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70화 (70/332)

# 70

070. 몽상(夢想)의 던전(2)

“역시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건가.”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되도록 평화로운 시절의 내가 관련된 일이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내겐 특별한 추억 같은 건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친척집에서 살던 시절.

구박대기 취급을 받으며 살던 김세한.

지금은 머나먼 일이다.

“문제는 지금이 어느 시기냐는 거지.”

손의 모습을 볼 때. 게임이 시작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다.

인류의 멸망이 몇 년 정도 남은 시점인지 궁금했다.

적어도 이런 건물이 있다는 건 아직 서버 종료 수순을 밟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이런 건물에서 지내던 때는 분명…….’

어쩐지 기억에 있었다.

정확히는 건물에서 지낸 것이 아니라 숨어 있을 때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현재 육신이 전생의 나라면, 보유하고 있는 스킬도 분명 같을 터.

콰과과광!!

건물을 꿰뚫으며 무언가가 지나갔다.

귓가에 이명이 울리며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다행히 몸에 피해는 없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구 형태의 방패가 전신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큭!”

방패를 해제한 후, 지상에 착지했지만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때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퀘스트 중 하나.

하지만 지금은 퀘스트를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왜냐면 아직 녀석의 맹공이 계속 되고 있었으니까.

“하─하하하하!!”

경쾌한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하지만 멀다, 라는 말은 곧 가깝다, 라는 말로 바뀌었다.

핑.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것처럼, 대기가 갈라졌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이 단번에 깨어져 나가며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음속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속도.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걸 인식하는 것보다 도달하는 시간이 빨랐다.

그러니 저건 보는 것보다 본능적으로 예측해야 된다.

나는 허공에 공간을 열고 수많은 폭탄을 지상으로 떨어트렸다.

내 주변에 수많은 지뢰가 수없이 깔렸다.

콰과과광!!

“오우!”

일대 전체를 날려버리는 폭발음에 달려들던 녀석이 발을 멈추며 크게 뛰었다.

그리곤 반쯤 기울어진 건물 위에 착지했다.

“……늦은 밤에 무슨 일이지?”

나는 그런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고글을 쓰고 있는 남자.

여신 마하의 아바타이자 모든 플레이어 중 가장 빠른 사나이.

“민수호.”

사실 왜 왔는지 알고 있다.

이미 겪은 일이니까.

녀석은 나를 죽이기 위해 왔다.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지.”

“역시 그러냐.”

역시 내 기억과 같은 전개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상황은 내 기억을 토대로 완벽하게 구성된 것 같았다.

거지같기도 하지.

“당신이 적당히 타협을 했으면 됐어. 아~, 그래. 이해는 해. 일반인보단 플레이어들을 살리는 쪽이 도움이 되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야. 수가 너무 많다고.”

민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짧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어차피 당신도 우리를 야밤에 습격할 생각이었잖아? 몰래 숨어들어 일을 벌일 생각이었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 말이 맞았으니까.

전생의 나는 몰래 적의 구역에 숨어들어 선제공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이런 식으로 민수호에게 방해받았지.

“우습군.”

“뭐야? 뭐가 우스워?”

“아니, 이 상황 자체가.”

하필 선택해도 이 퀘스트를 선택할 줄이야.

몽상의 던전도 참 웃기는 짓을 하는 구나.

이 퀘스트는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 중에 하나다.

퀘스트 내용은 간단.

둘 중 하나의 세력을 선택해서 살리는 것이다.

유망한 플레이어 천 명과. 일반인 10만 명.

각각의 세력은 GM이 관리하는 격리구역에 있으며 나오지 못한다.

격리구역에 갇히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두 개의 세력 중 하나에 참여해, 반대편 격리 구역에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퀘스트 목표다.

심지어 격리구역에 갇혀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세력에 참여한 플레이어까지도 모조리.

참으로 끔찍한 퀘스트다.

보통 이런 퀘스트가 등장하게 되면 게임의 수명도 다되었다고 보면 된다.

서버 종료 수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남은 인류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거다.

하지만 퍼블리셔나 GM의 생각처럼 인류의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왜냐면 생각보다 강한 플레이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나, 그 아이와 같은 플레이어들.

그래서 이런 퀘스트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이때 플레이어를 택했다.’

10만 명의 민간인이 아닌 1000명의 플레이어.

어쩔 수 없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민간인이 아닌 플레이어가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이 녀석들과 싸워야만 했지.’

나는 민수호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나는 상당히 강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왜냐면 녀석은 그 아이가 이끄는 길드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발전하면 인류의 희망이 되었을 길드.

“뭐야? 싸울 생각 없어? 얌전히 돌아간다면 특별히 살려는 주지. 나는 당신처럼 반드시 적을 죽여야 된다는 주의는 아니거든.”

“속 편한 말이군. 내가 얌전히 물러선다고 해도, 퀘스트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관없어. 당신 쪽 세력의 플레이어들이 무슨 짓을 해도 우리가 이길 테니까.”

자신만만한 말이다.

하지만 이해는 됐다. 녀석이 속한 길드는 현재 존재하는 어떤 길드보다도 강했으니까.

“좋다. 그럼 오늘은 물러나지.”

“오, 당신답지 않게 순순하네?”

“오늘은 생각할 게 많아서 말이야.”

나는 양손을 위로 올리고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곤 민간인들이 있는 구역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크게 뛰었다.

민수호는 그런 나를 계속 쫓아왔지만, 완벽히 내가 속한 구역으로 넘어가자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민수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후,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역시 몸은 젊을 때 같지는 않나.”

이때 내 나이가 몇 살이었더라.

아마 딱 서른 정도 됐던 거 같은데.

‘아무튼 이걸로 전생과는 좀 달라지겠어.’

본래 나는 여기서 민수호를 죽였다.

가진 아이템을 상당히 소모한 탓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죽일 수는 있었다.

‘얌전히 물러난 탓에 괜히 더 경계를 사는 건 아닌지 몰라.’

얌전히 물러난 나를,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긴 금발에 냉정하게 빛나는 푸른 눈을 지닌 여성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린 테일러.”

이 퀘스트에서 나는 그 아이를 죽이게 된다.

***

“어떻게 됐습니까?”

천 명의 플레이어가 묶여 있는 장소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익숙한 청년이었다.

“아, 시우 씨.”

“예, 그래서 어떻게 됐죠? 성공하신 겁니까?”

다급하게 묻는 그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방해가 많아 우선 몸을 뺐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시우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에 저당 잡힌 1000명의 플레이어에는 송시우도 속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수많은 장비를 얻게 된 것도 송시우가 무상으로 도움을 주고 있기에 가능한 거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어떻게든 지원을 하려고 하겠지.

특히 이쪽에 속한 플레이어 중에 가장 강한 건 나였다.

이쪽에도 탑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이들은 많았지만, 하필 상대편에 가담한 플레이어가 지나치게 강했다.

정확히는 한 길드가.

그래서 플레이어 숫자는 이쪽이 많음에도 섣불리 몰아붙일 수가 없었다.

‘당신은 내가 1000명의 플레이어를 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

어린 송시우만 보다가 이렇게 청년이 되어버린 송시우를 보니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저 타인처럼 느껴졌다.

‘이때의 채팅방이 어땠을지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던전에서는 채팅방에 접속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상대 플레이어들이 이쪽을 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까?”

“기, 기다려 주세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내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옷깃을 잡았다.

이제 퀘스트 제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나는 적당히 사람들을 외면하며 내가 머무는 방으로 들어갔다.

특별한 장식물 하나 없는 삭막한 방.

나는 거기에 있는 딱딱한 침대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악몽이라면 정말 끔찍하군.”

정말 던전이 선택한 탁월한 선택에 박수가 나올 지경이다.

개 같은 놈.

던전에게 욕해봤자 나만 바보가 될 뿐이다.

나는 손을 들어 상태창을 열었다.

지금의 내 정보가 망막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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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세한

칭호: 없음

특성: 싱글 플레이어

힘: A (77+41)

민첩: S (43+19)

마력: B (55)

체력: A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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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라 상당한 수치다.

하지만 역시 ‘현재’의 나에 비하면 성장 속도가 느렸다.

지금의 나라면 2년 안에 이정도 수치를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대신 스킬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워낙 잡다한 스킬까지 익힌 터라 나는 스킬창은 따로 닫아둬야만 했다.

상태창이 쓸데없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주어진 퀘스트는 어떻지?”

퀘스트를 확인하자, 역시 전생에 내가 받았던 퀘스트와 같았다.

일반인 세력을 모두 죽이는 것.

보기만 해도 한숨만 나오는 퀘스트다.

“거기에…….”

나는 메인 퀘스트 아래에 있는 퀘스트창을 열었다.

이 퀘스트와는 구분되는 것처럼 알림창의 색깔부터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건 ‘현재’의 내가 받은 퀘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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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 몽상의 던전 클리어.

당신의 추억이 형상화되었다.

추억 속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 하도록 하자.

*이 추억 속에서 죽게 되면 현실의 당신도 죽게 됩니다. 주의해 주세요.

난이도 B 제한시간: 추억 속 퀘스트 시간 만료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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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다.

2회차가 시작되고 처음 받아본 서브 퀘스트.

이제 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도 클리어 했으니 서브 퀘스트가 활성화 된 모양이다.

‘이 퀘스트를 한 번 더 깨는 게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냐.’

목구멍에서 당장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걸 또 깨라니!

아직도 머릿속에서 그 일이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한 번 했던 일이니 오히려 쉬우려나.’

이건 현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추억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솔직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일은 내 가장 큰 트라우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뭔가 다른 방법 없나?’

역시 전생처럼 상대편을 몰살시켜만 해야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고민하느냐.”

나긋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 그래. 생각해 보니 이때는 녀석이 이렇게 현신을 하고는 했지.

“무슨 일이지, 마녀.”

서버 종료가 가까워질수록 시스템의 제약은 약해진다.

퍼블리셔와 GM은 행패를 부리고 신들은 점차 세계를 떠나간다.

흔히 말해 게임을 접는 거지.

그런 상황에서 본래라면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신도 있었다.

특히 시스템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 다른 우주의 신.

이계의 존재라면 본신의 힘을 줄이고 현신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등 뒤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하나의 여신이 있었다.

연한 금색의 머리칼에 반짝이는 금안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

검붉은 드레스를 입은 고풍스런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도 딱딱하구나. 그래도 나는 너를 응원한다. 더 많은 인류를 구한다면 확실히 너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겠지.”

거짓말 마라.

너는 분명 알고 있었다.

이 세계가 이렇게 흘러가게 되면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걸.

내 선택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는 걸.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는 것까지도.

그럼에도 나는 녀석을 욕할 수 없었다.

어쨌든 녀석이 인류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니까.

“마녀, 아니. 아니지.”

나는 전생에 녀석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이 녀석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 뿐더러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신은 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차피 현실이 아니기도 하니 한 번쯤은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드라. 한 가지만 묻자.”

“그래, 뭐든 물…….”

그렇게 말하던 이드라의 말이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한 가지만 묻자고 했는데.”

“아니, 그 전에.”

“이름을 불렀지.”

“그걸 다시 말해다오.”

뭐야, 이상한 녀석이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이드라. 이제 됐냐?”

내 말을 들은 이드라의 입가에 마치 꽃과 같은 미소가 피었다.

그건 전생에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그녀의 ‘기쁨’이 담긴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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