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75화 (75/332)

# 75

075. 아가트람(1)

“지금 제가 들은 말이 사실입니까?”

격리구역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던 나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박성혁이었다.

2회차에서 만났던 박성혁과는 달리 얼굴이 상당히 야위어 있었다.

이렇게 만나니 조금 반갑기도 했지만, 착잡하기도 했다.

한때 서울을 호령하던 3대 길드 중 하나인 제네시스의 몰락한 모습이었으니까.

그래도 제네시스는 나은 편이다.

나름의 세력은 유지하고 있었고 여전히 거대 길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웃라이징과 피안화의 경우엔 공중분해 되었다.

아웃라이징은 독불장군 기질이 강한 길드장 강태성에게 반기를 든 길드원들로 인해 반으로 갈라졌고, 피안화는 길드장인 이아영이 죽은 후 해체되었다.

모든 길드원이 이아영 한 명을 위해 모인 거니 당연한 일이다.

“영광이군요. 제네시스의 길드장이 직접 저를 만나러 오다니.”

“……이미 한물간 길드일 뿐이죠.”

씁쓸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이전의 침착함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초조하고 좋지 않은 안색은 과거의 박성혁과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 방금 제가 들은 게 사실입니까?”

“방금 들은 거라니요?”

“김태훈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그렇게 퍼졌나?

내가 격리구역으로 돌아온 지는 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박성혁의 귀에 들어갔을 줄이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보니? 김태훈을 어쩌다보니 죽일 수 있는 겁니까?”

“대충 비슷하죠.”

사실대로 말하면 개고생하면서 준비한 물건을 상대가 방심한 틈에 찔러 넣어 이긴 거지만 이런 건 좀 과장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도 나를 과장되게 생각할 테니까.

현재 내 발언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역시 거대 길드의 길드장들에 비해선 약했다.

이쪽 세력에선 내가 가장 강한 플레이어 중 하나인 건 분명했지만 아무래도 이전에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전적이 없어 무시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번 일로 이름을 좀 알린다면 좀 더 강하게 나설 수 있게 되겠지.

‘다른 것보단 미스틸테인을 준비하는 게 가장 어려웠지.’

미스틸테인은 발두르의 대표적인 약점이다.

슈퍼맨으로 치면 크립토나이트 같은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우살이 나뭇가지에 불과하지만 워낙 대단한 업적 덕에 습득 난이도가 거진 S급에 이르는 아이템이다.

보통은 김태훈의 약점을 알아도 구하지 못할 물건.

왜냐면 미스틸테인은 전승상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의 시발점이 된 나뭇가지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작 나뭇가지에 불과함에도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이다.

내가 구한 건 고작 미스틸테인의 가장 얇은 가지 중에 하나.

그것만으로도 김태훈의 스킬을 뚫고 상처를 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그것만으로 힘이 다해 사라져 버렸지.

고작 그 정도의 가지를 구하는 게 당시 내 한계였으니까.

덕분에 전생의 나는 미스틸테인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하나를 더 구하기엔 시간이 촉박했고, 실수해서 날리기라도 하면 김태훈을 죽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을 확실히 보낼 수 있는 순간까지 아끼고 아껴 최후에 기습으로 녀석을 쓰러트리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그때는 우리 쪽도 큰 피해를 입은 후라 상처뿐인 승리였었지.

“당신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예, 저도 몰랐죠. 제가 생각보다 강하더군요.”

“그, 그렇습니까?”

“예. 적어도…….”

나는 천천히 박성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시선을 받은 박성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가트람의 간부 전부를 홀로 상대할 정도는 되는 것 같군요.”

“…….”

예전이라면 헛소리라고 치부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죽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김태훈이다.

사실상 아가트람에서 길드장을 제외하면 넘버 2나 마찬가지인 녀석을 내가 죽였다.

그것도 순식간에.

목격자도 한둘이 아니니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거다.

그러니 박성혁으로선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정말 가능한 겁니까? 아가트람을 홀로 상대할 수 있다는 그 말. 거짓말은 아니겠지요?”

“알다시피 전 허언을 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예. 지나치게 신중한 플레이어라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의 모습에 나는 슬슬 운을 띄웠다.

“그럼 기왕 오셨으니…… 제가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해도 될까요?”

“예, 한번 들어보도록 하죠.”

그는 내가 무슨 의견을 낼지 살피고 있었다.

이전보다 초조하고 조급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그는 박성혁이었다.

아마 그 역시 신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모양이었지만 영특한 머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저에게 3일의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3일? 시간을 달라는 이야기는 제가 도울 일이 있는 겁니까?”

“아뇨. 없습니다.”

“예?”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씩 웃었다.

“제가 그 3일 안에 이 퀘스트를 끝낼 생각이거든요.”

이후, 박성혁이 할 말을 잃은 건 당연했다.

***

박성혁과 이야기를 끝낸 다음 나는 곧바로 이동했다.

이번에 만날 상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이번 퀘스트 전부터 나와 자주 얽히던 녀석이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놀랐어요. 정~말 놀라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래?”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빈정거리며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김태훈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시체를 나에게 가져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그건 네가 모든 플레이어 중에 가장 뛰어난 치유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칭찬 고맙네요.”

그녀는 새치름하게 눈을 뜨며 작은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지금 우리가 있는 건 격리구역에 마련된 구호소였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근처에 있는 플레이어는 그녀와 나. 그리고 시체가 되어 있는 김태훈뿐이었다.

“그래서 이 시체를 나에게 주고 간 이유를 물어도 되나요?”

“이유야 별거 없지. 살릴 수 있냐고 물을 뿐이다.”

“당신 지금 미쳤어요? 내가 성녀라고 불린다고 죽은 사람도 살릴 줄 아나봐?”

“못 살리나? 성녀 신유화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성녀 성녀 하지 마세요. 괜히 짜증나니까.”

말투가 하나같이 짜증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런 여자가 성녀라고 불린다니 참 우스웠다. 웃긴 점은 저렇게 성녀라는 말에 짜증을 부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꽤 즐기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자칭 신도들을 저 성격에 내버려둘 리가 없지.

“그래, 못 살린다는 말이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이유까지야. 죽었으니까 못 살리죠. 완벽한 사망판정이네요. 제가 가진 어떤 회복 스킬도 먹통인걸 보면 분명해요.”

“확실해?”

“예. 이 괴물을 참 깔끔하게도 죽여 놨네요. 가슴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했대요?”

“죽기 직전에 엘리서를 발랐지.”

“아하, 그랬…….”

그녀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다가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엘릭서를 발랐어요?”

“그래.”

“근데 왜 죽었데?”

“그러게, 왜 죽었을까.”

내가 피식 웃자 신유화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당신 또 뭔가 나한테 실험해 본 거죠?”

“아니.”

“거짓말 마요! 또 당할 거 같아?”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입을 닫고 있자 신유화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엘릭서가 들었다는 건 살아 있었다는 거고. 죽은 건 엘릭서를 바른 이후가 되겠네요. 엘릭서를 발랐으면 상처가 났고 완벽히 회복되어 살아났을 텐데 죽었다? 상황 자체가 모순되잖아요.”

“그렇지.”

“뭐가 그렇지는 그렇지야. 또 저래.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투덜거린 신유화는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대충 당신이 뭔가를 꾸미고 있는 건 알겠어요. 그리고 내게 이 시체 아닌 시체를 맡긴 것도 이대로 두기 위해서죠?”

“너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

“……참 말은 잘해요. 그런데 이런 게 더 늘어나는 건 아니겠죠?”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건 한 번에 처리할 거라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거다.”

“그거 다행이네.”

내 이마에서 손가락을 뗀 신유화는 산뜻하게 웃었다.

“알겠어요. 그럼 이 사람은 제가 맡아둘게요.”

“부탁하지.”

“그럼 말이라도 좀 예의바르게 하면 어때요?”

“본인이 먼저 말을 놓으라고 하지 않았나.”

“설마 이렇게 딱딱하게 말할 줄은 몰랐죠!”

신유화는 나보다 두 살 연하다.

그러니 지수보다는 한 살 연하가 되겠군.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말투를 쓴 탓에 신유화를 만날 때면 어쩐지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었다.

“너도 말을 놔도 상관없다고 했을 텐데.”

“됐어요. 난 이게 편해.”

어차피 반은 존대. 반은 반말이긴 했다.

대화를 끝낸 신유화는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올 때는 미리 말이라도 하고 와요. 그때는 준비라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지. 나도 다음에 볼 때는 선물이라도 가져오겠다.”

“일이나 들고 오지 마세요.”

다음을 기약하는 신유화의 말에 나는 웃는 얼굴로 답해주지 못했다.

이번 퀘스트가 끝나고 다음 퀘스트에서 신유화는 죽는다.

그리고 이미 몽상에 불과한 이 퀘스트의 미래는 없었다.

내가 던전에서 빠져나오면 모든 게 끝날 뿐이다.

‘그래도 전에는 이렇게 인사조차 못했구나.’

민수호와 싸우고 다쳤던 나를 신유화가 한참동안 돌봐줬었지.

그리고 회복한 뒤 헤어진 이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그게 전생의 나와 신유화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선물이라…….”

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며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하늘은 어둡게 변해 하얀 달이 떠 있었다.

어쩐지 술이 고픈 밤이었다.

***

김태훈이 죽었다는 사실에 사기가 올라간 플레이어 진영과 달리 아가트람 지극히 심각했다.

다른 플레이어도 아닌 김태훈이 죽었다는 건 그들로서도 크나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급히 소집된 아가트람의 길드원들은 저마다 말없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강준식이었다.

“……그 새끼가 그렇게 강했나?”

언제나 김태훈과 다투긴 했지만 그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악우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비교적 고요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감정제어를 놓치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 것 같았다.

“아마 태훈이의 약점을 알고 있던 거겠지. 아마 미스틸테인을 사용했을 확률이 높다.”

“하, 설마 그런 걸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듣기로는 어떤 플레이어와 싸우더라도 상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둔다고 하더군.”

“변태 같은 놈이네.”

혀를 끌끌 찬 강준식은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김세한이 일으킨 이번 사태에도 그저 고요히 사태를 관망할 뿐이었다.

“막내야. 넌 놀랍지도 않냐?”

“네. 그 사람은 저희 아버지도 죽인 사람이니까요.”

“루크 테일러 말이지. 하긴, 그걸로 유명해진 놈이긴 했지.”

서울 대붕괴라 불리던 사건.

황도 12궁 금우궁의 지배자 알데바란이 지상에 강림했던 날.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던 찰나에 알데바란을 쓰러트린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루크 테일러였다.

그리고 루크 테일러는 알데바란을 쓰러트린 직후 김세한에게 죽게 된다.

당시의 목격자의 말로는 루크 테일러가 폭주하기 시작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하던가.

아무튼 알데바란을 꺾은 루크를 죽인 김세한은 그 덕에 유명세를 한동안 탔었다.

이후 당사자가 잠적해 버린 탓에 금방 사그라지긴 했지만.

“여신님은 이후 저를 계약자로 삼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인지 더 이상 말을 걸어주시지 않았어요. 계속 지켜보시긴 한 것 같지만요.”

린은 그렇게 말하며 한 남자를 허공에 그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세한을.

“그 사람은 반드시 제가 죽일 거예요.”

“뭐, 너는 제법 재능이 있으니 언젠가 가능하긴 하겠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걸 기다려 줄 수 없겠구나.”

강준식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린 테일러가 제법 괜찮은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라는 건 알았다.

빈자리가 생기자마자 길드장이 억지로 밀어붙여 간부자리에 앉힌 아이니 그 정도는 당연했다.

확실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준식도 납득하고 있었고, 언젠가 성장해서 김세한을 죽인다고 말한 것도 응원해 줬다.

김태훈이 죽기 전까지는.

“왜냐면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김태훈을 죽인 그놈을 살려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건 아가트람의 모든 간부의 생각이기도 했다.

아가트람의 길드장, 천상환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 혼자 움직이는 건 삼간다. 앞으로 이틀 후에 준비가 끝나는 대로 복수를 하도록 하지.”

천상환의 말에 강준식은 혀를 찼고, 다른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트람의 모든 시선이 김세한 한 명을 향해 쏠렸다.

그야 당연하다. 아가트람의 간부를 상대할 플레이어가 마땅히 없다고 생각해서 여유를 부렸던 건데 김태훈이 순식간에 당해 버렸으니까.

“…….”

길드원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린은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저 고요하게 앉아 새파란 눈동자를 어둡게 가라앉혔다.

더욱, 짙은 어둠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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