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55화 (55/332)

# 55

055. 디어사이드(2)

“점령전…… 말입니까?”

“예.”

나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지금 우리는 아까 내가 말했던 건물 안에 있었다.

안전지대로 설정된 만큼 옵저버가 지켜볼 걱정도 없었기에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은 총 일곱 명.

나, 한지수, 이민아. 그리고 송창우와 송시우. 루크와 린이었다.

“확실히 요즘 던전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점령전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창우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뇨, 확실히 창우 씨의 말이 맞습니다. 던전의 수만으로는 점령전이라는 증거가 안 되죠.”

“그럼?”

“던전 각인입니다.”

각인이라는 말에 모두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게 뭔데?”

“간단히 말해 각인한 사람이 속한 집단만 던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지. 지금까지의 던전은 입장 제한이 없었다면, 지금부터는 던전에 입장 제한을 걸 수 있다는 거야.”

심지어 한번 각인시키면 한 달간 재 각인이 불가능하다.

겨우 한 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보통 그 정도의 기간이면 일반 던전은 소실된다.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 던전 정도나 한 번 정도 더 연장할 수 있으리라.

“그럼 최대한 많은 던전을 얻어두는 쪽이 앞으로 유리하겠군요.”

“이 서울의 패권을 쥘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단순히 필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은 한계가 있었고, 보스몹도 발견하기 힘들다.

심지어 잘못하면 개간이 되지 않은 필드에서 센티넬과 마주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무조건 죽는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수급할 수 있으며, 포인트를 습득할 수 있는 던전은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확실히 극심한 경쟁이 될 것 같습니다.”

창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대형 길드에서는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소문으로 이미 들으셨겠지만 서울에는 대형 길드가 여럿 존재하니까요.”

우선 3대 길드로 나뉘는 아웃라이징, 피안화, 제네시스 길드.

그 아래로 수많은 산하 길드가 현재 존재하며, 음지의 길드도 존재한다.

우선 현재는 대표적인 건 그믐달이다.

그믐달은 현재 3대 길드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은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흑천회가 사라졌지만, 악마의 계약자가 모인 또 다른 길드도 분명 존재할 거다.

“아마 퀘스트는 곧 뜰 겁니다.”

빠르면 오늘. 길면 일주일 정도.

이미 대부분의 길드들에게 소문이 오가고 있을 테니 언제 공지가 떠도 이상하지 않았다.

GM 아카터스는 징계를 받았으니 다른 GM이 공지를 올리게 되겠지.

그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근데, 근데. 그럼 길드가 없는 사람들은 메인 퀘스트에 참여할 수 없는 거 아냐?”

“임시로 길드에 가입이 가능해. 그럼 해당 길드에 속한 던전을 이용할 수 있지.”

“아, 진짜?”

“물론, 대형 길드로 몰리겠지만.”

“확실히 그렇겠네.”

강한 길드일수록 규모도 크기 때문에 많은 던전을 차지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가만히 있던 지수도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오빠, 그럼 우리는 용병으로서 참여하는 건가요?”

“아니. 그랬으면 굳이 이렇게 모으지 않았어.”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슬슬 오늘 이곳에 불러 모은 이유를 말해야 할 때다.

“저는 길드를 만들려고 합니다.”

모두는 대충 예상했었는지 크게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민아나 창우, 시우의 경우엔 이미 이전에 이야기했기 때문인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다.

“앞으로는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는 일들도 생길 겁니다. 이번 경쟁전처럼 말이죠.”

더불어 지금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빠르게 육성시키는 만큼, 다른 플레이어들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했다.

그건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길드와 동료가 필요했다.

“그러니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형, 전 무조건 오케이에요. 전에도 그랬잖아요!”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말한 건 시우였다.

창우 역시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한 씨에게 빚이 있는 만큼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나도 별로 상관없어. 다른 길드에 들어가기도 귀찮고.”

“저도예요.”

민아와 지수도 간단히 긍정했다.

문제는 루크와 린 부녀였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이 멤버에 포함되었는지 조금 의문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음, 세한. 나와 딸아이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네만.”

“마, 맞아요. 우리 아빠는 저번에 심지어 맞기만 했는걸요.”

“……그, 그렇게 말하면 슬프구나. 나의 딸이여.”

“하지만 사실이잖아.”

“끄응.”

루크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팔짱을 꼈다.

부정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도리어 제가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예.”

당연하지. 이 둘을 같은 편으로 삼지 않으면 그보다 큰 손해도 없다.

린 테일러는 현존 최고의 재능을 지닌 플레이어다. 그 재능을 모두 개화하게만 한다면, 전생과 같은 배드엔딩으로 절대로 가지 않을 거다. 그 정도의 힘을 린 테일러는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루크도 마찬가지다.

루크 본인은 플레이어로서 대단치 않은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바타로선 다르다.

신과의 상성이 최상이기 때문에 어떤 플레이어에게도 꿇리지 않는다.

‘전생에는, 일시적이라도 최강의 플레이어에 도달하기도 했었고.’

찰나라고 부를 정도로 짧은 시간. 나는 아직도 그때의 선생님, 루크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네. 히어로 같은 자네라면 믿을 수 있으니.”

“히, 히어로?”

내가 당황하자, 루크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재스쳐다.

“그렇지! 히어로. 사실 나도 노리고 있는 중이라네. 이미 한번 져버려서 히어로로선 실격이지만 말이야.”

“아, 아빠. 그만해.”

린이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루크의 옷을 잡아당겼다.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모양이지만 나는 그저 쓰게 웃었다.

‘히어로라.’

나만큼 그게 안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럼 오빠, 나 중요한 건데 하나만 물어도 돼?”

대화가 대충 마무리 되자, 민아가 살며시 다가왔다.

“상관없어.”

“흠흠, 그럼 길드 이름은 뭐야? 없으면 내가 정하고 싶은데.”

“이미 정했다.”

“뭐어?”

민아는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계속 조용히 있더니 길드명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야? 뭔데? 이상하기만 해봐.”

흠잡을 기색이 만만인 민아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리도록 말했다.

“디어사이드(deicide).”

흔하다면 흔한 명칭이지만, 내게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였다.

디어사이드.

신을 죽이는 자라는 뜻이었으니까.

***

다섯 번째 퀘스트 공지가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길드 하우스를 수선했다.

하우징 기능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간단히 변경이 가능했다.

포인트만 내면 얼마든지 업그레이드나 리모델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상당량의 포인트를 이 길드 하우스에 투자했다.

우선 지하에는 거대한 공방을 만들었다.

시우에게 이전에 준 공방이 있었지만, 이쪽에 훨씬 크고 좋은 공방으로 새롭게 준비했다.

공방의 질이 좋을수록 만들어지는 장비도 성능이 좋아지니 정말 아낌없이 투자했다.

공방의 내부를 본 시우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정도다.

그리고 2층은 간단한 단련실.

원래 특별히 그런 장소를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지수의 요청이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아무래도 이전에 신자운에게 밀렸던 걸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혈천수라공의 초식을 알려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나보단 후에 더 좋은 스승이 나타나게 되므로 미뤄두기로 했다.

내가 지수에게 알려준 건 기본적인 전투방법이다.

하루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씩 지수는 나와 꼬박꼬박 대련을 하며 기술을 익혔다.

바로, 지금처럼.

‘이 녀석이 천살성치고 살기가 없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나는 정면에서 덤벼드는 지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주먹과 발이 오갈수록 지수의 눈이 점차 붉게 물든다 싶더니 폭발적으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그간 지수가 붉은색으로 눈이 변한 건 자주 봤지만, 살기의 대상이 된 적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설마 이렇게나 능숙하게 살기의 대상을 조절할 수 있다니.

타고난 천살성은 뭔가 다르긴 하다는 건가.

‘지금 이것도 내게는 억누르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빠르게 휘둘러오는 지수의 손과 발을 막아내며 지수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분명 지수는 천살성의 살기를 감출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아마 분명 특성이겠지.

유일하게 내가 지수의 능력치 창에서 볼 수 없는 부분.

문제는 천살성이 살기를 이렇게 말끔히 감출 수 있는 특성의 효과가 뭐냐는 거다.

억누르는 건가? 아니면 단지 느끼지 않게 지우는 건가.

이렇게 싸워보니 지수는 내버려뒀으면 말 그대로 마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같이 데리고 다녀서 다행이군.’

그리고 앞으로도 데리고 다녀야겠네.

내버려두면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니까.

이제야 화곡동에서 들었던 말이 이해가 됐다.

아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수를 건드렸다가 좆된 게 분명했다.

천살성의 특성상 적으로 간주한 상대를 살려둘 턱이 없잖아.

파앙!

나는 마지막으로 지수의 주먹을 강하게 튕겨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말하자 지수의 살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정말 그렇게 넘치던 살기가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와. 한 대도 못 때렸네요. 오빠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평범한 게임 폐인 아니었나?”

“내가 싸우는 건 이전부터 봤을 텐데 이제 와서 그러기냐?”

“싸우는 걸 본 거랑 실제로 싸워본 건 다르죠.”

지수는 투덜거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래도 대충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것 같아요.”

“……아, 그래?”

이래서 재능충들이란.

덜컹.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자, 단련실의 문이 열렸다.

“오빠, 여깄지? 으아, 땀 냄새~!”

지수와 달리 자신의 패배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보완할 생각이 없는 민아였다.

사실 쟤도 재능충이니까 특별히 단련할 필요가 없긴 하다.

그냥 적당히 구르다보면 알아서 싸움법을 익히겠지. 여태 그래왔을 테고.

‘그래도 나중에 지수랑 대련시켜야지.’

저런 애는 나보단 지수와 싸워보는 게 효과가 직빵이다.

“무슨 일이야? 단련실은 절대로 안 온다고 하더니만.”

“이씨, 그럴래? 지금 부하기에서 이상한 소리 나고 있단 말이야.”

“이상한 소리?”

“응. 갑자기 이상한 팡파레 같은 소리가 나더라고.”

나는 민아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부화기는 민아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그냥 민아가 할 일이 제일 없어 보였으니까.

‘드디어 기린의 열매가 깨어나는구나!’

기린의 열매를 부화기에 넣은 지도 곧 한 달이다.

그렇다보니 나도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그’ 던전이 열릴 때까지 안 깨어나면 큰 문제였다.

여차하면 부화기를 통째로 던전에 들고 가야 되나 싶었을 정도다.

“가자. 아직 나온 건 아니지?”

“응, 아직은 소리만 나고 있어.”

나는 민아와 함께 서둘러 부화기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시우의 공방보다도 한층 아래다.

던전을 순회하면서 모은 아이템이나, 시우가 만든 장비들을 모아두는 장소였다.

그중 중앙에서 번쩍 거리는 부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오.”

드디어 나오는 구나.

나는 부화기의 앞으로 다가갔다.

부화기의 크기도 한층 커져 있었다. 족히 2미터가 넘는 천장까지 닿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정도면 상당히 성장해서 나오는 건가?’

유년기의 기린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봤던 기린은 대체로 성체였고, 그건 우리가 있는 이 건물보다도 컸다.

[성공적으로 성수 ‘기린’의 부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업적 ‘성수를 길들인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촉매제가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최초로 기린아(麒麟兒)가 탄생했습니다!]

부화기에 가까이 다가가기 무섭게 연속으로 알림이 떠올랐다.

나는 그 알림들을 흡족한 얼굴로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린아?

뭐야, 그건. 흔히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할 때 기린아라고 칭하긴 한다.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치익──

불안한 예감이 드는 동시에 부화기의 아래에서 작은 문이 열렸다.

나는 당연히 처음 집어넣었던 뚜껑에서 나올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따로 문이 있었다.

나는 방금 막 태어난 기린을 보기 위해 문이 열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빠우!”

왜냐면 그곳에서 기어 나온 건, 길쭉한 외뿔을 지닌 인간의 아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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