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68화 (68/332)

# 68

068. 운명을 보는 소녀(2)

“딸꾹.”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의 모습에 소녀는 망연히 자운을 올려다보았다.

자운은 담배를 태우며 무심한 얼굴로 혹시 살아 있는 자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가 있을 턱이 없었다.

죄다 자운의 주먹에 머리가 터져 버렸으니까.

그래도 악마와 계약한 녀석들은 생명력이 질긴 법이니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봐.”

“예, 옛!”

바짝 얼어있는 소녀의 모습에 자운은 한숨을 쉬었다.

하기야 어린애가 보기엔 조금 끔찍했을지도 모른다.

“넌 왜 저런 놈들에게 쫓기고 있지?”

처음에는 단순히 흑천회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납치해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단순히 아이가 도망친 것이라면 보통은 귀찮아서 두는 편이다.

그걸 찾아서 잡느니 차라리 하나를 새로 납치하는 게 빠르니까.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든 소녀를 잡으려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소녀를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자 죽이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다른 이에게는 절대 소녀가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그건…….”

소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할 수 없다는 눈치다.

“됐다. 그럼 가라.”

“……네?”

“할 말이 없다면 굳이 묻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당장 쫓던 놈들은 다 처리한 거 같으니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겠지.”

이 정도 수를 죽였으니 다시 소녀를 쫓는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일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잡힌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평소의 자신을 생각하면 오지랖 넓게 관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등을 돌려 아자젤에게 돌아가던 자운은 조심조심 자신을 쫓아오는 소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상한 녀석이군.’

사람을 처참히 죽인 자신이 무서울 텐데도 마치 구원의 동아줄 마냥 손을 뻗는 게 우스웠다.

어차피 아자젤에게 가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바이크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여전히 마네킹처럼 서 있는 아자젤의 모습이 보였다.

“왔네.”

그녀는 이상한 소녀를 뒤에 달고 온 자운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휙, 하고 등을 돌린 아자젤은 나비처럼 사뿐사뿐 걸어왔다.

그리곤 자운을 지나쳐 당황한 얼굴로 주춤거리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너, 이름이 뭐야?”

“네, 네?”

“이름이 뭐냐니까?”

“저는…… 수아예요. 민수아.”

아자젤이 소녀를 관찰하듯, 소녀 역시 아자젤을 훑어보았다.

복장이나 뭐로 보나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플레이어인가?’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라도 보통 저런 복장을 태연히 입지는 않으니까.

뭣보다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겁주지 마라.”

“겁준 적 없는데~? 근데 이 아이까지 데려가려면 나는 따로 돌아가야겠는걸.”

흥흥, 거리며 이야기하는 아자젤의 말에 자운은 어이가 없었다.

데려가긴 뭘 데려가?

“이 아이는 여기에 두고 갈 생각이다.”

“진짜? 얘 보통 귀한 애가 아니야.”

“관심 없다.”

자운은 그렇게 말하며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정말로 소녀, 수아에 대해선 하등 관심이 없다는 눈치였다.

이쯤 되자 다급해진 건 수아였다.

“자, 잠깐만요, 오빠!”

처음에는 자운의 행동이 수상해서 쉽게 말할 수 없었지만, 여기서 자운을 놓치면 영영 볼 일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이 분명 내 운명을 바꾼 사람인 게 분명해!’

제대로 확정되지 않았던 미래가 이 남자를 만난 이후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은 살아남았다.

문제는 반대로 살았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는 거다.

“……오빠?”

소녀가 자신을 부른 호칭에 자운은 내심 당황했다.

오빠라니.

기껏해야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애가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자운도 25살이니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색한 건 어색한 거였다.

“뭐냐.”

“저, 저기 그러니까…… 저저 저를 같이 데려가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어투였다.

수아는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감춰봐야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는 정말 자신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자신을 구해준 건, 정말로 어린아이였기에 도와줬을 뿐이다.

사실 수아는 그렇게까지 어리지 않았다.

어려보이는 외형과 달리 나이는 17살이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고등학생이었다.

아무튼 이대로 있으면 저 남자는 자신을 두고 가버릴 게 뻔했다.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어요!”

“미래?”

“네, 저는…… 신의 아바타이니까요.”

그녀의 신은 스쿨드.

미래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짧게는 몇 초. 길게는 몇 년 후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원래부터 미래예지에 대한 재능이 있던 탓에 신의 아바타로 선택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부터 신과 커넥션이 있는 상태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

“그게 너를 데려가야 할 이유가 되나?”

자운은 정말로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미래를 본다?

그게 어쨌다는 건지 알기 힘들었다.

“그게…….”

막상 자운이 그렇게 말하니 수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보통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면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과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빌붙어 미래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으려는 사람들뿐이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하고 다니던 수아도 이런 세계가 되자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눈치챈 이들이 자신을 납치했기 때문이다.

수아만이 아니라 그녀의 유일한 가족인 오빠까지도!

“그렇지 않으면, 우리 오빠가 죽어요.”

본래라면 살았을 사람이다.

그런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미래가 사라졌다.

“오빠가 죽는단 말이에요…….”

원래부터 자신이 살아남는 미래는 없었다.

게임이 시작된 직후 자신은 그런 미래를 보았다. 부모님이 눈앞에서 죽고, 오빠의 손에 이끌려 도망칠 때부터 그런 미래를 보았다.

그렇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미래가 바뀌었다. 자신은 살았고, 반대로 오빠가 죽어버렸다.

이유는 모른다.

본래라면 자신이 죽어 악착같이 탈출하여 복수했을 오빠였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남은 탓에 ‘동생이라도 살았으니 괜찮다.’라고 안도하고 말았다.

그 사소한 차이가 오빠를 죽여 버린 거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야기하는 수아의 말에 자운은 어쩐지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하지만 담배는 더 이상 없었다. 마지막 돗대를 방금 전에 다 피웠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이렇게 될 걸 알고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가?’

힐끗 아자젤을 보았지만, 녀석은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모든 선택을 자운에게 맡긴다는 것처럼.

결국 자운은 늘 그렇듯 크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먼저 그걸 말해라.”

자운은 아자젤을 돌아보았다.

“넌 혼자 돌아올 수 있겠지?”

“물론. 먼저 가. 나는 느긋하게 산책 좀 하다가 갈 테니까.”

느긋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자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넌 타라.”

“네?”

“우선 돌아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참고로 헬멧은 없다.”

“아, 알겠어요!”

수아는 황급히 바이크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만약 자운의 마음이 변해 자신을 두고 간다고 할지도 몰랐으니까.

‘귀찮게 됐군.’

수아는 이런 오토바이의 뒤에 타는 건 처음인지 자운의 허리를 꽉 잡고 얼어있었다.

그런 수아의 모습을 한번 바라본 자운은 자신이 머물던 건물을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래도 자운의 표정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자젤의 의도처럼 나름의 목적이 생긴 것 같았으니까.

***

“저와 저희 오빠를 납치한 이들은 그믐달과 경쟁하고 있는 길드예요.”

“길드의 이름은?”

“암천 길드예요.”

암천 길드라면 알고 자운도 잘 알고 있는 길드였다.

그야 흑천회에서 갈라진 분파 중에 하나였으니까.

이름부터 비슷하지 않은가?

본래는 흑천회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길드였으나 흑천회가 사라진 지금은 멋대로 설치고 다니고 있겠지.

악마와 관련된 이들을 대다수 흡수했던 흑천회가 사라졌으니 그 새력을 암천이 모조리 흡수한 게 분명했다.

‘암천 길드라면…… 그놈이 있겠군.’

철마 박도영.

육체를 강철처럼 만들 수 있는 스킬을 지닌 악마의 계약자다.

계약한 악마도 마계 서열 30위의 상당한 강자였다.

“녀석들도 아이를 빼돌리는 짓을 하고 있었나?”

“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능력을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죠.”

수아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자신의 능력에 취해 떠들고 다닌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어울렸지만 피해가 자신이 아닌 오빠에게까지 향한다면 달랐다.

“그들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제 힘을 이용해 저번 길드 이벤트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했어요. 물론 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빠를 인질로 삼고 있는 탓에 최소한의 정보만을 말했어요.”

하지만 암천 길드 자체는 던전 공략의 경험이 적어 그렇게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암천 길드의 길드장인 박도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미래예지가 확실히 적용되고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박도영은 수아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고, 만약 다른 조직에게 넘어가게 된다면 죽일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능력을 수아는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미래를 본다는 게 어느 정도를 볼 수 있는 거야?”

언제 왔는지 아자젤이 자신의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수아로선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태연한 자운의 모습에 넘기기로 했다.

“먼저 3초 정도의 미래를 볼 수 있어요. 3초 후의 아주 간단한 단편적인 장면을 볼 수 있죠. 이건 재사용시간도 짧아 언제든 사용이 가능해요. 그다음은 볼 수 있는 날짜를 지정해서 볼 수 있어요. 하루 후나, 혹은 한 달 후. 당연하지만 먼 미래를 볼수록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죠.”

심지어 어떤 것을 볼지 알 수도 지정할 수도 있었다.

괜히 박도영이 수아의 능력을 탐낸 게 아니다.

“이건 평범한 아바타의 능력을 넘었네. 플레이어의 개인적인 능력까지 합쳐졌어.”

아자젤은 수아의 능력을 듣고 내심 감탄했다.

과연 멀리서 느꼈던 신의 힘은 가짜가 아니었다.

여신 스쿨드가 분명 아끼는 아이이겠지.

거기다 어떤 플레이어보다 아바타가 된 기간이 길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바타가 되었다면 그 잠재능력은 분명 무궁무진 할 터.

사실상 미래를 볼 수 있는 신과 큰 차이가 없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굉장한 능력을 지녔지만 본신의 힘은 미약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적다는 게 아자젤은 조금 우스웠다.

“그게 끝인가?”

자운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미래를 볼 수 있으니 조금 편하겠다 싶은 정도다.

“그건…….”

심드렁한 자운의 모습에 수아는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보통 아자젤처럼 최소한의 감탄이라도 할 텐데 그는 정말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대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쫓겨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긴 미래를 보는 게 별건가?’

이곳에 도착해서야 수아는 아자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계의 7대 악마 중 하나인 나태의 악마.

그 정체를 ‘보았을 때’는 정말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설마 이런 새하얀 소녀가 악마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수아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상상한 악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태까지 악마는 박쥐의 날개를 달고 뿔을 머리에 단 악귀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사실 하나를 더 볼 수 있어요.”

결국 수아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걸 이야기하기로 했다.

“오, 거기서 뭔가를 더 할 수 있단 말이야?”

“네. 저는…… 이 게임의 끝을 볼 수 있어요.”

이번만큼은 아자젤도 할 말을 잃었다.

게임의 끝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미래를 보는 여신이라도 그걸 보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왜냐면 여신이니까.

하지만 신격을 습득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시스템의 눈을 피해 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게임의 끝?”

자운 역시 관심을 보였다.

이 세계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만든 이 게임의 끝이라니.

플레이어라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엔딩’을 볼 수 있죠. 이 세계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여 게임이 끝나게 될지 전 알고 있어요.”

“엔딩, 엔딩이란 말이지. 그래서 지금의 엔딩은 뭐야? 역시 배드엔딩인가?”

“아니요.”

배드엔딩이 아니라니.

수많은 차원의 말로를 보았던 아자젤은 내심 지구의 플레이어들에게 경탄했다.

대부분 게임판이 된 행성은 배드엔딩이 되기 쉬웠으니까.

“그럼 해피엔딩?”

“그것도 아니에요.”

“해피엔딩도 아니야?”

“네.”

수아는 이제야 궁금하다는 눈으로 보는 두 명의 시선에 내심 안도했다.

이제 적어도 버려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실 한번 변한 엔딩이지만.’

무엇이 엔딩을 변화시켰는지 모른다.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부터 수아는 이 세계가 곧 게임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때 자신이 보았던 엔딩은 배드엔딩이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확실했다.

배드엔딩 「고독한 세계」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 결말.

수아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다.

엔딩이 달라진 건, 게임이 시작되기 몇 분 전이었다.

머리에 찌릿한 통증이 오며 달라진 엔딩을 볼 수 있었다.

엔딩을 보는 건 미래를 볼 수 있는 다른 능력과 달리 강제로 알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습을.

“지금의 엔딩은…….”

현재 자신에게 보이는 건 왕좌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칼의 남성.

수많은 악마들이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지금 자세히 보면 그곳에는 아자젤도 보였다.

7대 악마마저 고개를 숙이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트루 엔딩. 「광기의 마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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