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066. 유성(2)
“길드장님. 지금 하늘이…….”
박성혁은 홍가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게 맞다.
하늘이 어둡게 물든다 싶더니, 갑자기 어둠 속에서 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것은 길조인가, 아니면 흉조인가.
‘저쪽은 분명 아웃라이징이 담당한다고 했던 구역.’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디어사이드에서 던전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원인이 저것인지도 모른다.
‘대체 뭐지?’
이미 자신의 신인 티르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티르의 옵저버는 자신의 곁에 있지 않았다.
분명 지금 저 장소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자신의 아바타를 두고 굳이 갔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일이 저기서 벌어지고 있다는 거겠지.
“기, 길드장님!”
“그렇게 크게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가은 씨. 그리고 저도 지켜보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 뭔가가 떨어집니다.”
“예?”
가은의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빛이 새어 나오는 구름의 위.
별이 떠 있는 하늘을 향해 있었다.
“저건.”
언젠가 박성혁은 유성을 본 적이 있었다.
밤하늘을 가로질러가던 유성.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건, 자신이 본 어떤 유성보다도 선명했다.
금색의 긴 꼬리를 만들며 지상을 향해 떨어지는 유성은.
어둠을 꿰뚫으며 지상에 낙하했다.
아웃라이징 길드가 차지하고 있는, 한 던전을 향해서.
***
안타레스는 지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잠깐 동안 단순한 어그로에 끌려 다녔다는 것도 황당한데 자신의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런 황당함을 아득히 넘어섰다.
‘리브라를 부르다니, 이 미친년!’
이곳에 있는 누구도 리브라를 사용할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신격’이 옅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신격을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누군가의 하수인이 되지 않은 채, 이미 존재하는 별자리를 죽이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하수인이 되지 않은 채, 신화에나 가능할 대단한 업적을 달성하는 것.
두 가지 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다.
마지막 하나는 대리자가 되어 신의 힘을 받는 것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대리자를 선택할 신도 거의 없을뿐더러, 설령 대리자로 선택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재능이나 힘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전생에 세한이 ‘마녀’가 요청했음에도 대리자가 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마녀가 요청했을 당시에는 세한에게 대리자의 격을 감당하기엔 힘이 부족했다.
강한 정신력이라도 있었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세한은 정신도 만신창이였기에 대리자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는 마녀와 계약하게 되어 나타날 존재들이 걱정되어 하지 못했다.
‘천칭을 손에 쥘 수 있는 자도 없는데 천칭을 소환해? 아니, 잠깐만.’
하늘에서 느껴지는 천칭의 힘에 안타레스는 경악했다.
왜냐면 그것이 이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설마, 아스트라이아……!!」
안타레스가 비명처럼 외치는 순간, 천칭이 던전의 외벽을 부수며 떨어졌다.
콰과과광!!
천칭이 떨어진 충격으로 던전이 파괴되며 엄청난 충격이 던전 전체를 울렸다.
바닥에 숨어 있던 안타레스도 그 충격으로 뒤집히며 공중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파괴할 수 없는 던전이지만, 황도 12궁 정도가 되면 말이 다르다.
단지 나타난 것만으로 던전을 완벽히 파괴시킬 수 있었다.
‘지금이다!’
세한은 저릿한 몸을 일으키며 앞으로 달렸다.
초월의 증명이 아니었다면 천칭이 떨어진 충격으로 그대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한 방패로 몸을 막아내고, 받은 피해는 재생과 천살성으로 회복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저것이 리브라.’
실제로 보는 건 두 번째다.
전생에서 보았을 때는 천칭의 모습이 아니라 검이었다.
하지만 리브라의 모습은 잠시 반짝이더니 한 줌의 빛이 되어 사라졌다.
시야의 구석에 기절한 루크의 모습이 보였다.
리브라를 소환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거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루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했으니까.
“하아압!”
세한은 공중으로 떠올랐던 안타레스가 지상으로 떨어지기 전에 꼬리의 끝을 잡고 온 힘을 다해 공중에서 방향을 틀었다.
녀석의 거체가 허공에서 회전하며 거꾸로 떨어질 수 있도록.
콰아앙!!
「이놈이!」
거꾸로 떨어진 안타레스가 몸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낸 세한이 녀석의 관절부위에 찔러 넣었다. 길쭉한 창이 관절에 박히자 안타레스는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크윽!”
끼기긱, 소리를 내며 구부러지는 창을 애써 힘으로 누르며 오른팔에는 파일 벙커를 착용했다.
기존에 만들었던 파일 벙커를 궁기의 뼈로 한층 강화시킨 물건이다.
사출될 때의 위력도 마석을 사용하여 더욱 증폭시켜 둔 상태였다.
거기에 초월의 증명의 힘인 별자리에게 추가피해가 적용되면 안타레스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철컥.
“끝이다.”
덜덜 떨리는 팔을 안타레스의 턱으로 겨냥했다.
턱밑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안타레스이 몸도 얼어붙었다.
검은 옷을 입은 세한의 모습이 마치 사신처럼 보였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것이 사출되면 자신이라도 위험하다고.
설령 운 좋게 죽지 않는다고 해도 뒤이어 이어지는 공격에 죽을 게 분명했다.
‘이 안타레스가? 고작 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를 진행 중인 플레이어에게 죽는다고?’
그럴 수는 없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단 말이다!
하지만 녀석이 누르는 힘을 벗어날 수 없었다.
관절에 박아 넣은 창이 걸려 제대로 몸을 뒤집을 수도 없었다.
죽음.
선명히 다가온 공포가 안타레스의 정신을 집어삼켰다.
쿠웅!
육중한 폭발음을 울리며 사출되는 파일벙커가 슬로우 모션처럼 안타레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이 안타레스의 턱을 꿰뚫으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파일벙커에 꿰뚫리기 직전에 안타레스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콰아앙!!
던전의 외벽을 꿰뚫고 박힌 파일벙커의 모습에 세한은 혀를 찼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제압하고 있던 안타레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구부러진 창과 부서진 던전의 모습이 방금 전까지 안타레스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역시 그렇게 나온다는 건가.”
황도 12궁인 안타레스가 죽는 건 까마귀자리의 카라스가 죽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일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죽기 전에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안타레스를 사라지게 만든 건 분명 퍼블리셔겠지.’
GM 아카터스는 현재 자숙 상태이니 손을 댈 수 있는 건 퍼블리셔밖에 없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안타레스가 ‘일시적’인 참여자였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참여가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닌 임시적인 참여였기 때문에 곧바로 불러들일 수 있었으리라.
파일 벙커를 인벤토리에 넣은 세한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레스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으니 아쉬운 것도 당연했다.
거기다 안타레스를 처치하고 얻었을 보상도 사라진 게 되니까.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지는 않겠지.”
이번 일은 퍼블리셔 측의 강제적으로 관여한 것.
그렇다면 ‘시스템’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이것이 게임인 만큼 강대한 존재를 쓰러트린다면 마땅한 보상이 반드시 주어져야 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조금 기다리니 경쾌한 알림이 들려왔다.
[황도 12궁 천갈궁 안타레스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습니다!]
[업적 ‘전갈 사냥꾼’을 습득합니다.]
[운영에 대한 보상으로 ‘A급 스킬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후한 보상이었다.
업적은 넘어가더라도 A급 스킬 선택권이라니.
‘그래도 뭐 빠지게 구른 보상이 있긴 하네.’
안타레스를 이곳에서 죽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A급 스킬 선택권은 확실히 좋은 보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안타레스를 처치했을 때 얻을 신격이나 스킬에 비하면 아쉬운 건 분명했다.
“응?”
세한은 문득 아까 전 천칭이 떨어졌던 장소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산산이 부서진 지면 아래에는 대량의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이 던전에 머물던 몬스터들이 다른 던전보다 강한 마석을 지니고 있던 것도 그런 연유.
그것이 천칭이 떨어지며 영향을 받아 하나의 결정이 되어 있었다.
지맥을 흐르던 마력들이 하나의 광맥이 되어버린 것이다.
“에스더가 이렇게 많이…….”
‘별’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금속.
본디 여성의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명칭이지만 이 금속의 이름도 에스더라 부른다.
별의 금속, 에스더.
강도는 미스릴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마법저항이 몹시 뛰어나며 마력전도가 가장 좋은 금속이다.
뭣보다 다른 금속과 섞어 합금으로 만들 때 큰 힘을 발휘한다.
마력금속에 가까운 에스더는 다른 금속의 장점을 전혀 죽이지 않고 거기에 에스더 본연의 힘을 더하게 되니까.
오리하르콘보다 희귀하고 아다만티움보다 보기 힘든 금속.
이것을 얻을 수 있는 건 강력한 별의 힘이 흐르는 장소뿐이다.
설마 인공적이지만 이렇게 많은 에스더를 얻게 될 줄은 세한도 생각도 못했다.
“이거라면 본전 정도는 되려나.”
A급 스킬과 대량의 에스더. 이정도면 나름 노력한 대가는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우연이 가져다준 결과였지만 말이다.
“이제 문제는…….”
세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쯤 붕괴된 던전은 서서히 복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던전의 잔해 속에서 정신을 잃은 루크와 지수가 보였다.
‘역시 눈앞에서 강력한 신격을 목격한 탓인가.’
루크는 아마 리브라를 소환한 것만으로 탈진했을 거다.
지수는 이어 나타난 리브라의 격에 정신을 잃었거나, 충격으로 기절했으리라.
“이제 저 둘을 어떻게 데리고 나가냐는 건데.”
분명 던전 밖에는 이 사태를 눈치챈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어와 있을 것이다.
던전을 각인시키고 나갈 때쯤이면 볼만하리라.
“흠…….”
세한은 천칭이 떨어지며 생긴 던전의 구멍을 빤히 바라보았다.
“날아서 가볼까?”
마침 암야의 외투에 새로 생긴 스킬이 하나 있었다.
***
광화문 광장 앞.
어느 때보다 많은 플레이어가 광화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간 있었던 던전 레이스의 최종 발표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분명 1위는 그 길드겠지?”
“아마…….”
예전이라면 아웃라이징이나 피안화, 혹은 제네시스를 언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2주차부터 위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한 길드가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수많은 소문이 있는 하나의 길드.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것 같지만 어떤 플레이어도 그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던전 레이스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어보면 솔직히 믿을 수 없는 것들도 있었으니까.
하늘에서 별을 떨어트렸다든가.
별이 떨어진 곳에서 하늘로 날아간 검은 날개의 남자라든가.
미래를 예지한다든가.
악마와 계약된 이들은 모두 죽인다든가.
등등, 비상식적인 것부터 묘하게 현실적인 것까지 섞여있었다.
덕분에 디어사이드에 대해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들.”
어두운 남색 차림을 한 플레이어가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작은 머플러로 목을 가리고 있었는데, 왜냐면 그 아래에 그믐달 특유의 마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믐달 소속의 길드원들에게는 한 가지 칙명이 있었다.
절대로 그믐달의 마크를 보이지 말 것.
그리고 검은 옷을 입지 말 것.
그 이유는 디어사이드에서 떠도는 소문과 관련이 있었다.
녀석들은, 아니 거기에 속해 있는 한 여자는 그믐달의 소속이라면 아주 이 잡듯이 뒤지며 죽였다.
결코 살려두는 법이 없었기에 나름 악의 세력이라 자처하는 그믐달조차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독한 년.’
악마와 계약한 건 자신이 아니라 그 여자인 것 같았다.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면 그 여자가 의심부터 하는 탓에 그믐달을 비롯한 뒷세계에서는 검은 옷은 금기에 가까웠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디어사이드가 악마의 계약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돌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 중 금발의 플레이어가 있었던 데다가 아웃라이징의 길드마스터 강태성이 악마의 계약자만은 절대 아니라고 부인했기 때문이 그런 논란은 금방 사그라졌다.
“떴다, 떴어!”
한 플레이어이 외침과 함께 전광판에 순위가 발표되었다.
3위 아웃라이징. 2위는 제네시스.
그리고 1위가 나타나는 순간 광화문 광장에서 경탄이 울려 퍼졌다.
역시 플레이어들의 예상대로 그 길드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위, 디어사이드.
서울 시 모든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그 다섯 글자가 똑똑히 새겨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