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71화 (71/332)

# 71

071. 추모하는 자(1)

꿈의 마녀(Dream Witch) 이드라(Yidhra).

크룰루 신화에 등장하는 아우터 갓이자, 그들 중 유일하게 인류에게 진심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신.

간단히 말하자면 이계의 신이며 멋대로 다른 우주의 게임에 참여한 변질자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녀는 그 정도의 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용서받을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계의 신 중에서는 비교적 온순한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시스템이나 퍼블리셔, 그리고 GM도 그녀를 방치했지.

아무튼 나는 그런 신의 아바타였다.

대체 왜 이드라가 나를 아바타로 삼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류가 살아남기를 바랐기에 나를 응원했고.

멸망한 이후에는 결국 떠나 버리고 말았던 나의 신.

“흠흠, 아무튼 그래. 오늘은 조금 이상한 날이로구나.”

이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피했다.

무심코 웃었던 게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건 뭐지?”

“몽상의 던전에 관한 거다.”

“그건 또 예상외의 질문이구나.”

“그냥, 갑자기 생각났거든.”

적당히 둘러대는 내 말에 이드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하기야 갑자기 지금 상황과 전혀 관련이 없는 던전을 입에 담았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녀석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몽상의 던전에 대해 물었는지 물어보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이드라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그대가 꿈꾸는 몽상이라는 건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드라의 말이 내심 정곡에 찔렸기 때문이다.

설마 그 질문만 듣고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과연.”

이드라가 유쾌하게 웃었다.

“몽상의 던전이라…… 그런가. 그래서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이로군.”

“특별히 그런 건 아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루아침에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인성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그렇다. 인간이 그렇듯, 인간의 외형을 한 신도 그러하지.”

마음을 가지고, 감정을 느낀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드라는 그리 이야기했다.

“그대는 갑자기 옛일을 입에 담을 정도로 추억에 매달리지도 않으며, 애초에 몽상의 던전에 가본 적도 없지. 거기에 지금 상황은 몽상의 던전과 하등 관련이 없으니 난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태연히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도리어 내가 황당해졌다.

“너는 자신이 가짜여도 상관없다는 거냐?”

“나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 잠깐.”

이드라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져다대며 요염하게 웃었다.

“그대가 아는 나는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겠군? 그건 제법 유쾌한 일이로구나.”

녀석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지그시 보았다.

“애초에 나는 꿈의 마녀로 불리지. 어떤 환상이나 꿈. 그것의 경계는 나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이곳의 일도 본래의 내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신이라는 존재는 본디 불합리한 법이지.”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회귀한 것도 모르는 거 같았으니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다.

“다만 몇 가지 이상한 점이 느껴지는 게 있다만……. 그건 묻지 않도록 하마.”

몽상의 던전은 현재 이 세계에 없다.

이미 오래전에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몽상의 던전을 이용한 나는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이며, 과거의 내가 어떻게 미래의 일을 이렇게 인지하고 있는지가 이드라에게는 이상한 게 분명했다.

“아무튼 몽상의 던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한다. 조금 걸리는 점이 많거든.”

“걸리는 점이라?”

“너무 완벽해.”

인간의 기억이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는 너무 완벽했다.

난 이렇게 세계 전체를 머릿속에 새겨둘 정도로 섬세한 인간이 아니다.

다른 이들의 체험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막상 이렇게 겪으니 보통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지나치며 만난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해. 근데 그들은 분명히 이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게 그저 무작위로 던전이 만들어낸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이 시대의 인간인지 알고 싶었다. 몽상의 던전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 안다면 지금의 퀘스트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 내 말을 들은 이드라는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의 아바타로구나. 그렇지, 인간의 기억이란 너무나도 불완전하다. 그러니 보통 단순히 인간의 기억만으로는 이런 세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

“그렇다는 건?”

“간단히 말해 인간의 기억을 토대로 그 시대를 검색하지. 그리고 당시의 세계를 그대로 복사한다. 시스템을 거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긴 던전의 보상인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도 미래의 시간을 빌려오는 거다.

몽상의 던전 역시 그런 메커니즘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나는 DLC 패키지로 과거로 회귀한 사람이지 않은가.

예전이라면 그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대의 과거, 혹은 미래의 정확한 형상이라는 거다. 이곳에 존재하는 자는 그때의 인물과 동일한 행동, 그리고 생각을 하게 되지. 물론 진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던전이 복사하여 만든 몽상의 존재일 뿐.”

이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 나조차도.”

그렇게 말하는 녀석은 정말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자신이 복사된 가짜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다니 솔직히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오히려 이런 게 녀석다운 거겠지.

‘전생에 들었던 말을 생각하면 아마 이드라의 말이 맞는 것 같군.’

몽상의 던전에 다녀온 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 던전에서 구현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진실이었고.

그렇다는 건 이드라의 말처럼 시간대를 그대로 복사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 그렇다면 대충 알겠어.”

“호오, 뭐를 말이냐?”

“이 퀘스트를 어떻게 깨야 할지.”

만약 세계를 온전히 복사해 온 것이라면 퀘스트 또한 그대로일 것이다.

바로 시스템도.

몽상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은 본래 내가 받았던 이 거지같은 퀘스트를 깨는 거다.

전생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퀘스트는 아마 깰 수 있겠지.

하지만 의문이 있었다.

몽상의 던전을 다녀온 플레이어들은 보상을 받지 못한 플레이어도 존재했다.

아니, 오히려 받지 못한 플레이어가 많았다.

왜 그런 차이가 있었던 걸까.

나는 계속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이미 알고 있는 답으로는 클리어해서는 안 되는 거겠지.’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후회했던 일이다.

과거의 일을 반복하는 건 몽상의 던전이 바라는 결과가 아닌 게 분명했다.

전생에 내가 하지 못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클리어하는 것.

그리고 나도 내심 궁금했다.

내가 그 아이를 살렸다면.

만약, 그랬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

“사람을 찾고 싶다니요?”

“예, 찾아야 할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내 말이 꽤나 갑작스러웠는지 송시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무슨 헛짓을 하고 있냐는 표정이다.

“누구를 찾으시는 거니까?”

“이민아.”

예상외의 인물이었는지 송시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냐면 지금 이민아는 잠적한 지 꽤나 오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활발하게 세상을 누비던 이민아는 어느 때를 기점으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전투에 그녀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까? 멋대로 행동하는 이민아가 과연 도와줄까요?”

“예, 뭐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한 거죠.”

“만들 수 있는 물건?”

나도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민아는 연금술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잡학다식한 그녀의 신 덕분이겠지.

그녀의 대표적인 스킬은 변신이지만, 이민아의 진가는 그것뿐이 아니다.

다양한 유틸 스킬을 보유하고 있고, 연금술은 물론 마법도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음에도 이름 높은 탑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엘릭서 말입니다. 혹시 송시우 씨가 제조 가능하신가요?”

“아, 그거라면 아무래도 전 힘들 것 같군요.”

대장장이인 그와 연금술은 동떨어진 학문이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민아 씨의 위치를 아는 플레이어는 아마 없을 겁니다. 워낙 신출귀몰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겠죠.”

송시우가 모른다면 다른 플레이어도 모를 거다.

이름 있는 플레이어라면 모두 송시우와 인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든 장비가 최고의 장비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 그가 모른다면 이민아의 소재는 누구도 모른다고 봐야했다.

적어도 플레이어 중에선.

“그렇다면…….”

송시우는 내게 이민아의 소재를 꼭 찾길 바란다며 사라졌다.

아마 나 말고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장비를 만드느라 바쁜 거겠지.

이번 퀘스트를 실패하면 목숨이 위험하니 당연한 이야기다.

‘이민아도 분명 이 퀘스트를 하고 있을 텐데.’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까?

퀘스트를 실패하면 본인도 죽는다는 걸 알 텐데.

애초에 자기 멋대로 사는 녀석이니 생각을 알기 힘들었다.

후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10만의 민간인이 아닌 1000명의 플레이어를 선택했다는 거겠지.

아무튼 지금 문제는 이민아가 어디에 있냐는 건데.

‘……어쩔 수 없나.’

플레이어가 모른다면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신에게 물어보는 것.

채팅방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채팅방에 접속할 수 없었다.

“이드라, 이민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나?”

분명 어디선가 보고 있을 녀석에게 물었지만, 쪽지 창에서 알림은 들리지 않았다.

단지, 내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을 뿐이다.

스르륵.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뭉쳐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금발에 금안을 지닌 여성의 모습으로.

“갑자기 어리광이 많아졌구나, 계약자여.”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얼굴은 썩 유쾌해 보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무시하더니 말이다.”

“어차피 환상일 뿐이니 조금 뻔뻔하게 나가도 될 것 같아서.”

내 말에 이드라는 옅게 웃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알기 힘들었다.

“그보다 쪽지로 알려주면 될 걸 굳이 현계 할 필요가 있나? 당장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상당한 포인트가 드는 걸로 아는데?”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네 말대로 어차피 환상. 지금 있는 포인트를 아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납득이 되었다.

“그래서 이민아의 위치는?”

“그 아이라면 천안에 있다.”

“뭐?”

예상치 못한 지역명이었다.

당연히 서울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애초에 지금 한국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괴멸 상태다.

살아남은 인구는 기껏해야 천만 명 정도이며, 그중 절반이 서울에 있다.

왜냐면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서울이기 때문.

일반인들은 생존을 위해서 서울에 올 수밖에 없는 상태다.

그런데 천안이라고?

‘민아는 서울에서 벗어나기 싫어했던 것 같은데.’

뭔가 과거의 민아와 미래의 민아가 괴리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니면 몽상의 던전에서의 차이인가.

‘머리가 아프군.’

천안에 다녀오는 건 어렵지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 기차는 움직이고 있으니 하루 정도를 소요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상대 세력은 퀘스트 마지막 날까지 먼저 공격하지 않았으니 습격이 있을 확률도 없다.

민수호가 살아 있다는 게 변수지만, 녀석은 아까 보았던 것처럼 함부로 남을 해치는 성격이 아니다.

악마의 계약자를 제외한다면 말이지.

“천안으로 가자.”

“이곳은 내버려둬도 괜찮은 건가?”

“그래. 하지만 혹시 모르니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주의는 해둬야겠지.”

나는 전생에 상대 세력의 주요 플레이어와 모두 싸웠고, 모두 죽였다.

그건 내가 그들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처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일부를 플레이어들에게 전해준다면 만약 쳐들어오더라도 쓰러트리지는 못해도 쫓아낼 수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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