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054. 디어사이드(1)
길드를 만든다면, 조금 더 후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길드로 끌어들이려는 멤버가 너무 화려했다.
현재 존재하는 최고의 대장장이 플레이어 중 하나인 송시우.
나와 함께 다니며, 센티넬을 잡거나 다양한 활약을 한 이민아.
말할 필요도 없이 현존 플레이어중 탑 티어에 속하는 한지수.
그리고 뭔가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는 소녀, 린 테일러.
심안을 가진 창우나, 능력치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지닌 루크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이었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나까지.
현재 신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플레이어의 수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날이갈수록 우리에게 붙는 옵저버의 수도 많아졌다.
여기에 GM 아카터스가 복귀하면 GM의 옵저버들까지 추가될 거다.
거기다 이번 신자운 사건으로 나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안전한 장소와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하다고.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조금 있으면 길드와 관련된 퀘스트가 시작될 거다.
본래는 다른 길드에서 용병으로 활동할 생각이었지만, 그냥 미리 길드를 만드는 게 날 것 같았다.
매번 옵저버를 피하고 다니는 것도 성가셨기 때문이다.
네 번째 퀘스트 이후, ‘길드’를 창립할 수 있게 되며 도심지에 길드하우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이미 있는 건물이 있는 땅을 구매하는 건데,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은 안전지대로 설정된다. 당연히 넓은 땅을 사면 살수록 많은 돈이 들기에 상당량의 포인트를 지니지 않으면 길드 창립만 하고 길드 하우스는 구매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전지대가 포함된 ‘길드 하우스’가 아닌 일반 건물을 거점으로 사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흑천회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뭐, 안전지대라고 설정됐어도 플레이어의 침입은 막지 못하니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안전지대에는 옵저버들도 들어올 수 없지.’
겉에서 지켜볼 수는 있지만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안전지대로 설정된 건물 안에 있다면 옵저버를 신경 쓰지 않고 푹 쉴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좀 더 자유롭게 장비를 제작하거나 DLC 아이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게 오빠 건물이야?”
“그럼 누구 거겠어?”
민아는 한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대충 4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이다.
더 큰 건물도 구매할 수 있었지만 눈에 띌까 봐 작은 건물을 선택했다.
“포인트로 이런 게 사지는 구나.”
“이번 사태로 빈 건물이 많아. 개중에서는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와, 전혀 몰랐어.”
전부 게임 시스템에 포함된다.
정부가 다시 제 기능을 하려고 한다 해도 초월적인 존재들 덕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지나면 포인트로 지역투자도 가능해진다.
그때쯤 되면 정부는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에게밖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사실 이거 말고도 건물 몇 개를 더 사두긴 했지만.’
거긴 내 개인 공방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시우에게 이것저것 물건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그 건물에 하나둘 짱박아두는 중이다.
“들어가서 빈 방 많으니 마음에 드는 곳 써라.”
“와! 오빠, 최고! 내가 이래서 오빠를 좋아한다니까!”
그렇게 말한 민아는 뭔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뒤를 보았다.
뒤에는 조용히 지수가 서있었다.
“어흠.”
민아는 살며시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길드 하우스를 샀다는 건, 길드를 만들 생각이라는 거지?”
“그래, 자세한 말은 들어가서 하자.”
현재 나와 함께 있는 건 지수와 민아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따로 볼 일이 있어서 나중에 오기로 했다.
민아도 평소라면 혼자 다녔겠지만, 2주 전 신자운에게 습격당한 후로는 나나 지수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패배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한지수.”
“……네?”
지수는 지수대로 기분이 침체되어 있었다.
일주일 간 워낙 우울해해서 제대로 말도 걸지 못했다.
얘도 신자운을 이기지 못해서 그러는 건가?
두들겨 맞았던 민아와는 달리 지수는 거의 신자운가 비슷하게 싸웠다.
계속 싸웠다면 아마 지수가 이겼겠지.
녀석이 비탄의 가면을 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요즘 왜 그렇게 말이 없어?”
“아뇨, 그냥. 으, 제대로 못 지켰으니까요.”
“그거야 뭐…….”
타이밍이 안 좋았다. 지수는 계속 그 근처에 있었지만, 잠깐 다른 곳으로 간 사이 신자운이 습격한 것이니까.
“이미 지나간 일이니 됐잖아.”
“아니요. 아무래도 이번에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어요. 단순히 능력치를 올리는 거나 스킬을 익히는 것 말고도 제대로 된 기술을 익혀야 될 것 같아요.”
의지를 불태우는 지수는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얘는 지금도 강한데 대체 얼마나 쌔지려고.
‘신자운이라.’
녀석과 싸웠던 일을 떠올렸다.
벌써 2주전 일이다. 그런데도 녀석과의 싸움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쁜 놈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한 놈.
악마의 계약자인 건 분명해서 죽여 두려고 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녀석.
‘마지막에 대체 누구야?’
나는 분명 녀석의 몸에 정확히 주먹을 때려 박았다.
그러나 무언가가 개입해서 그 힘을 흘려 넘겼다.
신은 아니다.
신은 그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왜냐면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바로 악마.
악마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게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놀이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 세계에서 생활한다.
진심으로 인간과 계약을 맺고 버리고, 죽이고 보호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교류한다.
물론, 이 세계에 현현(顯現)할 시에는 힘이 억제된다는 건 같다.
별자리들이 받는 제약처럼 강하면 강할수록 큰 제약에 걸린다.
그럼에도 신자운을 보호했던 힘은 강대했다.
현재의 나로선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최소 대악마.’
대악마는 마계 서열 20위권에 드는 강자들이다.
네비로스도 27의 악마였지만, 20위 안에 드는 악마와는 차이가 심했다.
‘어쩌면 마계를 지배하는 7대 악마일지도 몰라.’
그런 놈의 눈에 신자운이 든 것이다.
‘성가시게 됐어.’
녀석이 내게 복수하려는 것과는 별개로 존재 자체가 변수다.
대악마와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는 전생에도 몇 없었다.
아마 다섯 명이었나? 그중에서 7대 악마와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는 하나였다.
물론 신자운은 아니다.
신자운이라는 강자는 전생에 없었고, 대악마의 개입 또한 이 시기에는 없었다.
악마들이 이 세계에 손을 뻗치고 있는 건 맞지만, 대악마쯤 되는 존재는 아직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후에 열릴 마계의 연회쯤은 되어야 무거운 몸을 움직이지.
녀석들이 지배하는 세계는 지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광활하니까.
“그런데 다음 메인 퀘스트는 언제 시작하는 거야? 공지도 없고 깜깜무소식이네. 이것도 직접 찾아가야 되는 건가?”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럼?”
마치 나라면 뭐든지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묻는 민아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알고야 있었지만 그걸 말할 수야 있나.
다음 메인 퀘스트는 지금까지의 메인 퀘스트와는 좀 달랐다.
지금까지의 메인 퀘스트가 대부분 특정한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끝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괜히 ‘길드’가 업데이트 된 것이 아니었다.
***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커다란 회의실 안에 여섯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현재 이 서울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드들,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3대 길드의 수뇌부들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와 연합을 제의한 건가?”
“최근 그믐달과의 세력다툼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네놈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강서 일대를 지배하는 아웃라이징 길드의 길드 마스터, 강태성이 야수 같이 웃었다.
“애초에 그런 제안을 하는 그쪽이야 말로 뭔가 문제가 아닌가 싶군.”
“부정할 수는 없군요.”
강태성의 말에 답한 건 그와는 전혀 다른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강남 일대에서 현재 가장 큰 세력을 형성중인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마스터, 박성혁이었다. 지금 대부분 정리가 된 강서나, 강북과 달리 강남 지역은 여전히 길드간의 세력다툼이 한창이었다.
현재는 제네시스가 가장 크다고 하더라도 언제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지 몰랐다.
“뭐야~! 둘이 계속 싸울 거면 우린 간다? 불러놓고 뭐하는 거야?”
그런 둘의 대화에 관심 없다는 얼굴로 하품하는 여성이 한 명이 있었다.
현재 이 회의실에 있는 여섯 명 중 단둘뿐인 여성 중 하나이자, 피안화 길드의 마스터인 이아영이었다. 그녀는 눈에 띄는 미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신은 프레이야.
미의 여신의 가호를 입은 그녀의 외모는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하품마저 하는 그녀의 모습에 누가 지적을 할 만도 하건만 회의실에 있는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
왜냐면 지금 이곳에 있는 세 길드 중에서 가장 거대한 길드가 바로 ‘피안화’이기 때문이다.
다른 두 길드는 여전히 자신의 구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지만, 피안화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이미 강북 지역을 손에 넣은 지 오래였다.
그녀의 한마디면 목숨을 내놓고 덤벼드는 플레이어들이 넘쳐났다.
가장 광신적인 길드이자, 가장 거대한 길드이기에 다른 두 길드장도 쉬이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개 같은 년을 확 조질 수도 없고.’
강태성은 속으로 박박 이를 갈았다.
순수한 무력으로는 그가 이중에서 가장 강했다.
그의 신은 무려 아레스. 전쟁의 신의 가호를 받은 만큼 전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피안화는 개인의 보잘것없는 무력과는 별개로 세력이 워낙 크다보니 안하무인한 성격의 강태성이라도 강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
“자자, 너무들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오늘 여러분을 부른 건 단지 연합을 제의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럼 뭐냐. 이번에도 시답지 않은 말을 했다간 바로 나가겠다.”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강태성이 덤벼들 기세로 말하자, 박성혁의 옆에 있던 제네시스의 부 길드 마스터 홍가은이 손을 허리춤으로 뻗었다.
한마디만 더 하면 당장이라도 베어내겠다는 경고와 같았다.
“호오, 한번 해보자고?”
“그만하세요, 가은 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살살 달래는 박성형의 말에 홍가은은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손을 내렸다.
강태성 또한 그런 반응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지금 싸우지 않으셔도 곧 싸우게 되실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 길드에 선전포고라도 하시겠다?”
“그게 아닙니다. 메인 퀘스트와 관련된 겁니다.”
“메인 퀘스트?”
그제야 손톱을 다듬고 있던 이아영도 관심을 보였다.
“지금 ‘길드’라는 것이 업데이트 된지 시간이 좀 흘렀음에도 메인 퀘스트는 시작되지 않았죠. 하지만 징조는 있습니다.”
“징조?”
“예, 최근에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한 수많은 ‘던전’들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게시겠죠?”
당연히 알고 있었다.
최근에 일어나는 분쟁의 대부분은 던전을 둘러싼 이권다툼 때문이었으니까.
단순히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상점표 장비에 비해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고 얻는 장비는 월등히 우월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장비의 드랍뿐이 아니다.
던전 보스를 잡으면 희소한 확률로 특수한 스킬을 가진 그리모어를 가질 수도 있었고, 채광포인트나 채집포인트도 존재했다.
오로지 채광이나 채집만을 위해 존재하는 던전도 존재했다.
전에도 분명 던전은 존재했지만, 요즘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는 그게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징조? 그냥 던전이 생길 뿐이잖아?”
“저희는 이미 어떤 퀘스트의 한가운데에 있고, 저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죠.”
정확히는 두 번째 퀘스트부터 그랬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레이드 보스 때만해도 그랬지 않습니까? 타이머가 뜨기 전부터 몬스터들이 숨어 있던 던전들이 발견되었죠.”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번에는 수가 훨씬 많습니다. 덕분에 길드간의 분쟁도 점점 커지고 있고요.”
박성혁은 곧 메인 퀘스트가 시작하리라 짐작했다.
던전을 둘러싼 경쟁전으로.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길드’가 있었다.
“사실 저는 여러분에게 연합을 제의하는 게 아닙니다.”
성혁의 시선이 두 명의 길드마스터를 훑었다.
그 둘 역시 성혁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한 것이다.
“적어도 저희끼리는 다투지 말자는, 평화적인 제안일 뿐입니다.”
강한 영향력을 지닌 3대 길드 간에 다툼이 있어서 좋을 건 없었다.
거기에서 이득을 보는 건 다른 중소길드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