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58화 (58/332)

# 58

058. 던전 점령전(3)

던전 레이스는 아직 초기였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점수 배점이 낮은 던전들은 예상한 대로 숫자로 밀어붙이는 3대 길드가 대다수 가져가고 있었고, 고배점인 던전은 민아가 대활약을 하며 이미 두 개나 차지한 상태였다.

거기다 지수도 5점짜리 던전을 하나 차지해서, 현재 우리 길드는 벌써 25점을 번 상태였다.

덕분에 혹시 있을 일을 대비해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할 일이 없어졌다.

아슬아슬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 민아이니 하루 정도는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아우! 아아!”

“그래, 그래.”

안고 있는 백설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계속해서 까마귀들을 체크했다.

아웃라이징 쪽으로는 루크를 보내뒀지만, 아직까지는 접점이 없었다.

어차피 이쪽은 단순 경계만 하면 되니 별로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창우 쪽도……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제네시스 쪽은 창우가 맡고 있었지만, 역시 아직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 아저씨. 저도 백설이 안고 싶어요.”

“네가 들기엔 조금 무거울 걸?”

“그런가요…….”

유일하게 하는 일이 없는 린이 내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시우는 현재 내가 맡긴 궁기의 가죽과 암야의 외투를 합성하는 중이라 바빴다.

그리고 다른 장비들도 잔뜩 요청해 둔 터라, 백설이를 돌봐주는 건 현재 린이 전담하고 있었다.

나 역시 현재 방어구가 마땅히 없다보니 이렇게 백설이와 놀아주며 던전들을 체크하는 게 전부였다. 애초에 지금은 내가 나설 일도 없었으니까.

‘아저씨라는 말은 계속 들어도 적응이 안 되네.’

전생에도 듣던 호칭이라 익숙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 나이는 고작 23살이다.

린의 나이가 13살이니 아저씨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속이 쓰렸다.

“저도 지수 언니처럼 싸우는 법을 알려주시면 안 돼요?”

“왜?”

“아뇨,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서…….”

린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번 신자운의 습격 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바로 린이었을 테니까.

“아직은 안 돼.”

“제가 어려서요?”

“아니.”

지금의 린을 단련시키는 건 이르다.

“넌 우선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돼.”

“저를 아는 거요?”

“그래.”

“으음, 전혀 모르겠어요…….”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린을 재능만 믿고 섣불리 육성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아이는 단련이나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숨쉬고, 우리가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강해지니까.

이 아이는 그걸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위한 노력은 그다음이다.

계속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자라왔기에, 이 아이는 자신도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전혀 모르기에 애초에 발현조차 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찰나의 번뜩임만이 남아 재능의 편린을 볼 수 있을 뿐.

“아우, 우우웅~!”

그때, 백설이 고사리 같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더니 허공에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그 비눗방울은 우울한 얼굴의 린에게 날아가 퐁 터졌다.

비눗방울을 맞은 린은 우울했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하게 변했다.

“어? 우와. 뭔가 상쾌해진 기분이에요.”

상쾌해졌다고?

나는 안고 있는 백설이를 보았다.

백설이는 그저 헤헤 웃고 있었다.

‘마법인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 정신을 자극하거나 치유하는 마법인지 린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본능적으로 린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느끼고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린만이 아니라, 얘도 평범한 애가 아니네.’

태어난 지 이제 이틀째면서 벌써 마법을 사용하다니.

현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극소수라는 걸 생각하면 단순히 놀랍다고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빤히 백설이를 바라보자, 백설이는 코가 간지러운지 킁킁 거리다가 크게 기침했다.

“에, 에에에~~엣취!”

피슝!

백설이의 이마 한 가운데에 달린 외뿔에서 나온 한줄기 빛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베어내며 건물에 작은 구멍을 뚫는 기염을 토했다.

“…….”

나는 조심스럽게 백설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백설이는 뭐가 좋은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빨빨거리며 기어 다녔다.

린은 가만히 서있는 내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저, 아저씨? 놀랐어요?”

“안 놀랐어.”

그냥 죽는가보다 싶었지.

설마 뿔에서 광선을 쏠 줄이야.

전생에 봤던 기린도 뿔에서 광선은 안 쐈는데.

“빠아~!”

백설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조금 옆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광선이 무서워서 쫀 건 아니었다.

정말로.

***

“오늘 나오는 거 맞지?”

“공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던데.”

던전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오랜만에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거대 스크린으로 현재 순위를 발표한다고 공지에 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매주 금요일마다 순위가 갱신된다고 하는데, 오늘이 마침 금요일이었다.

던전 레이스가 시작하고 5일만의 일이었다.

“어떤 길드가 1위일 거 같아?”

“당연히 가장 세력이 큰 피안화 아니야?”

“근데 거기는 요즘 던전에 갈 때마다 방해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피안화는 무슨 피안화, 당연히 아웃라이징 아냐?”

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누가 1위일지 추측하기 바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1위로 점치는 길드는 근소한 차이로 아웃라이징이었고, 2위는 피안화. 3위는 역시 제네시스였다.

“오오, 뜬다. 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광화문 광장에 있는 스크린에서 던전 레이스 순위가 20위부터 순서대로 표시됐다.

순위가 하나하나 발표될 때마다 플레이어들은 일희일비했다.

“아, 우리 길드는 17위네.”

“이거 봐! 우리 15위 안에 들었어!”

대부분은 플레이어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는 순위였다.

중소 길드들은 자신들의 순위에 기뻐하며 과연 10위 안에 들어간 길드들의 순위를 지켜봤다.

이변이 일어난 건, 5위의 이름이 표시된 순간이었다.

==

5위. 피안화 길드

32점.

==

“32점?”

“그 피안화가?”

스크린을 바라보던 플레이어들이 크게 술렁였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피안화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길드장인 이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길드장인 박신일은 연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계속 던전이 붕괴되는 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피안화 길드는 이번 던전 레이스에서 악운이 끼어도 단단히 낀 상태였다.

조금 괜찮아 보이는 던전을 발견해서 들어가려고만 하면 던전이 붕괴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친 던전이 한두 개가 아닌 터라 박신일의 억울한 것도 당연했다.

“그럼 그 위는 대체 어디야?”

“3대 길드 중 하나가 5위라면…….”

짐작 가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4위의 이름이 표시됐다.

4위는 바로 그믐달이었다.

“그믐달이라면 납득이 가긴 하는 군.”

그믐달에 대한 악명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커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대형 길드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번 일로 3대 길드급의 전력을 갖추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믐달 다음으로 표시된 3위는 놀랍게도 비어 있었다.

즉, 그 이야기는 2위와 3위의 점수가 동일하다는 거다.

플레이어들은 이어서 발표되는 2위를 주목했다.

아마 이변을 일으킨 주역이 그곳에 표시되리라 생각하며.

==

공동 2위.

제네시스 길드

디어사이드 길드

55점.

==

“디어사이드?”

“거긴 또 어디야?”

제네시스가 2위에 오른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놀라지 않았다.

문제는 제네시스 아래에 있는 길드였다.

디어사이드.

꽤 많은 길드를 알고 있다는 플레이어들조차 처음 들어보는 길드였다.

마지막으로 아웃라이징 길드가 1위로 스크린에 떠올랐지만, 시선은 여전히 2위인 디어사이드에 쏠려 있었다.

이 수수께끼의 길드야말로 이번 던전 레이스의 폭풍의 핵이었으니까.

***

제네시스 길드장의 집무실.

두 명의 남녀가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은 제네시스의 부 길드장인 홍가은.

남성은 제네시스의 길드장인 박성혁이었다.

“예상한 대로 저희가 2위입니다.”

“예, 딱 생각한 대로의 순위군요. 첫 1위는 아웃라이징에게 양보해 두는 편이 좋겠죠.”

아웃라이징이 1위를 한 건, 가장 적극적으로 던전을 공략한 데다 마땅한 방해자도 없기 때문이다.

제네시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웃라이징을 앞지르는 것도 가능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괜히 처음부터 그랬다가 아웃라이징 길드에게서 견제가 들어오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점수는 유지했으니, 다음 주에 크게 점수를 벌리도록 해야겠습니다. 방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정도로.”

표면적으로는 협력하는 입장이니 점수를 크게 벌린다고 해도 갑자기 공격을 해오거나 하지는 못할 거다.

‘아웃라이징이나, 피안화나 던전의 배점 방식을 모르는 것 같으니.’

탁자에는 서울시를 나타낸 지도가 있었다.

지도에는 현재까지 나타난 던전의 위치와, 그것을 선으로 연결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별자리라.’

뭔가 의미심장한 힌트다.

앞으로 별자리에 관련된 뭔가가 일어난다는 징조인가?

“그런데 길드장님.”

“예, 말씀하세요.”

“저희와 공동 2위를 한 디어사이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박성혁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그 길드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중이었다.

“신께 계시를 부탁드려봤지만, 신님도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아주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제대로 답변하기 힘든 내용이었을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상, 다른 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보통 자신보다 급이 낮은 신에 관련되면 멋대로 말해도 큰 일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상대가 최소 자신과 비슷한 급이라는 이야기.

박성혁의 신은 법의 신 티르.

상위신인 그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존재라면, 디어사이드에도 상위신의 아바타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대체 어떤 던전을 점령하고 점수를 얻었냐는 건데.’

이미 제네시스의 정보망으로 배점이 높은 던전을 차지한 길드들은 모두 체크하고 있었다.

그중 디아사이드가 점령했을 법한 던전은 없었다.

55점이나 되는 점수를 얻으려면 1점이나 3점으로는 무리다.

평범한 길드로 위장하고 점수를 번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 무너진 던전들뿐이야.’

별의 위치를 생각하면 황도 12궁에 위치한 던전이다.

그중 무너진 던전은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

이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

“추측이지만, 피안화 길드가 노리던 이 던전들을 디어사이드가 차지한 모양입니다.”

“아! 확실히 10점짜리 던전이 네 개군요.”

“나머지 점수는 적당히 5점이나 3점짜리 던전 몇 개만 점령하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충 자신들과 비슷한 점수가 된다.

‘이자들도 별자리의 위치가 배점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곤란했다.

만약 이들이 다른 길드에게 해당 정보를 팔아넘긴다면 앞으로의 경쟁이 힘들어질 게 뻔했다.

‘앞으로 디어사이드의 움직임에 주목해야겠어.’

분명 배점이 높은 던전을 노리고 움직일 테니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미리 진을 치고 있다가 습격을 한다면, 그들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정면을 보자 어쩐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홍가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홍가은이 궁금한 것이 있을 때 표현하는 작은 신호였다.

박성혁과 다르게 홍가은은 머리 쓰는 일에 몹시 취약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가은 씨.”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예. 뭐가 이해할 수 없죠?”

“만약 던전을 무너트린 게 디어사이드라면, 던전을 각인시키고 어떻게 빠져나온 걸까요? 보아하니 완전히 돌무더기로 매몰된 모양이던데.”

“그건…….”

박성혁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 그건 그렇죠.”

제네시스의 두뇌라고 불리는 길드장 박성혁.

법의 신 티르의 아바타인 그라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