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044. 궁기(窮奇) 토벌(2)
마치 파충류의 눈처럼 세로로 찢어진 동공과, 검치호마냥 튀어나온 길쭉한 이빨이 섬뜩하게 빛났다.
분명 2주 전에 보았을 때는 평범했던 털가죽도 지금은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가 몸을 뒤덮고 있었다.
녀석에게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문제는 그 변화가 실시간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고.
“설마, 성체로 진화하려는 건가?”
그럼 큰일이다. 성체로 진화하게 되면 궁기는 사실상 센티넬급이라고 봐도 좋다.
아니, 오히려 센티넬보다 상대하기 어렵다.
이동범위가 넓고 거대하기에 그 피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거기다 단순히 성체라기엔 녀석의 모습도 이상했다.
내가 전생에 봤던 궁기는 털이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긴 했지만 검은빛을 내진 않았다.
저건 분명 기린의 영향인 게 분명했다.
‘뿔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여간다는 건…… 역시 GM의 관여가 있었다는 건가.’
그렇게밖에 짐작할 수 없다.
아니라면 궁기가 이런 온전한 모습으로 힘을 흡수했을 리 없다.
쿵.
녀석이 한 번 발을 구를 때마다 아스팔트 도로가 뭉개졌다.
가뜩이나 커다란 덩치가, 등에 달린 날개 때문인지 더욱 거대해 보였다.
날개의 색도 전과 달리 잿빛이다.
“으, 으으으.”
패닉에 빠진 군인들이 얼어붙었다.
탱크와 소총으로 그토록 공격했건만 적은 조금의 상처도 없이 건재했다.
아마 깨달은 것이리라. 자신들이 아무리 공격한다고 한들, 저 괴물에겐 어떠한 상처도 입힐 수 없다는 걸.
“박동권!”
나는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박동권에게 눈짓했다.
녀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을 와락 찡그리며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정말 해야 됩니까?’
동권의 시선에는 그런 애처로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들을 통제할 만한 스킬을 가진 건 박동권뿐이었다.
“에라이, 십헐.”
동권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은빛 링을 손가락으로 긁다가 욕설을 내뱉으며 군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몬스터는 저들에게 맡기고 어서 피하십시오!”
“하, 하지만.”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저놈은 현대 무기가 안 통하는 괴물이라고요!”
군인이 피해야 자기도 같이 피할 수 있기에 동권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였다.
그동안 나는 궁기의 몸을 최대한 플레이어들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
아마 지금쯤이면 플레이어들도 네 번째 메인 퀘스트가 발동했을 거다.
“죽여!”
“덩치도 커서 때릴 곳도 많아 보이네!”
아니나 다를까 플레이어들은 호기롭게 외치며 궁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덩치가 크긴 했지만 여러 몬스터들을 마주쳐 온 플레이어들이라 그런지 회복도 군인들보다 빨랐다.
「크아아앙!」
날파리를 잡듯 궁기가 앞발을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는 빠른 속도다.
“헉!”
설마 이렇게 빠를 줄을 몰랐는지 몇몇의 플레이어가 범위에서 채 피하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궁기의 발톱이 플레이어들의 몸이 닿기 직전, 내가 먼저 플레이어들을 창대로 후려쳤다.
“으헉!”
콰콰쾅!
창대에 맞은 몸이 붕 날아간 플레이어들이 가까스로 궁기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창대에 얻어맞은 부위를 매만지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 고맙습니다.”
“신중하게 싸우세요. 저놈은 덩치만 큰 게 아닙니다.”
“크윽, 과연. 너무 방심했던 것 같군요.”
궁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플레이어들도 한층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녀석을 상대론 어떤 무기가 유효하려나.’
우선 꺼내든 건 창이다.
근접 병기 중에선 우월한 리치를 지닌 데다, 가시 같은 털을 피해 찌르기 편하기 때문이다.
파일벙커는 인벤토리에 넣었다. 위력은 절륜하지만 공격 직선적이고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움직임이 빠른 궁기에겐 사실상 무용지물이니까.
“멍하니 보고 있지 마세요! 어서 빼라니까요!”
군인들의 대피도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완강히 거부하는 것 같았지만, 동권의 스킬 ‘선동’에 맥없이 설득되어 군대를 빠르게 물리고 있었다.
“젠장, 가시 같은 털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어!”
“원거리 공격도 마찬가지야. 가죽이 너무 질겨서 화살이 들어가질 않아!”
마력을 담은 화살은 단순한 총이나 대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력을 지닌다.
그럼에도 궁기의 가죽을 뚫는 건 역부족이었다.
“대체 이걸 잡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궁기의 움직임은 재빨랐고, 실수로 얻어맞기라도 했다간 반죽음 상태가 되었다.
벌써 몇이나 되는 플레이어가 궁기의 발에 얻어맞고 쓰러져 있었다.
아직 사망자는 없었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없어.’
언제 성체로 진화할지 몰랐다.
아니, 진화하지 않더라도 플레이어들이 녀석을 쓰러트리긴 힘들어 보였다.
전생과 달리 궁기가 강해져 버린 탓이다.
「그르르릉.」
궁기의 날개가 넓게 펼치며 날아올랐다.
거센 돌풍이 지상에서 휘몰아쳤다.
“저 새끼, 하늘도 날 수 있는 거냐?!”
“젠장, 날아다니면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녀석은 날아오른 그대로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마치 먹이를 찾는 매와 같은 모습이다.
“이, 이거 피해야 되는 거 아냐? 저게 하늘에서 떨어지며 팔을 휘둘렀다간 절반은 뒤질 거 같은데?”
그 말대로다. 도로는 꽤 넓었지만, 그만큼 궁기의 덩치가 컸다. 녀석이 지상으로 활강하며 저 커다란 앞발을 휘두른다면 끔찍한 참상이 벌어질 게 뻔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인벤토리를 열고 커다란 창을 여러 개 꺼냈다.
그건 카라스와 싸울 때 썼던 투창이었는데, 전과 달리 긴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고 크기도 배는 컸다.
거기에 창날의 모양도 특이했다.
‘좋아.’
녀석이 지상을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녀석을 떨어트린다.
‘카라스에 비하면, 이정도는 그냥 멈춰 있는 과녁일 뿐.’
꾹.
팔에 힘을 넣고, 녀석의 움직임을 쫒았다.
단순히 던진다면 빗나갈지도 몰랐으나 내게는 암야의 장갑에 붙은 ‘필중’ 스킬이 존재했다.
팔을 뒤로 당기고, 전신의 탄력을 이용해 전력을 다해 던졌다.
피슝!
바람을 가르며 투창이 날아가 궁기의 날개를 꿰뚫었다.
「크앙?!」
원채 큰 날개라 창이 하나 관통한 정도로는 크게 영향도 없었다.
그저 연결된 사슬이 거슬렸는지, 허공에서 몸을 크게 비틀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꺼내둔 다른 투창을 연속해서 던졌다.
한 개, 두 개, 세 개.
녀석의 날개를 꿰뚫고 투창이 계속해서 박혔다.
「크아아아!」
궁기가 날아오는 투창을 피하기 위해 까다롭게 비행했지만, 필중 스킬을 가진 내게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지금 여기서 저놈을 창을 던져 맞추고 있는 건가?”
“대체 능력치가 어떻게 되기에…… 이게 가능해?”
나는 마지막 투창을 던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사슬을 당기세요! 녀석을 떨어트려야 합니다!”
내 외침에 역시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지수였다.
궁기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사슬을 공중에서 잡아챈 뒤, 땅으로 내려서며 힘차게 잡아당겼다. 현재 존재하는 플레이어들 중, 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근력수치에, 혈천수라공까지 발휘되자, 궁기의 몸이 크게 꺾이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런 어린 아가씨에게 질 수 없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당겨! 저놈을 어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역시 겉모습만 보면 연약해 보이는 지수가 먼저 나선 덕인지,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런 지수를 따라 사슬을 당겼다.
궁기가 기존보다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숫자도 전생보다 많았다.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숫자의 플레이어가 일제히 사슬을 잡아당기자, 궁기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콰아아앙!
「크어어엉!」
떨어진 충격에 녀석은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지금이야! 당장 죽여!”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
지면에 처박힌 몸을 바르작거리는 놈을 향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그르르르르」
그래도 녀석은 죽지 않았다.
튼튼한 거죽도 계속되는 공격에 점차 찢겨지고 있었지만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크아아아아!」
파직, 파지직!
녀석의 눈이 시커멓게 물들며 새까만 기운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녀석이 성체가 되어버려.’
나는 재빨리 녀석의 몸을 타고 달렸다.
이미 내 오른손에는 파일 벙커가 장착되어 있었다.
속도가 빨라 명중시키기 힘들었지만, 지금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죽어라!”
콰아앙!
파일벙커가 사출되며 녀석의 두개골을 함몰시켰다.
녀석의 뼈를 부수고, 내부를 휘젓는 감각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갸아아아아!」
그럼에도 녀석은 죽지 않았다.
몸을 크게 널어내며,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일제히 날려 버렸다.
나 역시, 간신히 몸을 가누며 지상으로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생각보다 생명력이 훨씬 질기잖아!’
아마 커다란 덩치도 하나의 이유이긴 할 거다.
두개골을 부수고 파일벙커가 파고들었음에도 녀석을 죽일 정도는 되지 못했다.
느릿하지만, 재생되고 있는 상처가 보였다.
전신에 찢긴 상처도, 부서진 머리도 뿌연 연기를 내며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리에 힘을 넣고, 재차 뛰어오르려고 했다.
목표는 당연히 내가 방금 꿰뚫은 머리의 상처다.
하지만 내가 뛰어오르는 것보다 빠르게,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제가 할게요. 이번 일은 제가 오빠보다 맞을 거 같거든요.”
지수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 순간, 지수의 몸은 녀석의 머리까지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평상시의 지수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다.
“……저 녀석.”
나는 볼 수 있었다. 녀석의 가슴팍에 꽂혀 있는 단도를.
누가 지수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저건 스스로 자신에게 검을 꽂은 것이다.
천살성은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강해지며, 치명상이라면 그 증폭값이 더 크다.
그러니 지수는 자신의 심장에 단도를 꽂은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즉사였겠지만, 천살성과, 재생 스킬로 인해 지수는 죽지 않았다.
도리어 심장에서 솟구치는 피에 부스트가 걸렸다.
뿌드득.
「갸악! 갸아아아!」
지수가 손을 들어 녀석의 부서진 두개골에 손을 댔다.
다른 손에 든 둔기로 상처를 후볐지만, 그래도 소용없었다.
녀석은 오히려 더욱 크게 날뛰며 주변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최대한 녀석에게서 떨어져!”
혼비백산한 플레이어들은 궁기의 곁에서 멀어졌다.
궁기의 몸은 점점 더 검게 변하고, 더욱 커지고 있었다.
날뛰면 날뛸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걸 느낀 플레이어들의 눈에서 절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도 힘들었는데 더 강해진다면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지수는?’
머리 위에 붙어있어야 할 지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칠게 날뛰는 탓에 떨어진 걸까?
‘아니, 아니야.’
궁기는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쿵, 쿠쿵.
「가악…….」
거칠게 날뛰던 녀석의 몸이 돌연 멈췄다.
그 거대한 육신이 천천히 지상으로 쓰러졌다.
쓰러져 몇 번 움찔 거리던 궁기는 이내 숨소리하나 내지 않고 잠잠해졌다.
“뭐야, 왜, 왜 저래?”
“지쳤나?”
방금 전까지 포악하게 날뛰던 녀석이라 어떤 플레이어도 궁기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몇몇의 플레이어가 궁기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악귀와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와, 와우, 겁나게 살벌하게 생겼구먼.”
한 플레이어가 그런 궁기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녀석의 코에 손을 뻗었다.
녀석이 숨을 쉬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투콱!
“엄마야 시발!”
그때, 궁기의 눈알이 튕겨져 나왔다.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눈알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 이게 뭐시여.”
“왜 눈이 갑자기…….”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방금 눈알이 튀어나온 궁기의 눈으로 향했다.
“헉.”
시뻘건 시신경이 늘어진 곳에서, 전신에 피 칠을 한 여성이 기어 나왔다.
바로 지수다.
갑자기 궁기의 눈에서 튀어나온 지수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뭐라 말을 못하고 얼어붙었다.
“후우.”
지수는 조금 피곤하다는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더니, 나를 보며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 여기예요.”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마 지수는 부서진 궁기의 두개골 안으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 다음에는 그 안에서 날뛰었으리라.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죽었을 궁기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역시, 이런 몬스터라도 뇌를 찢어버리니까 죽네요.”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하지 마. 무섭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