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079. 역주행의 마법(2)
“……!”
천상환의 가슴에 단검을 박아 넣던 순간, 세한의 등을 노리고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인지라 세한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등에 긴 자상을 입고 말았다.
“큭!”
급히 물러선 세한은 천상환이 제대로 쓰러진 걸 확인 한 후, 자신을 기습한 상대를 보았다.
‘린 테일러.’
역시 왔구나.
세한은 냉정이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보며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평정을 잃는 순간 스킬에 잡아먹힌다.
‘전생에도 비슷했지.’
그때는 천상환을 기습으로 쓰러트린 직후였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때는 세한도 상처를 많이 입은 터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칫.”
린을 혀를 차며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천상환처럼 강력한 전승 스킬 따위는 지니지 못한 린이지만 공격은 제법 매서웠다.
다른 아가트람 간부들의 공격방식을 닮아 있었는데 아마 그들의 공격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리라.
‘이때였지.’
세한이 린의 재능을 인지한 것도 이때였다.
제법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초월적인 재능을 지닌 존재라는 건 이때 알았다.
아마 아가트람의 간부들도 린이 재능이 있는 건 알았겠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을 거다.
아니, 린 본인조차 모를 거다.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재능의 편린.
오직 세한만이 그것을 오롯이 보고 있었다.
린의 공격을 피하며 세한은 슬쩍 하늘을 보았다.
‘아직 멀었나?’
하늘에는 옵저버의 수가 조금 늘어나 있었다.
제대로 ‘커뮤니티’에 영상이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해야겠지.’
천상환과 싸우는 것 정도로는 크게 시선을 끌지 못한다.
강력한 플레이어, 강력한 신.
분명 천상환은 눈에 띄는 존재였지만 ‘딱’ 그 정도다.
강한 플레이어가 강한 스킬을 난사하는 건 그다지 재미가 없다.
신의 왕 누아다의 스킬은 강력하지만 플레이어면 몰라도 신들이 보기엔 화려한 불꽃놀이일 뿐이다.
그러니 일발 역전을 노리기엔 부족하다.
지금 이 세계에서 그것이 가능한 존재는 단 하나.
그리고 그것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 건 신의 대리인인 세한 한 명뿐.
대리인이 된 세한은 신들에게도 특이한 존재였다.
정확히는 지금 망해가는 게임의 플레이어를 대리인으로 선택한 이드라가 특이한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덕에 옵저버의 수가 늘어나는 건 분명했다.
커뮤니티를 타고,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으리라.
이제 남은 건 한 방뿐.
“하아, 하아.”
린은 계속 공격했지만 세한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분함에 눈에는 눈물마저 맺혀있었다.
그럼에도 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모습은 퍽 애처로웠다.
동정을 사기 딱 좋은 광경이다.
아버지를 죽인 상대를 복수하려는 소녀.
이야기의 주인공에 걸맞지 않은가.
상대는 무려 아우터 갓의 대리인이자, 10만의 민간인과 수많은 플레이어를 학살한 학살자다.
그런 강력무비한 적을 상대하는 아름다운 소녀라니.
황도 12궁 황소자리 알데바란을 죽인 영웅의 딸과 그 영웅을 죽인 악당.
신들이 좋아하는 서사시와 같다.
허나 린도 알 거다.
신의 대리인이 된 세한은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는 걸.
심지어 본인의 재능조차 완벽히 인지하지 못한 그녀로선 더더욱 그렇겠지.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에게 덤볐다.
그 이유를 전생에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루크의 복수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린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다를지도 모른다.
전생에는 그 말을 온전히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를 죽이려고 하지? 그때 루크 씨를 죽인 것에 대한 원한인가?”
“…….”
린은 그런 말을 한 세한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루크를 죽인 세한을 린이 원망하여 죽이려고 한다는 걸.
확실히 그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였다.
분명 원망도 있었다.
“……조금은 그럴지 몰라요.”
처음으로 린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당신은 너무 가혹해요.”
“가혹하다?”
푸르게 타오르는 눈동자에는 확연한 결의가 담겨있었다.
“스스로에게도, 주변에게도.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
“우습군.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본 네가 할 말인가?”
“알아요. 제가 우습다는 거. 하지만 당신이라면, 아저씨라면 분명 더 나은 방법을 찾았어요. 하지만 아집에 사로잡혀 하나밖에 보지 못했어요.”
그건 천상환과 비슷한 말이기도 했다.
이상적인 말.
하지만 린은 달랐다.
이상적인 상황을 바라는 게 아니라, 세한이라면 분명 그걸 찾을 수 있었으리라 고했다.
그건 그녀의 초월적인 감이 말하는 진실이었다.
“이번 일은 전조에 불과해요. 분명 아저씨는 계속 살아남겠죠. 하지만 분명 후회할 거예요.”
린은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방금 전까지 흔들렸던 모습은 완벽히 사라져 있었다.
“그러니 루크 테일러의 딸로서 반드시 막겠습니다. 아버지도 분명 그러기를 바랄 테니까요.”
이거다.
세한은 린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술렁이는 걸 느꼈다.
지금 린이 한 말은 1회차 린 테일러의 유언이기도 했다.
죽어가는 린이 말하던 마지막 말.
그것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기에 이런 상황을 유도했음에도 가슴의 쓰라림을 느꼈다.
그녀는 분명 세한을 원망했지만, 미안한 마음도 지니고 있었다.
세한은 루크를 좋아했다. 그런 그가 루크를 죽였다.
그것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랐을지 린은 알지 못했다.
폭주한 아버지를 막아야 하는 건 딸인 자신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린은 하지 못했고, 그것을 세한이 대신했다.
아버지 역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세한에게 사과했었다.
미안하다고.
그러니 린은 지금까지 계속 기다렸다.
이 순간만을.
“여신이여.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여.”
대리자가 된 세한을 린은 이기지 못한다.
아니, 상대도 되지 않는다.
그런 그와 동등하게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간단하다.
같은 대리인이 되면 된다.
플레이어서의 경험도.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도.
모든 게 뒤처지지만 린은 자신이 느낀 스스로의 재능.
그 작은 조각을 믿었다.
“감히 제가 당신에게 대리자가 되길 청합니다.”
보통 대리자가 되는 경우는 신이 선택할 때뿐이다.
그조차 하나의 게임에서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일이다.
심지어 아스트라이아는 이미 루크를 한 번 대리인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루크는 알데바란과의 싸움에서 죽었고, 대리인이 죽은 아스트라이아는 큰 타격을 받아 잠적했다.
대리자를 삼을 수 있는 건 동시에 하나뿐.
아바타의 경우엔 동시에 두세 명도 가능하지만 대리인은 하나뿐이다.
루크가 죽은 지금, 아스트라이아는 대리자를 다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대리자를 잃었던 그녀가 한번 더 대리자를 만들지는 미지수였다.
보통의 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짓이었으니까.
그러나 린은 그녀의 여신을 믿었다.
계속 자신을 지켜봐 주었기를.
아버지에게 그랬듯, 그녀의 정의를 자신에게 내어 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런 린의 생각은 정확했다.
***
신들의 커뮤니티.
그곳에는 시스템을 통해 여럿의 별을 게임으로 만들어 즐기는 존재들이 있었다.
무릇 게임이 그렇듯 흥하는 게임이 있으면 망하는 게임도 있다.
한번 관심이 멀어진 게임은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접근하지 않으며 새로운 게임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말이다.
“심심해라.”
한 여성이 허공을 두드리며 하품을 했다.
허공에 나타난 여럿의 웹사이트들을 둘러봤지만 마땅히 끌리는 게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플레이했던 것도 1년 전이다.
그녀가 있는 북유럽의 신계는 특별히 할 것도 없어서 매일매일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좋아하던 장난도 별로 땡기지가 않았다.
그야 라그나로크 이후 자숙한 지가 수천 년이 되니 그럴 만도 했다.
‘남신으로 변해서 여신들이나 꼬시러 다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그녀는 문득 신들의 웹사이트, 그중 동영상을 올려두는 사이트에서 한창 핫한 영상을 발견했다.
“이건…….”
동영상을 게시한 건 어떤 신이다.
익숙한 닉네임은 아니었다.
아마 웹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신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 신이 올린 영상은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신의 대리인이 두 명?!”
보통 하나의 게임에서 보기도 힘든 존재가 둘.
게임에 신생(神生)을 판 존재가 둘이나 존재할 줄이야!
평상시의 그녀라면 그런 둘을 보고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스트라이아와…… 이건.”
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신.
외우주의 신격이다.
이런 존재의 아바타와 아스트라이아의 아바타가 싸우는 건가?
심지어 배경도 익숙했다.
고작 1년 전에 플레이했던 게임이니 그녀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인간에겐 길다면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나 신인 그녀에게 1년은 찰나나 마찬가지다.
방금 전에 게임을 끄고 한숨 자다 온 정도다.
물론, 이 영상을 못 봤다면 1년이 아니라 영원이 되었겠지만.
‘격으로 치면 개미와 코끼리의 싸움.’
아스트라이아는 황도 12궁에 속해 있는 여신이다.
그렇지만 딱히 인지도가 있지는 않다.
그녀가 가진 무기도 같은 황도 12궁에 속해 있지만, 무기로서는 대단할지 몰라도 신으로서 별자리는 대단한 격을 나타내지 못한다.
도리어 별자리에 속한 신은 격이 낮은 경우가 부지기수.
실제로 아스트라이아는 중위 신격에 불과했다.
지금 이 영상을 보고 있는 그녀보다도 아득히 낮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의 아바타가 싸우는 건 외우주의 신.
꿈의 마녀 이드라.
아우터 갓이라 불리는 최상위 신격.
정확히는 최상위 신격이라기도 뭣하다.
그 단위는 이쪽 우주에만 통용되는 단위니까.
아무튼 아스트라이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격을 지닌 존재인 건 분명했다.
그러니 아바타로서도 상대가 되지 않을 터인데…….
“대단하네.”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스스로 놀랐다.
인간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쓴 게 대체 언제였을까.
신들은 본디 영웅을 좋아했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불합리한 강자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맞서는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건.
심지어 그 약자가 누구보다도 고결한 영웅이라면.
눈부시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원석이라면.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볼 수 없었던 영웅의 심장을 지닌 자.
물론 영웅이 빛날 수 있는 건 적이 강대하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이아의 아바타가 선전하고 있었지만 분명 적이 더 강했다.
그건 단순히 강한 신의 아바타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강신’ 스킬을 사용하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부터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아스트라이아의 아바타는 눈부시게 빛나는 재능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솔직히 빛나는 재능을 지니진 못했다.
강신 스킬을 사용해 뻥튀기된 능력치가 저 정도라면 본래의 능력치도 그렇게 높지는 않다는 이야기겠지. 그렇다면 지닌 재능도 썩 대단치는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신의 대리인으로서 싸우고 있다면, 그는 대체 얼마나 강한 정신력을 지닌 건가.
조금 소름이 돋았다. 저런 ‘격’을 유지하며 인격을 유지하는 게 인간으로서 가능한가?
‘솔직히 신격만 얻으면 바로 신이 될 수 있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거기다 그의 공격은 강자의 품격이 있었다.
정말 아리송한 존재다.
재능은 부족하지만 신의 격을 견디며.
능력치 이상의 싸움법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다.
어디로 봐도 이레귤러다.
아니, 생각해 보면 애초에 저 둘이 모두 이레귤러다.
최근에 오픈한 어떤 게임에서도 볼 수 없는 존재들.
“으음.”
문득 자신의 아바타가 잘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1년 전 그녀는 이상한 산골에 처박혀 있었었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퀘스트를 진행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포기했던 게 떠올랐다.
“어라?”
그런데 두 명의 대리자의 싸움이 나오는 영상에서 익숙한 존재가 보였다.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경천동지할 싸움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신의 아바타도 있었다.
산골이 아니라 왜 저기에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다.
“……한번 접속해 볼까?”
공교롭게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한 신은 그녀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