 같은 강아지의 모습에 자운은 내심 황당해졌다.

자운은 성큼성큼 다가가 비품 틈에 숨어있는 두 여성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뭐냐.”

“딸꾹.”

목덜미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두 명의 여성은 아직 앳된 인상이었다.

옷은 제법 갖춰 입고 있었지만 얼굴은 어디로 봐도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왜 애들이 여기에 있지?”

풍기는 기운이 악마의 하수인이었다.

악마와 계약되어 있다는 건 엄연히 암천 길드 소속의 길드원이라는 것.

“삼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애들을 조직원으로 쓸 정도라니. 쯧.”

“꺅!”

자운은 혀를 차며 하얗게 얼어있는 두 여성을 바닥으로 던졌다.

제대로 낙법조차 하지 못한 채 구르는 두 명을 보며 자운은 혀를 찼다.

반면 그런 자운의 행동에 두 여성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자운이 암천 길드로 온다는 정보는 이미 있었기에 그의 외모는 모든 길드원들이 알고 있었다.

당연히 두 소녀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사내가 오늘 자신들의 길드로 온다던 악마의 계약자라는 걸 안 순간 기절할 것 같았다.

‘아까 올라오라고 한 일이 저 사람 때문이 아니었어? 싸우기 싫어서 숨어 있던 거였는데!’

이렇게 나타난 걸 보면 다른 길드원들이 다 당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선과 혜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저, 저기. 사, 살려주세요.”

“살려 주세요…….”

덜덜 떨면서 말하는 두 명의 모습에 자운은 앞머리를 거칠게 위로 넘겼다.

그리곤 잠자코 서있는 수아를 돌아보았다.

“이걸 알고 오자고 한 거냐?”

“얘, 뭐.”

“성가시게 하는군. 이것들도 같이 데려가 달라는 거냐?”

“예? 아뇨.”

혹여나 애들이니 함께 데리고 나가달라는 말인가 싶어 물으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왜 이곳으로 오자고 한 거지?’

이 두 명에게 뭔가 있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두 여성은 좋게 쳐줘도 평범한 플레이어였고 악마의 계약자도 아닌 하수인일 뿐이다.

“이제 어서 저희 오빠를 구하러 가요! 시간이 없어요!”

“어차피 근처에 조직원들은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서둘러요!”

그럼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묻고 싶은 게 한 가득이었지만 어차피 곧 알게 될 게 뻔했으므로 묻지 않았다.

왜냐면 대략 짐작 가는 게 있었으니까.

‘소리가 점점 커지는군.’

그건 ‘무언가’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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