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36화 (36/332)

# 36

036. 까마귀 자리의 카라스(4)

“보아하니 여기서 벗어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카라스는 내가 시간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깍깍 거리며 검게 변한 하늘에서 비소했다.

“내가 이곳에서 퇴장당하기 전까지 모두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지금의 나는 고작 스테이지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이거 솔직히 위험한데.

가뜩이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녀석이 저 스킬을 사용한 이상 현재의 나로선 버거웠다.

‘아니, 이건 반칙이지. 왜 전승 스킬을 사용해?’

카라스의 전승 스킬은 빛을 모조리 차단하며,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올라가는 부스트 스킬이다.

뭐, 은색의 새였던 본래의 자신을 찾는 것이니 부스트이긴 뭣하다.

까마귀라는 모습자체가 영락한 모습인 거니.

‘그나마 하위 별자리의 전승 스킬이라는 점이 위안이군.’

거기다 완벽히 모든 시야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점에 온전한 상태로 발현된 건 아니다.

분명 스킬도 능력치도 원전에는 한참 못 미칠 터.

“그러니 이제 그만 죽어라.”

콰아아앙!!

지상으로 활강한 카라스가 지면에 격돌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꽂힌 번개처럼.

그림자 질주가 없었다면 결코 피하지 못할 속도였다.

“젠장!”

이 속도면 그림자 질주의 횟수가 회복되기 전까지 도망 다닐 수 없다.

전신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아직 멀었나?’

입구가 어떤지 볼 여력도 없었다.

녀석의 공격을 피하기도 바빴으니까.

“후우, 후우…….”

나는 소음차단을 사용하여 몸을 숨겼다.

새까만 장비를 걸치고 있으니 카라스도 나를 쉬이 찾지는 못할 거다.

‘녀석이 전승 스킬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정말 쓸 줄은 몰랐다.

아마 전체적인 난이도 상승에 의한 보정이겠지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다니. 솔직히 감탄했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으니, 짜증이 섞인 카라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적어도 평범한 놈은 아니군. 시스템 보정이 들어온 것도 그 탓인가?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그렇게 말한 카라스는 지상에 가깝게 낙하하며 날개를 거세게 퍼덕였다.

그 간단한 날개 짓에 주변의 잔해들이 쓸려 날아갔다.

내가 몸을 숨기고 있던 장소도 마찬가지다.

은빛으로 번뜩이는 카라스와 나만이 공터가 되어버린 공간에 남았다.

“참 신기한 놈이야.”

녀석은 지상에 내려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처음에는 좀 짜증나긴 했다만 칭찬해주지. 이 카라스님의 칭찬이다,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해라.”

“마치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대단한 위치에 있고말고. 하찮은 필멸자와는 격이 다른 몸이잖나.”

여유를 되찾았는지 녀석은 비꼬는 말에도 유연하게 넘어갔다.

전승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자신이 진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튼 너도 이제 알았겠지? 더 이상 너는 시간벌이도 안 돼. 슬슬 끝내자고. 저기 밖에 있는 인간 놈들도 어서 죽여야 하거든. 저기서 쓸데없이 도망치면 골치 아파.”

“그러냐?”

“그래. 그러니까 이제 얌전히 죽어라. 그럼 특별히 아까 말했던 고통스런 죽음을 취소해주지.”

카라스는 관용을 베푼다는 태도로 길쭉한 머리를 내게 가까이 가져다댔다.

섬뜩한 금안이 초승달처럼 휘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런 녀석에게 나 역시 마주보며 웃었다.

“그거 고맙네.”

“그렇지?”

“그럼 나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마.”

가슴팍까지 다가온 녀석의 부리를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앞으로는 이겼다고 생각했을 때 쓸데없이 여유부리지 마라.”

[유원지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탈출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3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이번 퀘스트는 퀘스트 달성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잠시 후,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1회차 계승 패키지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미리 열어두었던 DLC 상점에서 1회차 계승 패키지를 구매했다.

패키지에 대한 설명이 나타났지만 나는 빠르게 스킵했다.

이미 읽어뒀던 내용이었으니까.

[1회차 계승 패키지를 구매하셨습니다.]

[1회차 계승 패키지는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1회차에 습득하셨던 스킬이나 아이템을 계승받을 수 있습니다.]

[메인 퀘스트의 단계에 따라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나 장비가 달라지며, 패키지 구매 시 한 가지 스킬이나 아이템에 한에 등급 제한 없이 지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패키지 구매 시 처음 계승받는 장비나 스킬은 등급에 상관없이 지급받는다.

나는 이 말을 봤을 때부터 무엇을 받을지 생각해두고 있었다.

“「초월의 증명」.”

그것은 내가 1회차에서 진행했던 마지막 퀘스트의 이름.

동시에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주어진 한 가지 스킬이었다.

***

초월의 증명은 내가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한 이후, 최종 보상으로 지급받은 스킬이다.

하지만 나는 그 스킬을 단 한 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왜냐면 스킬 사용조건을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초월의 증명(S)(성장형)

30분간 별자리(星座)를 상대 시 모든 능력치가 100퍼센트 증가.

30분간 별자리(星座)에게 공격 시 치명적 피해.

??????

??????

*특정한 존재의 하수인일 경우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사용 후, 30일 후에 다시 사용가능.

==

여기서 특정한 존재의 하수인이란 신의 아바타나 악마의 계약자와 같은 걸 말한다.

초상의 존재에게 자신을 내어준 이들은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거지.

‘전생의 나 역시 그래서 사용할 수 없었고.’

무려 S등급 스킬에다 ‘성장형’.

전생에 나는 이것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설령 사용할 수 있었어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배드엔딩으로 끝이나 버렸으니까.

“뭣……!”

역시 이런데서 감이 좋은 카라스는 황급히 몸을 빼려했지만 그보다 내가 빨랐다.

푸욱!

“컥!”

방금 전까지 녀석이 깃털 한장 꿰뚫지 못했던 창이 카라스의 몸에 꽂혔다.

‘쳇, 얇아.’

조금만 더 내가 힘이 강했다면 심장까지 꿰뚫을 위치였는데.

나는 창에 조금 더 힘을 넣어보려 했지만 녀석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공중으로 떠오른 탓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너 정말 정체가 뭐냐? 아바타도 아닌 플레이어가 이런 힘을 발휘한다고?”

그리 말하는 녀석의 주변에 점차 은빛의 깃털이 나선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범위를 넓이며 지면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벌레면 벌레답게 얌전히 죽어라!”

은색의 깃털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그것을 굴러서 피한 후, 하늘에서 비행하는 녀석을 향해 던졌다.

“미친놈! 그깟 창을 던진다고 내가 맞을 것 같으냐?”

“응.”

내가 괜히 ‘필중’ 스킬을 가지고 온 게 아니거든.

슈아아악!!

“이런 말도 안 돼는……!”

분명 녀석은 인간의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필중 스킬이 존재했다.

‘초월의 증명’으로 인해 상승한 능력치와 ‘필중’ 스킬로 인해 나는 녀석의 오른쪽 날개를 정확히 창으로 꿰뚫었다.

‘몸을 노린 건데 피할 줄이야.’

나는 짧게 혀를 차며 떨어지는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 자식!”

하늘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 부스러졌다.

그리고 부스러기는 깃털들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콰콰콰콰!

나는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들을 방어했다.

물론 평범한 상점표 방패이기에 가변형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하는 건 잊지 않았다.

“큭!”

그렇다 해도 전신을 완전히 방어하지는 못했다.

나는 팔과 다리를 찢으며 지나가는 깃털 속에서 이를 악물며 전진했다.

깃털을 뚫고 나오자, 지면에 처박혔던 몸을 애써 일으키는 카라스가 보였다.

“어딜.”

인벤토리에서 투창을 꺼내 녀석의 양다리를 꿰뚫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일어섰던 몸이 재차 기우뚱 기울어졌다.

“이 벌레 새끼가아아아!”

녀석이 욕설을 내뱉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번쩍이던 금안은 붉게 물들어 흉흉한 흉광을 내뿜었다.

그 눈에는 굴욕감과 분노, 그리고 혼란과 공포가 혼재되어 있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격이 낮아도 별자리다.

능력치가 떨어졌다 해도 이제 걸음마 단계인 플레이어에게 죽을 존재는 아니었다.

실제로 별자리들과 인류의 대립이 시작되는 건 한참 후니까.

하지만 난 전생과 똑같은 속도로 이야기를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이전 회차의 배드엔딩. 나는 거기서 새로운 시작을 분명 보았다.

초월의 증명이 바로 그 증거.

콰앙!

나는 다리를 창에 꿰뚫려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하는 카라스를 향해 달렸다.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했음에도 망가진 방패를 내버리고, 검을 꺼내 날아드는 깃털을 튕겨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깃털을 튕겨낼수록 검의 이가 빠졌다. 가변형 오리하르콘으로 코팅을 하지 않았다면 한 개의 깃털조차 막을 수 없었겠지.

“버그다. 분명 버그가 분명해. 이게 말이 돼? 어디서 네놈 같은 놈이 튀어나온 거냐!”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회수한 뒤, 부러진 칼을 내버렸다.

전신을 향해 날아드는 깃털 속을 내달린다. 재생과, 천살성으로 육체의 내구를 한계가지 몰아붙이며 마지막으로 파일 벙커를 꺼냈다.

이제 녀석과 나의 거리는 불과 5미터.

그렇게 내가 팔을 앞으로 뻗으며 다가간 순간, 녀석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죽어어어!!”

여태까지 날렸던 깃털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구의 형태로 둘러싸며 쏘아졌다.

아마 내가 접근한 순간을 노린 필사의 함정.

방패를 들어도, 칼을 휘둘러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숫자의 깃털이 날아들었다.

“그림자 질주.”

콰콰콱!

녀석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해 옆으로 이동했다.

그것을 인지한 카라스도 황급히 깃털을 모아 벽을 만들었다.

녀석과의 거리는 불과 1미터.

콰아앙!

격발된 벙커가 깃털의 벽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파일 벙커도 깃털에 찢겨 부서졌다.

카라스는 그런 나를 보며 흉소했다.

“이제 맨손이구나!”

인벤토리에 있던 투창은 다 썼고, 검은 부러졌으며 파일 벙커는 부서졌다.

카라스의 말대로 현재 내 손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몸을 갈갈이 찢는 깃털속을 파고들며, 나는 손을 뻗었다.

맨 처음, 내가 녀석의 가슴팍에 꽂아두었던 창의 자루를 향해.

“무기라면 여기 있다.”

“……!”

카라스의 동공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자신의 가슴팍에 꽂혀있는 창을 뒤늦게 깨달은 거다.

카라스의 부리가 벌어지며 나를 향해 뭐라 외치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우드득!

녀석의 가슴팍에 박힌 창을 손에 쥐고, 남은 힘을 모두 짜내 그것을 밀어 넣었다.

마치 말뚝처럼.

창은 까마귀의 심장을 꿰뚫었고.

초월의 증명은 꿰뚫은 심장을 완벽히 파괴시켰다.

그건 어떤 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이었으리라.

***

초상계(超上界).

우주의 섭리. 흔히 ‘시스템’이라 불리는 심핵(深核)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장소.

각 차원에 유희를 관리하는 퍼블리셔들도 이곳에 있었다.

“아씨, 이걸 보고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 남자가 거대한 문 앞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아카터스.

이번에 새롭게 런칭한 게임에 참여한 게임 마스터였다.

아카터스가 관리하는 건 지구,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서버를 관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뭔 서비스 초기부터 사고가 터지냐.’

관자놀이에 자라난 길쭉한 뿔을 손가락으로 연신 긁적여 봐도 지끈거리는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까마귀 자리 새끼는 왜 플레이어한테 죽어가지고.’

아직 대규모 패치도 진행되지 않았고, 메인 퀘스트도 고작 세 번째쯤일 거다.

그래서 아카터스도 게임 운영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현재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건 일 자식 진행뿐이라 엇나갈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별자리가 하나 죽을 줄이야.

‘아오, 그 까마귀 놈이 5만 포인트를 줄 때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기도 좀 참여하고 싶다고 때를 쓰던 카라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약하기는 해도 나름 까마귀자리에 속해 있는 녀석이니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병신이다.

“끙.”

거기다 카라스를 죽이는 것을 본 신 몇몇이 계속 문의도 해오는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버그냐 아니냐.’라는 추궁이 절반이 넘었고, 어째서 별자리가 저렇게 힘을 발휘할 수 있냐는 게임 밸런싱에 대한 문의도 있었다.

아니, 버그가 있을 수가 있나. 이게 게임이기는 해도 우주의 섭리로 돌아가는 건데.

그리고 카라스가 전승 스킬을 사용한 이유도 의문이다.

분명 아직 별자리는 게임에서 별 힘을 쓰지 못할 텐데…….

‘그러고 보면 시스템이 관여한 흔적이 있던 게 그것 때문인가?’

시스템조차 이해하기 힘든 일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카터스는 머리에 이어 위까지 시큰 거리는 것 같았다.

GM 인생에 이렇게 골치 아픈 경우는 처음이다.

이해를 할 수 없으니 상사에게 제대로 설명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보고하지 말까?’

잘 생각해 보면 카라스는 지구, 그곳에서도 그리 인지도가 없는 별자리다.

신위도 보잘 것 없으니 없어진다고 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거다.

그 녀석이 대체 어떻게 카라스를 죽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라도 유의해서 살피면 되겠지.

자신이 관리하는 서버가 가장 인구가 적은 서버라 눈에도 안 띌 거다.

‘그래, 우선은 조용히 넘어가자.’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

아카터스는 거대한 문을 한번 올려다본 후,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물론, 그는 알지 못했다.

이번 일은 전조에 불과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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