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059. 숨겨진 폭탄(1)
“슬슬 제네시스에서 우리와 접촉하려고 하겠군요.”
순위 발표는 역시 예상대로였다.
1위는 아웃라이징. 우리는 제네시스와 공동 2위.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디어사이드가 누군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을 거다.
“제네시스에서 먼저 말입니까?”
“예, 아마 제네시스는 던전의 배점을 나누는 기준…… 별자리에 관한 정보를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놓고 배점이 높은 던전만 가져가니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겠지.
‘물론, 아직은 만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도리어 제네시스는 필히 만나야 하는 상대였다.
왜냐면 그들이 이번 퀘스트의 ‘폭탄’을 건드리게 되니까.
“근데 세한 씨.”
“예?”
“정말 저로 괜찮습니까.”
창우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강렬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 괜찮습니다.”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창우 씨보다 나은 사람은 별로 없고, 있다고 해도 이미 아바타일 겁니다.”
창우는 영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창우를 두 번째 파티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파티원으로 얻을 있는 이득 또한 모두 들은 터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파티원이 됐을 때 얻는 이득은 어마무시하니까.
‘지수도 이제 어느 정도 성장했으니, 한 명 더 받아도 괜찮겠지.’
거기다 내가 파티원에게 분배하는 포인트는 지수와 창우가 나눠가져도 충분했다.
심안 스킬에 뛰어난 검술을 지닌 창우라면, 분명 포텐셜을 터트릴 수 있으리라.
또한 내가 창우의 심안을 얻으며 공유한 스킬은 ‘결전의 시간’이었다.
섬세한 검술과 심안을 이용해 정확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창우에겐 잘 맞을 스킬이었다.
“그보다 어서 움직이죠. 이번 주도 놀고 있으면 민아가 투덜거릴 겁니다.”
“예.”
창우도 툴툴 거리던 민아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피식 웃었다.
이번 메인 퀘스트의 1등 공신은 단연 민아다.
지금도 배점이 높은 던전들을 홀로 각인시키며 막대한 점수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다른 길드들은 그런 민아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던전 경계인원을 훨씬 늘렸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각종 벌레나 동물로 변신하는 민아를 대체 무슨 수로 잡겠는가.
상대가 변신 능력자인 걸 알지 못하는 이상, 민아를 잡는다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지수도 얌전히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지수는 처음에 내가 지정해 줬던 장소 인근의 던전을 점령하며 차근차근 행동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다니는 터라 던전 점령을 많이 못했지만, 개인 무력이 강한 터라 적당히 작은 던전을 홀로 각인시키고 있었다.
루크의 경우엔 최대한 아웃라이징 길드가 활동하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들은 견제하고 있었다.
특별히 던전을 점령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디어사이드에 대한 경계심만을 높여주기만 하면 됐으니까.
‘근처에 수수께끼의 누군가가 길드를 감시한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루크는 전직 군인 출신인 만큼 이런 일에는 아주 적임이었다.
“근데 의외네요. 전 세한 씨라면 바로 10점짜리 던전을 노릴 줄 알았는데. 5점짜리 던전이라니.”
“배점이 높은 던전은 지금 한창 제네시스가 경계를 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5~6점 정도의 적당히 점수가 높은 던전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약해졌다.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연하다.
“거기다 점수가 낮다고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점수가 높은 던전은 깊이가 깊고, 몬스터가 하나하나 강했다.
덕분에 공략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민아처럼 몬스터를 스킵하고 지나갈 수 있지 않는 이상, 던전 공략에 여러모로 에로사항이 꽃핀다는 거지.
반면 점수가 낮은 던전은 길이가 짧고 등장하는 몬스터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대부분이 군체를 이뤄 우르르 몰려드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몬스터마다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얼마 차이 안 나거든요.”
왜냐면 포인트의 양은 몬스터의 등급으로 나뉘게 되기 때문.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이상, 이 시기에 생기는 몬스터들은 등급이 대다수 같았고 그 말은 얻을 수 있는 포인트도 비슷하다는 거다.
배점이 높은 던전과 그렇지 않은 던전의 차이는 얻을 수 있는 소재나 장비가 귀하냐 귀하지 않느냐의 차이.
확실히 배점이 높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어마어마하지만, 등장 몬스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적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올리는 건 근본적으로 포인트였다.
포인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플레이어를 강하게 만든다.
장비는 어디까지나 그다음.
“창우 씨.”
“예?”
“칼 집어넣으셔도 됩니다. 이 던전은 그냥 따라오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몸을 풀며 외투에 붙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번에 시우가 새로 만들어준 외투다. 궁기의 가죽과 암야의 외투를 합성해서 만든 무려 A급 장비. 현존하는 장비 중에 이것보다 등급이 높은 아이템은 없을 거다.
“지금부터 제가 쩔을 해드릴 생각이거든요.”
“쩔?”
“다른 말로는 버스를 태운다는 말이죠.”
게임 용어를 잘 모르는 창우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나에게도 꽤 기억에 남은 퀘스트다.
왜냐면 전생에 뒤쳐져 있던 내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던 퀘스트니까.
“갑니다.”
서울 전역에 퍼져 있는 꿀단지 같은 던전들.
그것들을 모두 털어버릴 때가 왔다.
***
던전 레이스 2주차.
광화문 광장의 스크린을 수많은 플레이어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스크린을 보며 서로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제네시스가 2위, 아웃라이징이 3위?’
피안화는 여전히 5위였다. 그믐달도 4위.
그렇다면 1위는?
“디어사이드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한 남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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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디어사이드 143점
2위 제네시스 112점
3위 아웃라이징 101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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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인 제네시스와 무려 30점이 넘게 차이 났다.
반면 1위였던 아웃라이징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
제네시스와도 무려 10점차가 나고 있었다.
“1주차에는 분명 아웃라이징과 20점이 넘게 차이나지 않았나?”
1주차에는 아웃라이징이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단 일주일 사이에 뒤집힌 것이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당연히 뒤집어진 건 플레이어뿐이 아니었다.
3대 길드는 지금 디어사이드라는 이들이 대체 누구인지 정보를 모으기 급급했다.
문제는 아무리 털어도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씨, 계속 우리가 먹으려는 던전 털어먹는 게 걔네 맞지?”
피안화의 길드장인 이아영은 언제나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녀답지 않게 날카로웠다.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기분이 상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아마 맞을 겁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그건 디어사이드가 확실해요.”
“와, 짜증나네. 보이기만 해봐. 진짜.”
“안 보이니까 문제 아닙니까.”
디어사이드가 공략한 던전으로 추측되는 장소가 몇 개 있었다.
누가 공략한지 모를 3~7점 사이의 던전들.
문제는 워낙 빠르게 공략당한데다 그쪽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다.
‘마치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것처럼.’
박성혁은 알지 못했다.
서울 곳곳에 퍼져 있는 까마귀들을 통해 3대 길드의 움직임은 전부 파악되고 있다는 걸.
“우리 쪽도 그놈들이 성가시긴 마찬가지야. 수상한 놈 하나가 우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고 하더군. 문제는 보통 놈이 아닌지 제대로 확인도 못했어.”
“분명 디어사이드인 것 같군요. 다른 길드의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도 모르니 최대한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근데 너희에게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뭡니까?”
아웃라이징이 강태성은 박성혁을 강하게 노려보며 탁자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디어사이드는 디어사이드. 솔직히 너희는 뭐냐? 어떻게 그렇게 치고 올라왔어?”
그는 디어사이드에게 자리를 뺐긴 것만큼이나 제네시스에게 역전당한 게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박성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히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던전을 공략하는 곳마다 배점이 높은 곳이더군요.”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지금 그런 것보다 디어사이드의 독주를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3대 길드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질 테니까요.”
“그런 거라니, 이 새끼…….”
박성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확실히 지금 플레이어들은 디어사이드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3대 길드의 힘을 의심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분쟁이 많은 강북에 거점을 둔 아웃라이징은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퀘스트 기간은 2주 남았습니다. 말하자면 바로잡으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우선 던전 공략을 멈추고, 디어사이드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점수가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길드원들을 풀어 대기시키는 거죠.”
“그렇게 입구를 지켰음에도 털린 던전들이 있지 않았나?”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배점이 낮은 던전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죠. 하지만 이번에 오른 점수를 보면 4~8점 사이의 던전을 상당수 노린 것으로 나옵니다.”
“흐음.”
확실히 현재로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번 퀘스트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디어사이드의 존재는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반드시 던전을 공략해야 되는 지금이 아니면 디어사이드를 확인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으니까.
“좋다. 아웃라이징은 당분간 공략을 멈추도록 하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던전 공략보다는 그 망할 것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저도 약속하겠습니다.”
3명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번만큼은 서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강서구 어느 건물 위.
나는 까마귀들의 시야로 주변을 관찰했다.
‘경계가 삼엄해졌어.’
던전이나, 던전이 생길 게이트 주변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서 있었다.
아마 디어사이드 길드원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았다.
“던전 공략보다 우리를 찾아내겠다는 건가.”
이정도 수의 플레이어들을 게이트 주변에 배치했다면, 사실상 던전 공략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공략에 필요한 플레이어의 수가 부족할 테니까.
‘그럼 그 성의를 봐서 한번 만나줘야겠지.’
이제 3주차에 돌입한다.
전생과는 이미 순위가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본래 1위여야 할 제네시스가 2위. 2위여야 할 피안화는 5위였다.
그리고 더 씬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믐달이라는 길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역시 1위를 차지하니 길드들도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민아에게도 더 이상 던전 공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둔 상태다.
우선 지금은 우리도 발을 멈출 때였다.
괜히 여기서 공략된 던전이 나타나면, 3대 길드끼리 의심이 싹트게 될 테니까.
3대 길드끼리 무의미한 싸움을 벌이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제네시스의 본거지에 가는 건 처음인가?’
나는 가볍게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목표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빌딩.
바로 제네시스의 본거지였다.
주변을 지키는 플레이어의 숫자도 꽤 되었지만, 내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역시 길드 하우스는 아니군.’
안전지대로 설정했다고 해도 숨어들어오는 플레이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방법장치를 포인트로 설치할 수 있었다.
디어사이드 길드하우스의 경우에는 내가 대략 5천 포인트를 넘게 투자한 탓에, 설령 나라고 할지라도 숨어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근데 길드장이 있는 방이 어디야?”
길드하우스는 아니지만 건물은 컸다.
제네시스가 빌딩 하나를 통째로 점거한 탓에 그냥 돌아다녀선 절대로 못 찾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모른다면,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된다.
‘한 명만 와라.’
어둠속에 녹아들어,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여성 하나가 다가왔다.
‘딱 좋군.’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 여성의 뒤로 이동했다.
“실례…….”
쉬익! 캉!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이 날아왔다.
창우 못지않은 날카로운 검격이었다.
결코 평범한 플레이어의 실력이 아니었다.
“누구냐!”
공격을 가한 뒤, 매끄럽게 간격을 벌리는 여성은 나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상대는 나를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군. 정체를 밝혀라!”
‘마침 또 홍가은이 걸릴 줄이야.’
운이 좋다고 할지, 나쁘다고 할지.
제네시스의 부길드장인 홍가은은 뛰어난 실력과 유도리 없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나는…….”
“아니, 숨어든 도둑놈에게 정체를 물을 필요도 없겠군. 죽어라!”
좀 말 좀 들어라.
문답무용으로 덤벼드는 홍가은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마주친 순간부터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