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35화 (35/332)

# 35

035. 까마귀 자리의 카라스(3)

플레이어들은 일반인들을 이끌고 로메월드의 입구를 향해가고 있었다.

지금의 자유가 거품처럼 사라질 거봐 저마다 필사적으로 달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제 악몽 같은 장소를 벗어나는 거다!”

선두에서는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명원이 앞서가며 주위를 독려했다.

그의 말처럼 이제 조금만 있으면 유원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사상자가 좀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어쩔 수 없겠지.’

마지막 직원의 족쇄를 해제한 후,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파리 인원과, 구출한 인원이 합쳐져 수백 명에 이르는 인파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새롭게 구출한 사람들 중에 직원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단부 어트럭션은 몬스터들이 관리하는 지역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족쇄를 푸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형, 이제 정말 끝난 거예요?”

“거의.”

시우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자체가 마치 꿈결처럼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조금 있으면 끝날 거다.”

“정말요?”

“그래. 네가 철웅을 잡는데 도와준 덕분이지.”

“헤헤.”

시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자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나는 내심 양심이 찔렸다.

‘……어린애를 너무 부려먹은 감이 없잖아 있으니.’

철웅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만들 때, 거의 일주일간 혹사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제때 무기를 만들 수 없었으니까.

그 보답은 이곳을 벗어나는 걸로 갚아주자.

나는 시우를 데리고 민아와 창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창우는 내가 온 기척을 느꼈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무 일이 쉽게 풀려서 무서울 정도군요.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끝이라니…….”

목소리에선 긴장과 흥분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대로 밖으로 나간다면야 그렇겠죠.”

“까마귀 때문입니까?”

“예.”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다.

이미 게임판 자체가 엎어졌으니 언제 하늘에서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녀석은 반드시 옵니다.”

그렇게 말을 끝낸 순간이었다.

“윽?!”

무거운 바람이 몸을 스쳤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까마귀 새끼, 이제야 결심했네.

‘이제부터는 시간싸움이군.’

이제야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려면 족히 30분은 시간이 걸릴 거다.

“일반인들을 먼저 내보네! 플레이어들은 우선 혹시 있을지 모를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한다!”

명원의 외침에 귓가에 들렸다.

혹시 흥분해서 열이 무너질지 몰랐기에, 철저하게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나마 통솔력이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지.’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확실히 통솔력은 있는 사람이었다.

실력도 제법 있는 것 같던데 신의 아바타가 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나이 때문이 아닐까.

보통 신들은 젊은 사람을 자신의 아바타로 두길 선호하거든.

간혹 실력보다 외모를 더 보는 신도 있을 정도다.

“그럼…….”

나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여태 녀석이 둥지를 틀고 있었을 거대한 건물.

아일랜드 캐슬이라 불리던 거대한 장난감 성에서 점차 흉악한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는데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

감이 예민한 민아 역시 뭔가를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확해. 이제 녀석이 올 테니 그럴 만도 하지.”

“녀석이라면 오빠가 말했던 그 까마귀라는 녀석?”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응시했다.

굳이 입으로 설명해 줄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녀석이 이제 모습을 드러낼 테니.

“오는구나.”

온몸이 저릿했다.

철웅과는 다르다. 단순한 몬스터는 지닐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콰콰콰쾅!!

대기가 울리며 무언가가 부서져 나가는 폭음이 울렸다,

아마 녀석이 머물던 아일랜드 캐슬이 부서지는 소리였겠지.

“꺄악!”

거친 광풍이 몰아치며 몸을 뒤흔들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전신이 휘청거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래, 아무리 약해도 별자리는 별자리는 거지.”

센티넬도, 몬스터도 사실 아무래도 좋다. 진짜는 이 녀석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자기 뜻대로 가지고 놀던 녀석.

쉬이이익!

쿠웅!

대기가 갈라지며 새까만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지면에 격돌했다.

보도블록이 부서지며 날아가고, 휘날리는 깃털과 바람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칭찬해 주마.”

새까만 머리가 길쭉한 머리를 들어올렸다.

철웅보다도 거대한 덩치를 지닌 거대한 까마귀.

얼핏 들으면 우습게 느껴질지 모른다. 사납고 살벌한 인상을 지닌 몬스터에 비하면 귀여운 게 아니냐고.

하지만 아니다.

진정한 공포는 외모가 아닌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설마 나를 움직이게 할 줄이야.”

새까만 털과 달리 번쩍이는 금색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녀석의 시선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얼어붙었다.

‘이렇게 긴장되는 건 간만이네.’

오르가 때도 조금 긴장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조금이다.

철웅의 경우엔 갑작스러운 사태에 초조하긴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난 지금까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싸웠다.

전생에도 그랬고, 현생도 그렇다.

하지만 솔직히 이번엔 진심으로 긴장됐다

그것은 카라스가 두려워서 생기는 긴장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싸운다는 긴장이다.

‘예전이라면 사람들을 노리고 있는 틈을 노려 기습하던지, 도망을 쳤을 텐데.’

그런 상황을 직접 유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만약 일이 그렇게 흘러가면 난 죄책감 없이 남을 희생시킬 수 있었다.

적어도 전생에는 그랬다.

“모두 서둘러 도망치세요!”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덜덜 떨었다.

“이곳은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도망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민아에게 눈짓했다.

민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내게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이내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등을 돌렸다.

“서둘러요! 지금 놀고 있을 시간 없다고요!”

“어어억!”

앞에 서있는 사람의 등을 꾹꾹 누르며 민아가 외치자 그제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라고 할 수 있는 민아가 외치니 사람들도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마치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것처럼 행동하는구나.”

그런 우리의 모습을 가소롭다는 얼굴로 지켜보던 카라스가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날개를 펼치자, 검은 깃털이 탄환처럼 사람들에게 날아들었다.

‘결전의 시간.’

스킬을 사용하자, 날아들던 깃털들의 속도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합!”

캉캉캉!

인벤토리에서 꺼낸 창을 들어 그 깃털들을 하나하나 튕겨냈다.

스킬의 랭크가 낮아 그리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없다보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날아들던 깃털들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지자 조소를 하던 카라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걸 다 튕겨냈다고?”

그 많은 깃털을 설마 다 튕겨낼 줄은 몰랐는지 카라스는 내심 놀란 눈치였다.

‘뭔 냅다 광역기부터 갈겨?’

물론 내 입장에선 내심 식겁한 일이었다.

이러다가 녀석이 작정하고 깃털만 날리면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했다.

나는 전혀 상관없어도 지금 도망치는 사람들은 대다수 죽을 게 분명했으니까.

“야.”

“뭐? 지금 야라고 했냐?”

“그래.”

우선 녀석의 시선을 끄는 게 먼저였다.

나쁜 쪽으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긴 했지만 결국 새대가리다.

전승만 보더라도 먼 일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놈은 아니었다.

“하, 진짜 내가 별꼴을 다보네. 고작 인간 놈들에게 무시받을 줄이야.”

“무시받을 만하지. 지금 네 꼴을 봐라. 고작 인간 놈들 잡으려고 여기까지 나왔잖냐.”

“인간 주제에 잘도 떠드는 구나.”

별자리인 녀석이 게임에 직접 관여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

능력치도 전체적으로 내려갔을 테고, 이 일이 끝난다 해도 한동안은 이 게임에 조금도 관여할 수 없을 거다.

“꼬우면 덤비던가.”

“……네놈이 실력이 있다는 건 알겠다만 참으로 오만하군. 그런 녀석들의 최후가 어땠는지 알려줘야겠어.”

드득.

녀석이 몸을 돌려 내 쪽을 응시했다.

좋아, 녀석의 시선이 내게 고정됐으니 이 상태로 시간을 벌면 된다.

‘아직 3분의 1도 빠져나가지 못했어.’

적어도 30분은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다. 여태 준비한 것도 이 순간을 위해서였으니.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죽여 달라고 애원해도 결코 쉽게 죽여주지 않겠다!”

녀석은 양 날개를 넓게 펼쳤다.

날개를 펼치며 발생한 풍압이 칼날이 되어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콰콰콰쾅!!

특별한 스킬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날갯짓.

그럼에도 평범한 플레이어는 그 바람에 닿는 것만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갈 위력이었다.

‘그림자 질주.’

스르륵.

카라스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공격을 확실히 회피할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암야의 사수를 잡고 얻은 외투에 붙어있는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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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질주(B+) : 반경 10미터 내에 있는 그림자로 이동할 수 있다. 5분에 1회 충전되며 최대 3회까지 충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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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과 달리 카라스는 나보다 미세하게 민첩이 높다.

한마디로 철웅처럼 내가 녀석의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녀석보다 힘이 강하냐?

그것도 아니다. 아무리 격이 낮아도, 능력치가 센티넬급으로 떨어졌어도 카라스는 엄연히 까마귀 자리에 속한 존재.

고작 모든 능력치가 E에도 못 미치는 플레이어가 상대하기엔 무리인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능력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피할 수 있는 생존기와, 명중에 보정을 해주는 스킬을 준비했던 거다.

콰콰콰쾅!!

녀석의 발톱이 지면을 긁고 지나갔다.

나는 최대한 입구에서 멀어진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낸 뒤,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다.

꺼낸 무기는 길쭉한 창이다.

그것도 그냥 창이 아닌 투창.

“흡!”

나는 팔에 힘을 넣고 카라스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창은 매섭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정확히 녀석의 후두부에 명중했다.

“아야!”

정확히 명중했음에도 창은 수수깡처럼 튕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녀석의 가죽도, 깃털도 어느 것 하나 뚫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내 목표는 녀석의 시선을 끄는 거니 전혀 문제가 되진 않았다.

“쫄래쫄래 잘도 피하는 놈이네. 성가신 스킬을 가지고 있구나!”

녀석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나는 최대한 몸을 빼며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가 내 몸을 몇 번이나 스쳤지만 제대로 명중하지는 못했다.

콰콰쾅!!

나는 녀석의 공격으로 부서져나가는 잔해들을 이용해 최대한 은신하며 몸을 움직였다.

스킬 ‘소음차단’으로 움직이는 소리를 줄일 수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녀석이 나를 찾지 못했을 때는 간간히 공격을 가해 지속적으로 어그로를 끌었다.

“와, 뭐 이딴 놈이 있지? 적당히 죽이려고 했더니 진짜 뚜껑 열리게 하네!”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녀석의 공격에 나는 최대한 몸을 사렸음에도 몸의 이곳저곳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그림자 질주가 5분당 1회 충전 되다보니 간혹 충전되는 속도보다 위기에 몰리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좀 죽어라 좀! 왜 이렇게 안 죽어?!”

그렇지만 나는 쉬이 당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처를 입을수록 더욱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바로 지수와 공유한 스킬인 천살성 덕이다.

상처를 입을수록 도리어 능력치를 올려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꿀 스킬.

거기에 재생도 있기 때문에 나는 지구전에 자신 있었다.

‘그러니 이대로만 시간을 벌면…….’

사람들도 거의 다 빠져나간 것 같았기에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라고 생각할 때였다.

“감히──!”

분노에 가득 찬 녀석의 외침이 들리자, 점차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태양의 빛이 가려질수록, 카라스의 검은 깃털이 조금씩 은색으로 빛났다.

“뭐야.”

어떻게 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영광으로 생각해라. 별자리(星座)의 힘을 보여주마.”

검은빛이 점차 옅어질수록 하늘은 어두워졌고, 녀석은 더욱 뚜렷하게 빛났다.

지금 하늘에서 날개 짓을 하는 건 까마귀가 아닌, 태양신의 전령이었다.

“이런 미친.”

설마 녀석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한계수치까지 상향되어 있었을 줄이야.

어느 정도는 예상하긴 했지만 그 정도가 컸다.

“좆 됐네.”

아무리 나라도 저것을 상대로 버틸 자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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