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065. 유성(1)
안타레스와 카라스는 ‘격’이 다르다.
카라스는 기껏해야 평범한 별자리. 그중에서도 하위에 속하는 녀석일 뿐이다.
반면 안타레스는 웬만한 신들보다도 유명하고 격이 높은 황도 12궁의 별자리.
당연히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최상위 별자리와 최하위 별자리의 차이.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 안타레스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카라스와 별다를 게 없었다.
물론, 조금 더 강한 건 맞지만 본래의 위상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아마 카라스가 대략 80퍼센트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안타레스는 대략 8퍼센트의 힘밖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지금의 세한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세한에게는 ‘그 스킬’이 있었다.
‘초월의 증명.’
별자리를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가 상승하며, 별자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스킬.
그 힘이라면 안타레스의 집개를 순간적으로 밀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끼기긱!
「나를 우습게보지 마라!」
안타레스가 집게에 힘을 더욱 넣자 세한은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이미 루크는 뒤로 떨어진 상태였기에, 세한 역시 집개를 피해 크게 뒤로 뛰었다.
“우습게 본 적 없다.”
세한은 집개에서 손을 떼고 인벤토리에서 한손 검을 꺼내들었다.
두꺼운 껍질을 지닌 안타레스에게 도검류는 피해를 주기 힘들었지만, 둔기는 이미 지수가 지니고 있었다.
‘관절부를 노린다.’
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지닌 안타레스라도 약점은 있다.
관절이 구부러지는 부위는 비교적 연하다보니 검으로도 충분히 상처를 줄 수 있었다.
촤악!
「큭!」
도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안타레스의 관절에서 시꺼먼 체액이 흘러나왔다.
크지는 않은 상처였지만 안타레스의 신경을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까불지 마라!」
안타레스의 전신에서 시커먼 독무가 피어오르며 주변을 빠르게 잠식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번 숨을 들이키는 것만으로 죽음을 맞을 맹독.
하지만 세한과 루크에게는 전혀 듣지 않았다.
얼굴에 착용하고 있는 방독면이 독무를 완벽히 막아주기 때문이다.
다른 던전에서 이미 만났던 안타레스의 아이들보다도 한층 강력한 독무였지만 그렇다 해도 소용없었다.
“한지수! 머리를 노려!”
“네!”
독무를 뿜어내는 안타레스의 머리를 향해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달렸다.
이곳에 온 건 당연히 세한뿐이 아니었다.
지수도 함께였다. 나머지 또 하나의 안타레스의 아이는 창우와 민아에게 맡겨둔 뒤, 지수와 세한만 먼저 이곳에 온 것이다.
“…….”
붉은 눈이 어두운 독무 속에서도 형형히 빛났다.
시우에게 부탁해 새롭게 만든 거대한 둔기.
여태까지 무기 중에서 가장 커다란 둔기를 든 지수가 크게 뛰어올라 안타레스의 머리를 가격했다.
콰앙!
「크억!」
머리가 크게 아래로 기울어졌다.
지수의 근력과 무거운 둔기의 공격은 안타레스라도 상당한 타격이었던 모양인지, 크게 몸이 휘청거렸다.
‘빈틈.’
세한은 그 틈을 노려 안타레스의 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녀석이 시야만 잃는다면 한층 쉽게 공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카앙!
안타레스도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반사적으로 집개를 들어 검을 막은 뒤, 세한이 있는 방향으로 날카로운 전갈의 꼬리를 연신 지면을 향해 내리찍었다.
꼬리가 한번 바닥을 두드릴 때 마다 움푹움푹 꺼지는 지면을 보면 가슴이 절로 서늘해졌다.
“나도 이제 합류하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루크도 세한이 그랬던 것처럼 안타레스의 관절부를 노렸다.
주로 목표는 한쪽 다리.
집요하게 다리를 공격하자 과격하게 공격을 가하던 안타레스의 몸이 크게 꺾였다.
균형을 잃은 안타레스를 향해 재차 세한의 공격이 집요하게 안타레스의 눈을 노렸다.
인벤토리에 검을 집어넣은 후, 창을 꺼낸 세한은 소나기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그것을 안타레스는 집개를 사용해 그것을 막아냈다.
「크으으으!」
연신 무기를 바꿔가며 공격하는 세한과 지수의 맹공에 안타레스는 연신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다. 황도 12궁에서 게자리 다음으로 가장 단단한 방어력을 지닌 안타레스였기에 망정이지, 보통이라면 이미 곤죽이 되어서 죽었을 것이다.
실제로 안타레스도 슬슬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싸우게 되면 위험하다는 걸.
「젠장!」
특히 저 검은 옷을 입은 놈이 문제다.
관절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칼날의 감촉에 안타레스는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집요하게 눈을 노리는 녀석의 공격에 치가 떨려왔다.
‘까마귀 놈이 당한 것도 이해가 가.’
이런 놈이라면 자기보다 훨씬 약한 까마귀가 당한 것도 이해가 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검은 옷을 입은 플레이어의 공격은 안타레스에게 계속해서 선명한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다른 둘의 공격은 방해는 될 뿐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그저 몸이 흔들리거나 충격을 받을 뿐.
상처를 입어도 금방 회복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검은 옷에게 받은 상처는 달랐다.
칼날이 관절부위를 스쳐 지나가면 상처가 제대로 낫질 않았다.
안타레스가 눈을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
만약 저 공격이 눈에 맞게 된다면 시야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아무리 자신이라도 위험했다.
‘대체 뭘 가지고 있는 거냐.’
스킬인가? 아니면 장비인가.
장비는 특이한 것들을 사용하긴 했지만 대단한 건 없었다.
방어구가 제법 훌륭했지만 무기는 평범한 미스릴제 무기였다.
그렇다면 스킬이라는 거겠지.
대체 어떤 스킬이기에 자신을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단 말인가.
‘전승 스킬만 쓸 수 있었어도!’
그렇다면 이런 굴욕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전승 스킬이 없는 안타레스는 기껏해야 독무를 뿜어내는 거대한 전갈일 뿐이다.
특수한 스킬도 능력도 없는 그저 거대하고 지성이 있을 뿐인 마물.
아니, 아니지.
자신은 평범한 마물 따위가 아니다.
황도 12궁 천갈궁의 위대한 전갈의 왕.
비록 전승 스킬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전갈’의 힘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나는 황도 12궁의 안타레스다. 이 버러지들아!」
안타레스는 집개로 지면을 내리찍었다. 두터운 암반으로 된 던전의 지면이 쩌저적 갈라지며 무른 바닥을 드러냈다. 안타레스는 그것을 보자마자 더욱 강하게 독무를 뿜어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독무는 세한과 일행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도 이렇게 많은 독무를 뿜어대다니.
이정도 양이면 안타레스에게도 상당히 부담되는 양일 것이다.
던전을 가득 채운 독무는 시야마저 완벽하게 차단했다.
‘설마.’
세한은 흔들거리는 지면을 느끼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땅속에서 공격할 거다! 조심해!”
콰아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한의 다리를 노린 거대한 집개가 스쳐지나갔다.
지수를 향해선 꼬리가 매섭게 휘둘러졌다.
지수는 그걸 훌쩍 뛰어 피하며 곧바로 철퇴를 휘둘렀지만, 꼬리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땅속에서 굴을 파고 돌아다니는 안타레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성가시게 하는군.’
지면에 파고들어간 안타레스는 먹이를 사냥하는 전갈처럼 숨을 죽이고 기습을 가했다.
어떤 방심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세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되도록 흥분해서 판단을 그르치길 바랐건만, 역시 일이 그리 쉽게만 되지는 않는 법이다.
‘좋지 않은데…….’
초조한 건 안타레스뿐이 아니다.
세한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초월의 증명이 지속되는 시간은 고작 30분.
벌써 시간은 절반이 넘게 흘렀고 이대로라면 남은 시간 안에 안타레스를 죽이기 힘들었다.
제한시간 내에 끝내지 못하면 위험한 건 이쪽이었다.
‘뭔가 방법이 없나?’
저놈을 땅속에서 끄집어낼 방법.
이대로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둘 수는 없었다.
세한은 안타레스의 공격을 피하는 지수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시간 좀 끌어줄 수 있냐?”
“시간이요?”
“어. 잠깐이면 돼. 두더지 잡기하는 것처럼 그냥 녀석이 나올 만한 장소를 계속 공격하고 있어봐.”
세한의 말에 지수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알겠어요.”
땅속에 들어간 안타레스는 지면에서 일어나는 진동으로 위치를 감지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걸 이용해 지수가 둔기로 지면을 두드려 방향을 유도한다면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잠시 동안은 어그로를 끌 수 있으리라.
“루크 씨.”
지수가 최대한 안타레스의 어그로를 끄는 동안 세한은 루크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혹시 여신님에게 대화를 청할 수 있습니까?”
“여신님께?”
루크는 갑작스런 세한의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 해도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뭐라고 여신에게 대화를 청할 수 있겠는가.
위잉.
그때, 루크의 곁에서 하나의 옵저버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아스트라이아의 옵저버다.
아마 곤란해하는 루크의 모습에 먼저 반응한 것 같았다.
세한은 아스트라이아의 옵저버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스트리아의 옵저버 역시 세한의 말을 기다리는 듯, 잠자코 공중에 떠 있었다.
“제7궁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갑작스런 세한의 말에 아스트라이아의 옵저버가 부르르 떨렸다.
아스트리아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제7궁의 힘을 빌리고 싶다니?
“황도 12궁 제7궁 천칭좌. 리브라를 이곳에 소환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한은 재차 똑바로 말했다.
한줌의 거짓 없이 정의의 여신을 향해서.
아스트라이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그저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세한에게 하나의 쪽지가 도착했다.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보나마나 제대로 답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아까 전의 대답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관대하게 넘어가는 점이 과연 아스트라이아다웠다.
「다만 이건 묻지 않을 수 없군요. 정말로 천칭을 루크에게 사용하게 할 생각인가요? 그렇다면 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 답변에 세한은 내심 안도했다.
왜냐면 소환할 수 없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냥 소환만 해주시면 됩니다. 지금의 루크 씨라면 몇 초 정도는 소환할 수 있겠죠? 쥐고 휘두를 수는 없다 해도.”
씩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아스트라이아는 그제야 그가 무엇을 유도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단, 한 번 사용한 이후 한동안 소환할 수 없으며 그것을 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으리라.
하지만.
──단순히 부르는 것이라면.
“알겠습니다. 여신님.”
아스트라이아는 자신의 뜻을 루크에게 전달했다.
분명 그라면 할 수 있으리라.
재능은 없지만, 누구보다 자신과 파장이 맞는 그라면 분명 천칭을 소환할 수 있을 거다.
루크에게서 새로운 전승 스킬이 생긴 건 바로 그때였다.
비록 대리자는 되지 못했지만, 여신의 상징과도 같은 힘을 그는 손에 넣었다.
‘여신의 천칭.’
루크는 스킬명을 보고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에게는 정의를 심판하는 천칭이 존재한다.
처녀궁에 위치한 그녀는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천칭을 두었고, 그것이 황도 12궁 제7궁이 되었다.
‘목표는…… 저곳이로군.’
루크는 세한이 의도하는 바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이 스킬을 사용해, 지수가 안타레스에게서 시선을 끄는 장소를 노리는 것.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세한만이 알겠지.
루크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손을 뻗었다.
“한지수!”
동시에 세한 역시 지수에게 손짓해서 이쪽으로 불렀다.
지수는 안타레스의 꼬리를 능숙하게 피하며 세한 쪽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런 지수를 세한은 팔로 끌어 그대로 품에 안았다.
“아!”
“잠깐만 불편해도 이러고 있어.”
“네, 네.”
순간 움츠러들며 바르작거리는 지수에게 세한은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방패로 감쌌다.
미스릴로 이루어진 방패지만 거기에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더해 더욱 보강시켰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사실 이걸로도 부족했다.
나머지는 천살성과 재생 스킬을 믿는 수밖에.
지수는 걱정 없지만 도리어 세한 본인이 조금 걱정됐다.
“후우.”
루크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입을 벌렸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순한 스킬명임에도 숨이 턱 막혔다.
고작 이름을 입에 담는 것임에도.
“리…….”
루크의 몸에서도 연한 금빛이 흘러나왔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동을 느끼며, 고통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해 숨을 들이켰다.
별의 처녀(Star Maiden). 아스트라이아의 천칭의 이름을.
“──리브라(Libra)!”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