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038. 1차 대규모 업데이트 (2)
1317 열차 1호차 안.
난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이번에 받은 보상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번엔 보상이 좀 애매하네.”
계속 백금 등급 보상을 받다가 평범한 보상을 받으니 도리어 신선했다.
보통은 이게 정상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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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감(E)
몬스터의 흔적이나 유실물을 통해 위치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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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스킬이다.
몬스터의 위치를 추적하는데 그럭저럭 쓸 만하긴 하지만 ‘어렴풋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성능은 썩 좋지 못하다.
“됐다. 어차피 이번 퀘스트 보상은 까마귀를 잡고 얻은 걸로 충분하지.”
퀘스트 보상은 허접하지만 내게는 까마귀를 잡고 얻은 보상이 있었다.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심지어 센티넬도 아닌 ‘별자리’.
당연히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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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자리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스킬 ‘까마귀의 눈’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흑의 장막’을 습득하셨습니다.
????
????
신격이 부족하여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신격이 상승할시 스킬이 해금됩니다.
최하급 신격을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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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카라스를 잡고 곧바로 기절한 터라 이 문구를 못 봤다.
이후, 정신을 차렸을 때 로그를 올려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두 개의 스킬이다.
까마귀의 눈과 흑의 장막.
까마귀의 눈의 효과는 간단하다.
허공에 새까만 까마귀를 생성해 정찰을 보낼 수 있는 능력.
숫자에 제한은 없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컨트롤이 힘들어진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들이 사용하는 옵저버의 까마귀 버전이다.
‘흑의 장막은 카라스가 그때 사용했던 스킬이네.’
카라스의 전승 스킬이 내게 맞게 변환된 모양이다.
녀석이 사용했던 흑의 장막은 광역으로 어둠을 내리깔아 시야를 가리는 스킬이었지만, 내가 받은 어둠의 장막은 내가 어둠에 녹아드는 스킬이다.
주로 숨어서 기습을 선호하는 내게는 딱 맞는 스킬이라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스킬이 아니지.’
다음에 적혀있는 내용은 스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였다.
바로 ‘신격’에 관한 내용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최하급 신격을 바로 습득하다니.’
상태창을 보면 새로운 ‘신격’이라는 것이 칭호란 아래에 추가되어 있었다.
별자리를 죽인 탓이겠지만, 난생처음 보는 거였다.
전생에도 별자리를 죽인 적이 있었지만 ‘신격’이 생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아바타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초월의 증명 때문인가. 둘 중에 어떤 것이 이유인지 고민했지만 아마 내가 아바타가 아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왜냐면 스킬 설명에 신격을 얻을 수 있다는 문구와 같은 게 없었으니까.
최하급 신격이라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 이상을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내가 그런 엔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건 ‘문’을 열 자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상의 세계에 발을 내딛지 못한, 초월자의 꼭두각시였기에.
‘그러고 보니…….’
아마 잘하면 대전에서 그 마녀의 옵저버를 볼 수도 있겠는데.
내가 알기로 이 시기에 녀석은 대전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하겠지.
녀석을 생각하니 머리가 절로 아파왔다.
「오, 나의 수족이여. 훌륭하구나 훌륭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은 역시 너로구나.」
귓가에 마녀의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인류를 사랑하였으면서도, 나를 위해 모든 인류가 죽기를 바랐고.
또한 살아남기를 바랐던 마녀.
나는 녀석을 꺼려했지만, 감사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녀석이 있었기에 내가 마지막 퀘스트까지 살아남은 건 분명하니까.
“하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더니 괜히 피곤했다.
나는 하품을 하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대전에 도착해있겠지.
***
‘시발, 이런 시발!’
승원은 발에 땀나게 도망쳤다.
그 여자의 시선이 닿자마자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고 깨달았다.
‘분명해, 그 소문으로 들었던 그 여자야!’
처음 소문이 시작된 건 로메월드 타워가 있는 송파구였다.
당시 그 지역에 이름을 날리던 세력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궤멸되었다던가.
처음에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강남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여자 한 명을 조직원이 건드렸다가 조직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당시 사건에서 살아남은 몇몇 생존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고.
괴물이라고.
‘새까만 원피스에 흑발. 그리고 점차 붉어지는 눈동자.’
인상착의가 똑같았다.
소문으론 둔기를 사용한다고 했지만 좁은 열차 안이라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맨손으로도 충분한 것 같지만.
“커억!”
도망치던 승원의 뒤통수에 뭔가가 날아와 부딪쳤다.
갑작스런 충격에 승원의 다리가 꼬이며 그대로 넘어졌다.
“끄으응.”
다리에 힘을 넣어 일어나려고 해도 가벼운 뇌진탕인지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질질 몸을 끌며 고개를 돌리자, 새빨간 열차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몇 호차더라?’
아마 3호차까지는 도망 온 것 같다.
이곳까지 오며 다른 그믐달의 조직원들을 마주쳤지만, 그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데굴데굴.
“히, 히익!”
방금 전, 자신의 머리를 강타했던 게 뭔가 했더니 사람의 머리였다.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쫒아 다니던 부하의 머리.
승원은 바지에 오줌을 축축하게 지리며 몸을 벽에 기댔다.
비단 승원만 그런 건 아니다.
열차 안에 있는 다른 승객들도 저마다 겁에 질려 있었다.
갑자기 그믐달이라는 조직이 열차를 점거하나 했더니 여자 한 명이 그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나마 평범한 승객들에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기에 적어도 승원보단 나은 입장이었다.
철퍽.
고여 있는 피 웅덩이를 밟는 앵클 구드가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원피스를 입은 탓에 피를 덮어썼음에도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사, 살려줘! 이제 안 그럴게! 얌, 얌전히 살 테니 제발 살려줘!”
승원은 천천히 걸어오는 여성을 향해 무릎을 꿇고 빌었다.
3호차까지 수십에 이르는 조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이 제대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차가운 고깃덩이가 되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툭.
여성은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의 팔을 내버리며 느릿하게 승원에게 다가왔다.
새빨간 눈동자가 승원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와 무표정하게 그를 응시했다.
살기 같은 건 없었다.
도리어 지독히도 무심한 눈이었다.
“아저씨, 그 말을 믿으라는 거예요?”
“저, 정말이야. 아니, 정말입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사람들도 돕고 봉사활동도 하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승원의 모습을 바라보던 지수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걸렸다.
마치 꽃과 같은 미소다.
“재밌으신 분이네요.”
붉게 물든 지수의 손이 승원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것이 승원이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
서울 신림.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투덜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신림은 현재 몬스터가 다량 출몰하고 있는 위험지역이었다.
따라서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 그녀는 단연 시선을 모으고 있었지만 소녀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뭔 옵저버가 저리 많이 따라다녀?”
“평범한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은데? 괜히 건들이면 좆될 것 같으니 피하자.”
옵저버의 수는 플레이어의 화제성을 가리킨다.
화제성은 단순히 외모가 멋지다거나 예뻐서 생기지 않는다.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아름다움을 지녔으니 웬만한 인간의 미모로는 성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저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녀는 실력이 대단하거나, 그에 준하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림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줘야 할 거 아냐.”
교복을 입은 소녀, 민아는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민아의 입에는 쇠로 된 숟가락이 물려져 있었는데, 고개를 흔들 때마다 연신 덜그럭 거렸다.
“어디 있다는 거야. 진짜.”
어디로 봐도 세한이 부탁했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금발머리의 외국인 부녀라.”
대전으로 가기 전, 세한은 민아에게 사람을 찾아 달라 부탁했다.
덩치가 큰 미국인 남성과, 혼혈 여자아이.
둘은 부녀 사이이며, 딸의 나이는 13살이라든가.
대체 그런 사람을 신림에서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는 사망자도 꽤 많았던 것 같은걸.”
아직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시체들이 길가에 간혹 가다 보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오픈월드가 된 이후, 플레이어들이 엉망진창으로 변한 서울을 조금씩 수복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신림은 아직 아니었다.
덜컹!
“캬아아!”
길을 걷던 민아의 옆에서, 잔해에 숨어 있는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늑대의 머리를 한 라이칸슬로프 계열의 몬스터.
‘이 녀석들은 한 방에 못 죽이면 재생 때문에 귀찮은데.’
인상을 살며시 찡그리며 손을 움직였다.
민아의 손에 옅은 빛 무리가 일며 변화하려는 찰나, 라이칸슬로프가 무언가에 맞고 튕겨져 날아갔다.
“엉?”
갑자기 날아온 커다란 콘크리트 덩이에 깔린 몬스터의 모습에 민아가 눈을 치켜떴다.
“학생! 위험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외국인 특유의 구부러지는 어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근육질의 외국인이 민아에게 과장된 재스쳐로 손짓하고 있었다.
‘……어라?’
외국인 남성의 옆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런 남성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인상착의가 비슷한데?’
중년 외국인 남성에 작은 혼혈 소녀.
민아는 흘깃 라이칸슬로프에 시선을 줬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고마워요. 도와주신 거죠?”
“하하, 서로 돕고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제 기술이! 이름하여, 암석 떨구기입니다.”
“예? 암…… 뭐라고요? 스킬 이름인가요?”
과장된 얼굴로 웃으며 떠드는 남자의 말에 민아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뜬금없이 이상한 기술명을 말한 탓에 순간 스킬을 말하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
그런 민아의 반응을 본 혼혈 소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붉히며 남성의 옷자락을 마구 잡아당겼다.
“부끄러우니까 그만해! 이 언니는 도와줄 필요 없다고 했잖아.”
“마이 도터여. 그러면 안 된다. 설령 도와줄 필요 없다고 해도 아직 어린 학생의 손에 피를 묻혀서는 안 돼.”
“이 언니가 더 쎌 거 같은데? 봐! 옵저버만 봐도 알 수 있잖아!”
혼혈 소녀는 흘깃 민아를 보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지나치게 많은 옵저버가 몰려있었다.
“재밌는 아버지시네.”
“좀…… 이런 거에 로망이 있는 분이라.”
혼혈소녀는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민아는 그런 소녀가 제법 의젓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안목도 있어보였고.
‘이 사람들인 것 같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세한이 말했던 사람들과 인상착의나 행동이 가장 비슷했다.
껄껄 웃고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민아는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이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이름말입니까? 하하! 그럼요. 제 이름은 루크 테일러. 그리고 이 아이는 제 딸인…….”
“……린, 린 테일러에요.”
혹여나 자신의 아버지가 이상한 말로 소개할까 두려웠는지 린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워서 민아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빙고.’
두 명의 이름은 분명 세한이 말했던 것과 같은 이름이었다.
이런 이름을 가진 외국인 부녀가 신림에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딱히 특별해 보이지는 않잖아?’
세한이 꼭 찾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 터라 어떤 대단한 사람인가 했는데 특별할 점은 보이지 않았다.
중년 남성의 기도가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플레이어치고는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분명 플레이어가 되기 전에는 대단한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플레이어로서의 실력은 그냥 그런 것 같았다.
‘이 여자애도 아마 플레이어인가?’
여자애 쪽은 확실치 않다.
남성은 아까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으니 플레이어가 확실했지만 여자애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오빠가 되도록 같이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뭔가 있긴 하겠지.’
어차피 레이드까지는 시간도 좀 남아 있었다.
민아는 가벼운 마음으로 두 외국인 부녀를 쫒아 다니기로 결정했다.
물론, 민아는 알지 못했다.
이 두 명이 인류를 희망으로 이끌 열쇠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