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060. 숨겨진 폭탄(2)
홍가은이라는 여성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검사’다.
단순히 직업적인 의미라기보단, 고전설화에서나 나올 법한 검객이라고 할 수 있다.
융통성 없고, 상관을 향한 충성심이 높으며 하루하루 단련을 즐거움으로 삼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무인이 됐을 여자.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돌려 말하면 이보다 이상한 사람도 없다.
‘대체 왜 이런 여자가 현대에 있는 거지?’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에는 대체 뭐하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여기가 무슨 오지산골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인데.
“받아라!”
쉬익!
어쨌든 실력 하나만은 확실하다.
심안을 가진 창우와 거의 동급이거나 이상.
제네시스의 길드 마스터인 박성혁은 그다지 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플레이어였지만, 홍가은은 확실히 강했다.
“단순한, 쭉정이는 아니구나!”
대사 선정도 이상했다.
분명 평범한 서울말을 쓰는데 간간히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가 끼어 있었다.
뭐 그건 그거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나는 가볍게 손등을 아래로 굽혔다. 그러자 길쭉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이번에 시우에게 부탁해서 만든 새로운 장비다.
팔뚝에 차는 견갑에 칼날을 수납한 물건인데, 견갑에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넣어둔 터라, 언제든 손에 쥔 무기에 오리하르콘을 코팅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튀어나온 칼날에도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하는 게 가능했다.
나는 손을 들고 가은의 검을 가볍게 튕겨냈다.
“흥!”
하지만 튕겨나가기 무섭게 가은의 검이 직각으로 꺾이며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아마 스킬을 사용한 모양인지, 방금 전보다 훨씬 강맹한 위력이었다.
카앙!
가은의 검이 부러지며 허공에서 빙글빙글 날며 떨어졌다.
“검이……?”
가은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검이 부러질 거라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 이제 대화를.”
이번에도 말을 다하기도 전에 가은은 자신의 벨트를 쭉 잡아당겨 휘둘렀다.
‘연검?!’
볼을 스쳐 지나가는 공격에 이번엔 나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허리에 착용하고 있던 벨트가 연검이었을 줄이야.
연검을 다루는 상대를 만난 건 솔직히 처음이었다.
뱀처럼 휘어지는 연검의 공격을 회피한 뒤, 칼의 면을 밟아 그대로 지면에 꽂아 넣었다.
“큭!”
지면에 박힌 검을 당겨 회수하려고 했지만, 내가 발로 꽉 누르고 있는 탓에 뺄 수 없자, 가은은 미련 없이 손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치마 아래에 숨겨두었던 두 자루의 숏소드를 꺼내들고 달려들었다.
왜 치마를 입고 있나 싶었는데, 검을 숨기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대체 몇 자루나 검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나마 무기의 질이 좋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부러져나갔다.
내가 가은을 제압한 건, 그 뒤로 일곱 자루의 검을 다 부러트린 후였다.
“큭, 죽여라.”
이제야 모든 무기를 다 사용했는지, 가은이 분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내 생에 이렇게 질긴 상대는 처음이었다.
인간의 몸에 검을 숨길 수 있는 장소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대화를 하러 왔다.”
“쥐새끼 따위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니,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다고. 제네시스의 길드장 말이야.”
제네시스의 길드장을 말하자, 가은의 눈에 재차 살기가 감돌았다.
내버려뒀다간 또 몸 어디선가 검을 끄집어내서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다.”
“……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나는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다. 너희 길드장과 대화를 하러 왔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래.”
혹여나 그 말을 어떻게 믿냐고 따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시원하게 믿어버렸다.
나야 편하긴 하지만, 얘 이래도 괜찮나.
“좋다, 디어사이드 소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홍가은은 부서진 검들을 주섬주섬 챙긴 후,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방금 죽일 듯 노려봤던 사람치곤 시원스런 안내였다.
박성혁의 집무실은 건물 7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창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우리에게 날아와서 꽂혔다.
“가은 씨.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죠?”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라고 합니다.”
“예? 그 말이 사실입니까?”
“네.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은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반대로 박성혁이 눈가는 찡그려졌다.
대체 뭘 믿고 나를 여기까지 안내했냐고 질책하고 싶은 눈빛이었다.
문제는 시선을 받은 당사자는 질책하는 시선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능력치를 무력에 올인한 삼국지 장수를 보는 것 같군…….’
박성혁의 시선에도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인 홍가은을 보면 아무래도 전생의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가장 청순한 플레이어를 꼽자면 단연 제네시스의 홍가은이라고.
“잠깐.”
그래도 나름 여기까지 안내해준 성의가 있으니 여기서는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정말로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 맞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별자리.”
박성혁의 눈이 커졌다.
별자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박성혁이 더 잘 알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쪽으로 오셔서 앉으시면 됩니다.”
현재 던전이 별자리의 형태로 생긴다는 건 제네시스와 디어사이드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오직 두 길드, 그것도 제네시스에서는 박성혁과 홍가은만이 아는 사실이었으니 내가 알고 있다는 건 간접적으로 디아사이드임을 밝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은 씨.”
“예, 길드장님.”
“……고생했습니다. 돌아가서 쉬도록 하세요.”
“아뇨, 저도 함께 있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돌아가세요.”
단호한 박성혁의 말에 홍가은은 조금 상처받은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알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불러주세요.”
그녀는 쓸쓸하게 등을 돌리며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고생이 많군.”
나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유능한 부길드장입니다. ……조금 모르는 것이 많긴 하지만요.”
모르는 것이 많다기 보단 눈치가 없고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이곳에 온 건 무슨 일 때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애초에 먼저 우리를 부른 건 그쪽이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군요.”
박성혁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별자리를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역시 알고 계셨던 거군요.”
“당연한 말을.”
보통 나는 상대에 맞춰 존대를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최대한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무시받지 않을 테니까.
특히 앞으로 할 요구를 위해선 좀 더 강압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곳에 온 건, 던전 통제를 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아니.”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통제는 계속하는 게 좋다. 나와 접촉한 건 다른 길드에겐 발설하지 마라. 허튼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예?”
박성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던전을 각인 시켜야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에서 계속 통제를 하라고 하니 이상할 수밖에.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묻지 않아도 말할 생각이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지도를 보았다.
그곳에는 디어사이드 길드에 있는 지도와 같이 던전의 위치가 하나하나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서울에 있는 던전 중에, 이곳과 이곳.”
나는 손가락을 들어 두 개의 던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근처에 생길 16개의 던전만큼은 절대 들어가지 마라.”
“마치 들어가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말하는 군요.”
“생기고 말고.”
나는 아직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별의 흔적을 따라 손가락을 쓸었다.
그 모양은 황도 12궁 중 하나. ‘전갈 자리’였다.
“거지같은 새끼들이 여기에 폭탄을 숨겨놨거든.”
황도 12궁 중 제8궁.
가장 포악하기로 유명한 전갈 자리의 파편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문제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모른다는 점이다.
***
그건 전생에 내가 겪었던 사건 중, 가장 지옥 같았던 일 중 하나였다.
처음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모른다.
알 수도 없다.
왜냐면 전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은 천갈궁(전갈자리)의 던전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다른 던전처럼 별생각 없이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던 어떤 길드가 던전 내에 있던 괴물을 깨우며 악몽이 시작됐다.
누군가가 던전에 작은 장난을 쳐둔 탓이다.
GM은 아니다. 아마 퍼블리셔 측에서 신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작은 조미료를 뿌린 게 분명했다. GM은 이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면 감봉 정도로 끝나지 않으니까.
한국에서 가장 플레이어가 많은 서울 지역에서만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걸 생각하면, 한국이 아닌 다른 서버를 이용하는 신의 사주로 발생한 사건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퍼블리셔는 던전 중 하나에 전갈자리의 힘이 담긴 파편을 각인석 대신 놔뒀다.
당연히 평범한 각인석이라 생각한 플레이어는 각인석에게 마력을 불어넣었고.
플레이어의 마력에 자극을 받은 파편은 주변의 마력과 플레이어들의 마력을 흡수한 뒤, 완벽히 부화했다.
부화한 전갈은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죽이고 던전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다.
전갈자리 본인은 아니었지만, 그 파편조차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깨어난 전갈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두 마리였다.
두 마리의 전갈이 서울의 3분의 1을 박살내는 데 걸린 시간을 불과 일주일.
간신히 쓰러트릴 수는 있었지만, 그 전투로 아웃라이징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피안화와 제네시스도 한동안 몸을 사려야 했다.
이 사건으로 서울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만 했고, 그만큼 성장도 더뎌졌다.
그렇게 굴려진 스노우볼은 다음 퀘스트에서도 그 영향을 나타냈고, 지속적으로 플레이어들을 괴롭혔다.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모여 있던 서울 지역에 이런 피해가 생긴 탓에, 한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플레이어의 수가 항상 부족했다.
그러니 이 사건만큼은 반드시 막아내야만 했다.
‘전갈 자리를 나타내는 별의 숫자는 열여덟 개.’
그렇다보니 생긴 던전도 총 18개였다.
이중 2곳에 폭탄이 숨겨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처음 생긴 두 개의 던전은 안전하다는 점이다.
사건은 이후에 생긴 16개의 던전 중 두 곳에서 발생했다.
‘혹시 시스템이 바꿔 버렸을까봐 처음 생긴 던전 두 개도 계속 감시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 두 곳도 통제가 시작된 이후 생긴 던전인지라 들어간 플레이어는 없었다.
이제 남은 16곳만 조심하면 됐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버려 두면 그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테니까.
그것들은 마력을 흡수해서 부화한다.
전갈자리 안타레스의 알이니까.
그래서 전생에는 각인을 세기기 위해 플레이어가 마력을 불어넣어서 깨어나 버린 거다.
내버려 두면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던전 안은 마력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알은 애초에 계속 마력을 숨 쉬듯 흡수하고 있었다.
마력을 불어넣는 행위는 단순한 도화선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녀석이 깨어나기 전에 알을 파괴시키면 되지만…….
‘게임의 내용이 달라진 만큼, 추가적인 조치가 있을 확률이 높아.’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확률이 높았다.
“……폭탄, 말입니까?”
박성혁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정말로 폭탄이 있다는 말인지.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천갈궁(天蠍宮)의 위치에 생기는 던전에는 서울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는 게 존재한다.”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못 믿겠다면 직접 보여줄 수도 있다.”
앞으로 생길 던전을 수색하다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다른 녀석들이면 몰라도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내가 지닌 스킬의 효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증거는?”
진지한 얼굴로 묻는 박성혁에게 나는 지도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틀 뒤 이곳에서 새로운 던전이 생기게 된다. 배점은 7점이지만 먹어두는 게 좋아.”
“왜죠?”
“미스릴 광맥이 있기 때문이지.”
미스릴은 현재 구할 수 있는 금속 중 가장 대단한 금속이다.
B급 소재이니 일반적인 경로로는 입수조차 할 수 없는 것.
당연히 박성혁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던전을 서로 차지 않기로 합의한 참이라…….”
“각인만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지. 미스릴 광맥이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만 해도 충분할 텐데?”
느긋한 내말에 박성혁의 머리가 느릿하게 끄덕여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 정말로 미스릴 광맥이 나온다면 당신의 말을 믿도록 하죠.”
“그래,”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영 못 믿는 눈치인 박성혁을 보았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 문제던 홍가은과는 극과 극이었다.
‘어차피 이틀 후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박성혁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더 이상 나눌 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틀 후, 하나의 쪽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당연히 박성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