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72화 (72/332)

# 72

072. 추모하는 자(2)

충청남도 천안.

예전부터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죽은 자들의 도시가 된 장소.

민아가 있는 곳은 천안에서도 상당한 외지였다.

촌에 가까운 장소였기에 나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민아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하늘에는 이드라의 옵저버가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최근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지 손수 나를 안내해 주기로 한 것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도심지를 벗어난 촌이었다.

산이 많아서 몬스터도 우글거렸다. 아마 게임이 시작한 초창기에 대부분 죽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었던 뼈만 부서진 도로에서 군데군데 눈에 띈다.

분명 이곳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으리라.

‘차라리 높은 건물이라도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근처에는 아파트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층이 낮은 상가건물. 당연히 몬스터의 습격으로 대부분은 무너져 있다.

아마 최근 몇 년간은 이대로 방치되었던 게 분명했다.

“저긴가?”

옵저버는 저쪽으로 가라는 듯 공중에서 붕붕 흔들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른 건물들보단 확연히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라…….”

저기에 이민아가 있다는 건가?

천안도 상당히 큰 도시가 여럿 존재했다.

주거지역도 존재하니 머문다면 그런 장소가 나았을 텐데.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지.’

이민아는 제멋대로인 성격이긴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다.

오히려 영리한 편이지.

그런 녀석이 이런 곳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다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저벅. 저벅.

“공포 영화에 나오기 딱 좋은 비주얼이군.”

폐교, 라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는 장소가 있을까.

학교의 안으로 들어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참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건물의 외벽은 새빨간 피로 칠해져 있었고, 바닥에는 몇 년간 방치된 시체들이 남아 있었다.

분명 몬스터가 쏟아져 들어올 당시 있었던 학생들이겠지.

백골로 변한 시체 중에서는 교복을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대부분 낡고 헤져 있지만 통일감 있는 복식이라 교복이라는 걸 유추하기 쉬웠다.

“……잠깐만.”

난 교복들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왜냐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거, 민아가 입고 다니던 교복 아냐?”

민아는 언제나 교복을 입는 편이었다.

방어구를 입을 일이 있어도 대부분은 교복 안에 입었고, 최근에는 시우를 통해 교복 자체를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 교복의 외형 그대로 미스릴 실을 짜서 만든다던가.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싶었는데…….

‘단순히 교복이 입기 편해서는 아니었던 건가.’

난 그냥 그렇게 생각했는데.

복도에 보이는 몇몇 시체들이 입고 있는 옷은 분명 민아의 교복과 흡사했다.

아니, 똑같았다.

단지 오래되고 방치된 탓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허공에서 손을 뻗어 숏소드를 손에 쥐었다.

카앙!!

몸을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소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상대는 설마 내가 막을 줄은 몰랐는지 훌쩍 뒤로 물러서며 착지했다.

“설마 막을 줄은 몰랐어.”

“나도 다짜고짜 습격할 줄은 몰랐다.”

“요즘 세상이 좀 흉흉해야지. 습격당하기 전에 먼저 습격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 말을 한 건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대충 머리를 칼로 잘라낸 듯 투박한 머리모양.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비릿한 미소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하는군.”

“오랜만에 만나? 잠깐…… 음~! 그래.”

이민아는 손가락을 이마에 대며 내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한 2년 전쯤에 당신 같은 더러운 인상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네.”

실제로 나는 2년 전쯤에 이민아를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퀘스트 도중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지만 워낙 인상적인 플레이어인지라 오랫동안 기억했었지.

이후에 내가 이민아와 만난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다.

당연히 이번 퀘스트에서 만나지는 못했고, 서울 전체가 파멸에 이른 후 만났었지.

거의 막바지 퀘스트까지 생존했던 걸 보면 이민아도 역시 난사람이긴 하다.

하기야 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만.

“그래서, 무슨 일이야? 설마 나를 찾으러 온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런 이민아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위에는 나의 옵저버가 상황을 즐겁게 관찰하고 있었다.

“놀라워라. 아직도 신과 대화가 가능한 아바타가 있었다니.”

“너도 상당히 신에게 총애를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흐음, 그런 적도 있었지. 한 1년 전부터는 완전히 끊겼지만 말이야.”

어깨를 으쓱한 그녀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무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정말로 그녀의 주위에 보이는 옵저버는 없었다.

어릿광대가 완전히 그녀에게서 관심을 버렸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마지막에 봤을 때도 옵저버를 본 기억이 없긴 하네.’

하지만 그때는 어릿광대만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서 신들이 떠난 상태였다. 오로지 나의 신만이 마지막까지 함께했지.

최종 퀘스트가 끝나기 직전 떠나가긴 했지만.

‘결국 게임이라는 거지.’

게임이 재미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게임을 접는다.

더 이상 접속하지 않게 되며 관심을 끊어버린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신들이 관심을 끄게 되면 더 이상 아바타는 신들의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포인트를 아바타에게 투자했어도 마음이 떠나 버리면 신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재미가 없는 게임을 굳이 즐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세계를 게임으로 취급하지 않는 건 단 두 명의 신뿐이었다.

나의 신, 이드라와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

악마들도 이 세계를 게임으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존중하는 것도 아니다.

녀석들은 세계를 하나의 양식장 정도로 생각할 뿐이지.

“그래서 볼 일은 뭐야?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거겠지?”

“그래. 하지만 그전에 질문을 하나 하고 싶어.”

“뭔데?”

“왜 그런 새까만 옷을 입고 있는 거지? 그건 네 취향이 아닐 텐데?”

나도 검은 옷을 즐겨 입지만 이민아는 아니다.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마치 상복 같았다.

“내가 그걸 말해줘야 되나?”

“싫으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재미없긴.”

이민아는 깔깔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다.

“따라와. 여기서는 이야기하기 좀 그러니까.”

***

그녀는 꽤나 순순한 태도로 나를 안내했다.

어둡고 황폐한 복도를 지나, 한 교실로.

다 떨어지고 먼지가 쌓인 명패에는 3학년 2반이라는 글귀가 어렴풋이 보였다.

교실의 안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밖과는 완전히 괴리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냉장고도 있고 침대도 있는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었다.

다만 눈에 띄는 건 교실 맨 뒤에 늘어져 있는 사진들이었다.

뭔가 어설프고, 흐릿한 사진도 있었고 몇몇은 이름만 적혀 있었다.

“영정사진이야.”

“저게?”

“응. 내가 반 아이들의 사진을 전부 구할 수는 없었거든.”

그녀는 아련한 눈으로 그것들을 보았다.

“꽤 사이좋은 학급이었던 모양이군.”

“설마. 난 사실 친구도 별로 없었어. 사이가 좋은 애들이었으면 저렇게 이름만 대충 적어서 놔두지 않았지.”

이건 또 의외다.

시원스런 성격인지라 친구도 꽤 많을 줄 알았는데.

“이 세계가 변하면서 나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거지. 나도 원래는 말수도 없고 그런 애였다?”

“상상이 안 되는데.”

“첫 번째 퀘스트를 거치면서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말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이래 뵈도 난 연기를 꽤 잘했거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사실 게임이 발생한 첫날은 아직도 생생해. 그날 친한 친구 두 명이랑 학교를 째고 서울로 놀러갔었는데, 하필 그날 세상이 뒤집혀 버리더라.”

“본래 서울 출신이 아니었나?”

“응. 이 시골동네에서 한번 놀러갔어. 마침 친구 언니가 서울 갈 일이 있어서 도와줬지.”

학교는 대충 개교기념일이라고 둘러대고 말이야.

이민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후에는 알다시피 게임이 시작됐고, 나는 다른 두 친구와 떨어지게 됐어. 한동안 서울에서 머물며 친구들을 찾아다녔지. 처음에는 돈도 없어서 은행도 털고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무의미한 짓이더라.”

민아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친구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게 우리들의 유일한 공통점이어서 차마 다른 옷을 입을 수가 없었어.”

그게 민아가 늘 교복을 입고 있는 이유였나.

확실히 전혀 다른 지역의 교복이니까 서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나 마찬가지였겠지.

‘간혹 혼자서 서울을 돌아다닌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나.’

난 대충 놀러 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레이드 퀘스트 당시 나를 따라서 대전에 오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됐다.

“그래서 친구는 찾았나?”

“응, 찾았지.”

이만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교실의 뒤로 걸어가 두 개의 액자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다른 사진들과 다르게 그 두 개는 제법 선명한 사진이었다.

“근데 너무 늦게 찾았어. 오랫동안 그곳에서 버텼는데, 내가 찾았을 때는 이미…….”

“오랫동안 버텼다니?”

“악마들과 계약했던 모양이야. 근데 이용당할 대로 이용돼서 버려졌어. 그리고 죽어버린 거지.”

복수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민수호가 모두 죽인 후였다고 한다.

“그래서 뭔가 부질없어져서 여기로 돌아와 이렇게 나름의 추모를 하고 있었다는 거지. 부모님은 첫날 연락했을 때 이미 돌아가셔서 갈 곳도 없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이민아는 기운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보던 그 민아의 모습이 아니었다.

설마 명랑한 인상의 민아에게 이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악마와 엮여 있다면…… 흑천회인가? 아니 잠깐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흑천회 내가 다 죽였는데?’

설마 민아의 친구가 계약했다는 악마가 네비로스는 아니겠지?

등 뒤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친구가 흑천회에 소속되어 있었나?”

“아냐. 거긴 네비로스가 관리하던 곳이지? 내 친구는 다른 곳이었어.”

인천이 아니라 서울에 있던 길드라고 덧붙여 말하는 민아의 말에 나는 내심 안도했다.

‘……앞으론 악마의 계약자도 조심해서 처리해야겠네.’

자칫해서 민아의 친구까지 공격하게 된다면 큰일이다.

지수에게도 반드시 주의를 해두도록 하자.

이미 지수가 처리한 악마의 하수인 중에 민아의 친구는 없겠지?

나는 제발 없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아. 내가 심심하긴 했나 보다. 괜히 미주알고주알 떠든 거 같네.”

이민아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그리곤 심호흡을 한 뒤에 재차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질문에 대한 답은 됐지? 이제 내가 물을 순서네.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야?”

“…….”

막상 이렇게 물어오니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여기서 친구를 추모하고 있는 이민아에게 앞으로의 싸움에서 도와달라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그래도 한번 말은 해봐야겠지.

“……원래는 이번 퀘스트를 도와달라고 하려 했었다. 하지만 사정을 보니 그건 힘들 것 같고. 엘릭서의 제조를 부탁하지.”

“이번 퀘스트? 아, 그거 양자택일.”

양자택일은 이번 퀘스트의 이름이다.

이민아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것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나 그거 10만 명의 일반인 선택하려다가 실수해서 1000명의 플레이어를 선택했지 뭐야.”

실수해서 선택한 거였냐.

억세게 운이 좋다면 좋은 녀석이다.

반대를 선택한 이들은 전부 죽었으니까.

“엘릭서라…… 확실히 지금 그거 만들 녀석들이 거의 없겠네. 근데 당신 정도의 실력자가 엘릭서를 찾을 정도면 상대가 엄청 강한가 봐?”

“엄청 강하지.”

물론 지금은 내가 더 강하다.

왜냐면 난 지금이 아닌 더 미래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전투 실력도 더 뛰어났고, 이미 한번 싸워봤기에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해답도 알고 있었다.

“그래, 심심했던 차에 그거라도 해야겠다. 몇 병 정도 만들어 주면 돼?”

“한 병이면 족하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제조를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흐음. 뭐야? 참고로 나 엘릭서보다 어려운 건 못해.”

“알고 있다. 이건 그보단 쉬운 거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동그란 구슬 같은 물건을 꺼냈다.

“이걸 최상급 플레이어에게도 통할 수 있게 만들어 줬으면 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