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73화 (73/332)

# 73

073. 양자택일(1)

10만 명이 격리되어 있는 격리구역 근처.

두 명의 플레이어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해졌네. 한동안 계속 쳐들어오더니만.”

“그래서 더 불안해.”

플레이어들은 한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한 남자.

이전에는 크게 부각되는 점이 없던 자였지만 이번 퀘스트로 이슈가 되는 플레이어였다.

“대체 그런 사람이 어디서 튀어나왔대.”

“왜 그 있잖아. 서울 대붕괴 때도 모습을 비췄다고 하더라.”

서울 대붕괴.

전갈들에 의해 3분의 1 이상이 날아간 서울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던 사건.

그때 한 플레이어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막지 않았다면 피해는 서울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황도 12궁이 또 나오면 어쩌지.”

“나오면 다 죽는 거지 뭘.”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한쪽 세력은 다 죽는 거지? 천 명의 플레이어나 10만 명의 민간인들도.”

“그래, 그 세력에 선택한 플레이어도 모두 죽는다.”

이제 정말 신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남아 있는 아바타 중에서도 신과 연락이 되는 플레이어는 극히 적었다.

“이아영이 살아 있었다면 빠르게 퀘스트가 끝났을 텐데.”

“이미 죽은 사람을 말해서 뭐해? 확실히 살아 있었다면 판을 이끌었을 여자이긴 하지.”

한때 서울 3대 길드라고 불리던 피안화의 길드장.

이아영이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대치 상황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이성(異性)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스킬을 지닌 만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으리라.

“그 여자 성격상 민간인이 아니라 1000명의 플레이어 측에 붙었을 걸? 죽어서 다행이지.”

“그러게 말이야.”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불안감을 나누기 위해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 대부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퀘스트가 앞으로 이 게임의 운명을 가를 분기점이라는 걸.

***

격리구역 근처의 건물.

상당히 넓은 방 안에 주요 플레이어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민수호는 최근 있었던 교전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세한에 대한 고민이 계속 머릿속에 떠돌았다.

어쩐지 순순히 물러섰던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때 그렇게 물러섰던 것도 이상한데, 그 후로 잠적을 해버리다니.’

그 전날까지만 해도 온갖 방법으로 공격을 해오던 그답지 않은 행동이다.

하루하루가 촉박한 와중에 잠적을 해버린 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온건파라고 할 수 있는 이쪽도 슬슬 본격적으로 공세를 나서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는 판에.

“민수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아, 미안.”

“지금 회의 중이다. 딴생각은 나중에 하도록 해라.”

민수호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플레이어는 사나운 인상을 지닌 플레이어였다.

갈색으로 탈색한 머리에 귀에는 두 개의 피어싱이 달려 있어서 불량한 인상이 강했다.

청년의 이름은 김태훈.

겉으로 보이는 인상은 사납지만 그는 결코 그런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 민수호보다도 고결한 자였다.

악마를 따르는 자라면 어떤 이도 살려두지 않았던 자신과 달리 그는 웬만해선 사람을 죽이는 법이 없었다.

사람의 선함을 믿었고, 그렇게 행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신은 아직도 그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다들 침울하구나.’

현재 회의실에는 총 열두 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민수호가 속한 길드 일곱 명과, 다른 대표 플레이어 다섯으로 구성된 멤버였다.

한 길드가 너무 지나치게 많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민수호가 속한 길드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강한 길드로 꼽히고 있었으니까.

길드장은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이며, 나머지 여섯도 하나하나가 현재 전 세계에 살아남은 그 어떤 플레이어들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길드의 이름은 아가트람(Agateram).

길드장 천상환을 선택한 신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그중 회의에 참가한 일곱은 아가트람의 최상위에 위치한 간부들이었다.

“이제 퀘스트는 일주일 정도가 남았지. 역시 이제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상석에 앉아 있던 플레이어, 아가트람의 길드장 천상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한 인상의 사내지만, 그 말에는 확연한 위압감이 담겨 있었다.

“그냥 당신이 대충 정리하면 되는 거 아냐? 스킬 한 방이면 어찌되지 않나?”

“그들을 얕보지 마라, 강준식. 아가트람이 비록 강한 길드인 건 분명하지만 상대편도 강자들이 있어. 섣불리 공격했다간 당할 수도 있다.”

“신중하기는. 기껏해야 이빨 빠진 제네시스 정도 아닌가?”

“성녀 신유화도 있다.”

“10만의 민간인을 버린 자가 무슨 성녀라는 거냐?”

강준식이라 불린 사내는 이죽이며 탁자를 두드렸다.

그의 말처럼 성녀라 불리는 플레이어는 10만 명의 민간인이 아닌 1000명의 플레이어를 선택했다. 선택은 자유라지만 이미지와는 다른 선택을 한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본인만 알겠지.

“아, 그러고 보니 검은 녀석도 있었군.”

“검은 녀석?”

“인상 더러운 놈 말이다. 잡다한 무기를 사용하던 이상한 놈.”

“아아, 김세한을 말하는 거군.”

“그래, 그놈 상당히 성가시지. 아마 그쪽에서는 가장 강한 플레이어중 하나일 거다.”

천상환이 입에 담은 ‘김세한’이라는 이름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여성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제 겨우 10대 후반이 되었을 것 같은 소녀다.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외국인이라 유독 눈에 띄었다.

“우리 막내가 걔를 그렇게 죽이고 싶지 않던가?”

“괜한 말 하지 마라, 강준식.”

천상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더 이상 실언을 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강준식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안하무인인 그라도 천상환을 상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질질 끄는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지.’

진심으로 나선다면 이런 퀘스트 정도는 단번에 정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인간이다.

제네시스? 얘전에야 서울에서 3대 길드 노릇을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 최강은 ‘아가트람’ 바로 자신들이었으니까.

1000명의 플레이어와 그쪽을 선택한 플레이어의 수를 생각하면 족히 3천 명의 플레이어가 죽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7천 명이 조금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타격이다.

‘그래도 상관없어. 아가트람만 무사하다면 한국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강준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그건 아가트람에 속한 길드원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정도의 자신이 그들에게는 있었고,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덜컹!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플레이어가 뛰어 들어왔다.

그는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당황해하는 그를 위해 천상환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게.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가 격리구역 외각을 돌아다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간 조용히 있더니 드디어 준비가 됐다는 건가?”

강준식이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오겠다는 듯 가볍게 몸을 푸는 그의 모습에, 잠자코 있던 김태훈이 입을 열었다.

“내가 가지.”

“새치기 하지 마. 이건 내가 처리하고 올 거니까.”

“네가 가면 상대만이 아니라 우리 쪽에도 피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내가 가도록 하지.”

쿵!

김태훈은 강하게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그런 그의 태도에 강준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어쭈. 한번 해보자는 거냐?”

“해봤자 손해 보는 건 너잖아.”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김태훈은 천천히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공격하려면 얼마든지 공격하라는 모습이다.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모습에 강준식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짜증나는 놈.’

확실히 강준식은 김태훈을 상대로 이길 수 없었다.

애초에 녀석이 지닌 전승스킬이 워낙 사기적인 탓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강준식과 생긴 것과 달리 온건한 김태훈은 자주 말싸움을 하곤 했지만 지는 건 언제나 강준식이었다.

“내가 앓느니 죽지 죽어.”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은 강준식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은 천상환은 김태훈이 나가고 회의실의 문이 완전히 닫히자 회의를 재개했다.

“상대도 우리만큼이나 조급해진 모양이야.”

슬슬 끝낼 때가 왔다.

되도록 모두가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이젠 힘들 것 같았다.

***

민아는 내 부탁을 선선히 들어줬다.

혹여나 무시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민아는 나름 심심했던 모양인지 엘릭서를 비롯해 여러 도구를 만들어 줬다.

과연 탑 티어의 플레이어답게 그것들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틀.

과거의 민아도 뛰어난 플레이어이긴 했지만, 역시 미래의 민아는 급이 달랐다.

다만 예상보다 순순히 도와준 게 조금 의문이었지만, 민아는 그저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그냥 변덕일 뿐이야.’

참으로 이민아다운 대답이었다.

아무리 재료가 전부 준비되어 있다지만 엘릭서를 심심풀이로 제조할 수 있다니.

만약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걸 본다면 제발 도와달라고 사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냥 도와달라고 말할 걸 그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이민아가 도와주면 편하긴 하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미 엘릭서와 ‘그것’을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민아는 큰 도움을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머지는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냐는 건데.’

1회차에는 생각도 하지 않을 방법이다.

왜냐면 터무니없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분명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1회차를 모두 클리어한 김세한이니까.

나는 이 퀘스트를 2회차의 퀘스트들처럼 ‘올바른’ 방향으로 클리어하고 싶었다.

몽상의 던전을 완벽히 클리어하고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얻으려면 분명 그게 답이겠지.

이미 공략을 전부 알고 있는 내가 그대로 과거의 흐름에 몸을 싣는 건 간단하다.

그런 간단한 행위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려 S랭크의 보상이 그리 간단할 리가 없지.

“그나저나…….”

거점으로 돌아오고서부터 느끼긴 했지만 뭔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지금 시기가 퀘스트가 끝나기 일주일 전이던가.

이때 무슨 일이 있었지?

분명 일주일 전이면 본격적으로 대립이 시작될 때다.

그간의 전투는 전초일 뿐,

이제부터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기억났다.’

그날이구나.

우리 쪽이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던 날.

바로 생각나지 않은 건 내가 그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민수호와 싸우며 입은 상태를 치유하기 바빴으니까.

그리고 치유하자마자 바로 연전을 펼쳐 간신히 승리하게 된다.

정면대결로는 이길 수 없기에 대부분 암습으로 죽이긴 했다만.

‘생각해 보면 암습은 내 전문인 것 같군.’

1회차도 그렇고 2회차도 그렇고.

다만 2회차는 좀 더 정면에서 싸운다는 점이 달랐다.

전생에는 워낙 뒤에서만 싸운 탓에 이 시기가 되기 전까지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으니까.

아마 상대 쪽은 물론 우리 쪽의 플레이어들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 될 거다.

이번 퀘스트에서 나를 만나 함께 싸운 이들은 잘 알겠지만, 그것도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송시우 정도겠지.

‘어디보자, 시간이…….’

다행히 시간은 좀 여유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조금이지만.

이 싸움에서 전투를 맡은 건 김태훈.

생긴 것과 다르게 비교적 점잖은 놈이니 바로 살육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때도 세 번 경고를 보내고 돌아가지 않자, 결국 싸움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송시우에게 들렀다가 바로 이동해야겠군.”

전생에는 뼈아픈 패배를 겪은 전투지만 지금의 내게는 호기였다.

아가트람 길드원 중에 간부들은 하나같이 천외천의 실력자.

그들이 둘 이상 있다면 나로선 암습으로도 승산이 없다.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기습을 가해야만 내가 이길 수 있다.

‘물론 전생의 나일 경우지만.’

민수호 같은 경우에는 정면에서 싸웠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었지.

솔직히 내가 그때 녀석을 이긴 것도 운이 좋았다.

‘김태훈이 따로 움직인 지금이라면 녀석을 쓰러트릴 기회다.’

전생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판단.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전생에는 정면에서 이길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길 수 있겠지.

원래 게임이란 게 다 그렇다.

처음 공략할 때는 힘들어도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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