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69화 (69/332)

# 69

069. 몽상(夢想)의 던전(1)

던전 레이스가 끝나고 한 달.

그동안 우리는 이번에 얻은 소득을 정산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이번 퀘스트로 얻은 소득은 각인한 던전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2위나 3위 정도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1위를 하고 말았다.

왜냐면 아웃라이징이나 제네시스가 적극적으로 던전을 점령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어났던 사건에 쫄은 건지.

아니면 우리에게 양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울에 존재하는 던전의 절반 이상을 각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괜히 그믐달과 같은 길드가 차지해 봐야 좋은 꼴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피안화는…… 넘어가자.

거기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만 않을 뿐이지 그믐달만큼이나 위험한 길드 중 하나였다.

길드장 이아영의 한마디면 목숨조차 불사하는 곳인데 뭘.

‘그보다…….’

난 내 앞을 막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상대도 나를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넌 왜 나를 그렇게 보냐?”

이마에 비쭉 솟아나 있는 길쭉한 외뿔.

아기 때는 새하얗던 머리카락도 성장하니 은은한 상아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마 금발인 린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대략 12살 정도의 외견으로 성장한 백설이는 어쩐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기 때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웃더니.

이렇게 커버린 후에는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무표정했고 무척 딱딱한 말투를 사용했다.

“호칭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호칭?”

“역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

“하나만 묻자.”

“예.”

“그럼 어머니는 누군데?”

“어머니는 딱히 없지만…….”

백설이는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답을 내놓았다.

“굳이 말하자면 린을.”

“미쳤냐?”

“안 되나요?”

“당연히 안 되지.”

그런 말이 혹시나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거다.

전생의 배드엔딩보다도 훨씬 끔찍한 배드엔딩이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라. 그게 나도 편하니까.”

“알겠습니다.”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혀를 찼다.

대체 왜 저렇게 커버린 걸까.

늘 함께 있던 민아가 뭔가를 잘못 가르쳐준 건가?

그렇지만 민아는 지금도 백설이를 귀엽다 귀엽다하면서 데리고 다녔다.

대체 저 무뚝뚝한 행동의 어디가 귀여운지 난 알기 힘들었다.

“여태 어디 있다가 왔어?”

“린과 놀다 왔습니다.”

이런 건 또 어린애 같다.

하지만 역시 평범한 어린애는 아니다.

단순히 외견이나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지닌 바 능력이 엄청났다.

과연 린의 피를 받은 기린이라고 해야 할지.

마법적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벌써 공격마법만 다섯 개를 넘게 익힌 상태였다.

그렇지만 백설이의 주 능력은 회복능력.

솔직히 말해 성녀라고 불리던 플레이어보단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다른 능력까지 생각하면 백설이 쪽이 월등한 포텐셜을 지니고 있었다.

기린아, 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린과 더불어 인류를 견인할 존재가 되리라.

“근데 이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말할 게 있다는 거겠지?”

“네.”

백설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찾으시던 던전이 나왔다고 창우 아저씨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찾는 던전?”

“네. 그렇게 말하면 아실 거라더군요.”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난 백설이에게서 머물렀던 시선을 뗀 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향은 남산이 있는 쪽이다.

여기서 남산을 본다고 뭐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쪽에 미리 배치해둔 까마귀가 하나 있었다.

언제든 그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도록.

‘그러고 보니 오늘 창우 씨가 그 근처 던전에 볼일이 있다고 했지.’

내게서 포인트를 얻은 이후 창우는 급격하게 강해졌다.

던전 레이스가 끝난 이후에도 매일같이 던전에 출입하며 몬스터를 학살하고 있었다.

우리가 각인시켜 둔 던전 중 포인트를 대량으로 습득할 수 있는 던전을 들락날락하며 열심히 능력치를 올렸다.

아마 지금쯤이면 지수 정도는 아니어도 민아와 엇비슷한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어릿광대도 요즘 민아에게 상당량의 포인트를 쏟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아바타가 주변 플레이어에게 뒤처지는 건 싫다나.

“찾았다.”

까마귀의 시야에 새하얀 신전과도 같은 건물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신전이지만 저것도 하나의 던전이다.

이름은 바로 몽상(夢想)의 던전.

이름과 입구에서 알 수 있듯 평범한 던전은 아니다.

게임으로 치자면 인스턴스 던전(Instance Dungeon).

간단히 설명해서, 다른 던전과 달리 세계 자체가 괴리되어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신전으로 들어가 던전에 입장하게 되면 전혀 다른 장소에 나타나게 된다.

몽상의 던전은 그중에서도 특이한 던전이었다.

문제는 가장 일찍 생긴 인스턴스 던전임에도 도전자가 나온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왜냐면 던전의 입장에 성스러운 힘을 가진 기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퀘스트가 진행되며 기린의 뿔이나 페가수스의 깃털과 같은 성수의 힘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조차 많지 않았다.

왜냐면 던전의 보상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던전의 보상은 바로, 라플라스이 모래시계.

단 한 사람의 미래를 30분 동안 불러올 수 있는 물건.

등급도 무려 S랭크에 속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만 애매한 성능 덕에 S급 중에서는 꽝 취급받았다.

미래의 시간을 30분 불러와 봐야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되니 당연하다.

‘내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지.’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GM 아카터스도, 퍼블리셔도 뭔가 손을 쓸 확률이 높았다.

만약 안타레스를 죽였다면 그것만으로 퍼블리셔나 GM이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아쉽게도 죽일 수 없었으니까.

“가자.”

“저도 가는 건가요.”

“네가 있어야 문을 열 수 있거든.”

던전의 문을 열기 위해선 성스러운 힘을 지닌 기물이나 성수의 힘이 필요하다.

기린의 힘을 가진 백설이라면 분명 문을 열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몽상의 던전을 향했다.

이번에는 공략을 위해 특수한 장비를 마련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몽상의 던전에서는 현실에서 이룬 모든 것이 하등 쓸모가 없었으니까.

***

남산의 중턱.

하얀 신전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평범한 던전과는 입구부터가 달랐다.

“여기 이름이 몽상의 던전인가요?”

“어.”

나는 짤막하게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렸다.

참고로 질문을 한 건 백설이가 아니다.

바로 오는 도중에 마주친 지수였다. 녀석은 백설이와 내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나타났다.

그 이후에는 지금처럼 당연하다는 얼굴로 뒤따라온 상태였다.

“근데 넌 왜 따라온 거냐? 어차피 이 던전은 같이 못 들어가.”

“그냥요. 인스턴스 던전이라기에 한번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빠가 던전에 들어간 동안 백설이를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확실히 그건 그렇지.

뭔가 설득되는 기분이지만 확실히 백설이를 데리고 돌아갈 사람이 필요하긴 하다.

마침 민아도 없었고 창우는 던전 순회 중이니 부르기도 힘들었다.

가장 적당한 사람은 루크였지만, 루크는 한 달 전 리브라를 소환한 반동으로 여전히 회복 중이었다.

린이나 시우는…… 이쪽은 백설이와 크게 다를 것도 없으니 사실상 남은 사람은 지수뿐이긴 하다.

“…….”

물론 백설이는 지수랑 성향이 안 맞아서 조금 꺼려하는 눈치긴 했다.

천살성 스킬을 보유한 지수와 성수인 기린은 상극이긴 하지.

심지어 린의 피를 받은 만큼 그 영향이 더 클 것이다.

물론 지수는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애초에 백설이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여기가 입구다.”

“여기라고 해도…….”

지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전의 안에는 보통의 던전처럼 특별히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벽화가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지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눈으로 내게 묻고 있었다.

“다른 인스턴스 던전도 그렇지만 몽환의 던전은 특별하지. 성스러운 힘을 가진 존재의 필요하거든.”

성물이나, 혹은 성수의 힘.

나는 백설이에게 눈짓했다.

백설이는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저 벽화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예민한 기린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고오오.

백설이의 뿔에서 새하얀 빛이 모였다. 그 빛은 하나의 구의 형태가 되어 방울이 되었고.

새하얀 빛을 발하는 방울은 천천히 날아가 벽화를 조용히 두드렸다.

변화가 일어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구궁!

거대한 진동이 울리며 벽화에 작은 금이 생겼다.

금은 점차 벌어졌고, 벽화는 좌우로 갈라져 하나의 포탈을 생성했다.

마치 던전이 생기기 전에 생기는 게이트와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구석이 많았다.

마력이 넘실거리며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게이트와는 달리, 눈앞의 포탈은 마력이 정제되어 있었다.

“잘했어.”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었습니다.”

백설이의 머리를 두드리며 칭찬하자 백설이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도 칭찬을 좋아하는 걸 보면 어린아이답다.

“이제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아니. 먼저 돌아가 있어도 괜찮아.”

“네.”

분명 몽상의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현실과는 시간이 다르게 움직이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달랐다. 애초에 몽상의 던전은 사람마다 구성이 다르니 당연했다.

‘좋아.’

나는 가볍게 몸을 풀고 천천히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얻기 위해서.

***

쿠구구궁.

세한이 포탈 안으로 사라지자 벽화는 천천히 닫혔다.

그 광경을 지수와 백설은 빤히 바라보았다.

“…….”

“…….”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서 흘렀다.

애초에 대화를 그리 많이 한 적이 없는 둘이다.

지수는 백설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백설의 경우엔 지수를 내심 꺼려했다.

물론 세한과 가까운 존재이기에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파장이 맞지 않았다.

아마 그건 지수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라플라스이 모래시계…….”

이 던전으로 오며 세한은 던전의 보상에 대해 지수에게 이야기했다.

미래의 자신을 30분간 불러올 수 있는 아이템.

세한은 왜 그것을 얻기 위해 기린을 얻는 수고를 했던 것일까.

그것이 그만큼 중요한 물건인가? 왜?

“흐음.”

지수는 팔짱을 끼고 벽화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서 있는 외뿔의 소녀를 향해서.

***

몽상의 던전은 다른 인스턴스 던전 중에서도 특별하다.

왜냐면 몽상의 던전은 현실에서 얻은 장비나, 능력치. 그리고 스킬을 전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던전에 들어온 순간 플레이어는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한 새로운 육신과 스킬을 부여받게 된다.

장비도 마찬가지.

거기에 클리어 조건도 전부 다르다.

왜냐면 몽상의 던전은 플레이어가 가진 기억을 토대로 던전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느낀 가장 기뻤던 일.

혹은 가장 슬펐던 일 중에서 선택되며, 플레이어가 가장 간절히 바란 사람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퀘스트로 제공된다.

퀘스트에 따라 모래시계를 얻을 수 있는 대상은 다르며, 보통은 퀘스트 내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직접 클리어해 본 적은 없다보니 듣기만 했다.

“아오…….”

나는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던전에 들어오는 순간 정신을 잃은 탓에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여긴 어디지?’

어두운 건물 안이었다.

습한 공기가 폐부를 자극했다. 몸은 무겁고 피로감에 정신은 몽롱했다.

어디로 봐도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었다.

“혹시.”

천천히 손을 들어 창밖에 들어온 달빛에 반사시켰다.

굳은살이 박인 손이다.

상처투성이에 성한 곳이 없는 모습이었다.

내게는 익숙한 손의 모습.

그건 바로 1회차 김세한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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