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48화 (48/332)

# 48

048. 악마의 흔적(2)

느긋하게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몸을 숨기고 있던 조직원들이 순식간에 나를 둘러쌌다.

전후좌우를 순식간에 포위하며 시꺼먼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보단 확연히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전부 악마의 하수인이라 보면 되겠군.’

적어도 계약자는 보이지 않는다.

악마가 계약자를 비교적 쉽게 정한다고 해도, 눈이 없는 건 아니니 적당히 재능이 있는 이들을 자신의 계약자로 두고 있겠지.

흑천회 소속 계약자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녀석들의 두목뿐인지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대체 뭐하는 놈이냐? 대체 어디 소속이기에 이런 간 큰 짓을 벌인 거지? 혹시 그믐달 소속이냐?!”

“그믐달?”

거긴 또 어디지?

더 씬이 없으니 온갖 범죄길드가 우후죽순 생긴 모양이네.

“어딘지 알 필요 없다. 어차피 너희들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미친 새끼! 밖에서야 무슨 꼼수를 사용한 건지는 몰라도 여기서는 마음대로 안 될 거다!”

이 조직원 중에서는 제일 직급이 높아 보이는 녀석이 소리쳤다.

대략 10명이 넘는 조직원들이 포위하고 있으니,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이해는 한다.

‘생각보다 안에 있는 녀석들도 많은걸.’

창문으로 볼 때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보였으니, 당연히 그 이상을 생각하긴 했지만, 입구에서 마주친 숫자만 이 정도라면 배는 더 있다고 봐야 했다.

“마음대로 될지 안 될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나는 양손에 단검을 손에 쥐었다.

실내에서 싸우기엔 창이나, 길이가 긴 도검류는 알맞지 않았다.

거기에.

“까마귀의 눈.”

나는 그림자에서 대량의 까마귀를 소환했다.

평소처럼 까마귀를 사용해 시야를 확보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림자에서 대량의 까마귀를 소환해 주변으로 날려 보냈을 뿐이다.

그 숫자는 대략 스물.

이 이상 소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모 마력을 감당할 수 없을 확률이 높아 그 정도에서 그쳤다.

“이 까마귀들은 뭐야?! 젠장!”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까마귀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조직원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정면에 서있던 조직원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으악!”

단번에 목젖을 찔러 절명시킨 후, 단검을 역수로 잡고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녀석의 동맥을 긁었다.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여, 죽이라고! 커억!”

악을 쓰며 소리치는 녀석이 입에 단검을 쑤셔 박았다.

까마귀로 녀석들의 동작과 시야를 방해하며, 속전속결로 녀석들의 급소를 노렸다.

혹여 피하지 못할 것 같은 공격은 그림자 질주를 이용해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괴, 괴물 새끼…….”

털썩.

“저기다!”

마지막 조직원이 쓰러트리기 무섭게 다른 악마의 하수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방금 만큼 수가 많지는 않았다.

‘납치당한 아이들은 어디에 있지?’

나는 탐사 스킬을 사용해서 건물 내부를 살폈다.

건물의 구조로 보아 아무래도 지하 쪽이 마음에 걸렸다.

위층에는 특별히 납치한 아이들을 둘 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이곳에 있는 놈들을 모두 죽이고 생각하자.’

네비로스의 하수인들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이놈들은 사실상 몬스터나 마찬가지니까.

어떤 악마와 연관되어 있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네비로스의 하수인의 경우엔 개중에서도 악질이었다.

오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걸 좋아하는 네비로스이다보니 그 하수인이나 계약자도 그 성향을 닮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몇몇 악마의 경우에는 신보다 인간에게 우호적인 경우도 많았다.

물론 네비로스는 아니지만.

인간을 죽이고, 그 비탄을 갈취하는 것이 네비로스에 속해 있는 인간들의 특징이었다.

“스물 하나, 스물 둘…….”

나는 쓰러트린 조직원들의 숫자를 세었다.

대충 건물에 있던 조직원들은 모두 죽인 것 같았다.

덜컹.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각종 보안장비와 두터운 철문으로 보호받고 있었지만 내게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하 4층까지 내려가서야, 내가 찾던 어린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 누구세요?”

“흑흑, 엄마아.”

철창에 갇혀 있는 대략 열 명이 넘는 아이들.

나이는 유치원에 막 다닐 법한 어린애부터 10대 초반까지 다양했다.

“이제 저희도 그곳으로 가는 건가요……?”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이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나를 여기 있던 조직원들과 착각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건 아니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은 악마의 하수인의 특징 중 하나니 오해할 만도 했다.

거기다 내 인상은 좀 어둡기도 하고.

“그곳이라니?”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말했어요. 저희를 ‘플레이어’로 만들어 주겠다고요.”

나는 아이의 말에 그제야 녀석들이 무슨 말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꾀어냈는지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짓된 선동에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당연히 후천적으로는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였고, 전생에는 그런 것들로 많은 이슈가 있었다.

‘이놈들도 그걸 이용하고 있었구나.’

비탄의 가면과 관련된 일은 한참 후에야 알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플레이어는 후천적으로 될 수 없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저와 비슷한 애들 중에서도 플레이어가 있는 걸요!”

“그건 애초에 플레이어였을 뿐이야. 플레이어가 되는 건 나이와 상관없어.”

“그, 그럼 제가 왜 플레이어가 아니죠? 저는 반에서도 늘 1등이었고, 운동도 잘하는데!”

남자아이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아마 남자아이가 아는 지인 중에 플레이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본인도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던 거겠지.

“거짓말쟁이! 우리를 플레이어로 만들어준다고 했으면서! 그럼 어서 이곳에서 내보내 줘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아이를 대하는 건 서툴렀다.

린의 경우엔 워낙 어른스러운 탓에 괜찮았지만, 평범한 애들은 역시 무리다.

“아, 아저씨는 다른 검은 아저씨들이랑은 다르네요?”

“당연히 나랑 걔네는 다른 곳 소속이니까.”

“소속?”

“있는 곳이 다르다는 말이야.”

애초에 지금은 특별히 속해 있는 곳도 없다.

길드를 만들기는 해야 되는데, 어느 지역의 건물을 구매하는 게 좋나.

“저, 저희가 돌아가면 그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쫒아오는 거 아닌가요?”

막상 건물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혹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다시 자신들을 데려갈까 걱정되는 눈치다.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던 것과 별개로, 그들이 무섭기는 했던 모양이다.

“이 근처에 있던 검댕이 놈들은 모두 쫓아냈으니까 걱정 말고 집에 가. 다음부터는 이상한 말에 속으면 안 된다.”

“정말요?”

“그래.”

나는 어서 가라는 의미에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열댓 명의 아이들은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더니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내부를 살펴볼까?”

아이들도 구출했겠다. 이제 느긋하게 건물 안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7층이던가?

거기서 지부장이라는 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부터 뒤져 봐야겠군.’

되도록 녀석들의 본거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한 번에 뿌리를 뽑을 수 있도록.

***

“흑흑, 으아아앙!”

“집, 집에 보내 주세여!”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철창 안에서 울렸다.

스무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방 중앙에는 기괴한 형태의 가면이 있었다.

마치 절규하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 같은 가면.

아이들이 울수록, 그리고 겁을 집어먹고 철창을 흔들수록, 가면은 은은한 빛을 냈다.

그것은 사람의 비탄과 절규를 양식으로 삼는 비탄의 가면이었다.

가장 감정이 풍부한 아이들일수록 그 순도가 높았고, 깔끔했다.

네비로스는 어른들의 욕망이 섞인 음습한 고통과 절규보다 아이들의 순수한 슬픔을 좋아했다.

저벅.

철창을 지키고 있던 남성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검은 인영이 하나 있었다.

흑천회에 존재하는 두 명의 계약자 중 하나인 신자운이었다.

“겨, 경계 중 이상 없습니다! 특별한 문제없이 가면은 정상 작동중입니다.”

“그러냐.”

삐딱한 자세로 걸어온 그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철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덕분에 경계를 서던 남성은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신자운이 누구던가.

조금만 거슬리는 짓을 하면 아군이고 뭐고 없는 사내다.

거기다 그런 망나니 같은 짓을 해도 악마의 계약자이다보니 흑천회의 수장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애초에 같은 악마의 계약자이니, 누가 위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신자운이 좀 더 욕심이 있었다면 흑천회는 그의 것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야.”

“네, 넵.”

“잠깐 좀 나가봐라.”

“예?”

갑작스런 신자운의 말에 보초는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다.

“밖, 밖이요?”

“거슬린다.

그렇게 말한 신자운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담배 필 때 거슬리니 나가라는 뜻이다.

“괜찮습니다. 담배연기 조금 맡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거슬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네, 넵!”

신자운의 말에 잘못 거슬렀다간 뼈도 추리기 힘들었다.

밖으로 나간 보초를 확인한 신자운은 느릿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아이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무심하게 보며, 그는 주머니에서 동그란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곤 잠시 그것과 철창 안을 번갈아보다가 조용히 안으로 굴려 넣었다.

“쯧.”

신자운은 철창 안에서 빛을 발하는 가면을 보며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다.

‘형님은 왜 이런 물건을 사용하려는 건지.’

악마의 계약자가 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걸까.

신자운은 흑천회의 보스에게 빚이 있었다.

힘든 어린 시절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의 덕분이니까.

그래서 신의 아바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걷어차고 굳이 그의 아래로 들어간 거다.

악마의 계약을 맺은 것도 그 이후다.

강천우가 네비로스의 계약자였기 때문에 자신도 계약을 맺는 편이 좋을 것 같았으니까.

“하여간 좆같은 세상.”

악마와 계약을 맺을 생각은 없었지만, 흑천회 보스의 제안을 거절하긴 힘들었다.

“크, 큰일입니다!”

“……내가 나가라고 했을 텐데?”

방금 전에 내쫓았던 보초가 헐레벌떡 뛰어서 들어왔다.

그는 경고성이 담긴 신자운의 말에 움찔했지만, 식은땀을 닦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화곡동 지부가 괴멸 당했습니다.”

“뭐?”

“누,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영상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인데,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까마귀들이 cctv를 대부분 가렸다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라니, 다른 악마의 하수인들인가?

현재 악마의 계약자들 중,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건 흑천회였다.

그러니 적도 많은 터라 누구인지 특정하기 힘들었다.

‘거기다 까마귀라고?’

아무래도 특이한 악마의 계약자인 게 분명했다.

아니면 하수인이거나.

“형님은?”

“5층에 계십니다.”

화곡동 지부에 있던 하수인들은 족히 오십 명은 넘었다.

그런데 괴멸 당했다고 한다면 적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소리다.

“자운아!”

서둘러 5층으로 올라가니, 흑천회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강천우가 신자운을 반겼다.

그는 방금 전에 들은 보고 때문에 열이 올랐는지, 한쪽 눈이 검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개새끼가 화곡동 애들을 다 죽여 버렸다.”

“들었습니다.”

“네가 좀 손봐줘야겠는데…… 괜찮지?”

“형님이 원하신다면.”

“그래, 그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강천우의 말에 신자운은 옅게 웃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악마 같은 인물인 건 분명했지만, 자신에게는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선 화곡동 주변을 수소문해서 추적해 보겠습니다.”

“너만 믿는다. 꽤 강한 놈 같으니 방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CCTV에 찍힌 남자가 대단한 실력자인 건 분명했지만, 신자운은 자신이 있었다.

네비로스가 말하길, 현재 존재하는 악마의 계약자 중에 가장 강한 건 신자운이라고 직접 이야기 했으니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