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49화 (49/332)

# 49

049. 계약자 신자운(1)

본거지는 인천 주안.

자세한 위치는 지부장이 남긴 문서에 남아 있었다.

악마와 관련된 일은 쓸데없는 은원관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움직인 건 나 혼자였다.

‘다만 따라붙은 녀석들이 많아서 성가시네.’

오늘은 달도 잘 보이지 않은 밤하늘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상당한 숫자의 옵저버들이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어릿광대의 옵저버다.

개인 옵저버라 다른 옵저버랑 모양이나 색도 미묘하게 달라서 알아보기가 쉬웠다.

‘당신 아바타인 민아나 지켜볼 것이지.’

하기야 지금 민아는 자신의 능력을 이것저것 실험해 보느라 지켜볼 것도 없었다.

당장 메인 퀘스트도 없었고, 서브 퀘스트는 아직 게임 시스템이 지원을 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가 끝나야 서브 퀘스트를 비롯한 기능들이 해금되기 때문이다.

“괜히 들키지 말도록 합시다. 옵저버가 보이면 습격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내 말을 들었는지 옵저버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옵저버 자체를 은폐시켜 모습을 감춘 것이다.

저런 기능이 있으면 진작 쓸 것이지.

아카터스가 조종하는 옵저버는 보이지 않았다.

‘그야 제재를 먹었으니까.’

녀석이 운용하는 옵저버는 당분간 볼 일이 없을 거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건 공용 옵저버가 대다수였다.

공용 옵저버는 일정 포인트를 이용하면 일정시간 대여할 수 있는 옵저버로, 따로 옵저버를 사용할 일이 있으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플레이어를 관찰하는데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이렇게 몰려든 걸 보면 일정 포인트를 희생하고서라도 내 플레이를 보고 싶다는 거겠지.

이건 어떤 의미론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신들의 주목을 받는 인간이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니까.

‘응?’

난 그 옵저버들 틈에서 아직까지 은폐를 하지 않은 한 공용 옵저버를 볼 수 있었다.

다른 것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뭔가 기색이 달랐다.

끈적끈적한 열망과 감탄이 담긴 시선이 느껴졌다.

‘설마.’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내던 녀석은 한 명뿐이니까.

좀 더 유심히 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이미 그 옵저버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마녀의 옵저버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혹시 몰라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했지만, ‘녀석’으로 추측되는 신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마녀는 채팅 같은 걸 할 성격이 아니었지.

‘아니, 아니겠지.’

만약 녀석이 전생과 같은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이미 내게 아바타 신청을 넣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게는 많은 아바타 신청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중에 마녀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저 녀석들을 어찌 상대하냐는 건데.”

어두운 하늘 위에 밤처럼 어두운 까마귀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게 시야를 제공하고 있는 까마귀들이다.

새까만 까마귀들은 아침과 달리 플레이어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밤하늘을 배회하고 있었다.

‘숫자도 화고동 지부에 비할 바가 아니군.’

주원에 오고 느꼈지만, 이 근방에는 악마의 하수인들이 쫙 깔려 있었다.

본진인 건물 근처에만 수십 명이 깔려 있었고, 저 빌딩 안에는 그에 버금가는 수의 하수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흑천회에 속한 악마의 하수인들의 숫자는 대략 수백에 이를지도 모른다.

‘길드’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러니 나중에는 수천이 넘는 하수인을 모아 더 씬과 대립할 만도 하지.

규모야 더 씬이 훨씬 컸지만, 수천이 넘는 하수인들은 평범한 플레이어들 수십 명의 힘을 낼 수 있으니까.

“이 정도 수면 아무리 나라도 정면은 부담스러운데…….”

악마의 계약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무작정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내 기억으로는 다섯 정도가 있었지만, 그건 한참 후의 일이니 정보가 부족했다.

툭.

“뭡니까?”

무언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어릿광대의 옵저버다.

어릿광대는 아마 내가 그저 민아의 옵저버정도로만 인식하리라 생각할 거다.

아무래도 좋다. 그 정도만 알고 있는 게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좋으니까.

어쨌든, 옵저버는 내게 이렇게 묻고 있는 거다.

‘정말로 방법이 없어~?’

라고.

‘그럴 리가 있나.’

확실히 적의 숫자는 많다.

무작정 들어가면 포위될 테고, 주원에 있는 모든 하수인들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럼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겠지.

아무리 나라도 그건 선택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싸우는 건 나중으로 미룬다.

“우선 지하에 있는 이들을 구출할 겁니다.”

지부장이 지니고 있던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 건물의 지하에 있는 ‘유물’을 깨우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그러니 나는 이 녀석들을 처리하기 전에 아이들부터 구출할 생각이었다.

녀석들을 처리하는 건, 그다음이었다.

***

현재 내가 가진 스킬은 대부분이 ‘암행’에 최적화된 스킬들뿐이다.

소음차단도 그렇고, 그림자 질주나, 흑의 장막까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에 최적화된 스킬들이었다.

고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플레이어보다도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그러니 본거지에 숨어들어 지하로 내려오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아, 빡치네.”

지하로 내려오자마자 거친 욕설이 들렸다.

나는 어둠에 녹아들어,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엿들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오늘은 분위기가 안 좋다고.”

“이 새끼들은 예상보다 왜 이렇게 빨리 죽었데? 적어도 이틀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나?”

“몰라. 시발. 화곡동 지부가 개박살 나서 애새끼들도 새로 구해야 할 판인데.”

두 명의 사내의 대화가 들려왔다.

슬쩍 보면 그들은 아이들의 사체를 철창에서 꺼내고 있었다.

‘이런, 이미 늦었나?’

바로 온다고 온 것이었지만, 제시간을 못 맞춘 모양이다.

“근데 그냥 이대로 꺼내만 두면 돼?”

“모르겠다. 평소에는 신자운 대장님이 직접 처리하러 가시는데…….”

신자운 대장?

처음 듣는 이름이다.

전생에도 그런 녀석이 흑천회에 속해 있었나?

애초에 악마 쪽은 잘 알지 못하다보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마치 군데군데 빠져있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다.

‘더 들을 말은 없겠어.’

아이들의 죽음과 관련된 대화를 계속 들어봐야 기분만 나빠질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

지하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내었다.

아이들의 사체를 질질 끌고 움직이고 있던 두 명은 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등을 돌렸다.

“어? 뭐야 누구야?”

“모르는 얼굴인데? 신입인 거 아냐?”

그다지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내가 같은 편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 인상 좀 펴라. 젊은 놈 같은데.”

“아마 우리 둘이 고생할 거 알고 신입놈 하나 보냈나 보네.”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이들은 나를 완벽히 같은 악마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무심코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내가 그렇게 악마의 하수인처럼 보이나?’

거기다 인상 좀 피라는 말을 듣다니.

그래도 전생에 비해선 많이 피고 다닌 건데.

“뭐해? 빨랑 돕지 않…… 컥!”

“뭐, 뭐야? 갑자기…… 으헉!”

털썩.

녀석들이 괜한 말을 떠들기 전에 바로 죽였다.

괜히 친근하게 군 탓에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툭툭.

어릿광대의 옵저버가 또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인상 좀 피라는 말에 짜증났어?’라는 느낌이다.

“아닙니다.”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녀석들이 바닥에 눕혀둔 아이들의 시체에 손을 댔다.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에, 몸이 차가웠다.

어디로 봐도 죽은 시체였다.

“이상한데…….”

하지만 나는 이상했다.

왜냐면 죽은 아이들의 얼굴이 지극히 평온했기 때문이다.

‘비탄의 가면은 슬픔을 흡수한다.’

그것을 흡수당한 인간은 죽는 그 순간까지 비탄에 빠진 채로 죽는다.

당연히 평온한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다 비탄의 가면에 축척된 힘도 생각보다 적어.”

철창 안에는 비탄의 가면이 벽에 걸려 있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힘은 강력했지만, 화곡동에서 보았던 문서로 볼 때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다.

적어도 2주간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빨아먹었을 테니까.

“잠깐만, 이건…….”

나는 철창 안에서 굴러다니는 작은 구슬을 발견했다.

이건 아이템이다.

일반적으로 구하기는 힘든 아이템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일정시간 후, 구슬에서 가스가 나와 일정범위 내의 생명체를 가사상태에 빠트린다.

문제는 ‘몬스터는 제외하고’다.

이걸 사용하는 경우는 몬스터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 스스로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몬스터 중에서는 이미 죽은 인간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녀석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고블린 같은 놈들은 죽은 인간의 사체도 훼손하는 편이라 사용하면 편안한 자살이 될 수 있다.

‘이것의 지속시간은 대략 세 시간.’

아이들이니 배는 더 길게 갈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이 아이들은 가사상태에 빠졌을 뿐 죽지는 않았다는 거다.

‘대체 누가 이걸 사용한 거지?’

사용한 의도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인가? 악마의 하수인이나 계약자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모르겠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 아이템을 사용하여 다른 하수인들을 속일 필요가 없으니까.

“…….”

나는 구슬을 주머니에 넣었다.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우선 지금은 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먼저였다.

그래야, 이곳을 끝장내 버릴 수 있으니까.

***

“아직도 누구인지 못 찾았나?”

“예, 자운이가 열심히 찾아보는 모양인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답니다.”

“아니, 대체 어디서 그런 놈이 튀어나온 거야?”

흑천회를 이끄는 길드장, 강천우는 속에 열불이 끓어올랐다.

한창 잘 진행되고 있던 일에 찬물이 끼얹어진 격이었으니까.

“네비로스 님에게는 좀 더 기다려달라고 해야겠군.”

“예, 아무래도 아이들을 다시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하…….”

지금 세상에서 밖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죽은 탓에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개간된 장소가 아니면 여전히 몬스터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상식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리 없었다.

“검은 옷을 입은 놈이라, 다른 악마의 하수인일 확률이 높아.”

웬만한 계약자들은 다 알고 있는 천우다.

그중에서 까마귀를 다루는 녀석은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왜 까마귀를 다루는지도 불명이다. 까마귀를 다루는 스킬이 있는 건지, 아니면 까마귀를 테이밍해서 사용하는 건지.

“어떤 악마의 하수인, 아니 계약자라도 길드장님에게는 안 될 겁니다!”

“당연하지. 자운이 녀석 정도만 아니면 다 내 발밑이야.”

천우는 껄껄 웃으며 신자운을 떠올렸다.

신자운이 그를 따른 건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네비로스도 감탄할 정도의 강함을 가진 신자운은 천우가 흑천회를 세우는데 도움을 준 일등공신이었다.

“참, 그 신자운 말인데…… 괜찮은 겁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지?”

“녀석은 너무 강하지 않습니까. 만약 녀석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그런 소리 말게. 그래보여도 자운이는 나를 큰형처럼 생각해서 절대 배신하지 않아.”

“정말로 그럴 거 같습니까?”

남자의 말에 천우는 입을 다물었다.

‘절대’란 없다.

신자운이 만약 배신을 해서 자신을 습격한다면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넘어가지.”

“예, 하지만 꼭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 까마귀를 다루던 플레이어 말인데…….”

천우의 말이 멎었다.

“왜 그러십니까? 말하다 마시고.”

“이봐, 저, 저게 뭐로 보이지?”

넋이 나간 천우의 얼굴은 그다지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남자는 대체 무엇이 천우를 그토록 놀라게 했나 궁금해졌다.

“헉.”

그리고 본인도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창밖으로 무수한 숫자의 까마귀들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콰창! 콰창!

창문이 깨어지며 날아온 까마귀들이 들어왔다.

그것은 비단 천우가 있는 최상층만이 아니었다. 건물 전체에 까마귀 때가 유리창을 깨며 들어온 것이다.

“뭐, 뭐냐! 갑자기 어디서 까마귀들이 날아온 거지?”

천우는 기겁하며 갑자기 날아든 까마귀들을 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애초에 수많은 까마귀들이 건물을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온 것도 이상했지만 이어진 까마귀들의 행동도 이상했다.

계속 벽이나 바닥에 몸을 짓이기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까마귀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 까마귀를 유심히 관찰하던 남자가 말했다.

“형님, 까마귀의 발에 뭔가가 붙어있습니다.”

“뭐?”

천우는 바닥에 바르작거리는 까마귀의 발을 유심히 보았다.

확실히 뭔가가 붙어있었다.

“뭐냐, 이건. ……폭탄?”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마치 벽에 붙여 사용하는 것 같은 형태의 폭탄이었는데, 접착부에 벽 대신 까마귀의 발을 붙인 것 같았다.

“폭탄, 폭탄이라고?!”

천우는 기겁하며 까마귀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전력으로 깨어진 창문을 향해 달렸다.

──이미 늦은 행동이었지만.

콰콰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흑천회의 건물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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