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0화 (80/332)

# 80

080. 역주행의 마법(3)

「와하하!」

귓가에 이드라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한은 저놈의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신은 지금 진지하게 싸우고 있는데 가볍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영상 편집에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보라, 하늘에 나타나는 옵저버의 수를!」

신나서 떠드는 이드라는 아무래도 본인이 올린 영상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없는 세한으로선 이드라가 어떤 식으로 영상을 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반응을 보니 확실히 관심을 받도록 올리긴 한 모양이다.

「진작 이런 걸 업로드해 볼 걸 그랬군. 뒤늦게 알게 되다니 아쉬운 일이로다. 그렇지! 몽상의 던전을 나가면 그쪽의 내게도 이걸 알려줬으면 한다.」

‘싫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몽상의 던전에서야 친근하게 대화를 했지만 본래 그녀와 자신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이 세계는 꿈이기에 세한도 거리낄 것이 없었지만 본래 세상이라면 달랐다.

그래도 이드라가 자신을 생각보다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다만 그건 이 세계의 이드라지 본래 세계의 그녀에겐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매정하구나. 아무튼 나는 계속해서 영상을 편집하도록 하지. 신의 영역에 이른 편집 기술로 말이다.」

그야 그렇겠지.

본인이 신이니 신의 영역에 이른 편집기술인 게 당연했다.

이드라는 하고 싶은 말이 다 끝났는지 깔끔히 물러났다.

이제야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세한은 눈앞의 린을 보았다.

‘역시 너는 온전히 대리자가 될 수 있었구나.’

금빛으로 빛나는 린의 모습을 보니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스트라이아의 대리자는 루크 테일러가 아닌 린이 되었어야 했다.

이 재능을 조금만 더 빠르게 파악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으리라.

‘그렇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유리하다고 방심하면 죽는다.

상대는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는 괴물이니까.

딱!

세한은 오른손을 위로 들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검은 공간 두 개가 열렸다.

이드라의 전승 스킬, 허수공간이 열리며 세한이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두 개의 검이 린을 향해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간 검이지만 린은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두 개의 검을 내쳤다.

카앙!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린의 주변을 구의 형태로 에워싸며 수십 개의 검은 공간이 허공에 나타났다. 린은 그것을 보았다.

허공에 나타나는 수십 개의 세계의 틈새.

허수의 세계로 연결되는 구멍.

콰콰쾅!!!

새까만 검은 기둥과도 같은 물체가 구멍에서 린을 향해 떨어졌다.

그것들은 근처 던전에 묻혀 있던 금속 광맥에서 가져온 대량의 금속이었다.

이드라의 스킬로 허수공간으로 집어삼킨 후, 내부에서 ‘변질’ 스킬로 모습을 변화시켜 린을 향해 쏘아낸 것이다.

쿵쿵쿵!! 카앙!

린은 그것을 모조리 회피하거나 나아가 그것을 검으로 베어냈다. 360도. 인간이 대응할 수 없는 사각에서 쏘아지는 공격조차 모조리 막으며 전진했다.

빠르게, 더욱 빠르게.

린의 금빛 머리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세한을 뒤를 쫓아 금빛의 궤적이 수놓아졌다.

그 속도는 초음속에 도달했던 민수호보다도 빨랐다.

세한조차 잔상밖에 볼 수 없을 정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실선이 그어지며 공기가 밀려나 거센 충격파가 세한을 덮쳤다.

폭풍에 휩쓸린 것 같았던 세한의 모습은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어느새 하늘에는 수십 명의 세한이 서서 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

린이 주변에 있던 공간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비틀렸다.

금빛의 궤적을 쫓아 비틀어지는 공간.

세한은 그 궤적의 끝을 쫓아 린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손에 쥔 검을 휘둘러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쿠웅!!

하늘을 날듯이 움직이던 린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하자 반구형의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지며 대지가 흔들렸다. 그리고 떨어진 린을 향해 세한은 재차 손가락을 튕겼다.

하늘에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구멍이 열리며 직사각형의 거대한 물체가 떨어졌다.

흔히 만년한철이라 불리는 물건이다.

어마어마한 강도와 무게를 자랑하는 금속,

근처 던전에 매몰되어 있던 만년한철 광맥을 그대로 허수 공간으로 옮겨 그곳에서 뭉쳐 만든 거대한 인조 운석.

직경 수십 미터가 넘어가는 만년한철 운석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그대로 압사했을 거다.

네모난 만년한철의 정가운대가 반으로 갈라지며 빛이 뿜어졌다.

반으로 갈라진 만년한철 운석의 전신에 미세한 실선이 생기며 점차 빛이 흘러나왔다.

콰아앙!!

떨어지던 거대한 덩어리가 수십, 수백 개의 파편으로 부서져 나갔다.

가장 단단한 금속 중 하나로 꼽히는 만년한철이 과자처럼 부서져나가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세한은 부서져 나가는 파편을 자신의 주위로 모았다.

그 파편들로 자신의 등을 공격하는 린의 공격을 받아쳤다.

그리고 활짝 펼치고 있던 오른손을 린을 향하게 한 뒤, 콱 주먹으로 움켜쥐었다.

“윽!”

나머지 파편들이 일제히 린의 몸에 달라붙었다.

만년한철의 파편뿐이 아니다.

이드라의 ‘변질’ 스킬을 이용해 린의 주변에 거대한 자석의 성질을 부여하여, 일대 전체의 금속을 그녀에게 향하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린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한층 강해졌다.

푸르던 눈동자는 더욱 푸르게 타오르며 도리어 세한을 향해 질주했다.

날아들던 온갖 금속과 만년한철을 피하고 튕겨내며 달렸다.

린은 검을 쥐었다.

금색의 빛이 단번에 린의 손에 응집됐다.

“아아아──!!”

일섬(一閃)

응축된 빛이 해방 되며 검을 휘두르자 금빛의 궤적이 그려졌다.

이미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던 격리구역의 건물들이 절반으로 잘려져 나갔다.

격리구역만이 아니다. 한참 떨어져 있던 산이 반으로 갈라졌고 윗부분은 그대로 분해되며 사라졌다.

콰콰콰!!

수십 킬로미터 이상 뻗어나간 빛의 줄기에 이 싸움을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은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민아도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지나치게 현실감 없는 싸움에 뺨을 꼬집었다.

신의 왕 누아다의 힘을 지니고 있던 천상환도 강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런 것과 같은 선에서 둘 수 없는 싸움이었다.

신의 대리자.

말로 듣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같은 게임을 해온 자가 맞는가?

그런 의문이 들 정도였다.

허공에서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공간과 공간에서 날아오는 물체들.

아마 그것을 소환하는 건 세한이겠지.

거기에 그것을 모조리 막아내며 빛과 같이 날아다니는 린 테일러.

방금의 공격으로 수십 킬로미터 밖에 있던 산의 반쪽이 사라졌다.

이해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해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둘 것이 있었다.

세한은 이미 한번 인류의 끝을 보았던 플레이어라는 것.

이드라의 스킬은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 부담을 준다.

세한이 굳이 육체적인 능력보다 스킬에 의존하여 린을 공격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육체적인 스펙으로는 지금의 린과 싸울 수 없었다.

미래의 세한이 가진 것 중에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건 단련된 정신뿐.

그것을 백분 활용하여 이드라의 스킬로 린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린도 린대로 필사적이었다.

그녀가 강한 건 재능도 있었지만 그 재능을 일순간에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불타는 밧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의식이라도 잃는 순간 린은 그대로 생명을 잃으리라.

린은 여기서 세한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이 퀘스트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

싸움을 지켜보던 민아는 문득 주위의 시선이 세한과 린의 싸움만이 아닌 하늘로도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에 뭔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올려보자 그곳에는 무수한 옵저버가 있었다.

GM이 아닌 신들 개인이 조종하는 공용 옵저버.

이렇게 많은 옵저버의 수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게임 초창기, 많은 신들의 관심이 쏠렸을 때가 이랬다.

플레이어들이 넋을 잃고 보는 것도 이해가 됐다.

왜냐면 개중에선 연락이 끊겼던 신도 있을 테니까.

‘설마.’

민아는 그제야 세한이 무엇을 노리는지 깨달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아마 그가 노린 건 단순한 퀘스트의 클리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제…….’

세한은 사방으로 몰아치는 금빛의 검광(劍光)을 피하며 생각했다.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옵저버의 수도 충분히 늘었다.

거기다 더 이상 대리자로서 강신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무리가 왔다.

분명 그건 세한뿐이 아니다.

아직 전부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그녀가 더 위험했다.

어떻게 버티고 있지만 언제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인벤토리에서 작은 단검을 꺼냈다.

송시우가 만들고, 거기에 이민아가 만들어낸 특별한 ‘독’을 넣은 단검.

이걸 무구에 변질 시켜서 담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이템의 효과’는 변질로 흉내 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린을 단검으로 찌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순수한 육체적인 능력치는 지금 린이 세한을 압도할 터.

‘연출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세한은 침착하게 린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금빛의 빛무리가 자신에게 쏘아진 순간 손가락으로 튕겨 허수 공간으로 보냈다.

그걸 예상했다는 것처럼 린의 몸은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세한의 옆을 노렸다.

일순간, 린의 푸른 눈과 세한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계속된 교전으로 이가 빠진 검으로 세한의 가슴을 노리는 린과 그런 린을 향해 손을 뻗는 세한.

‘여기서 막으면 곧바로 좌측으로 이동해서 목을 노린다.’

린은 여태까지처럼 세한이 공격을 막으리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런 린의 생각을 세한은 읽었다.

반쯤은 허수로 던진 린의 일격, 그것을 온전히 가슴으로 받아내었다.

푸욱!

“어?”

가슴을 꿰뚫는 감촉에 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굳었다.

일순간 일어난 완벽한 경직.

환상이나 가슴에 공간을 열어 흘린 것도 아니었다.

피육을 가르는 감촉이 손에서 느껴졌기에 린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세한은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굳어 있는 린의 가슴을 향해 단검을 찔렀다.

아무리 빠른 린이라고 해도, 놀라서 멈춰 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단검으로 찌를 수 있었다.

“아저씨?”

세한은 동귀어진 같은 걸 할 성격이 아니다.

자신이 살든지, 혹은 상대가 죽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인간이다.

동귀어진 같은 바보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린의 가슴에 박힌 단검은 현실이었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하는 세한을 보며 린이 주춤 물러섰다.

어째서인지 단검에 찔린 가슴은 아프지 않았다.

그저 의식이 흐려질 뿐이다.

털썩.

점차 바닥으로 무너지는 린의 모습을 세한은 똑똑히 보았다.

전신을 감싸던 금빛이 사라지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 쓰러졌다.

그런 둘의 모습에 옵저버들이 크게 술렁였다.

싸움의 끝이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천살성이랑 재생 스킬이 그립군.’

그럼 이렇게 심장에 검을 찔린 정도로 죽지 않을 텐데.

가슴에 박힌 검에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이것을 뽑는 순간 그는 죽으리라.

정신을 잃지 않은 건 초인적인 세한의 정신력 덕이었다.

‘엘릭서를 꺼내야 되는데.’

엘릭서를 꺼내기 위해 인벤토리를 여는 순간, 허공에 익숙한 팡파레가 울렸다.

바로 퀘스트가 클리어 됐다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고통도 잊고 세한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되잖아.

퀘스트가 끝났다. 점점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플레이어들의 환호가 들렸다.

성공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세한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옵저버가 있었다.

이대로 두면 그들은 다시 떠날 것이다.

대부분은 린을 응원했겠지.

세한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엘릭서를 쓸 시간은 없나.’

세한은 엘릭서를 뒤지던 손을 멈췄다.

대신 다른 물건을 꺼냈다.

그건 둥근 구슬이었다.

세한은 그 구슬을 모든 옵저버가 볼 수 있도록 하늘로 들어올렸다.

퀘스트가 끝났다면 이제, 더 이상 이걸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갑작스런 그의 이상한 행동에 옵저버들도 의문을 가졌다.

그건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저 구슬을 만든 이민아만이 이유를 알고 있었다.

“큭!”

구슬을 쥔 손에 힘을 넣자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세한은 온 힘을 다해 구슬을 깨트렸다.

그건, 망해가는 게임을 역주행시키는 하나의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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