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62화 (62/332)

# 62

062. 영웅의 심장(1)

전생에 나타났던 ‘전갈’의 숫자는 총 두 마리였다.

그 강함은 센티넬이나 레이드 보스보다 조금 약했지만, 정보를 모른다면 그 둘보다 상대하기 벅찬 몬스터였다.

녀석들이 등장하는 던전은 천갈궁에 위치한 열여덟 개의 던전 중 두 곳.

그중 이미 나타난 두 개의 던전은 아니었으니 열여섯 개의 던전에서만 찾으면 된다.

“뭔가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네.”

던전으로 향하는 중, 민아가 투덜거렸다.

반면 어릿광대의 옵저버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우리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아다녔다.

던전에 숨겨진 폭탄들, 전갈자리 안타레스의 알의 정체를 이야기하자 정의감이 비교적 강한 창우와 루크는 내 행동에 동의했지만 민아는 그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굳이 나서서 위험을 자초하는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거겠지.

지수의 경우엔 그저 내가 하면 따라가겠다는 듯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근데 하나하나 던전에 들어가서 찾아야 되는 거야?”

“그럴 필요는 없다.”

각인석의 모습만 확인하면 그것이 알인지, 아니면 단순한 각인석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장비를 챙기고 나온 시점에서 까마귀들을 던전에 보내둔 상태였다.

하나하나 들어가는 것보단 우선 까마귀로 정찰해 보는 게 낫다.

혹시 플레이어가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 루크 씨는 계속 다른 플레이어들의 감시를 부탁드릴게요.”

“그래, 어차피 나는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그렇게 하마.”

루크는 몬스터보단 사람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할 거다.

다만 자신을 심하게 낮추는 경향이 있어 조금 정정해 줄 필요가 있었다.

“도움이 안 돼서가 아닙니다. 몬스터만큼이나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도 조심해야 되니까요. 아무리 제네시스에 말해뒀다고 해도 모든 플레이어가 생각처럼 움직여 주리란 법은 없습니다.”

“하하하! 걱정 말게나. 특별히 비관하거나 하는 건 아니니.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지.”

“예, 부탁드립니다.”

정중히 부탁하는 내 모습에 민아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루크 아저씨에게는 되게 정중하네. 난 그냥 막 부려먹으면서.”

“왜. 너도 정중하게 대해줄까?”

“됐네~! 난 이 정도가 딱 좋아.”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민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루크에게 건네줘야 할 아이템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아참, 까먹을 뻔 했네, 루크 씨. 이것도 받으세요.”

“이건 뭐지?”

“팔찌입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건데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루크는 팔찌를 손목에 착용하곤 팔을 흔들었다.

“흠. 효과는 확인할 수 없는 아이템이로군.”

“예, 아무래도 제 소유라 그럴 겁니다.”

당연히 던전 클리어 보상이 아니라 DLC 상점에서 구매한 캐쉬템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구매한 거지만 되도록 쓸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대충 됐나.’

루크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본격적으로 까마귀의 시야에 집중했다.

‘어디…….’

우선 첫 번째 던전에 들어간 까마귀가 확인한 건 평범한 각인석이었다.

두 번째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네 번째 던전까지는 별일이 없었지만, 문제는 다섯 번째 각인석을 확인할 때 나타났다.

평범한 각인석이 아닌, 기이한 기척이 느껴지는 둥근 돌.

각인석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거기서 흘러나오는 힘은 결코 평범한 각인석이 낼 수 없는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바로 ‘별’의 힘을.

“찾았다.”

“어딘데?”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야.”

나는 지도를 펴서 위치를 체크한 후, 다른 던전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까마귀들을 계속 확인했다. 그리고 열두 번째 던전에서 전갈의 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와 열두 번째 던전.’

이후 다른 던전들도 훑어봤지만 다른 알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문제라면 마지막 열여덟 번째 던전은 아직 게이트 상태인지라 확인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필 마지막에 열리는 던전이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인데.’

천갈궁에서 가장 빛나는 별, 안타레스.

그건 천갈궁을 차지한 전갈의 이름과 동일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창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다른 두 개를 서둘러 처치하고 남은 하나도 확인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보아하니 게이트가 열리려면 적어도 이틀은 더 있어야 할 느낌이니 막연히 기다리고 있기는 시간이 아까웠다. 게이트는 아직 제대로 된 형태도 갖추지 못했으니까.

“그럼 먼저 두 개를 클리어하고, 마지막 남은 건 따로 처리하도록 하죠.”

“예.”

루크를 제외한 우리는 곧바로 두 개의 던전이 있는 장소로 움직였다.

던전의 입구에는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지키고 있었다.

숫자는 대략 열 명.

상당히 삼엄한 경비의 모습에 민아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변신해서 들어가면 되는데 나머지는 어쩔 거야?”

“정리해야지.”

“응? 저, 정리라니?”

무덤덤한 내 대답에 민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 민아의 말을 정정해 주려 하자, 잠자코 있던 지수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제가 할까요?”

어쩐지 얘 눈동자가 약간 분홍색으로 변해 있는 것 같은데.

“……너 나쁜 놈만 건든다며.”

“지금까지는 그랬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급한 거 같으니까요.”

급하기는 급하지.

그렇다고 죄도 없는 플레이어들을 죽일 만큼 급하진 않다.

설령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전생에서 그토록 후회했던 일을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지수.”

“네?”

“나는 네 판단을 존중하지만 적어도 무의미한 학살은 하지 마라. 아니, 이유가 있어도 몇 번을 생각해.”

어떤 특성으로 천살성의 힘을 억누르고 감추고 있는 지수지만 그 영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게임이 막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지수는 확연히 성향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이 천살성으로 개화되었을 수도 있지.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의 지수는 외줄을 타는 것만큼이나 위태로운 상태다.

본인 말로는 나쁜 놈들이 아니면 손을 덴 적이 없다지만, 그것도 한 끗 차이이니까.

“……알겠어요.”

지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 대화의 내용상 저 플레이어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뭐야, 깜짝아. 난 또 정리한다니까 죽이려는 줄 알았잖아.”

“그럴 리가 있냐?”

이 정도는 제압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주변 바닥에 떨어져있는 돌멩이를 주웠다.

거기에 가볍게 마력을 넣고, 손가락을 튕겨 쏘았다.

쏘아진 돌멩이는 하나의 마탄이 되어 경계를 서던 플레이어의 뒷목을 강타했다.

“컥!”

짧은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는 플레이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동료가 쓰러지는 걸 눈치채는 것보다 빠르게 돌멩이들이 날아갔다.

“우와.”

상황이 정리되는 데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진짜 순식간이네. 근데 정말 기절만 한 거지?”

“그래.”

플레이어의 몸은 워낙 튼튼해서 이 정도로는 후유증 하나 없이 깨어날 거다.

적당히 쓰러진 플레이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우리는 던전의 입구로 돌아왔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던전 같네요.”

“겉모습만 본다면 말이야.”

지수는 다른 던전들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입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른 던전과 별로 다를 게 없으니 그 사단이 난거다.

입구에서부터 수상한 기운이 팍팍 풍겼다면 전생에도 그런 일이 터지지는 않았을 거다.

3대 길드가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니까.

“그럼 이제 방독면 꺼내죠.”

“벌써 꺼냅니까?”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어쩌면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알이 부화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최대한 변수는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런 내 말에 창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독면을 천천히 착용했다.

“이렇게 방독면을 쓸 정도면 정말 보통 몬스터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래. 보통 몬스터가 아니지.”

주변에 옵저버들이 많이 있어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정말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안타레스의 알에서 부화한 전갈들이 평범한 몬스터일 리가 없잖아.

“그럼 들어가자.”

일행이 모두 방독면을 착용한 걸 확인한 나는, 천천히 던전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부디 이번만큼은 별다른 일 없이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

세한이 막 던전 안으로 발을 내딛었을 무렵.

루크는 아직 게이트 상태인 열여덟 번째 던전의 위치에 있었다.

본래라면 전갈의 알이 있는 다른 한 던전을 경계하고 있어야 했지만, 마침 해당 던전의 입구를 지키는 것이 제네시스 길드원이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부길드장인 홍가은까지 있는 걸 보면 전갈의 알을 발견하자마자 따로 요청을 넣었던 모양이다.

「느낌이 이상합니다, 열여덟 번째 던전을 주시하세요.」

거기다 루크 자신의 신의 요청도 있었다.

열여덟 번째 던전을 주시하라는 쪽지의 내용에 루크는 두말할 것 없이 열여덟 번째 던전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세한의 스킬을 사용한 은폐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루크도 모습을 감추는 건 특기였다.

‘여신님이 직접 말할 정도라면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세한의 말로는 대략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이 게임은 변덕이 심하다.

GM이나 퍼블리셔가 관여하게 되면 언제든지 뒤틀릴 수 있으니까.

“이봐! 이거 게이트가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다니?”

“뭔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루크가 두 시간 정도 매복해 있을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분명 생성까지 이틀은 걸린다고 했던 던전이 크게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한의 말이 틀린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자신이 이곳에 왔을 적엔 아예 게이트도 없던 장소다.

게이트가 생기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던전이 생긴다는 걸 생각하면 던전 생성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GM이나 퍼블리셔가 개입한 건지도 모르겠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세한은 루크에게 GM과 퍼블리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게이트의 생성은 이틀 후가 분명하지만 외부의 힘이 개입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대표적인 세 가지 예가 GM, 퍼블리셔, 마지막으로 시스템이었다.

다만 시스템의 경우에는 이런 사소한 정도의 변화가 아닌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기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던가.

대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크는 세한의 말을 전부 숙지하고 있었다.

우선 던전이 생겼다는 사실을 세한에게 쪽지를 통해 연락한 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크게 일렁이던 게이트는 이내 거대한 입을 벌리며 휘황찬란한 입구를 만들어냈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다른 평범한 던전과는 격이 달랐다.

“뭐, 뭐야. 이거. 지금까지 생긴 던전과는 뭔가 다르잖아.”

“분명 10점짜리 던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겼을 리가 없잖아.”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어.”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숙덕거리며 던전의 입구를 보았다.

어디로 봐도 다른 던전과는 전혀 달랐다.

10점짜리 던전이라도 입구는 다른 던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건만, 이건 겉모습부터가 위엄이 넘쳤다.

“우선 길드장님께 보고하자.”

“하지만 말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있나? 어차피 점령하는 건 금지 아니었어?”

“야, 아직 아무도 몰라.”

숙덕거리던 둘의 대화는 루크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다.

세한이나 지수와는 달리 루크는 먼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를 캐치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저 플레이어들이 숙덕이더니 한 플레이어가 어디론가 향하는 걸 확인했을 뿐이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루크는 내심 안도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게 새로 생긴 던전이라는 건가?”

아웃라이징의 길드 마스터. 강태성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호오.”

부길드장도 없이 나타난 그는 새롭게 생긴 던전을 무척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태 이런 던전이 생긴 적은 없었어. 혹시 함정인가?’

보통 독이 든 버섯은 색감이 화려한 법이다.

이 던전도 그런 이유로 멋진 외형을 갖추고 있는지도 몰랐다.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군.”

“기, 길드장님. 그러면 다른 길드들과의 약조를 어기게 되지 않습니까?”

“던전 한 개 정도는 뭐라 하지 않겠지. 그리고 제네시스 놈들도 이미 눈독을 들이고 있는 던전이 하나 있더군. 각인은 하지 않았지만 던전에 들어갔던 걸 본 자가 있다.”

그러니 이쪽이 던전에 들어간다고 해도 설령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독이 든 버섯이라면 뱉으면 그만이지.’

강태성은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3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강한 건 그였고, 다른 어떤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항상 강했다.

무려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바타가 아닌가.

그는 언젠가 자신이 최강의 플레이어가 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이런 던전 따위는 그의 일대기에 한 줄로 언급도 되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이었기에 하등 신경 쓰지 않았다.

독이 든 것이라면 뱉으면 되는 것이고, 만약 이 외형대로 대단한 뭔가를 품고 있다면 아웃라이징이 단번에 최고의 길드가 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피안화가 현재 가장 강력한 길드라고 해도, 그건 습자지 한 장 정도의 차이였으니.

“들어간다. 이곳에 있는 사람의 절반은 남고, 절반은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하, 하지만…….”

“내 실력을 의심하는 것이냐?”

“아뇨! 아닙니다!”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짓던 플레이어들도 강태성이 얼굴을 찡그리자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의 신의 아바타답게 그의 성질은 불과 같았다.

“그럼 잔말 말고 따라와라.”

강태성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 던전에 무엇이 있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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