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45화 (45/332)

# 45

045. 상황정리(1)

[대한민국 대전 지역 채팅방]

레몬티챱챱: 와씨, 저걸 잡네. 실화임?

정직한삶: 내 아바타가 대활약함 ㅅㄱ

찬연한별빛: 니 아바타가 설마 저 막타 날린 여자애냐?

정직한삶: 아닌데요.

찬연한별빛: 아, 그럼 저 투창 던지던 애? 걔 좀 쩔드라.

정직한삶: 맨 처음에 군인들 대피시켰던 애임.

레몬티챱챱: 조또 한 거 없네;;

정직한삶: 맨 처음에 군인 대피시켜서 싸울 수 있는 환경 마련해 준 거 모름?

그리스대장: 저 여자애 내가 맨처음에 아바타로 삼을까 생각하던 애인데. 아쉽다. 저 정도면 분명 급 높은 신이 데려갔나 보네.

익명35: 아죠씨는 여기 서버도 아니신데 왜 그렇게 돌아다녀요.

어릿광대: 아, 역시 여기도 끝났네. 서울지역도 방금 끝남. 내 아바타 대활약 ㅅㅅㅅ

정직한삶: 아무튼 근데 우리쪽 레이드 보스 좀 이상하지 않음? 심각하게 쎄던데.

익명27: 거의 센티넬급이었음. 조금만 늦게 죽였어도 우리 지역 다 아작났을 걸.

익명27의 말에 줄기차게 이어지던 채팅이 뚝 멎었다.

그들도 느꼈다. 자신들이 대치하고 있던 레이드 보스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는 걸.

시스템이 관여한 기색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레몬티챱챱: GM이 관여한 모양이네.

찬연한별빛: 왜지? 혹시 그 검은 옷의 인간 남자 때문인가?

그리스대장: 그럴 확률이 높지. 걔 요즘 뜨더라고. 카라스도 죽였다며?

신들은 멍청하지 않다.

레이드 보스가 갑자기 등장했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마리였던 레이드 보스가 시작도 전에 하나가 죽고, 거기다 그 힘을 흡수한 레이드 보스가 등장했다.

좋게 쳐줘서 레이드 보스끼리 영토다툼이 있었다고 해도, 그 시기가 지나치게 빨랐으며 궁기의 경우엔 기린의 힘을 상당히 흡수한 상태였다.

성체도 아닌 성장기의 궁기가 기린의 힘을 혼자서 그만큼 받아들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익명48: ……건의를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때, 채팅방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다.

좋은 정보를 자주 공유하던 ‘익명48’이다.

예지와 관련된 신이라는 추측이 오가고 있는 터라, 그의 말은 신들도 쉽게 흘려듣지 못했다.

레몬티챱챱: 건의?

익명48: 예. 건의.

익명48의 말에 신들이 크게 술렁였다.

건의는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이번 일도 GM이 운영에 힘을 쓰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했기에 그리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대전지역에 신들의 아바타가 대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일반 플레이어들이야 GM의 농간으로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지만 그게 자신의 아바타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카라스가 놀이공원에서 신들의 아바타가 있는지 늘 확인하던 것도 그런 연유다.

익명48: 솔직히 우리들을 만만하게 본 거 아닌가요? 이대로 두면 지 맘에 안 든다고 다른 아바타들도 멋대로 처리하려고 할 걸요?

그리스대장: 음. 설득력이…… 있어!

분위기가 넘어왔다.

익명 48의 말에 대전 지역 채팅방에 있던 신들은 건의를 넣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레몬티챱챱: 이런 건 초창기에 잡아야 된다. 그러니 말로만 떠들지 말고 확실히 건의에 넣어라.

정직한삶: 근데 아카터스놈 원래 운영 조또 못하잖아. 그래서 우리 서버가 젤 인기 없자너.

익명35: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멋대로 까분 건 용서하면 안 되지.

익명35의 말에 다른 신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동조했다.

이후.

GM 아카터스는 한동안 대한민국 서버에서 관여할 수 없었다.

GM은 게임을 운영하며, 신들이 사용하는 포인트 수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 GM이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건 상당한 처벌이라는 것.

그 처벌 소식을 들은 신들은 꽤 만족했다.

물론, 가장 만족한 건 ‘익명48’이었다.

***

궁기를 잡은 이후, 녀석의 시체를 갈무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갈무리할 수 있는 양은 보스 전의 기여도에 따라 달랐는데,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건 마지막 일격을 가했던 지수였다.

두 번째는 당연히 나. 하지만 나와 지수의 차이는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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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기의 가죽(A)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사흉(四凶). 궁기의 털가죽.

흔치 않은 성체의 털가죽이며 그만큼 대단히 질기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것으로 장비를 제작하게 되면 대단한 물건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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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의 가죽이라고?”

가장 먼저 얻은 궁기의 털가죽을 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 성장기였는데 언제 성체가 된 거야?

‘아, 설마 마지막에?’

지수가 녀석을 죽이기 직전, 보이던 반응을 보면 그 순간 성체로 진화했던 건지도 모른다.

덩치도 점점 커지고 있었고, 털의 색도 완벽한 검은색으로 변했으니까.

“뜻하지 않은 행운이네.”

성체로 진화한 궁기의 가죽과 뼈라면 A급의 소재다.

이걸로 시우에게 부탁하면 내 암야의 외투나, 다른 장비들도 몇 단계 상위 템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오빠, 전 이런 게 나왔는데…….”

지수가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주먹 크기의 검은 구슬이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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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성(凶聖)의 암옥(暗玉)(S)

궁기와 타락한 기린의 힘이 응축된 결정.

심상치 않은 힘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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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금 먹은 거냐?”

“네, 제가 가져가도 되는 부위에 손을 댔더니, 이런 게 인벤토리에 들어왔어요.”

“와, 이거 미쳤네.”

무려 S급 소재다.

심지어 나도 처음 보는 소재다. 성체로 진화한 젊은 궁기의 힘과, 노쇠하였지만 그만큼의 세월을 축적한 기린의 힘이 응축된 영핵.

S급 소재는 후반부 퀘스트에서도 아주 희귀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인데 벌써 등장할 줄이야.

‘이걸로 무기를 만들면, 사실상 거의 종결급 무기가 되는 거 아냐?’

문제라면 저 암옥의 힘을 견딜 소재가 현재 없다는 점이다.

미스릴은 신성한 금속이니 암옥과는 상성상 어울리지 않고, 오리하르콘은 발견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궁기의 뼈를 이용한다면 사용은 가능하겠지만, 저 귀중한 암옥을 썩히는 기분이 들었다.

‘A급 소재인 궁기의 뼈도 충분히 좋은 물건인데…….’

S급은 그만큼 급이 다르다. 궁기나 기린이 그만큼 급이 높은 몬스터이긴 했지만, 이제 막 초기를 벗어나고 있는 게임에서 등장하기엔 지나치게 이른 물건이다.

아마 GM이 관여한 탓에 만들어진 기적의 산물이 아닐까.

‘이것만큼은 아카터스에게 고마워해야겠네.’

만약 녀석이 없었다면 흉성의 암옥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오빠 드릴까요? 저는 그냥 마지막에 녀석을 죽였을 뿐이라…….”

“됐어. 그건 네 거니까. 잘 가지고 있어. 나중에 다른 좋은 소재 구하면 필요해질 거다.”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저건 엄연히 지수에게 돌아간 보상이다.

‘나도 충분히 보상을 받을 만큼 받았고.’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퀘스트 클리어 등급이 ‘금’ 등급이라는 점이다.

“역시 이번에 백금 등급을 바라는 건 욕심이었지.”

백금 등급은 사실 상 혼자서 다 한 것이 아닌 한 받지 못하다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이번 보스의 경우, 다른 플레이어들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저도 금 등급이에요.”

암옥을 인벤토리에 넣던 지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마 암옥을 받은 것도 그렇고, 자신이 마지막에 일격을 날려 내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전 은 등급입니다.”

내가 지수에게 뭐라 말을 하려던 찰나, 활짝 웃는 얼굴로 동권이 끼어들었다.

덕분에 나는 지수에게 하려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 은 등급?

“넌 뭘 했다고 은 등급이야? 보스랑 싸울 때 빠져서 아무것도 안했잖아.”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습니까. 제가 다 싸움 환경을 만든 덕이죠. 이거 싸움에 참여까지 했으면 금 등급이었을 텐데. 하하!”

동권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하기야 처음에 군인들만 대피시키고 계속 몸을 피하고 있던 놈이 은 등급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역시 제가 괜히 나서서 오빠가 금 등급이 된 건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내가 녀석을 죽이려고 했으면 한참 씨름을 해야 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지수가 미안한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물론,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잡았으면 어쩌면 백금 등급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아까 말했듯 이번 일에는 다른 플레이어들도 상당히 활약했다.

나 혼자였으면 궁기를 하늘에서 추락시키지 못했을 테니까.

‘거기다 확실히 지수가 아니었다면 녀석을 그렇게 빨리 죽이지 못했겠지.’

기존 지수의 능력치로 볼 때, 풀 도핑한 상태의 지수는 분명 나보다 강한 힘과 속도를 지녔을 거다.

더군다나 지수가 태연하게 궁기의 몸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렇지, 궁기의 몸속은 온갖 독소와 기운으로 가득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나 역시 궁기의 몸속에 들어가면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지수는 천살성으로 모든 체력 재생이 100퍼센트 상승하고, 거기에 재생 스킬과 예전에 내가 준 VIP 브로치를 가지고 있어 생존할 수 있었던 거지.

물론 나도 죽일 방법은 몇 가지나 있었지만, 지수만큼 심플하고 빠르게 죽일 수는 없었다.

지수가 말한 ‘이번 일에는 자신이 적합하다’라는 것도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럼 이제 보상도 다 챙겼으니…….”

나는 지금까지 얻은 보상을 인벤토리에 잘 가무리한 뒤, 동권을 향해 말을 걸었다.

기분 좋게 웃던 녀석은 내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너 이제 퀘스트도 깼겠다. 혹시 할 거 있냐?”

“예. 있습니다.”

박동권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혹여나 내가 따라오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휴우.”

어차피 박동권을 서울에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녀석은 현균의 곁에서 머물며, 조용히 성장하는 편이 나았다.

이 자식 성격상 괜히 자극적인 퀘스트라도 걸리면 첫 번째나 두 번째 퀘스트에서 벌였던 짓을 또 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물론, 그러면 목에 걸린 링 때문에 죽겠지만.

“괜히 허튼짓 하지 마라. 오래 살고 싶으면.”

“아, 알고 있고말고요.”

동권은 그렇게 말하곤 후다닥 도망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와 떨어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픽 웃었다.

“우리도 슬슬 서울로 돌아갈까.”

“벌써요?”

“왜, 따로 할 일이라도 있어?”

지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당장은 없어요. 어머니에게 연락이 닿으면 모르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대략 짐작도 안 가?”

“저에게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계가 되었는데, 딸의 생존을 알았음에도 찾지 않다니.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

지수는 나에게 있어 가장 친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그럼에도 모르는 것이 많은 아이였다.

그저 1년 월반해서 들어온 재능 있는 동기생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최근의 지수는 단순히 ‘재능이 있는’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했다.

전생에 내가 봤던 이들 중에서도 지수와 비슷한 급의 천재는 몇 명 없었다.

예외라고 할 수 있는 린 테일러를 제외하면 기껏해야 두 명 정도.

그들은 이미 다 성장한 이후에 본지라 비교가 힘들었지만, 지수가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아니. 음.”

나는 지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 죄를 많이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

아리송한 얼굴로 지수가 눈을 찡그렸지만 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전생에 대해 이야기해야 된다.

‘전생의 지수는 내가 제일 처음 죽게 만들었던 사람이니까.’

지수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전생에 지수를 죽게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이 재능을 개화조차 시켜보지 못하고 죽었던 전생의 지수가 눈앞에 아른 거렸다.

그러니 현재의 지수는 사실상 나에게 있어 이정표나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죽었으나, 현재는 살아 있는.

운명을 개변할 수 있다는 증거와도 같았으니까.

***

「…….」

어딘가로 향하는 세한과 지수를 지켜보는 한 옵저버가 있었다.

둘을 지켜보는 옵저버의 숫자는 많았지만, 그 옵저버는 다른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단순한 호기심과 신기함으로 둘을 바라보는 다른 옵저버들과 달리, 그것의 시선에는 짙은 선망과 열망이 담겨있었으니까.

그런 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세한을 지켜보던 옵저버들이 슬슬 물러섰다.

‘저것’과 관여되어 좋을 게 없었으니까.

격이라고 할지, 모든 면에서 저건 이질적인 존재였다.

인간의 꿈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녀.

그것은 조용히 세한을 뒤쫓아 움직였다.

언제까지라도 쫓아가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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