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32화 (32/332)

# 32

032. 파일 벙커(2)

“저, 정말로 오늘 오는 걸까요?”

“몰라요. 오빠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냥 대비하는 거죠.”

덜덜 떨고 있는 형석에게 민아는 적당히 대답했다.

창우에게 들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유원지를 돌아다니다가 다른 몬스터에게 우연히 들었다고 했을 뿐이다.

세한은 이미 며칠 전부터 철웅이 이곳을 습격할 거라 사람들에게 전했다.

창우에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계속 경고를 보냈고, 오늘 아침에는 확답을 들었다.

바로 오늘, 철웅은 이곳에 올 것이다.

“빨리 빨리 움직여! 도주로를 확인해!”

“혹시 다른 몬스터도 올지 모른다! 확실히 대비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민아는 입술을 비뚜름하게 기울였다.

‘처음에는 그냥 개무시했으면서.’

처음 이 말을 전했을 때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플레이어의 말을 뭘 믿고 신뢰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세한과 민아가 도장을 네 개나 받은 플레이어라는 걸 알자마자 그런 태도는 깔끔하게 바뀌었다.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철웅을 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빠 말이 맞았네.’

설마 도장을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뀔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이곳에서는 도장의 개수가 플레이어의 신분증인 동시에, 발언권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그간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을 이끌던 플레이어가 도장 세 개를 받았던 사람인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세한 씨는 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글쎄요, 아마 시우와 있지 않을까요?”

“시우라면 그…….”

“아마 생각하는 사람이 맞을 거예요.”

민아는 그렇게 말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이 유원지에서 가장 큰 건물인 아일랜드 캐슬이 어렴풋이 보였다.

‘예전에 친구랑 왔을 때는 참 즐거웠는데.’

즐거웠던 장소가 지옥으로 변해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함께 놀러갔던 친구들의 생사도 불분명했다.

“어, 민아 씨.”

“네?”

“뭔가,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형석의 얼굴을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확실히 지면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더불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제가 보고 올게요.”

민아는 곧바로 매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방금 느낀 진동은 지진과 같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왔구나.’

매로 변한 민아의 시야에 거대한 거인이 보였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닌 저 괴물이 분명 ‘철웅’이라고 불리는 불가사리인 게 분명했다.

“오고 있어요. 분명 철웅이에요.”

“여, 역시! 저는 바로 사람들에게 알려 대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석은 발이 땀나게 뛰었다.

경계를 설 생각은 이미 잊은 모양이다.

하기야 형석이 이곳에 남아 있는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상보다 빠른데.’

정확히는 대피하는 사람들의 속도가 느렸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세한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는 부류도 분명 존재했다.

그런 이들 때문에 현재 대피 속도가 더뎌지고 있었다.

‘……이대로 튈까?’

매로 변해서 도망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철웅을 상대로 민아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끙.”

하지만 그러면 세한에게 밉보이게 될 가능성이 컸다.

여태 지켜본 거지만 세한은 되도록 사람들을 구하며 행동하려고 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면 장땡이라는 신조를 지닌 민아지만, 세한과 갈라서는 짓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헤어진다고 해도 되도록 좋게 헤어지고 싶었다.

여태 정이 든 것도 있었고, 세한은 확실히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존재였으니까.

“유인이라도 해봐야 되나.”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창우 오빠는 또 왜 여기 있어요?”

“제가 뻔뻔하게 도망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시간은 벌어야지요.”

창우는 낮게 웃으며 검을 손에 쥐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그 덕에 다른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더더욱 철웅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심안으로 보내오는 정보가 창우의 입안을 바싹바싹 마르게 했다.

“설마 싸우려고요?”

“아뇨. 제 실력으로 철웅을 상대하는 건 무립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죠.”

그렇게 말한 창우는 천천히 철웅이 오고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죽음을 각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빠는 언제 오는 거야?’

분명 아침 일찍 시우에게 갔으면서 보이지 않았다.

세한이라면 분명 철웅이 근처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궁금했다.

“어휴.”

벌써 멀리 걸어간 창우를 보며 민아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대로 두기엔 찜찜했다.

***

“모두 도망쳐! 철웅이다!”

“일반인들부터 어서 대피시켜!”

형석의 보고에 아비규환이 된 사람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귀가 예민한 창우는 그런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시간을 벌어야 해.’

여태 사람들을 감시하며 철웅의 눈과 귀가 되었던 만큼 책임을 져야했다.

창우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 철웅의 앞에 당도했다.

“철웅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오, 부지런하구나.”

“서둘러 쫒아야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바로 지름길로 안내하겠습니다.”

무릎을 꿇으며 부복한 창우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철웅에게서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선 다른 방향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검을 빼들고 싸워봤자 얼마 막지도 못할 게 분명했으니까.

“호오. 이전에 보고했던 길과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는 건가?”

“예.”

“흐음.”

철웅은 그런 창우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싫다.”

“예?”

“굳이 시간을 벌려는 네놈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으니.”

쿵.

커다란 발이 지면을 두드리자 창우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건 단순히 진동 때문이 아닌,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탓도 있었다.

“네놈은 나를 직접 돕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올 충성스런 성격이 아니지 않나.”

오히려 창우는 마지못해 철웅의 명령을 듣는 입장이었다.

창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젠장!”

이대로 뒤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아직 사람들의 대피는 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시우도 아직 저곳에 있었다.

“이렇게 싸우는 건 오랜만이군. 부디 그때보다 실력이 늘었길 바란다.”

“……!”

덤빌 테면 언제든 덤벼보라는 태도다.

“그렇다면!”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었다.

혹시 모른다. 기적적으로 철웅이 가진 약점에 검을 명중시켜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는 법이다. 일말의 희망. 그리고 어떻게든 녀석을 막아야한다는 필사의 각오로 창우는 검을 휘둘렀다.

눈이 보이던 때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검이 철웅의 허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카앙!

“빠르군.”

철웅은 그 공격을 막지 않았다.

왜냐면 굳이 막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기를 좀 더 좋은 걸 썼어야지.”

허리춤에 명중한 검은 단번에 부러졌다. 날카로운 칼날은 철웅의 외피에 작은 상처도 내지 못한 체 지면에 꽂혔다.

“어…….”

“우선 그간의 일에 칭찬해 주지. 내게 정보를 보내느라 수고 많았다.”

멍하니 서 있는 창우를 향해 철웅은 천천히 손을 치켜들었다.

피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발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시우야, 미안하다.’

민철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조금의 시간조차 벌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원통했다.

철웅의 손이 거센 파공음을 일으키며 휘둘러졌다.

그리고 그것이 창우를 단번에 짓뭉개려는 순간.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오……?”

순간, 철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폭음이 울렸고, 눈앞에서 금속 파편이 비산했다.

그것이 자신의 팔이라는 걸 눈치챈 건, 수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

콰앙!

팔꿈치부터 부서져 나간 철웅의 팔이 지면에 낙하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

그 위로 한 명의 남자가 내려섰다.

“그러니까 좋은 금속 좀 먹지 그랬냐.”

방금 전 철웅이 했던 말을 따라한 것 같은 말이다.

‘이 목소리는…….’

철웅은 어쩐지 이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야 당연하다.

지난 일 주일간 자신이 줄곧 찾아다니던 녀석이었으니까.

어두운 인상에, 새까막 외투를 걸친 건방진 놈.

자신에게 공격하고 내뺐던 플레이어가 지금 바로 자신의 앞에 있었다.

“네놈!! 이곳에 있었던 것이냐!”

“그래.”

여유롭게 대답하는 세한의 모습에 철웅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분노로 순간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철웅은 상당히 이성적인 성격이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내 팔을 부순 거지?’

철웅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른 플레이어에 비해 강한 건 맞다.

하지만 자신의 팔을 부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뭐로 네놈의 팔을 부쉈는지 궁금한 모양이군.”

세한은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팔에는 상당한 크기의 쇳덩이가 들려있었다.

“이게 뭔지 아냐?”

녀석의 질문에 철웅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다.

무기인가? 아니면 방어구인가.

거대한 건틀릿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팔에는 쇠기둥이 튀어나와 있었다.

상당한 무게일 것 같지만 세한은 태연히 그것을 들고 있었다.

“파일 벙커다.”

이 바보 같은 몬스터에게 세한은 최대한 친절한 어조로 설명했다.

“네 단단한 대가리를 쪼갤 무기지.”

***

‘분명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민아는 아까처럼 매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바로 시우를 찾기 위함이다.

‘언제나 귀찮은 일은 내게 시키고 말이야.’

본래 민아는 창우를 돕기 위해 갈 생각이었다.

만약 그때 세한이 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자신치고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러고 싶었으니까.

‘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민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세한이 만들어준 공방에 덜덜 떨고 있는 시우의 모습이.

세한은 민아에게 두려워 떨고 있는 시우를 맡겼다.

굳이 도망칠 필요는 없으니 그저 같이 있어달라는 것이 세한의 부탁이었다.

‘분명 트라우마 때문이겠지.’

부모님을 철우이라는 녀석에게 살해당했으니 겁을 먹은 것도 당연했다.

“무사하니?”

“아, 누, 누나.”

지상으로 내려오며 인간으로 변한 민아가 묻자 시우는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도망치지 말고 여기에 있어, 여기가 차라리 안전하니까.”

“네, 네. 그렇지 않아도 세한 형이 그렇게 말하고 가셨어요.”

그렇겠지.

민아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공간박리로 설정한 구역은 철웅이라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게 확실히 안전하긴 했지만, 아까 본 철웅의 위압감이 워낙 대단해서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덩치만 보자면 그 도마뱀보다 더 크던데.’

단단하기도 훨씬 단단해보였다.

도마뱀도 쌩고생하며 잡았는데 대체 그런 괴물을 어떻게 잡는다고 자신만만하게 간 건지 궁금했다.

콰아아앙!

“까, 깜짝이야.”

폭탄이 폭발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민아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면을 주먹으로 연신 내리치고 있는 철웅이 보였다.

분명 입구에 있던 철웅이었지만, 격렬하게 날뛰던 끝에 어느덧 이 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와, 미쳤네.”

거대한 철웅의 몸체를 타고 움직이는 작은 인영이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건, 비단 민아만이 아니었다.

도망치던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철웅과 싸우는 한 명의 플레이어를.

“이놈, 이놈, 이놈!!”

단 한번, 단 한번만 공격이 명중한다면 죽일 수 있다.

철웅은 전력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

‘한쪽 팔만 더 있었다면!’

녀석의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다.

자신이 더 빠르다!

하지만 한쪽 팔을 잃은 게 문제였다.

균형이 맞지 않아 중심을 맞추기 힘들었고, 그러니 제대로 속도와 힘을 내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건 세한이 노리던 바였다.

창우에게 모든 시선이 쏠린 순간을 노려 철웅을 공격한 거다.

아무리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정면에서 싸워선 승산이 없었으니까.

“원래 기습 한 방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말이야.”

만약 그랬다면 창우가 죽었을 거다.

그러니 세한은 팔을 날리는데 그쳤다.

‘그래도 바질리스크보단 불가사리가 낫지.’

석화의 사안을 가진 바질리스크 쪽이 불가사리보다 압도적으로 어려웠다.

불가사리는 순수하게 강인한 육체로 몰아붙이는 몬스터이기에, 한쪽 팔을 먼저 날린 상태라면 세한의 상대가 아니었다.

속도가 빠르지만 잡힐 정도는 아니다.

위력이 강하지만 맞지 않으면 하등 문제가 없었다.

“이게 한번 쏘고 나면 충전하는데 한참 걸려요.”

세한은 오른팔에 찬 거대한 건틀릿 형상의 파일벙커를 보였다. 이 건틀릿 윗부분에는 거대한 쇠기둥이 있었는데, 그 쇠기둥은 바로 오리하르콘으로 코팅된 드릴이다.

던전을 파고 다닐 시절 애용했던 바로 그 드릴.

거기에 오리하르콘으로 코팅을 해서 특제 파일벙커를 만들었다.

모두 시우의 노력이 컸다.

“이제 1분 남았거든.”

세한은 팔을 들고 철웅의 머리를 가리켰다. 충전이 되면 언제든 날려 버리겠다는 듯.

그것은 허세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공격이 전혀 명중하지 않는 것이 증거였다.

“1분 동안 최대한 발버둥 쳐봐.”

그 말은 마치, 방금 전 철웅 자신이 했던 말과 같았다.

최대한 발버둥 쳐서 자신을 즐겁게 해라. 세한은 그 말을 따라한 것이었다.

“젠자아아앙!”

센티넬인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자신은 센티넬이다!

고작 세 번째 퀘스트에서는 죽을 리가 없는 강력한 몬스터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콰앙! 콰앙!

“이놈, 이노오옴!! 건방진 벌레 자식이이이이!”

필사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그가 얕잡아보던 인간처럼.

“1분 됐다.”

“기, 기다려! 인간을 더 이상 죽이지 않으마! 그러니……!”

철웅은 애걸했다. 죽이지 말아달라고. 자신은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세한은 씩 웃으며 답했다.

“싫어.”

새까만 건틀릿이 철웅의 머리를 향했다. 굉음이 울리며 건틀릿의 상부에서 쇠기둥이 앞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앙!!

전신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불가사리의 몸.

그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불가사리의 머리.

그것이 파일 벙커에 꿰뚫리며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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