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47화 (47/332)

# 47

047. 악마의 흔적(1)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번 쑥대밭이 되었던 곳이지만, 다시 도시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장소였다.

“아마 이쯤이라고 했었지.”

세한은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늘 누군가를 옆에 데리고 다녔던 탓인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지수가 따라온다고 말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린의 곁에 남겨뒀다.

민아도 강하긴 했지만 역시 지수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으니까.

더군다나 녀석들이 보복을 하러 올지도 모르니 최대한 방비를 해두는 편이 좋았다.

‘부화기도 있으니.’

역시 기린의 열매라서 그런 가 아직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밥솥만 했던 부화기가 어느 새 린의 키에 육박할 만큼 커져 있었다.

안에서 자라고 있는 기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벌써부터 가게를 여는 사람들이 있네?

이 근처는 아무래도 시장이 있는 모양인지, 가게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은 몬스터들의 습격에 엉망진창이 되어 방치되어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다시 가게를 여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으로 볼 때 이 근방의 몬스터들은 모두 토벌된 모양이다.

근처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이 혹시 모를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고 있는 거겠지.

‘아직 위험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몬스터를 잡음으로서 포인트를 얻어 생활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과 달리, 일반인들은 여태 자신들이 하던 것처럼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들에게 돈은 거의 무의미했지만 일반인들에겐 아니었다.

“저기요.”

나는 근처에서 가게를 열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갑자기 말을 건 나를 슬쩍 살핀 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복장을 보니 플레이어인가 하는 양반이구먼.”

“예, 맞습니다.”

“무슨 일이슈? 물건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가벼운 어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불안감이 서려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감히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뭐 좀 물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거?”

“혹시 이 근처에서 어린이들이 납치당한 사건이 있었습니까?”

나는 최대한 느릿한 어조로 질문하며 아저씨의 안색을 살폈다.

아저씨는 최대한 평온한 기색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린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눈에 격정이 술렁였다.

“……난 몰러. 이상한 질문 하지 마슈!”

“정말입니까?”

“그, 그렇다니께!”

아저씨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눈치였다.

주변에서 걷던 플레이어들도 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단서가 부족하네.’

아저씨의 반응을 보니, 분명 뭔가 있는 건 확실했다.

‘한번 떠볼까?’

최근 이 근처에서 잠시 활동했었다는 지수의 이름을 빌리기로 했다.

“아저씨.”

“와 그러슈! 할 말 없다고 했잖여!”

“혹시 이런 사람을 아시나요?”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한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에는 어설프게 웃고 있는 지수가 찍혀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찍어둔 사진이다.

“히, 히익.”

아저씨의 반응은 굉장히 적나라했다.

방금 어린이 납치 사건에도 최대한 평온을 가장하던 것과 달리, 명백히 두려워하는 얼굴이다.

‘아니 얘는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솔직히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은근히 말을 돌리는 지수의 모습과 ‘있었는데 없어졌다’라는 말.

거기에 어마어마하게 올라간 스킬과 능력치를 보고 뭔가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아무튼 지금은 이런 반응을 이용해야겠지.

“제가 이 사람과 좀 아는 사이인데…….”

“저, 정말 아는 사이유?”

“왜요, 통화시켜 드려요? 이제 전화도 다시 되는 거 알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TV 방송도 점차 복구되고 있었다.

그건 인간이 복구 시킨 게 아니라 대규모 업데이트의 일환으로 시스템이 활성화시킨 것이다.

차후 업데이트될 기능들의 대비라고 해야 되나.

우선 지구의 사회가 어느 정도는 안정화되어야 계속해서 메인 퀘스트를 낼 수 있을 테니까.

“아, 알겠시유. 말해줄 테니께, 전화기 좀 저리 치워!”

아저씨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에 나는 내심 지수와 오지 않은 걸 조금 후회했다.

함께 왔으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여, 여기는 보는 눈이 많으니 안으로 들어오셔.”

아저씨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난잡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는 몇 번이나 입을 달싹 거리더니, 이내 마음을 정리한 듯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그놈들은 최근 이 근방을 주름잡고 있는 녀석들이요, 그그 뭐시냐. 길드? 라고 하던데.”

“예.”

“원래부터 있었던 놈들은 아니고, 아까 사진으로 보여준 아가씨가 이 근방의 조직을 싹 조져부렸당께. 아주 보이는 족족 아주 그냥……. 흠흠.”

대충 지수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다 얽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있었던 조직과 마찰을 빗었고, 그들을 싹 죽여 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녀석’들이 이곳을 장악한 거고.

“아무튼 놈들이 최근 어린애들을 납치하기 시작했소. 물론 우리들도 입막음 당했지, 안 그러면 우리의 목숨은 없을 거라고 했으니…….”

실제로 자식이 있는 이들은 거세게 항의했으나, 그들은 모두 살해당했다고 한다.

“왜 아이들을 납치하는지는 모르겠슈. 듣기로는 본 거지는 인천에 있는 모양이고 이곳에 있는 건 지역지부라고 하던데.”

“위치는 어딥니까?”

“저쪽에 있는 하얀 건물이유.”

아저씨는 거기까지 말하곤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이야기요. 더 이상은 아는 게 없으니 삶든 볶든 소용없슈.”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인지, 아저씨는 내 눈치를 살피며 벌벌 떨었다.

혹여나 내가 해칠까 겁을 먹은 모양이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그려.”

아저씨는 어서 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가게에 있는 물건이라도 구매해 드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돈이 없었다.

“그럼 장사 잘하세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 역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얀 건물이라.’

전생에는 이곳에 녀석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기존에 이곳을 장악한 건 더 씬 소속의 다른 길드들이었으니까.

***

난 ‘까마귀의 눈’을 사용해 하얀 건물 주변을 관찰했다.

확실히 근처에 있던 어느 장소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흑발에 흑안.’

솔직히 동양인들은 구분하기 어려운 특징이다.

악마 특유의 음습한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면 겉모습만으로는 알아채기 힘들다.

특히 계약자가 아닌 하수인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악마의 계약자는 조금의 변색도 없는 완벽한 검은색 머리칼에 눈동자를 지니고 있지만, 단순한 하수인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색깔이 짙을 뿐이다.

다만 여기서 차이가 있는데, 단순한 악마의 하수인은 악마에게 받은 힘을 사용할 시, 안구 전체가 시커멓게 변한다. 그리고 풍겨오는 기운도 좀 더 질적으로 떨어진다.

‘악마란 존재는 이래서 성가시다니까.’

신의 경우 아바타를 삼을 때, 보통 한 명, 많아야 두 명 정도로 아바타를 만든다.

그러니 아바타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편이며, 간섭도 많다.

악마는 반대다.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 계약자의 숫자도 많고, 하수인은 그보다 훨씬 많다.

하나의 길드 전체가 한 악마의 소속인 경우도 흔하다.

왜냐면 신들은 플레이어가 가진 가능성이나 재능, 그리고 자신과의 상성을 보지만 악마는 그런 것따위 보지 않는다.

힘이 필요해서 갈망하는 애들.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유혹에 약한 인간을 좋아한다.

악마는 그들에게 간단한 요구를 하며, 지속적으로 힘을 빌려준다.

신의 아바타에는 못 미치지만, 평범한 플레이어보다는 확연히 강한 힘을.

많은 숫자를 통제하기에 악마에게 부담이 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초상의 영역에 발을 디딘 악마가 고작 수십의 인간에게 힘을 빌려준다고 지칠 턱이 없지 않은가.

거기다 이쪽은 ‘게임’으로서 이 세계에 접근한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멸망해 갈 이 세계에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자 온 것이다.

신들이 놀이라면, 저쪽은 진심.

다만 인간에게는 해가 되는 진심이다.

그러니 조금 무리한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거지.

“어린아이를 모은다면 비탄의 가면인가.”

나는 전생에 있었던 한 악마의 무구를 떠올렸다.

비탄의 가면이라 불리는 한이 응집된 악마의 거죽을.

소유자는 네비로스.

악마 서열 27위의 제법 강한 악마다.

카라스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되는 상위의 존재.

“그렇다 해도 본체가 아닌 한 무의미하지.”

비탄의 가면은 인간의 슬픔을 흡수한다.

슬퍼할수록, 눈물을 흘릴수록 그 감정을 흡수하며 동시에 인간의 생명을 가져간다.

흡수한 에너지는 고스란히 네비로스에게 포인트가 되어 들어가게 되며, 비탄의 가면의 힘은 점점 강해지게 된다.

그것을 쓴 대상을 초상의 영역. 즉, 최소 별자리 급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되도록 이곳에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확률은 없지.

아마 본거지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하나 확실해진 게 있었다.

현재 악마의 하수인들을 움직이고 있는 게 흑천회라는 것.

왜냐면 네비로스는 흑천회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두목이 네비로스의 계약자였으니까.

‘본래라면 인천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할 녀석들이…….’

호랑이가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그렇다면 오늘 할 일은 정해졌군.’

본거지의 위치를 알아내고 이곳을 궤멸시키는 것.

‘인천에 있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위치까지는 모르니.’

스윽.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림자에서 까마귀들을 꺼냈다.

대략 열 마리의 까마귀를 꺼내 계속해서 날려 보냈다.

‘창문으로 보이는 조직원의 숫자는 열 둘. 외부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25명.’

상당한 숫자다.

그냥 다짜고짜 쳐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흑의 장막.”

나는 어둠속으로 녹아든 다음, 소음차단으로 최대한 소리를 죽였다.

그다음 그림자에서 새까만 깃털을 몇 개 뽑아냈다.

까마귀를 꺼내는 요령과 같지만, 거기서 깃털만 쏙 뺀 거다.

당연히 평범한 깃털은 아니다.

애초에 까마귀 자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물이나 마찬가지이니 깃털도 하나의 마력덩어리나 마찬가지.

간단히 설명해서 마력덩어리를 뭉친 탄환과도 같은 거다.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닌 한, 외부로 마력을 방출할 기술은 보통 없지만 이건 약간의 꼼수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마력탄을 던지는 만큼 위력도 제법 괜찮고 ‘필중’ 스킬 덕에 빗나갈 일도 없다.

가장 중요한 건, 검은 깃털을 날린다는 점에서 조금 멋있다.

“어디…….”

나는 그것을 손가락에 낀 다음, 매섭게 던졌다.

쉬쉭!

“컥!”

“으헉!”

길을 걷던 플레이어 두 명이 깃털을 목에 맞고 쓰러졌다.

그리곤 기척을 감추고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 미리 봐두었던 장소로 이동했다.

“습격이다! 저쪽 방향에서 검은 깃털이 날아왔다!”

“어떤 새끼야! 당장 죽여!”

순식간에 조직원들이 몰려들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시커먼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달음에 내가 방금 서 있던 건물로 뛰어올라왔지만, 당연히 그곳에 나는 없었다.

“크악!”

“이번엔 저쪽이잖아! 한두 놈이 아닌 것 같은데?!”

“젠장,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전혀 안 보인다고!”

“색적, 색적 스킬을 사용해!”

당연히 색적 스킬로는 날 발견할 수 없다.

흑의 장막은 폼이 아니거든.

그림자에서 머무는 이상, 완벽하게 기척을 감출 수 있다.

그림자 질주를 통해 계속해서 이동할 수 있는 내게는 최적의 스킬.

거기다 깃털을 던지는 순간 날 수 있는 조금의 소리도 ‘소음차단’을 통해 막아져서 사실상 나는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고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빠, 빨리 위에 연락해, 보통 놈들이 아니…… 컥!”

그림자 질주의 쿨타임이 돌면 5분간 쉬었다가 다시 공격했다.

이런 행동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하자, 이 근방의 조직원들을 깔끔하게 전멸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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