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43화 (43/332)

# 43

043. 궁기(窮奇) 토벌(1)

내가 저 얼굴을 몰라볼 리가 없지.

저 뻔뻔한 얼굴은 분명 박동권이었다. 녀석도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헉?! 어, 어째서 여기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 현균 형은 어쩌고 여기 있어?”

복장도 전에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장비에 무기를 보면 세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도 제법 활약을 했던 모양이다.

그럼 아마 민아처럼 새로운 스킬을 신으로부터 받았을 확률이 높았다.

‘전승 스킬은…… 아마 멀었겠지.’

민아가 받은 스킬도 충분히 사기적이었지만 전승 스킬급은 아니었다.

전생과 달리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박동권이 벌써 전승 스킬을 얻었을 리가 없었다.

‘현재 그 사람을 제외하면 전승 스킬에 가장 가까운 건 민아겠지.’

전승 스킬은 신이나 별자리가 가진 스킬 중에서도 특별한 기술이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건 카라스가 지니고 있던 전승 스킬에 파생된 것이며, 민아나 동권이 신에게 받는 스킬도 그런 전승 스킬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일반적으로는 절대 익힐 수 없고 오로지 신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는 스킬.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전승 스킬은 그보다 더 파격적인 효과를 발휘하곤 했다.

‘그만큼 신들도 쉽게 전승 스킬을 빌려주지 않으니.’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스킬이다.

설령 자신의 아바타라고 해도 웬만해서는 빌려주지 않는 게 보통이다.

단 한 명의 여신을 제외한다면.

“아, 회장…… 아니. 현균 형은 청주에 갔습니다. 가족들이 걱정된다고 하셔서요.”

목걸이 때문인지 동권의 말투는 지극히 공손했다.

그나저나 현균의 본가가 청주였구나.

대전에서는 상당히 가까운 곳이다.

“그럼 너는 왜 여깄어?”

“저는, 그 뭐시냐. 여기로 가라는 연락을 받아서…….”

누구에게 연락을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현균이 아니라면 녀석의 신이겠지.

“잠깐.”

“네?”

“아니, 뭐 좀 확인하게.”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권을 무시하며, 나는 커뮤니티창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채팅방에는 대전 레이드에 대한 정보가 들끓고 있었다.

대충 채팅방의 반응은 왜 내가 대전에 갔는지 궁금해하거나, 내 정체에 대한 추측이 오가고 있었다. 내 행동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보니 신들의 입장에선 상당한 여흥거리인 모양이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전생보다 많겠는걸.’

내가 대전에 가는 걸 보고 자신의 아바타를 보낸 신이 한둘이 아니었다.

서울 지역 채팅방은 물론, 다른 지역 채팅방에 가도 내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그간 커뮤니티에 신경을 쓰지 않아 몰랐지만, 설마 이 정도로 화제가 되어 있었을 줄이야.

어릿광대: 아, 아쉽다. 내 아바타도 내려가길 바랐는데, 안 따라가서~!

어릿광대의 채팅도 올라왔다.

아쉽다는 말과 달리, 채팅은 제법 여유로웠다.

어릿광대: 대신 그 아이가 신기한 걸 주고 갔지 뭐야.

익명 22: 신기한 거? 그게 뭔데?

어릿광대: 물론 비밀. 나중에 보면 깜짝 놀랄걸?

불금: 아나, 그럼 그냥 말을 할지 말던가, 궁금하게 만드네.

어릿광대가 말하는 신기한 것이란 기린의 열매가 들어있는 부화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다른 신이나 GM아카터스의 옵저버를 피하기 위해 민아의 능력으로 숨겨둔 상태였다.

그러니 신중에서 부화기의 위치를 아는 건 어릿광대와, 루크의 신인 ‘그녀’뿐이었다.

‘둘 다 입이 무거우니 괜찮겠지.’

물론 입이 무거운 이유는 다르다.

어릿광대는 꽁꽁 숨겨두고 자신만 알고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며, ‘그녀’의 경우에는 성격 자체가 입이 무거웠다. 아마 신들 중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진지한 성격이 아닐까.

“야. 박동권.”

“예?”

“너 지금 스킬 뭐뭐 배웠어. 혹시 ‘선동’도 배웠냐?”

동권은 낯빛이 전혀 변하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안 배웠습니다.”

“배웠잖아, 새끼야. 거짓말하면 알지?”

“배, 배웠습니다.”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선동’은 박동권의 대표적인 스킬 중 하나다.

스킬 이름 그대로 주변을 손쉽게 선동할 수 있는 능력.

대단치 않으면서도 대단한 스킬이다.

“그러면 너…….”

──잠깐.

나는 말하던 걸 멈추고, 까마귀의 눈에 집중했다.

건물 아래로 내려다본 시야에서 이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아스팔트가 움직이고 있어?’

마치 은은한 물결처럼, 아스팔트가 출렁이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잔잔한 파동 같았지만 그건 전조에 불과했다.

“그 스킬 써 당장.”

나는 급히 숨을 들이키며 박동권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서, 선동 말입니까? 갑자기 왜?”

당연히 동권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건 옆에 있던 지수도 마찬가지다.

“안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

까마귀의 시야에 잡힌 물결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원을 그리듯, 시청을 지나쳐 이쪽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을 습격할 셈인가?’

아니다.

플레이어들과 싸운다면 저렇게 빙 돌아서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직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을 텐데요?”

나는 녀석의 말에 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00 : 12 : 46]

12분 46초. 녀석의 말처럼 확실히 레이드 보스가 등장하기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했다.

“배가 고픈 거야.”

“배가 고프다니요?”

“싸우기 전에 식사를 할 생각인 거지.”

마침 이곳에는 만찬(晩餐)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니까.

“따라와.”

“어, 어딜 갈 생각입니까?”

“어려운 거 안 시킬 테니 빨리 따라오기나 해.”

녀석이 이곳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앞으로 대략 3분.

까마귀의 시야를 통해 계속 관측하며 달렸다.

비장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군인들을 향해서.

“모두 피하세요! 레이드 보스가 옵니다!”

큰 소리로 외쳤지만 당연히 반응하는 사람이 적었다.

도리어 내 말을 들은 다른 플레이어 몇몇은 비웃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보스가 나타나려면 아직 10분은 넘게 남았다고. 혹시 시계도 볼 줄 모르는 거 아냐?”

“잠깐 서서 졸았나 보네. 낄낄!”

“그리고 보스가 나타나도 우리가 있는데 피하긴 뭘 피해. 거기서 박수나 치고 있으라고 하쇼!”

그나마 플레이어들은 이정도 반응이라도 보였지만, 군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어요! 어서 도망치세요!”

내가 계속해서 소리치자, 몇몇 군인들이 나를 보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이전에 나와 마주쳤던 사람이라도 있으면 내게 뭔가 추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반응조차 없었다.

‘역시 그냥 말해선 안 되겠어.’

나는 옆에 있는 동권에게 눈빛을 보냈다.

방금 내가 했던 말대로 사람을 선동하라는 뜻이었다.

동권은 심히 난감하다는 듯,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아니, 그게 쓴다고 쉽게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느 정도는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지, 다짜고짜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으면 선동이 아니라 최면이죠.”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소리를 쳐서 반응을 이끌어내려 했던 거고.

무의미한 행동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면…….’

결국 이렇게 되면 타이밍이 늦을 수밖에 없다.

레이드 보스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육안으로도 바닥이 일렁이는 게 보일 정도였다.

“한지수 무기 꺼내.”

“네.”

지수가 인벤토리에서 둔기를 꺼냈다.

전에 내가 사줬던 것과는 다른 거지만, 여전히 상점표 장비다.

‘나중에 얘한테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해 줘야겠군.’

언제까지 안전지대에서 판매하는 상점표 무기를 쓸 수는 없으니까.

소중한 파티원인데 최근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았다.

“내가 신호를 주면, 저기 소화전 보이지? 저 앞에 있는 도로를 온 힘을 다해 찍어. 나도 같이 공격할 테니까.”

“알겠어요.”

지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동권, 너는 레이드 보스가 튀어나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면 선동 스킬을 사용해서 최대한 후퇴시켜. 그건 가능하겠지?”

“보스가 나타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사람들이 쉽게 패닉에 빠질 거 같지는 않은데요?”

주변에는 플레이어의 숫자도 많았고, 군대의 모습도 굉장히 든든해 보였다.

겉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실제로 주변의 분위기는 이미 이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첫 번째 메인 퀘스트와는 달리 두 번째, 세 번째 퀘스트는 비교적 할 만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젠 오픈월드가 되어 마비됐던 사회도 점차 복구되기 시작했으니 마치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마침 또 보스전이지 않은가.

나는 인벤토리에서 수리한 파일벙커를 착용했다.

선타를 날리는데 이것보다 좋은 무기는 없었다.

“그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한 겁니까?”

“만들었지.”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파일벙커의 쇠기둥에 코팅하며 가볍게 답했다.

나를 보며 비웃던 사람들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파일벙커가 등장하자 웅성거림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저런 무기도 팔았나?”

“저런 커다란 무기를 팔에 달고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태연히 서있는 거보면 그다지 안 무거운 건지도…….”

시선이 쏠리고 있었지만, 내 감각은 까마귀와 공유하고 있는 눈동자에 집중되어 있었다.

‘도착까지 5초.’

드드드드.

땅에 미세한 울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큰 소리는 아니지만 감각이 예민한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이변을 느꼈으리라.

“뭐야, 땅이 좀 흔들리는데?”

“지진인가?”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보스라는 걸 짐작하지 못했다.

타이머가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나는 속으로 셋을 센 다음 소리쳤다.

“지금!”

콰아앙!!

녀석의 앞발이 지면에서 튀어나오는 동시에 파일벙커를 사출했다.

파일벙커는 궁기의 팔을 꿰뚫지는 못했지만 크게 밀어냈고, 그 위로 지수의 둔기가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나와 불과 힘 능력치가 10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지수다.

그 위력도 단연 절륜했다.

쩌저적,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가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군인들을 습격하려던 궁기의 낮은 신음소리가 지하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게 날개를 단 녀석이 왜 지하에서 나오고 그러냐.”

메인 퀘스트 시간이 되지 않은 탓이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아직 시간 안 됐는데?”

“아니, 그럼 저건 뭔데? 어디로 봐도 평범한 몬스터는 아니잖아!”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은 당황스런 상황 속에서도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어쨌든 세 번째 메인 퀘스트까지 깬 눈칫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처음인 군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전군 사격! 공격하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전에 대고 소리쳤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나는 지수에게 눈짓하여 빠르게 몸을 뺐다.

우선 기습적으로 가한 궁기의 기습을 막아냈으니, 군인들도 상황파악을 할 필요가 있었다.

탱크의 포탄과, 군인들이 든 k2 돌격소총이 불을 뿜었다.

구멍 밖으로 튀어나와있는 궁기의 앞발을 향해서.

투툭, 투툭.

“주, 죽었나?”

대략 1분간 이어진 포격에 사방이 뿌연 연기로 먼지로 가득 찼다.

부서진 잔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서, 설마.”

군인들은 정면을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쿵.

쿵.

쿵.

몸이 위로 튕겨질 것 같은 충격이 연신 바닥에서 울렸다.

그 충격만으로 녀석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적의 건재함을 알았음에도 재차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아아…….”

검은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웠다.

족히 1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육신이 군인의 망막에 새겨졌다.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새까만 털에, 새하얀 날개를 지닌 거대한 괴수.

「크아아아아!!」

사흉(四凶). 궁기(窮奇)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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