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076. 아가트람(2)
아직 동트기 전 새벽.
어둠 속에서 나는 조용히 움직였다.
목적지는 당연히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격리구역이다.
우리가 있는 플레이어 격리구역에서 대략 10킬로미터가 떨어진 장소에 마련된 구역.
퀘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인조 도시다.
시스템의 영향을 받기에 얼마가 파괴되든 금방 복구되는 스테이지이며, 일반적인 구조는 보통의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식수나 음식은 도시 중앙에서 배급받는 식이다.
“컥!”
격리구역 근처를 순찰하던 플레이어 한 명을 기절시킨 후, 나는 능숙하게 안으로 진입했다.
이미 몇 번이나 해봤던 거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탐사 스킬이 있으면 더 편했을 텐데.’
안타깝지만 전생의 나는 탐사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나는 하수도를 통해 움직였다.
맨홀의 뚜껑을 살며시 열어 위치를 파악하며, 최대한 조용히 움직였다.
‘이제 민간인이 있는 구역만 하면 끝인가?’
조금 떨어진 장소에는 플레이어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있었다.
모두 이 퀘스트 하나를 위해 만들어진 스테이지다.
‘좋아.’
나는 준비한 물건들을 도시 곳곳에 부착시켰다.
가끔 마주치는 플레이어들은 최대한 조용히 처리했고, 되도록 아가트람 길드의 길드원과는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만약 아가트람 소속의 간부가 벌써 움직이게 되면 준비가 다 끝나기도 전에 전투가 벌어질 테니까.
“후우.”
지난 이틀 동안 나는 도시를 드나들며 마지막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막무가내로 쳐들어가 봐야 이길 수 없었으니까.
그 때문인지 슬슬 격리구역 근방의 경계도 삼엄해졌다.
침입자가 있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이제 어떡할 생각이냐?”
빛이 비치지 않는 골목에서 한숨 돌리고 있으니 이드라가 말을 걸어왔다.
언제 나타났는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뭘 어떡해. 싸우는 거지.”
“혼자서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나는 그대가 이렇게 무모한 성격인 줄을 몰랐구나.”
“확실히 전에는 하지 않았을 방법이지.”
최대한 몸을 숨기고 확실히 이길 수 있을 때만 움직였다.
혼자서 모든 플레이어와 싸울 생각 따위는 조금도 한 적 없었다.
“왜 생각이 달라진 것이냐.”
“달라지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는 걸 알았을 뿐이야.”
신중한 건 좋다.
다만 지나치게 신중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약자였기에 약자로서의 싸움법밖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난 약자가 아니었다.
분명 재능도 대단치 않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인류 최후의 플레이어였다.
한마디로, 나도 충분히 대단하다는 거다.
“뭣보다 너를 상정하지 않았지.”
“호오?”
“알다시피 나는 신의 힘을 빌리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자신의 힘이 아닌 걸 사용하는 건 스스로의 목을 죄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다르다는 건가?”
“아니, 실제로 목을 죄는 거지.”
픽 웃으며 하는 내 말에 이드라가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대체 뭐가 다르냐는 시선을 보냈다.
“목을 죄더라도 죽지만 않으면 상관없잖아?”
초상의 존재가 되기 위해선 누군가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악마의 계약자나 혹은 신의 아바타나.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초상의 존재보다 약한 건 아니다.
한계까지 목을 죈다면, 어떻게든 도달할 수는 있다.
초상의 존재는 되지 못해도 그에 버금가는 힘을 지닐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바로 신의 대리인.
전생의 나는 그걸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이드라가 원했기에 마음먹는다면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냐면 이드라라는 존재는 워낙 미심쩍기도 하고 이어 나타날 존재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드라를 통해 외우주의 신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 사실을 알려준 것도 이드라 본인이었다.
그러니 녀석은 내가 거부하자 순순히 물러났었지.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어.’
왜냐면 이건 어디까지나 몽상에 불과한 세계이니까.
“이드라.”
“음. 뭐냐.”
멀뚱멀뚱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계속 생각했던 걸 말했다.
“너 영상 편집할 줄 아냐?”
***
지속적으로 경계를 서던 플레이어들이 피해를 입으니 아가트람을 비롯한 플레이어들도 여러 가지 대비를 했다.
하지만 상대는 무슨 짓을 할지 안다는 것처럼 그곳만을 피해 요리조리 돌아다녔다.
“확인된 수는?”
“모르겠습니다. 이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인 걸 보면 수가 많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
천상환은 건물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현재 하늘에서 내려다봐서는 특별히 이상한 플레이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천상환의 신은 최상위 신중에서도 최고위에 위치한 신이었고, 그건 아바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인식할 수 없는 범위까지 천상환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건 이미 도시를 벗어났거나 그 이상으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스킬을 지녔다는 거다.
“짜증 나네. 그냥 우리도 공격하지?”
“그사이에 습격한 누군가가 뭔가를 해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눈에 안 띈다는 건 분명 소수라는 거야. 적은 수로 해봤자 얼마나 큰일을 벌이겠어? 그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게 나아.”
검은 머리칼의 여성이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수린, 아가트람의 간부 중 하나였다.
“상대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참아.”
“민수호. 너 평소에는 되게 시원한 성격인 것처럼 말하더니 왜 이렇게 답답해? 쫄았어?”
“그냥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
덤덤하게 말하는 민수호의 말에 이수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느낌이 안 좋기는 개뿔. 벌써 이틀째야! 이대로 내버려두면 휘둘리는 건 우리지. 이쪽이 아무것도 안 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
“됐어. 나 혼자서라도 할 거다.”
막무가내로 가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민수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 뭐라도 하는 게 날지도 모른다.
어차피 스테이지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으니 잠입한 사람이 있다면 금방 발각될 테니까.
평범한 인간이면 몰라도 각종 스킬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의 눈을 피하는 건 무리였다.
‘소심한 놈들!’
이수린은 아가트람의 미적미적한 대처에 짜증이 치밀었다.
이렇게 침입자를 찾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해야 됐다.
그렇다면 이런 퀘스트 따위 진작 끝났을 텐데.
“이렇게 몰래 숨어들어온 걸 보면 분명 잔챙이겠지.”
이수린은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었다.
언제나 정면대결을 고집했고, 이런 식으로 몰래 숨어드는 방식을 가장 싫어했다.
그건 그녀의 신의 성향과는 달랐지만 그런 이수린을 신은 좋아했다.
왜냐면 이수린의 신이 좋아하던 영웅이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응?’
문득 이수린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착각인가?’
분명 알 수 없는 위험이 느껴졌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이수린은 골목 쪽에서 뭔가 서늘한 느낌을 느꼈다.
“뭔가 있나 보네.”
아마 침입자일 확률이 높았다.
이수린은 감이 좋았고, 그 감을 깊이 신뢰했다.
저벅, 저벅.
골목의 안은 어두웠다.
특별히 인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이수린은 방심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 스킬을 수없이 많았으니까.
“저건…….”
어두운 골목 안에서 깜박이는 불빛이 보였다.
바닥에 장착된 원통형의 무언가.
자세히 보면 최상급 마정석이 붙어 있는 이상한 장치였다.
어디로 봐도 골목에 있을 물건은 아니다.
“뭐야 이게.”
최상급 마석 아래에는 유리관 같은 형태에 수상한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액체의 안에는 둥근 구슬이 둥둥 떠 있었다.
스테이지 기믹이라기엔 여태 이런 걸 본 적이 없었다.
폭탄인가?
최상급 마석을 사용한다면 상당한 마법효과가 담긴 물건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 일대를 한 번에 날려 버릴 정도의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함정도 최상급 마석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역시 난 감이 좋아.”
이수린은 씩 웃었다.
어떤 마법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발견된 이상 끝이었다.
그녀의 신은 강력한 신이며 대단한 마법사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 신의 아바타인 그녀는 강력한 마법사였다.
“디스펠.”
강력한 마법해주 주문. 이걸 사용하면 마법효과가 적용된 아이템이나 장비는 단번에 모든 효과를 잃고 평범한 잡동사니로 전락한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최상급 마석에서 흐르는 마력은 무언가를 발동시키기 위한 대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것이 작동하지 않도록 마력장으로 막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정지시키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했다.
막고 있던 것이 해방된다는 뜻이다.
콰아아아앙!!
림프의 불이 꺼지는 동시에, 골목은 폭발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폭발은 도시 전역에 동시 다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뭐, 뭐야!”
“갑자기 이상한 연기가…… 켁! 케엑!”
도시 전체가 뿌연 연기로 휩싸였다.
그것을 들이마신 민간인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플레이어들은 급히 입과 코를 막거나 해독 마법을 발동시켰다.
“연기를 마시지 마라! 마시면 죽는다!”
한 플레이어가 쓰러진 민간인을 확인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연기를 마시고 쓰러진 민간인들은 숨이 멎어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금방 대처할 수 있었지만 민간인들은 아니었다.
이 폭발로 절반에 가까운 민간인들이 한 번에 쓰러졌다.
“콜록, 콜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폭발에 휩쓸린 이수린은 작은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폭발은 반사적으로 막았지만 연기는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버틸 만해.’
어떤 독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게 분명했다.
이수린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골목에는 아직도 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가장 먼저 발견할 줄 알았다.”
그때, 연기 속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렸다.
말의 내용으로 들어볼 때 저자가 이 폭탄을 장치한 당사자인 모양이다.
“그래, 가장 먼저 발견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이렇게 무사한데.”
“너는 무사할지 몰라도 민간인들은 아니지.”
“……뭐?”
“네가 방금 마법을 해지한 덕에 도시 전체에 이 연기가 휩싸여 있을 거다. 내 생각보다 위력이 죽이는 걸. 난 이 절반 정도로 예상했는데 말이야.”
태연한 남자의 말에 이수린은 머리가 멍해졌다.
도시 전체가 이 연기로 뒤덮였다면 민간인의 피해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에게도 이정도 피해를 주는 게 민간인이 들이마신다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이 악마 같은 새끼가!”
“아, 뭔가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걸.”
남자는 살기를 뿜어내는 이수린을 보며 웃었다.
“미안하지만 넌 여기서 끝나줘야겠어. 생각보다 너는 거슬리는 존재거든.”
“뭐라고?”
“모리안이 너에게 답을 알려주기 전에 죽여주지.”
“……!”
자신의 신을 알고 있었다.
이수린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여덟 겹이 마법진이 펼쳐졌다.
마법진에 새겨진 룬 문자가 번쩍이는 순간, 이수린의 입에서 피가 치솟았다.
“너……!”
“환상이다.”
남자는 말했다.
“처음부터 나는 네 뒤에 있었어.”
몸이 멀쩡했다면 진작 눈치챘겠지만 폭발에 휩쓸리고 남자의 말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이수린의 정면에 보이던 남자는 그저 환상에 불과했고 진짜는 진작 이수린의 뒤에 서 있었다.
“윽!”
가슴에 박힌 단검을 뽑아내자 이수린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이 서린 눈동자가 남자를 향했지만 이내 흐려졌다.
“이것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네.”
그렇게 말한 남자, 세한은 허공에 손을 뻗어 엘릭서를 꺼낸 후, 손가락에 찍어 이수린의 상처에 꼼꼼히 발랐다.
그러자 피가 흐르던 이수린의 상처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사망한 게 분명한 이수린의 상처가 치유된 것이다.
“역시 지원가부터 처리하는 게 중요하지.”
이수린은 대단한 마법사다.
거기다 그녀의 신은 모리안인 탓에 계략에도 능통했다.
그러니 변수가 될 확률이 높았기에 가장 먼저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장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이수린 정도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이걸 발견하게 되는 건 그녀가 될 것이라 예상했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만약 이수린이 오지 않았다면 손수 폭발시킨 후, 이수린을 따로 암습할 생각이었다.
그건 훨씬 귀찮고 고된 일이 되었으리라.
‘그럼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이수린을 쓰러트렸으니 반응이 올 때가 됐다.
이 근방에 있던 녀석들은 이미 파악해 둔 상태라 거리낄 것도 없었다.
“김세한──!!”
“찾았다, 이 새끼!”
‘왔군.’
거친 노호성이 들리는 동시에 나는 몸을 위로 날렸다.
괜히 이곳을 싸움터로 만들어 이수린의 시체(?)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쫓아오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질풍과 불.
저 둘과 싸우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무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