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033. 까마귀 자리의 카라스(1)
[업적 ‘센티넬 사냥꾼’을 습득하셨습니다.]
[대단한 업적을 달성하여 보상이 주어집니다.]
[센티넬에게 30퍼센트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센티넬 ‘철웅’을 죽인 보상이 지급됩니다.]
허공에 은색의 빛이 흩날렸다.
파일 벙커에 꿰뚫리며 부서진 철웅의 머리파편이다.
‘고작 세 명 죽였는데 사냥꾼 칭호를 얻었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아슬아슬했다.
무기가 조금만 늦게 완성됐어도 여기 있는 사람 중 절반은 넘게 죽었으리라.
‘내심 초조했다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떠들었지만, 역시 센티넬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되도록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많은 것이 바뀌어야만 한다.
내가 모르는 미래가 나타난다는 건, 다른 엔딩으로 가고 있다는 징조라고 할 수 있으니까.
“정말로 죽……은 겁니까?”
허공에 떠 있는 알림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창우가 다가왔다.
바로 옆에서 나와 철웅의 싸움을 지켜봤던 만큼 이곳저것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철웅이 좀 격하게 움직였어야지. 솔직히 무사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창우의 실력은 대단한 거다.
“예. 머리가 박살 났으니 불가사리라도 죽을 수밖에 없죠.”
“정말로 죽은 거군요, 이 괴물이.”
거대한 철웅의 시체가 반짝거리며 빛나며 부스러지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음에도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죽이실 줄이야.”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부 이 장비 덕이죠.”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철웅의 머리를 꿰뚫었던 파일 벙커였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만들었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비밀이고요.”
민아의 능력 덕에 옵저버에 들키지도 않았을 거다.
이것을 만든 자가 시우라는 것을 아는 자는 신을 포함에 다섯 명뿐이다.
나와 민아, 만든 당사자인 시우. 그리고 둘의 신인 어릿광대와 헤파이스토스.
어릿광대에게는 이미 이야기를 해서 입막음해 둔 상태다.
헤파이스토스는…… 이쪽은 어찌할 수 없으니 내버려둘 수밖에.
‘부산스럽구만.’
그래서인지 허공에 돌아다니는 옵저버가 유독 거슬렸다.
숫자도 전보다 배는 늘어 족히 수십은 될 것 같았다.
“죽었어?”
“정말로 죽은 거야?”
사람들도 점차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 괴물이 죽는 날이 오다니.”
입구를 막아서던 몬스터들은 철웅이 죽기 무섭게 등을 돌려 도망쳤다.
보통이라면 이 기회를 노려 몬스터를 죽여야겠지만, 어떤 플레이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철웅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으로 올 뿐이었다.
“감, 사합니다.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할지.”
그리 말하는 창우의 음성은 촉촉이 젖어있다.
바람에 실려서 부스러지는 빛 무리를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치, 악몽은 끝났다는 것처럼.
“근데 얘 중간보스 아냐?”
단 한 명만 빼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쏘아졌다.
시선의 끝에는 급히 달려왔는지 땀으로 흠뻑 젖은 교복을 입은 민아가 서있었다.
“아, 미, 미안. 아니 죄송해요…….”
대부분이 곱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분위기에 초를 친 당사자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뭐, 우선 나머지는 천천히 이야기하죠.”
그래도 덕분에 말을 꺼내기 쉬워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까.”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이제야 놈을 죽일 차례였다.
***
신들의 커뮤니티.
한국 서울의 채팅방은 현재 난리였다.
그리스대장: 야, 쟤 뭐냐.
익명97: 와 너 오랜만이다. 다른 채널로 이동하지 않았었냐?
그리스대장: 아니 쟤 뭐냐고.
단 한 명의 플레이어가 센티넬을 죽였다. 이 소식은 커뮤니티에 일파만파로 퍼져 다른 서버에 있던 신들까지 채팅방으로 몰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번잡해진 채팅창은 온갖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불금: 넌 봤으니까 알 텐데? 방금 센티넬 죽였잖아.
그리스대장: 와 씨벌. 이게 말이 되나. 저거 누구 아바타야?
불금: 몰라. 아바타 아닌 거 같은데. 우리는 플레이어 정보를 볼 수 없으니, 쩝.
익명 97: 야, 어릿광대.
어릿광대: ㅇ?
익명97: 니 아바타랑 같이 다니잖아, 뭐 아는 거 없어?
익명 97의 말에 어릿광대는 채팅방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릿광대, 그 혹은 그녀가 보기에 현 상황은 썩 재밌었기 때문이다.
어릿광대: 몰라. 알아도 안 알려줘~!
익명97: 어휴, 그러시겠지.
한쪽눈미아: 아니 근데 말이 되냐? 센티넬을 어떻게 잡아? 능력치가 그게 돼? 아직 E랭크 이상 못 올리지 않았나?
그리스대장 : 심지어 저거 갑자기 나타난 센티넬이었다며? 원래 없어야 하는 놈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냐?
정직한삶: 내 아바타에게 하는 짓 보고 보통놈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아주 미친놈이었네.
채팅방은 시끌시끌했다.
어릿광대는 채팅방 너머로 느껴지는 신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저 세한이라는 플레이어가 아바타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재밌는 아이야.’
처음 자신의 아바타에게 했던 짓부터 재밌었지만 그 이후가 더 재밌었다.
장비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센티넬을 죽일 줄이야!
거기다 여태 세한이 진행해온 일들을 보면 딱 어릿광대의 취향이었다.
불리한 상황임에도 그것을 티내지 않고, 계획을 세워 끝내 쟁취하는.
솔직히 자신의 아바타로 삼고 싶었지만 아직 부캐를 키우기엔 애매한 시기였고, 세한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1망치왕1: 흠흠.
불금: 뭐야 이 짝퉁티 나는 아이디는.
1망치왕1: 그냥 망치왕은 이미 누가 했더라고.
불금: 망치 쓰는 애가 한둘인가. 혹시 너 토르니?
1망치왕1: 아닌데요.
불금: 찐따같이 망치에 미련을 못 버리는 거 보면 맞는 거 같은데
1망치왕1: 아니라니까. 그리고 신명 언급하는 거 공지 위반임.
망치왕**: 뭐 시발. 누가 찐따라고?
불금: 뭔데 뜬금없이 튀어나오네. 심지어 아이디는 더 찐따같자너.
1망치왕1: 그만큼 이번 일이 이슈였던 거겠지. 그리고 저거 무기 내 아바타가 만든 거다. 위력이 개오지지그냥~!
한쪽눈미아: 아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좀 말해봐.
1망치왕1: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나오지 않았냐. 좀 보채지 말아봐.
1망치왕1이 썰을 풀기시작하자 신들은 저마다 집중했다.
그만큼 세한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특히 무기 관련은 민아가 옵저버 자체를 차단해 버린 탓에 목격자가 어릿광대 외에는 없었다.
맨 처음 미노타우르스 때는 아무도 보지 못했고, 바질리스크를 죽일 때는 솔직히 떨어트려 죽인 거니 조금 놀라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건 무기는 쓰긴 했지만 사실상 정면 대결이었으니까.’
어릿광대는 이런 상황 자체가 무척 재밌었다.
그리고 분명 앞으로는 더 재밌어지리라 생각했다.
왜냐면 아직 ‘까마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예상하건데 세한은 다른 이들과 다른 퀘스트를 받은 게 분명했다.
‘여태 해왔던 행적을 보면 시스템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센티넬을 세 번이나 잡았고, 앞선 두 번의 퀘스트에서 백금 등급을 모조리 달성한 플레이어.
그런 플레이어를 시스템이 가만히 두고 볼 턱이 없었다.
난이도를 조종하기 위해 세한에게 계속 시련을 부여할 게 분명했다.
‘그 멍청한 까마귀, 잘못하면…….’
어릿광대는 뒷말을 삼켰다.
아무리 그녀라도 솔직히 그것까지는 힘들 거라는 생각과, 세한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선은 자신의 퀘스트를 빠르게 끝내고 유원지를 뜨는 거였다.
굳이 남아서 별자리인 카라스와 적대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거 같지 않단 말이지.’
어릿광대는 화면 너머로 보이는 세한을 보며 싱긋 웃었다.
분명 이 플레이어는 앞으로도 자신을 즐겁게 해주리라.
***
철웅이 죽었다.
사파리의 사람들은 그 사실이 꿈만 같았다.
감히 누구도 대적하지 못했던 철의 거인이 죽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보니 내가 걸어 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하기 바빴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 받다보니 이거 좀 부담스럽다.
내 일평생 이렇게 감사받은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원망을 받는 건 익숙한데 말이야.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네.”
민아가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와, 근데 오빠 대단하다. 이번엔 정말 놀랐어, 어떻게 그리 쉽게 잡은 거야?”
한 번 센티넬과 싸워봤던 민아기에 더 신기했던 모양이다.
나는 별것 아니라는 얼굴로 설명했다.
“철웅이나 바질리스크나 사실상 기본 능력치는 같고 분배만 달라. 퀘스트로 능력치를 제한받는 건 플레이어만이 아니거든.”
힘은 철웅이 더 강하지만, 민첩은 바질리스크가 훨씬 높다. 그래서 내가 바질리스크를 상대할 때는 전력을 다해야 간신히 피할 수 있었고, 철웅은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는 거다.
어차피 어느 쪽이나 한 대만 맞으면 죽는 건 같으니 속도가 빠른 쪽이 상대하기 더 힘들다는 거지.
“맷집도 철웅이 훨씬 좋지만, 그건 장비로 극복했고. 그러니 간단히 잡을 수밖에.”
덕분에 잘 쓰던 드릴을 분해했다만, 드릴이야 또 사면 된다. 넘치는 게 포인트니까.
“근데 이번에도 아무것도 안 나왔어? 바질리스크 때는 그냥 종합 보상에 가산됐잖아.”
“이번에는 따로 나왔다.”
“어, 정말? 뭔데?”
본래라면 세 번째 메인 퀘스트까지는 센티넬을 잡는다고 해도 따로 보상이 없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보상이 나왔다는 건 본래 존재하지 않았을 센티넬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이거.”
“……뭐야 이건. 돌덩이?”
민아의 표정이 묘해졌다.
“설마 겨우 이런 게 보상이야? 에이, 실망.”
“겨우 이런 거라니.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그럼 돌덩이가 대단해 봤자 얼마나 대단하다고.”
정말로 실망했는지 민아가 툴툴 거렸다. 자기가 잡고 나온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 아쉬워해?
“이건 그리모어다.”
“그리모어?”
“불가사리의 기운이 담긴 돌덩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런 건 DLC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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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의 그리모어
사용하면 고유 스킬 ‘불가사리(A)’를 습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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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아이템치고는 설명도 심플했다.
설마 이런 게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리모어는 무척 희귀한 물건이니까.
참고로 이 고유스킬은 불가사리가 사용하던 능력이다.
즉, 금속을 먹고, 그곳을 몸의 일부로 전환하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우수한 스킬이다.
A랭크 스킬이니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헐.”
설명을 들은 민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이걸로 오리하르콘 먹으면 몸 일부를 오리하르콘으로 바꿀 수 있는 거야?”
“그래, 스킬을 사용하면.”
사용하기만 하면 바로 본인의 스킬로 변해 저장된다.
“씁.”
그제야 민아의 얼굴도 숟가락에 고정되었다. 탐이 난다는 얼굴이었지만 차마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난 평생 그런 거 못 가지겠네. 센티넬 같은 거 잡아야 나오는 거잖아?”
“꼭 그런 건 아닌데, 운이 좋았던 거지.”
확실히 현재 받을 수 있는 보상 중 이것보다 좋은 건 없다.
불가사리의 그리모어는 전생에 나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던 물건이다.
하지만…….
“너 가져라.”
“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그리모어를 민아에게 던졌다.
던져진 그리모어를 반사적으로 받은 민아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이걸 왜 나한테 줘?”
“나보단 너에게 쓸 만할 거 같으니까.”
“나한테?”
“너 변신능력 있잖아. 손을 갈퀴 같은 걸로 변신시킨 다음 금속화시키면 무기로 쓸 수 있지 않겠어?”
“와, 그런 게 돼?”
“왜 네가 놀라? 그런 건 네가 직접 해봐야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민아는 고운 아미를 살풋 찌푸리며 손에 들린 그리모어를 보았다.
“이거 사용하면 사라지는 거지? 그런데 오빠는 정말 나한테 줘도 괜찮아? 이거 엄청 귀한 거 같은데.”
“엄청 귀한 건 아니고 제법 희귀한 거지.”
민아는 답지 않게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센티넬을 본인이 잡은 것도 아닌데다 아이템이 워낙 귀해 보이니 섣불리 가질 수 없는 모양이다.
이런 곳에선 또 소심하다니까.
“그동안 도와준 보상이야.”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 주는 뇌물이기도 했다.
“……그거야 뭐.”
“나보단 네가 효율이 좋으니, 그냥 받아.”
내 말에 민아는 으,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 알았어. 대신 나중에 이걸로 뭐라 말하기 없기야? 난 준대서 받은 거다? 나도 양심 없는 애는 아니라고!”
“안 해, 임마.”
은행을 털려했던 놈이 뭔 양심을 찾고 있어.
어쨌든 전투센스는 있으면서 마땅한 공격수단이 없는 민아에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다.
그리모어를 민아에게 사용하자 연한 빛을 뿜으며 민아에게 흡수됐다.
아마 이제부터 민아는 불가사리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민아가 신의 아바타만 아니었다면 스킬 공유를 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랬다간 애초에 민아가 변신 스킬을 들고 있지 않았겠지.
불가사리의 스킬이 좋은 건 맞지만, 신으로부터 받은 스킬인 ‘변신’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진다.
거기다 저 변신스킬도 나중에는 더욱 발전하겠지.
그런 걸 생각하면 민아는 확실히 우량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