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064. 영웅의 심장(3)
천갈궁 안타레스가 지구에 개최된 ‘게임’에 관심을 가진 건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
바로 까마귀자리 카라스의 죽음.
그리고 그 자리가 인간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
마침 퍼블리셔 측에서 별자리와 관련된 기획을 짜고 있는 것 같아 직접 참여를 희망했다.
본래부터 자신의 전갈들을 몇 마리 데려가고자 요청했으니 자신도 겸사겸사 참여한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거다.
황도 12궁에 속한 안타레스가 직접 참여한다고 하니, 퍼블리셔도 굳이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12궁쯤 되는 별자리는 사실상 중급 이상의 신격을 지닌 신적 존재이니 그 격을 심히 낮출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안타레스는 본인의 전체적인 능력치가 10분지 1로 떨어졌음을 인지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에서 곧바로 제제가 들어올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지.’
10분지 1이라고 하더라도 황도 12궁이다.
현재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기엔 심히 벅찬 존재였다.
서울의 모든 플레이어가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그를 죽이지는 못하리라.
퍼블리셔 측도 그것을 알기에 다른 전갈의 알들과는 달리 안타레스에겐 현계 제한시간을 붙였다.
총 이틀.
이틀만 현계할 수 있으며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좌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이틀만으로도 서울의 절반은 충분히 날려 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최근 서울에서 지나치게 강한 플레이어들이 다수 목격된 터라 퍼블리셔 측이 둔 강수였다.
「낄낄, 도망친다라, 나쁜 판단은 아니야.」
안타레스는 도망치는 인간들을 느긋하게 쫒았다.
독기로 모조리 중독시켜 죽이는 건 간단했지만, 조금은 놀고 싶었기에 뿜어져 나오는 독기도 억제했다.
「마침 처녀궁의 아바타도 있군. 그래서 내가 나타날 줄 알았던 건가?」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금발머리의 남성을 보았다.
제법 단련된 사내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대단할 건 없어보였다.
안타레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카라스를 죽인 플레이어다.
대체 인간이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 별자리를 죽인 건지 알고 싶었다.
하찮은 인간이 별자리를 죽일 때 사용할 방법만 안다면 자신도 한층 격을 올릴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시작된 지 좀 되긴 했지만, 아직 별자리를 죽일 정도로 강한 플레이어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 뭔가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안타레스의 생각은 그러했다. 현재 황도 12궁의 8궁에 위치해 있지만 자신은 더더욱 그 위로 올라가고 싶었으니까.
「자자, 좀 더 빨리 움직여라, 벌레들아.」
“히이익!”
길은 좁았지만 안타레스에겐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거대한 집개를 한번 휘두르면 좁았던 길이 단번에 갈라지며 넓어졌기 때문이다.
저런 집개에 한번 얻어맞는다면 제대로 시체조차 남지 못하리라.
그래도 안타레스가 적당히 사정을 두고 공격을 가하는지라 아직까지는 사망자가 없었다.
「아, 질렸다.」
노는 것도 잠깐이다.
역시 그저 도망칠 뿐인 벌레들과 놀아봐야 재미가 없었다.
안타레스는 도망치고 인물들을 보았다.
한 명은 처녀궁의 아바타이며, 다른 한 명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바타였다.
전자는 같은 황도 12궁에 속해 있으니 봐줄 생각이었고, 아레스의 아바타의 경우엔 여기서 살려줘서 나중에 생색이나 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아니었다.
번개처럼 휘둘러지는 집개를 보며, 루크는 그것을 막았다.
쿵, 하는 충격에 전신이 크게 뒤로 밀렸지만 어떻게든 막을 수 있었다.
「과연 아바타는 아바타로구나.」
상급 신의 아바타인 강태성은 그렇다 치고 처녀궁의 아바타인 루크도 제법 뛰어낫다.
적당히 휘두른 팔이라지만 그것을 막아내다니.
“이런 씨발. 한 방에 팔이 부러지다니.”
그저 재미있다는 듯 감탄하고 있는 안타레스와는 달리 강태성의 이마에는 연신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놈이 조금만 더 강하게 힘을 줬다면 자신들은 그대로 곤죽이 되었을 거다.
‘내가 미친 새끼지.’
괜히 욕심을 부렸다.
덕분에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길드원들도 죽게 생겼다.
나아가 저놈이 밖으로 나온다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대역죄인도 이런 대역죄인이 없었다.
“대체 왜 이런 놈이 저기에 있었던 거냐, 좆같네 진짜.”
강태성의 욕설을 들으며 루크는 심호흡을 했다.
팔이 부러지진 않았지만, 이쪽도 무사하진 않았다.
집개의 힘을 어떻게든 견디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오고 있었다.
안타레스가 조금만 힘을 준다면 자신의 목숨은 끝이었다.
루크는 말했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이곳은 제가 막겠습니다.”
팔이 부러진 강태성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루크의 말에 강태성은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알았다.
이 괴물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는 걸.
맞서 싸울 텐가?
아니.
강태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 강태성이…….”
도저히 저 전갈을 상대로는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강태성이 택한 건 도주였다.
누군지 모를 인간이 막아준다면 그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도망치는 강태성을 안타레스는 가만히 두었다.
어차피 나중에 지상으로 올라가면 다 죽일 테니 지금 쫓을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지금 자신의 집개를 막아선 이 자를 어떻게 죽일지 고민 중이었다.
「나는 두 번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안타레스는 루크가 딱 견딜 수 있을 정도로만 집개에 힘을 줬다.
마치 어린아이가 벌레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이는 것처럼.
어느 힘까지 버티나 시험하며 천천히 힘을 가했다.
만약 시우가 만든 장비가 아니었다면 이미 검은 동강났을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인가.’
이번만큼은 루크도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웃라이징의 길드원들은 도망치게 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것을 본다면 바보 같다고 욕할지 모른다.
혼자 남을 린에게도 미안했지만, 다른 일행들이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이라면, 분명 린을 훌륭하게 키워줄 거다.’
수많은 사람을 봐온 루크였기에 안다.
자신의 딸은 고작 자신 정도가 아닌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될 거다.
분명, 누구보다 위대한 자가 될 자격을 린은 갖추고 있었다.
드드득!
과한 힘을 준 탓에 뼈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루크의 힘이 빠지려는 순간, 귓가에 음성이 들렸다.
대기가 진동하며, 어두운 던전 안에 금색의 빛이 쏟아졌다.
루크는 알 수 없었지만, 현재 던전 밖의 하늘에는 황금색 빛이 지상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신의 강림은 아니었으나, 확실하게 그 격을 지상에 나타내고 있었다.
「루크 테일러. 그대에게 대리자의 자격을 청합니다.」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였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루크를 아바타로 삼은 신이자, 정의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
「뭐래, 이 미친년이. 대리자? 그걸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그 목소리는 루크만이 들은 게 아닌 듯, 안타레스가 황당하다는 어조로 지껄였다.
대리자는 아바타 따위와는 전혀 달랐다.
아바타는 단순히 신들의 놀잇감이며 장난감의 말이라면, 대리자는 말 그대로 신을 대리하는 자였다.
그건 즉, 신이 게임이 아닌 진심으로 이 세계에 개입하고자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리자가 죽게 되면 신도 큰 피해를 입게 되고, 최악에는 소멸까지 가게 된다.
그러니 신들은 아바타는 쉽게 구해도 대리자는 선택하지 않았다.
악마의 계약자보다도 훨씬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니까.
「신화시대에도 맺은 적 없던 맹약을 지금 와서야 맺는다고? 네년 정말 미친 거냐?! 아스트라이아!」
안타레스의 외침이 던전에 쩌렁쩌렁 울렸지만 아스트라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목숨이 위험한 자신의 아바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옵저버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루크 테일러.」
재촉하는 것 같은 여신의 말에 루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에 수긍한다면 그는 여신의 대리자가 될 것이다.
안타레스의 반응을 본다면 그와 상대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루크는 온힘을 다해 집개를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신을 향해 대리자가 되겠노라 고하려 했다.
만약.
“죄송하지만, 아스트라이아. 그건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제3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끼기긱.
루크를 찢어발기려던 집개가 크게 밀려났다.
안타레스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옷의 남성을 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조차 언제 나타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뭐냐. 네놈은. 어디서 나타났지?」
“방금.”
태연히 대답하는 남자도 경악스러웠지만, 그가 하는 행동도 놀라웠다.
검은 남성, 세한은 안타레스의 집개를 손으로 쥐고 분명하게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이게 지금의 플레이어가 낼 수 있는 근력이라고?’
안타레스가 조금 더 힘을 넣었지만 그럼에도 소용이 없었다.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갑자기 플레이어를 대리자로 삼으려는 신부터, 그걸 막은 플레이어까지.
거기다 그 플레이어는 자신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다.
“루크 테일러는 확실히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대리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대는…… 어찌 그것을 아는 거지요?」
“그런 스킬이 있습니다.”
대충 둘러대는 세한의 말에 아스트라이아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이 플레이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이 그를 대리자로 선택한 건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으니, 대리자로 삼는 건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따르도록 하지요. 까마귀자리의 플레이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세한의 모습에 아스트라이아는 조금 심통이 났지만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처럼 루크를 대리자로 삼는 건 최후의 수였다.
커튼이 걷히듯 사라지는 아스트라이아의 신격에 세한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대형사고가 터질 뻔했으니까.
‘역시 팔찌를 주길 잘했어.’
팔찌가 있는 장소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당연히 DLC 장비.
그게 아니었다면 적절한 순간에 모습을 나타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루크는 아스트라이아가 물러난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세한, 나는 대리자라는 것에 부족한 것인가?”
“아뇨,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인간이 견디기 힘들 뿐이죠.”
대리자라는 건 신을 대행하는 자리다.
문제는 루크와 아스트라이아의 상성이 심각하게 좋다는 것.
그 덕에 아스트라이아의 힘을 루크는 최대한도로 사용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상성은 좋았지만 그 육신은 견뎌낼 수 없었기에 루크의 몸은 천천히 무너져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세한은 아직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세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루크를 아스트라이아의 대리자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거기다 대리자는 단 한 명밖에 삼을 수 없으니.’
아스트라이아의 대리자는 오로지 그 아이.
린 테일러가 되어야만 했다.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도리어 살았어. 죽는 줄 알았거든.”
마음에 앙금이 남을 만한 일임에도 루크는 유쾌하게 웃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을 텐데도 호쾌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세한도 웃었다.
“이제 쉬셔도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황당한 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안타레스였다.
확실히 이 플레이어가 상당한 놈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뿐이다.
자신은 황도 12궁의 제 8궁.
천갈궁의 안타레스다.
「겁을 상실한 놈이로구나.」
이 녀석이 바로 자신이 찾던 까마귀자리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이 오만한 태도를 보라.
황도 12궁, 천갈궁의 안타레스의 앞에 있음에도 집 앞에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타레스.”
그런 안타레스의 혼잣말을 들은 듯, 세한은 피식 웃으며 손으로 밀고 있던 안타레스의 집개를 더욱 강하게 밀었다.
쿵, 소리를 내며 안타레스의 집개가 던전의 벽에 격돌했다.
“아마도 너는 내가 어떻게 카라스를 죽였는지 알고 싶어서 온 거겠지.”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넌 그런 놈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안타레스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오늘 처음 보는 놈이 마치 자신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네 소원대로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마.”
세한은 거대한 전갈을 보았다.
새하얀 색깔에 한번 숨을 내쉬는 것으로 수백의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천갈궁의 안타레스를.
“쳐맞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될 거다.”
세한은 이렇게 마주보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안타레스는 카라스와 크게 차이가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