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056. 던전 점령전(1)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되나.
나는 부화기에서 기어 나온 갓난아이를 보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촉매제 효과가 대체 얼마나 뛰어나면 말이 인간이 되지?’
기린은 말이 아니긴 하지만, 대충 그렇다 치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마에 제대로 뿔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나오는 신성한 힘에 조금 안심은 할 수 있었다.
“우와, 뭐야? 얘, 대박 귀여워!”
민아가 호들갑을 떨며 아기를 안아들었다.
제대로 반응도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움직여준 민아가 고마웠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엉?’
그런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처럼 부화기에서 추가적인 메시지가 출력됐다.
바로 이번에 탄생한 기린아에 대한 정보였다.
==
기린아(麒麟兒)
엄청난 재능을 지닌 인간의 피와 성수 기린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존재.
수명과 지닌 힘은 기린과 같다.
처음 태어날 때는 갓난아이의 모습이지만 한 달에 걸쳐 십대 초반의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후에는 평범한 인간과 동일하게 20대까지 성장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특히 마법에 능하다.
천성은 선하나, 인간의 피가 흐르는 탓에 쉽게 타락할 수 있다.
많은 재능을 지니고 있어, 교육에 따라 성장방향이 달라진다.
==
“흐음.”
설명을 읽어보니 특별히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대박이라면 대박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펫이라고 생각해서 테이밍 스킬을 익힐 준비를 했는데 갓난아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무리 뿔이 달렸다고 해도 사람의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펫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걔 한 달 지나면 십대 초반의 모습이 된데. 대략 린 정도?”
“아, 진짜? 아쉽다, 이렇게 귀여운데.”
민아는 답지 않게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모양인지 아이를 안고 둥가둥가 해주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저 아이는 민아에게 맡기는 게 좋을 거 같군.
“근데 수컷인지 암컷인지…….”
“아기한테 수컷암컷이 뭐야! 기다려 봐, 내가 확인해 볼게.”
아무래도 기린의 알에서 태어난 탓에 어떻게 칭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으음, 하긴 수컷이나 암컷은 동물에게나 쓰는 표현이니.
근데 반쯤은 동물 아닌가.
“참, 그리고.”
“꺅, 뭐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갑자기 왜 놀라?”
민아는 안고 있던 아이를 자기 옷으로 감싸 숨기며 말했다.
“얘, 여자애야.”
“……그래?”
“응, 그러니까 함부로 보면 안 돼!”
눈을 부라리면서 경고를 주는 민아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따지자면 저 아이는 내 팻……이라기엔 뭐하고 내 아이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아무튼 내 소속인데 너무하네.
“그보다 이름을 정해야 될 것 같은데.”
“아, 그래? 그럼 내가 정할래!”
아주 보모 납셨다. 어차피 얘는 특별히 생각해 둔 이름도 없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길드이름 내가 지었다고 한동안 부루퉁해있었으니 이 정도는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이 아이 이름은 백설이야.”
“왜?”
“하얗잖아.”
그럼 그냥 흰둥이로 짓지 그러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백설이라고 하니 백설 공주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어울리는 이름이긴 했다.
아이는 꼭 하얀 눈 같았다. 머리카락도 희고, 눈은 청아한 파란색이라 더욱 그랬다.
아마 눈 색깔은 린의 파란 눈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아우!”
백설이 본인도 마음에 든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뭐, 그래도 이렇게 보니 귀엽기는 귀엽네.
이 모습을 며칠 못 봐서 아쉬워하는 민아가 이해되기도 했다.
갓난아이의 모습은 전생에서 볼 수도 없었으니 특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보다 멸망하는 게 빨랐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자!”
“마음대로 해라.”
민아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아이를 안고 뛰어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과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민아를 쫓아 위로 올라갔다.
민아가 백설이를 데리고 괜히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드디어 다섯 번째 퀘스트를 알리는 공지가 올라왔다.
***
==
메인 퀘스트 5
던전 레이스
도시 곳곳에 생기는 던전을 공략하고, 각인하여 차지해라.
이제부터 당신은 동료들과 힘을 합쳐 다른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던전을 각인 시킬 때마다 점수를 얻게 되며, 가장 많은 점수를 보유한 세력이 승리하게 된다.
당신의 동료들과 함께 영광을 차지하라!
* 혼자서는 퀘스트에 참여할 수 없으며, 길드에 가입 시 퀘스트가 활성화 된다.
* 1주마다 던전을 차지한 숫자가 랭킹으로 표시되며 높은 순위를 차지할수록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진다.
* 점수는 차지한 던전에 따라 다르다.
난이도 E 남은 시간 한 달
==
기억과 동일한 퀘스트였다.
아마 이제부터 다른 길드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지금까지 생긴 서울 지역의 던전들은 이미 기존 3대 길드의 차지일 거다.
아마 첫 주의 순위는 그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현재 서울에 생긴 던전들은 대부분 배점이 낮은 던전들뿐이니까.
정말 중요한 건 앞으로 생길 던전들이다.
“이번 퀘스트에서 주목할 점은 하납니다.”
나는 길드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던전에 따라 점수배점이 다르다는 것.”
퀘스트에 표시된 내용이니 다들 그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어떤’ 던전이 점수가 높은지 알 수 있냐는 거다.
“결국 최대한 많은 던전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지수는 엄지로 입술을 쓸며 말했다.
“저희는 수가 적으니 솔직히 경쟁이 힘들지 않을까요?”
“단순한 점령전으로 가면 힘들지.”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배점이 높은 던전을 위주로 차지하면 돼.”
던전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리 인구가 많아도 결국 하루에 차지할 수 있는 던전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는 이야기.
“근데 배점이 높은 던전이 뭔지 어떻게 알아? 기존에 던전을 차지하고 있던 3대 길드 애들도 모르던데?”
“3대 길드가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아냐?”
“심심해서 숨어들어가 봤으니까 알징~!”
민아는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방긋 웃었다.
할 일 없이 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특한 짓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나마 제네시스 쪽만 던전의 등장 패턴을 분석하고 있는 정도? 거기 길드장은 머리가 좀 좋아 보이더라.”
제네시스면 박성혁인가.
확실히 성가신 녀석이긴 하지.
전생의 일을 생각하면, 이미 첫 주자에 녀석은 던전 레이스를 훤히 꿰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등장 패턴이 있긴 하지.”
나는 미리 그려온 지도를 펼쳤다.
서울 전역을 나타낸 지도이며, 또한 지금까지 나타났던 던전들에 대한 것이다.
“이게 최근 일 주일간 서울에서 나타났던 던전들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이런 건 어떻게 안 거예요?”
지수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까마귀들로 계속 체크하고 있었어.”
이제는 꽤 익숙해진 까마귀의 눈으로 서울 전역 곳곳에 CCTV처럼 까마귀들을 보내둔 상태다.
다만 한 번에 볼 수는 없어서, 번호로 한 마리씩 지정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지도에는 현재 등장한 던전들과, 해당 던전의 배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으음~! 이것만 봐서는 잘 모르겠군.”
루크가 지도를 골몰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뇨,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난 볼펜을 들고 등장한 던전들을 선을 그어 연결했다.
“이게 뭐 같습니까?”
그렇게 말해도 여전히 루크는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보통 떠올리기 힘든 것이니까.
“별자리입니다.”
“별자리?”
“예, 이건 거문고자리, 저건 목동자리.”
해당 던전들의 배점은 1점이었다. 가장 점수가 높은 던전도 기껏해야 2점.
다른 던전들도 비슷했다. 가장 배점이 높은 던전이라고 해 봐야 3점 정도였다.
“억지 아냐? 던전과 별자리는 별상관도 없잖아.”
“그렇지, 하지만 가벼운 힌트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퀘스트가 별자리와 관련된 거라는 징조이기도 하지.”
탁.
나는 볼펜은 책상에 내려놓았다.
현재 등장한 던전들을 선으로 이으니 총 여덟 개의 별자리가 완성됐다.
“저희가 노릴 건 배점이 높은 던전들. 그것이 별자리의 급수에 따라 나눠진다면…….”
가장 격이 높은 별자리.
그건 황도 12궁에 위치한 별자리다.
황도 12궁에 위치한 별자리의 별 중,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가 가장 높은 배점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10점.
평범한 던전을 열 개 점령하는 것과 같은 점수였다.
거기다 다른 별의 위치에 생긴 던전도 점수가 적지는 않았다. 최소 3점부터 최대 5점까지 있었다.
물론 10점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점수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배점이 높은 던전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희귀 광물이나 소재를 얻을 수 있는 던전.
그리모어 습득이 용이한 던전 등등.
여태까지 나온 던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파격적인 보상을 가지고 있었다.
‘포인트만 제외하고.’
나는 배점이 높은 던전을 체크하며, 몇몇 던전들을 따로 체크했다.
소위 ‘꿀단지’ 던전들이다.
배점이 높은 던전들도 중요하지만 이 던전들도 중요했다.
얻을 수 있는 소재는 별 볼일 없지만 포인트 효율만 따지면 꿀도 이런 꿀이 없었다.
나는 대략적인 체크를 마친 뒤,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이 던전들이 별자리에 관한 것이라는 건, 신들 중에도 알아챈 자가 있겠지.’
다른 신이라면 몰라도 박성혁을 아바타로 둔 신은 눈치챘을 거다.
전생에 이 던전 레이스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했던 건 제네시스였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앞으로 생기게 될 황도 12궁 던전의 위치를 모두 외우고 있었으니까.
상대가 별자리라는 걸 눈치챘다고 해도, 미리 알고 있는 나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너야, 이민아.”
민아는 갑자기 자신이 언급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왜?”
“그건 좀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런 건 바로바로 설명해 주면 안 돼?”
“넌 설명이 길어서 그래.”
“씨잉.”
민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다른 사람들을 분배하는 게 먼저였다.
그편이 훨씬 빨랐으니까.
“우선 창우 씨는 저와 함께 가시고…… 참 한지수.”
“네?”
나는 조용히 지도를 보고 있는 지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너 던전 레이스에서 플레이어에게 괜히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 이건 경쟁이지 서로 죽이자는 게 아니야.”
“아, 알고 있어요. 저를 대체 어떻게 보는 거예요?”
지수가 억울하다는 듯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나쁜 애들은 괜찮지 않아요?”
“그 나쁜 애들이 뭔데.”
“다른 플레이어들을 해치려고 하거나,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대거나…….”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민아를 보았다.
민아는 그런 지수의 시선에 흠칫 놀라며 황급히 변명했다.
“나, 나는 요즘 도둑질 그만둔 지 오래야!”
“특별히 뭐라고 한 건 아닌데요.”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방금 날 봤잖아! 언니가 그렇게 보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생각해 보면 맨 처음 민아와 만났을 때 그대로 민아의 머리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음.”
나는 지수의 질문에 뭐라 답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최대한 무난한 답을 내놨다.
애초에 나도 흑천회를 아작 낸 전적이 있어서 지수에게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네 판단에 맡길게. 그래도 너무 눈에 띄게 죽이지는 마. 괜히 시선 끈다.”
“네.”
싱긋 웃는 지수의 미소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역시 지수는 되도록 별일이 없을만한 장소에 배치해야 될 것 같았다.
***
X지존패왕X: 으하하하! 그래, 나는 이런 경쟁전을 계속 기다려왔다. 전쟁이, 나를 부른다.
1망치왕1: 닉네임 답도 없는 거 보소.
X지존패왕X: 네놈이 할 말은 아니다.
정직한삶: 지금 서울 지역은 누가 먹었음?
북유럽미녀: 내가 먹었지롱.
X지존패왕X: 큭큭, 그것도 잠깐이다. 조금 있으면 내 아바타가 전부 차지하게 될 거다. 이번 경쟁전이 지나면 서울은 모두 내 지배아래에 오게 되리라.
두꺼운법전: 저거 컨셉이냐?
한창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메인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가장 들뜬 건 단연 큰 길드에 속한 아바타를 지닌 신들.
저마다 기 싸움을 하던 도중, 익명 하나가 끼어들었다.
자주 좋은 정보를 흘리는 나름 네임드 익명인 ‘익명 48’이다.
익명48: 배점이 높은 던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북유럽미녀: 얘가 그 예언 계통 신인가 하는 애지? 네 아바타는 뭐니? 우리 길드에 넣어줄게.
익명48: ㅎㅎ; 괜찮습니다. 우선 강남 지역은 여기하고, 여기가 배점이 꽤 높을 것 같습니다.
북유럽미녀: 아, 진짜? 강남 쪽이면 내 거네 이거.
두터운법전: 혹시 강서 쪽은 좋은데 없나? 내 생각엔 이거 배점 높은 던전이…….
X지존패왕X: 뭐냐. 왜 말을 하다 마느냐.
두터운법전: 크크,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익명 48: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근차근 알려드리겠습니다.
익명48은 커뮤니티에 차근차근 자신이 보유한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동안 계속 좋은 정보를 들고 날랐던 익명 48의 말인 만큼 누구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그런 커뮤니티를 보며 세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높은 배점이긴 하지, 대략 3~5점 사이정도?’
물론, 간간히 10점짜리도 끼워 넣기는 했다.
대박 배점이 있는 던전들도 알려줘야 그들도 신용할 게 아닌가?
‘두꺼운법전, 역시 티르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가 원하는 정보는 단순히 배점이 높은 던전을 물어보는 게 아닌, ‘황도 12궁 던전’이 생기는 시기와 장소였다.
‘박성혁도 이미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전생의 일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제 대충, 분배가 끝난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이번 메인 퀘스트에는 시스템의 개입이 없는 것 같았다.
“하암.”
밤늦게까지 커뮤니티를 확인했더니 영 피곤했다.
세한은 마지막으로 커뮤니티를 훑어보다가 시야 구석에서 깜박이는 아이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보낸 쪽지다.
‘민아인가?’
지수는 쪽지를 보내기보단 직접 찾아오는 타입이었고, 다른 이들은 쪽지라는 시스템 자체를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어?”
별생각 없이 쪽지를 열었던 세한은 황망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발신자가 의외였기 때문이다.
발신자: 꿈의 마녀.
바로 1회차에 세한을 아바타로 삼았던 신의 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