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046. 상황정리(2)
인천 중구.
어두운 골목에서 무장한 남성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험악한 인상을 한 남성의 외침에, 주변의 다른 남성들이 손에 잡힌 줄을 잡아끌었다.
“으헝헝, 엄마!”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닥쳐! 떠드는 새끼는 죽는다, 알지?”
“흐끅. 흑, 흑흑.”
줄에 묶여 끌려오는 이들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줄에 묶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오늘은 제법 많은데요?”
“일반인들이 숨어있던 장소를 발견했거든. 저쪽에 초등학교 하나 있잖아? 거기에 숨어 있더라.”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오늘은 마음이 편했다.
“근데 이 애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위에서 데려오라고 했는데.”
선글라스의 남자는 끌려가는 애들을 보았다.
말단인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저 아이들이 무사하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악마들이니까, 아이들의 피나, 영혼 같은 걸 원하지 않을까?”
“으으, 생각만 해도 살벌하네요.”
“마, 쟤네 입장에선 우리가 더 살벌한 놈이야.”
낄낄 거리며 웃는 선글라스 남자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악마나 자신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일 게 분명했다.
‘만약 아바타가 되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걔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후회하는 남자도 있었다.
플레이어로 선택되긴 했지만, 아바타가 되지 못한 자신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악마가 내민 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악마는 신들과 달리 까다롭게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말만 듣는다면 몇 명이든 계약을 해줬고, 강한 힘을 손에 쥐어줬다.
아바타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대한 힘을.
대신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했다.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도 그런 대가의 일환이었다.
“잡담을 하는 걸 보니 꽤나 널널한 모양이군.”
싸늘한 목소리가 남자들의 뒤에서 들렸다.
“시, 신자운 대장님!”
“시끄러.”
남자는 입에 물고 있던 담뱃불을 자신의 손바닥에 지져 껐다.
뜨거운 담뱃불을 손바닥에 지졌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이것이 악마의 계약자.’
흑발에 흑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특징이었지만, 그는 좀 달랐다.
빛이라도 흡수할 것 어두운 머리카락.
악마의 계약자에게 잘 드러나는 특징이다. 밝은 낮이면 그나마 구분할 수 있었지만,
이런 밤이면 그 차이를 알기 힘들었다.
“여,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쥐새끼 하나가 기어 들어와서 잡으려고.”
“예?”
남자가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 대체 누가 이곳에 있는 겁니까?”
“몰라.”
“예?”
“모른다고.”
처음에는 농담하는가 싶었지만 덤덤한 얼굴을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아이들을 운송하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신자운에게로 향했다.
신자운은 나른하게 웃으며 말했다.
“모르니까 다 죽이면 되겠지. 안 그러냐?”
싸늘한 정적이 골목에 내려앉았다.
순간 농담인가 싶었지만, 천천히 검을 꺼내는 신자운의 모습에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이런 시발! 튀어!”
걸리면 뒤진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신자운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인천 지역에서 세력을 모으고 있다는 ‘흑천회’의 행동대장.
악마의 계약자이며 혼자서 수십이 넘는 플레이어를 도륙했다던가.
“귀찮게스리.”
신자운이 옅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붉은 잔영이 골목을 휘감으며, 골목은 단숨에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범일동의 한 골목에서 신원미상의 시체 열두 구가 발견되었다.
***
대한민국 서울, 신림.
생필품을 한아름 들고 이동하고 있는 두 소녀가 있었다.
한 명은 교복을 입은 십 대 후반의 소녀였고, 다른 한 명은 10대 초반의 외국인 소녀였다.
그 두 명은 바로 민아와 린 테일러.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과 생필품을 구매해 오는 중이었다.
사회가 점차 복구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장소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안전지대 편의점뿐이었다.
편의점에서는 당연히 일반적인 화폐를 사용할 수 없었고, 포인트로만 이용이 가능했다.
“나 이번에 좀 쩔었지?”
민아는 이번 레이드 보스를 잡으며 생긴 무용담을 린에게 늘어놓는 중이었다.
“무려 금 등급이라니. 나 정말 대단하다니까.”
민아는 자화자찬을 하며 만면에 미소를 피웠다.
이번엔 세한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얻은 성과라 더더욱 기뻤다.
‘세한 오빠의 도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이번에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세한이 줬던 스킬 ‘불가사리의 그리모어’ 덕분이다.
먹은 금속을 신체의 일부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인데, 변신능력을 가진 지수와는 효율이 발군이었다.
신체의 일부를 칼로 변형시켜 공격한다거나, 혹은 방패로 만들 수도 있었다.
파괴가 되면 변신이 풀리긴 하지만, 신체에 손상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저는 무서웠어요, 언니나 아빠가 다칠까 봐.”
린은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에이, 그 정도는 괜찮아. 그리고 루크 아저씨도 강하던데?”
솔직히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신의 격은 확실히 높지 않은 것 같지만, 전투실력은 확실히 전문가였다.
“내가 또…….”
“언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던 민아에게 린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왜 린이 소리를 치는지 민아는 순간 이해 못 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부웅!
“칫!”
머리 위로 망치가 지나갔다.
일반인이었으면 일격에 목숨을 잃었을 정도의 위력이다.
아마 민아와 린이 플레이어라는 걸 알고 습격한 게 분명했다.
“──하!”
서걱!
크게 뒤로 뛴 민아가 손가락을 날카로운 칼날로 변신시킨 뒤, 망치 자루를 절단했다.
그 다음, 발을 금속으로 변화시킨 뒤, 원심력을 사용해 크게 회전하며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크악!”
쇳덩어리에 그대로 얻어맞은 거나 마찬가지인 남자가 피를 흩뿌리며 물러섰다.
“이런 시발, 평범한 애들이 아니었잖아? 한꺼번에 덤벼!”
남자의 외침에 주변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뛰어나왔다.
동공에서 시커먼 물결이 퍼지며 안구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인간형 몬스터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로 봐도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을 습격한 이상, 민아는 이들을 몬스터로 가정하기로 했다.
인간을 습격하는 플레이어들은 몬스터와 다를 게 없으니까.
“어려서 만만하게 본 모양인데…….”
민아의 양팔이 좌우로 펼치며 크게 휘둘렀다.
평범한 여성의 팔이었던 것이 거대한 멘티스의 낫과 같은 팔로 변했다.
거기다 일반적인 멘티스의 낫도 아닌, 미스릴로 만들어진 멘티스의 팔이다.
“아, 미친! 이년 아바타다!”
민아의 팔은 순식간에 습격자들의 무기를 종이처럼 오려냈다.
나름 비싼 값을 주고 산 무기였지만, 민아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제야 습격자들은 민아가 평범한 일반인이나 플레이어가 아닌 ‘아바타’임을 직감했다.
이런 특수한 스킬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어린애를 노려!”
더 이상 민아를 노리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지, 습격자들은 빠르게 타깃을 변경했다.
옆에서 떨고 있던 린을 향해 손을 뻗은 거다.
‘아차.’
린을 신경쓰는 걸 깜박 잊었던 민아는 자신의 실책에 당황했다.
스륵.
“엇?”
습격자의 손이 린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 린의 몸이 살랑이며 물러섰다.
세 명이나 되는 습격자의 손이 린의 몸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찬스!”
덕분에 큰 빈틈이 생긴 것을 노려 민아가 양팔로 습격자들의 손을 잘라냈다.
시커먼 피가 바닥을 적셨다.
“젠장! 튀어!”
아무래도 더 이상 싸워봤자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습격자들은 빠르게 도망갔다.
뒤늦게 확인한 것이지만 습격자의 숫자는 총 네 명이었다.
“린, 괜찮아?”
“네, 네. 괘, 괜찮아요. 언니.”
린은 방금 일에 놀랐는지 파르르 떨었다.
방금 전에 습격자들의 손을 피한 소녀답지 않았다.
“대단하다. 어떻게 피했어? 난 그때 솔직히 잡히는 줄 알았는데.”
“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언니가 하는 거 흉내냈을 뿐이에요.”
“내가 하는 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기에, 민아는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뭐가 어쨌든 안잡히면 된 거지.
“흐음, 근데 뭔가 구려.”
민아는 바닥에 떨어진 습격자들의 잘린 손을 보았다.
붉은 피가 아닌, 시커먼 피가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거기다 빠른 속도로 부폐되어 가는 게 평범한 사람의 팔과는 전혀 달랐다.
“오늘 세한 오빠가 온다고 했으니 바로 물어봐야 겠는걸.”
모르는 일이 있으면 세한에게 이야기하자.
그럼 뭐가 됐든 답변이 돌아올 테니.
그것이 민아의 새로운 신조였다.
***
“수상한 사람들에게 습격당했다고?”
“응. 내가 팔을 잘랐는데, 새까만 피가 막 요렇게……!”
꽤나 열심히 묘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민아의 말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민아와 린을 노렸다고?’
느낌이 쎄했다.
거기다 팔을 잘랐더니 검은 피가 나왔다면, 녀석들의 정체는 하나뿐이다.
악마와 관련된 녀석들
그놈들은 그중 말단인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녀석들의 세력은 아직 약해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할 때인데.
‘잠깐만.’
녀석들이 어째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는가.
거기서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악마의 계약자와 하수인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꽤나 후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인천 쪽.
왜냐면 녀석들은 서울에 감히 발을 디딜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 씬」을 이끄는 김주원 때문에.
명왕 하데스의 아바타인 김주원은 서울의 어둠을 빠르게 장악했다.
그의 아래에는 이름을 날리는 강력한 아바타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대한민국의 어둠을 지배하는 자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악마의 계약자들은 최대한 주원을 피했다.
괜히 전력을 줄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녀석들은 더 씬의 근거지인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만 활동했다.
후에 ‘흑천회’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더 씬과 함께 대한민국의 어둠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은 뒤에서 아주 난리도 아니겠군.’
뒷세계를 지배하려는 건 더 씬만 있었던 게 아니다.
수많은 조직이 있었으나, 가장 악독한 집단인 더 씬에게 흡수된 거지.
아마 지금 서울은 뒤에서 엄청나게 치고 박고 싸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더 씬을 대신한 새로운 조직이 생겨났을 수도 있고.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군.’
김주원을 죽였지만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악마들이 서울은 빠르게 진출할 계기를 준 거나 마찬가지인가.’
김주원을 죽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가신 건 성가신 거였다.
“오빠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요?”
“그래.”
“역시~! 알 거라고 생각했다니까!”
엄지를 척, 내미는 민아의 모습에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지?”
잠자코 있던 루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가벼운 태도를 보이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딸이 관련된 일이니 그럴 만도 하지.
‘선생님, 아니 루크 씨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오랜만이군.’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루크를 볼 때면 무심코 ‘선생님’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실수하지 않도록 속으로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중이다.
“악마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악마?”
꽤나 예상외의 답변이었던 모양인지, 주변은 크게 놀랐다.
신에 이어 악마까지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문제는 걔네들이 지금 어디에 있냐는 건데…….”
악마와 관련된 대표적인 조직은 흑천회다.
그럼 인천이겠지만 민아와 린이 습격당한 건 서울이다 보니 헷갈렸다.
미래가 바뀌며 녀석들의 본거지가 옮겨갔을 수도 있으니까.
‘난 악마 쪽은 잘 모르는데.’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이쪽은 워낙 더럽게 놀아서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건들기도 전에 다른 녀석이 처리한지 오래였기도 하고.
“제가 짐작이 가는 게 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짐작 가는 거?”
“네, 제가 이전에 강서구에서 이상한 사람과 만난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던가.
“그때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검은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었어요. 전 그냥 스킬인 줄 알았지만 오빠의 말대로라면…….”
악마의 하수인이나 계약자라는 것.
강서구 쪽에 이상한 녀석들이 모여들었던 건 기억하지만 설마 악마를 위시한 패거리까지 생긴 건가?
지수가 어찌어찌 와해시킨 모양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녀석들이 있을지 모른다.
“우선 거기부터 가보자.”
현재 어느 정도까지 서울에 독이 퍼져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