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61화 (61/332)

# 61

061. 숨겨진 폭탄(3)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이미 한번 왔던 제네시스 길드장의 집무실.

박성혁은 세한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는 여전히 세한을 살피고 있었지만, 전보다는 경계가 한결 풀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미스릴 광맥이 정말로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안 거지?’

박성혁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상대는 검은색 두건과 목도리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건 눈이었지만, 그것도 두건의 그늘에 가려 뚜렷하게 볼 수 없었다.

‘디어사이드 길드에서는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

단순히 말단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길드의 말단이 제네시스의 검이라 불리는 홍가은을 압도하는 실력을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해한다.”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감사하군요.”

딱딱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박성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미스릴 광맥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금속도 아니라 무려 미스릴이다.

현재까지 미스릴이 발견된 사례는 없지는 않지만 극히 드물었다.

주로 퀘스트 보상이나, 아주 희귀한 던전에서나 소량으로 간혹 볼 수 있는 것이지 ‘광맥’은 여태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 미스릴은 흔쾌히 내어줬다는 건,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미스릴 이상의 금속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에 준하는 금속은 기껏해야 백련정강(百鍊精鋼)정도.

혹시나 상대가 미스릴의 가치를 잘 몰라서 양보했다는 생각도 했지만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던전의 생성이 별자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아는 길드였다.

그리고 제네시스의 본거지에도 서슴없이 침입해 홍가은을 제압할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는 길드가 미스릴의 가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가은 씨의 모두 무기가 부러졌다고 했었지.’

현재 제네시스는 전력으로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 플레이어를 육성 중이었다.

홍가은이 들고 있는 무기는 대다수 그 시험작.

그렇다 해도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보다는 훨씬 질이 좋았다.

그런 장비를 수수깡처럼 부러트렸다는 건 던전에서 대단한 장비를 건졌거나, 미스릴과 같은 금속을 재련하여 장비를 만들었다고 봐야했다.

되도록 전자이길 바랐지만, 그때 사용했던 무기가 굉장히 특이했던 것으로 보아 직접 만든 무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박성혁과는 달리 세한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박성혁에게 내어준 미스릴 광맥도 그에겐 큰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미스릴 광맥은 그거 말고도 더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이미 세한이 각인시킨 지 오래다.

두 개의 미스릴 광맥이 있었고, 백련정강(百鍊精鋼)이 묻혀 있는 광맥도 하나 차지한 상태였다.

한 개 정도는 양보해도 세한에게 하등 문제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는지 박성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 사실들을 알았는지는 묻지 않도록 하죠.”

박성혁은 영리한 자다. 굳이 캐묻기 보단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시선을 집중하고자 했다.

세한이 굳이 아웃라이징이나 피안화가 아닌 제네시스의 도움을 얻고자 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다른 두 길드라면 세한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않고 덤벼들었을 테니까.

박성혁은 지도에 표시된 열여덟 곳의 던전을 훑으며 말했다.

“서울을 뒤엎을 만한 존재가 던전의 아래에 묻혀 있다면 먼저 그것부터 처리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 그러니 한동안은 계속 던전을 감시해 줬으면 한다.”

“다른 길드에게도 말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그들이 말을 들을 거라고 보나?”

“으음…….”

박성혁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도 알고 있으리라. 다른 길드들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길드장 본인이 성급하고 다혈질인 아웃라이징은 말할 것도 없고, 피안화는 이아영의 밑에 모여든 광신적인 집단이다.

던전 안에 그녀를 위협할 존재가 있다고 판단되면 막무가내로 쳐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혹은 제네시스가 뭔가를 독차지하려고 생각하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박성혁은 한숨을 시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가장 처음 했어야 할 질문이었지만 말할 시기가 밀려 버린 질문이었다.

“당신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던전을 통제하게 되리라 생각한 겁니까?”

“대충은. 당신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도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거다.”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세한은 어느 정도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다.

‘예로부터 온라인 게임에서 사냥터 통제는 흔히 있는 일이지.’

꼭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란 자신의 이득에 관련된 건 최대한 독차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거기에 끼어든 이물이 있다면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게 정상이다.

“마치 우리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상상에 맡기지.”

“이걸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말하는 박성혁의 얼굴은 크게 기분이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하기야 미스릴 던전을 차지한 상태니 무슨 말을 들어도 기분이 상할 일은 없었다.

물론, 현재 3대 길드의 합의 때문에 각인까지는 시키지 못했지만 7점짜리 던전에 굳이 나설 길드들이 아니었다.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약조가 풀렸을 때 바로 점령하면 그만이리라.

“마지막으로, 서울을 뒤엎을 정도의 재앙이 거기에 있다면, 당신들만으로는 힘들지 않습니까? 차라리 모든 길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그랬다간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게 될 거다.”

“마치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하는 것 같은 말이군요.”

“비슷하지.”

이번 일로 생길 피해를 생각하면 세한으로선 당연한 답이었다.

“약한 플레이어는 숨을 쉬는 것만으로 죽음을 맞이할 거다.”

만약 전갈의 알이 깨어나 그것과 싸우게 된다면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그 즉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기껏해야 부길드장인 홍가은 정도가 선전할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당신의 실력은 이미 봤으니 믿어보겠습니다. 당신 수준의 실력자가 막을 수 없다면 저희들로서도 역부족이기도 하고요.”

“그래.”

“혹시나 도움이 필요해지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미스릴 광맥에 대한 빚은 확실히 갚을 테니까요.”

“알겠다.”

세한은 최대한 딱딱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함이다.

“그럼 대화도 마무리 된 것 같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 그럼 함께 나가시죠.”

“그럴 필요 없다.”

그런 말이 들린 순간, 이미 세한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진 후였다.

코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그의 모습에 박성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어떻게 사라졌는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암습을 가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하군.’

어떤 방비를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사실 세한은 그저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서 밖으로 빠져나갔을 뿐이었지만, 박성혁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디어사이드라…….”

후에 서울을 대표하는 길드를 꼽는다면 3대 길드가 아닌 디어사이드를 말하는 플레이어들이 생길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되겠지.

박성혁은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

디어사이드의 본거지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분명 녀석들은 위험한 놈이긴 하지만, 센티넬급은 아니다. 제대로 준비한다면 막지 못할 건 없었다.

‘준비만 한다면 말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들린 물건을 보았다.

그건 미스릴과 몇몇 소재를 이용해 만든 방독면이었다.

“형, 어때요? 부탁하신 대로 만들었는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 시우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던전 통제가 시작되며 쉬고 있는 다른 길드원들과 달리 시우는 쉴 틈이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몇 개 만들었지?”

“우선 다섯 개 만들었어요.”

이 방독면에는 그간 내가 얻은 던전의 소재들과 소량의 캐쉬템. 그리고 미스릴이 함유된 고가사양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 방독면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

진은(眞銀)의 방독면(B)

귀한 미스릴과 여덟 종의 소재를 합쳐 만든 특수한 방독면.

그 어떤 독무 속에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

심플한 설명의 아이템이다.

하지만 효과는 역시 발군이었다. 아이템 설명은 심플할수록 성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이 방독면의 효과는 독의 완전 무효.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단연 미스릴의 힘이 크다.

괜히 미스릴이 귀한 금속이 아니지.

단순히 단단한 걸로만 따지면 백련정강 쪽이 단단할지 몰라도 부가 효과를 따지면 미스릴이 훨씬 뛰어나다.

온갖 해로운 효과를 방해하는 미스릴의 힘이 제대로 녹아들어간 방독면이다.

“고맙다, 시우야.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형이 다 사줄게. 뭔가 원하는 게 있어?”

“아뇨, 형. 전 그냥 이런 거 만드는 게 좋아요. 애초에 지금 이 공방도 형이 전부 선물해 준 거잖아요.”

시우는 기특하게 이야기하며 씩 웃었다.

“그, 그러면 됐고.”

당연히 그런 시우의 말에 나는 내심 찔렸다.

애초에 공방이 좋을수록 이득을 보는 건 나다. 그만큼 우수한 장비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만큼 이 길드 건물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가 소모된 건 시우의 공방이었다.

온갖 캐쉬템으로 덕지덕지 발라서, 그 어떤 공방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시설을 구비한 상태였다.

미스릴을 재련해서 이런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런 연유였다.

‘나중에 따로 큰 선물을 준비해야겠군.’

어떤 걸 선물할지는 창우와 한번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참 형, 저번에 제가 만들어 드린 옷이랑 장비는 괜찮으세요?”

“괜찮고말고. 지금 있는 어떤 방어구보다 좋다.”

“에이, 과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드네요.”

시우는 내가 띄워주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손사래를 쳤다.

‘과장한 게 아닌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장비는 암야의 외투에 궁기의 가죽을 합성한 장비였다.

그 등급도 무려 A랭크.

A랭크 장비는 퀘스트가 상당히 진행된 먼 미래에도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

흉험한 암야의 외투(A)

내구도: A

방어도: A+

마법저항: A

특수능력: 그림자 질주(B+) 궁기의 날개(B)

==

보다시피 감탄만 나오는 사양이다.

어디 하나 떨어지는 구석이 없는 올 A급 스텟에 특수능력으로 ‘궁기의 날개’까지 붙어 있다.

무려 B랭크나 되지만 사실 효과는 극히 심플하다.

암야의 외투에서 새까만 날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물론 비행이 가능하며, 비행 속도는 플레이어의 민첩에 따라 달라진다.

계속 날개를 소환할 수는 없고, 하루에 최대 한 시간 동안만 소환이 가능하다.

‘넘치도록 훌륭한 장비지.’

이거에 비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입는 건 거적때기에 불과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건 준비했고…….”

다른 장비들도 체크했다.

하나같이 미스릴로 코팅된 장비들이다.

“근데 강도로만 따지면 백련청강이 더 좋은데 왜 굳이 미스릴 코팅을 한 거예요? 방독면이면 몰라도 백련청강으로 만든 무기들은 굳이 미스릴로 코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그건 미스릴이 가지는 성질 때문이야.”

“미스릴이 가지는 성질…….”

시우는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금속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녀석이니 대충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거다.

‘이번에는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쓸 일은 없겠어.’

가변형 오리하르콘은 팔에 착용하는 견갑에 수납되어 있었다.

견갑에서 칼날을 꺼내면 자동으로 오리하르콘이 코팅되는 방식이었다.

“근데 형 혼자 가는 건가요?”

“아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지.”

“왜요?”

“시간이 부족해.”

나는 모든 장비 체크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밖에는 지수와 루크, 그리고 창우가 대기 중이었다.

‘시스템이 갑자기 관여할 수도 있으니 쉬고 있을 시간은 없지.’

갑자기 시스템이 전갈의 알을 부화시켜 버리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거기다 제네시스가 다른 두 길드를 구슬려서 시간을 끌고 있지만 그것도 길지는 않을 거다.

갑자기 미친놈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