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031. 파일 벙커(1)
“그게 무슨 소리예요? 철웅을 잡는다니?”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시우가 깜짝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대화는 다 끝났나 봐?”
“아, 예.”
심드렁하게 답하자 시우가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과 다른 내 태도 때문이겠지.
전이라면 적당히 기분을 맞춰주며 살살 구슬리려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들었겠지만, 네 형이 이곳의 정보를 철웅에게 전해주던 터라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야. 언제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해 가도 이상하지 않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 시간이 별로 없거든.”
남은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
그사이에 철웅을 쓰러트릴 수단을 준비해야했다.
“형은 정말로 철웅을 죽일 생각인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애초에 이 유원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그건 그렇지만…… 형이 도장 네 개를 받은 실력자라고 해도 무리예요.”
“그 말이 맞다. 나 혼자선 무리야.”
아무리 내가 강하더라도 현재 내 능력치와 스킬로는 철웅을 죽일 수단이 없었다.
“그러니 네 도움이 필요해.”
“제 도움이요?”
시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전 아직 어리고, 몸도 둔해서 싸우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될 텐데요?”
“하지만 너 신의 아바타잖아.”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숨을 들이켰다.
“그걸 알고 있었던 건가요? 어떻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알 수 있거든. 느낌이 달라.”
민아나 동권처럼 아바타의 기운을 숨길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신이 아니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굳이 말하자면 ‘격’이 다르다.
“……그렇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저도, 그리고 저를 선택한 신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니까.”
쓸쓸한 눈으로 눈물짓는 시우의 모습에 근처에 돌아다니던 옵저버 하나가 부르르 떨렸다.
추측이지만 저것이 시우를 선택한 신, 헤파이스토스의 옵저버가 아닐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저도 뭔가 해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저 무력감만 느낀 체, 이곳에서 숨을 죽이고 살 수밖에 없었어요. 형에게도 민폐만 끼치고…….”
시우는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마 지금 말한 것이 송시우가 여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이유였겠지.
부모님이 죽고, 형이 시력을 잃은 것도 원인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보호받기만 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더 컸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일과 관련된 말을 창우가 입에 담으면 그토록 분노했던 거다.
과거의 일은 송시우에게 있어 역린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너를 선택한 신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특정한 조건이 필요한 거냐?”
“예. 이제야 말하지만 저는 대장장이 신의 아바타에요. 그러니 화로나 망치와 같은 제작 도구가 없다면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신의 명칭은 말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그건 아바타가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려하면 자연적으로 금제에 걸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난 송시우를 선택한 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아마 장비를 제작하는 지식은 있는 거겠지?’
헤파이스토스의 아바타가 되며 기본적인 지식은 습득했을 테니.
그래서 더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른다. 스킬의 사용법도 알고 있고, 지식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유원지에서 장비 제작에 필요한 금속이나 망치, 그리고 화로를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것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예?”
시우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을 껌벅였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좋아.”
그렇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말을 꺼낸 지금부터 바로 일을 시작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간 안에 장비를 제작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너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회요?”
“그래, 기회.”
분명 할 수 있다. 나는 미래의 시우를 알고 있었다.
아직 부족할지언정, 제대로 된 도구만 주어진다면 지금도 충분히 본연의 능력을 발휘할 플레이어였다.
“혹시 너.
”
나는 씩 웃으며 시우를 내려다보았다.
이 소년이야말로 이번 퀘스트의 열쇠였다.
“철웅을 쳐 죽일 무기를 만들어 볼 생각은 없냐?”
시우의 머리가 끄덕여진 건, 그로부터 5분이 지난 후였다.
***
생산직 플레이어가 활약하기 시작한 건 다섯 번째 퀘스트부터였다.
왜냐면 네 번째 퀘스트가 끝나야 각 지역이 개방되며 오픈월드가 되기 때문이다.
일정 구역을 포인트로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자신만의 공방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생산직의 주가가 오르게 된다.
‘생산직의 단점은 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힘들다는 점이지.’
예를 들어 대장장이만 해더라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다. 화로나 모루, 각종 제작 도구들.
일반적인 플레이어로선 구하기 힘들다.
대부분 금속을 구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힘을 빌려 구축해야 하는 요소다.
하지만 당장 그런 일은 무리나 마찬가지이니 시우가 무력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자. 이 정도면 됐냐?”
“…….”
나는 시우와 민우를 데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작은 화로와 모루, 그리고 기본적인 대장장이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난 거야?”
“이전 퀘스트 보상.”
“진짜로?”
“진짜.”
진짜일 리가 없잖아.
이것들은 미리 내가 구매해서 이곳에 놔둔 물건들이다.
‘이름하야, 기초 제작 패키지.’
더 높은 등급의 패키지도 살 수 있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는 데다 시우가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할 거다.
“어때? 이 정도면 할 수 있냐?”
“네, 아마…….”
시우의 눈동자는 한쪽 구석으로 향해 있었다.
아마 신으로부터 귓속말이나 알림을 듣는 건지도 모른다.
“충분해요. 이정도면 무기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형.”
“야, 너는 이런 것들이 여기에 떡하니 놓여 있는데 이상하지도 않아? 뭘 그리 태연히 수긍해?”
의욕적으로 말하는 시우의 모습에 민아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저 제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니까요.”
“뭐래니…….”
지금은 그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쁜 모양인지 시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를 보는 민아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어린애에게 대체 무슨 노동을 시킬 생각이냐고 추궁하는 시선이었다.
“저번에는 나더니, 이번엔 얘야?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던 거지?”
“뭐가?”
“시치미 떼기는, 오빠가 남을 아주 잘 부려먹는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설마 어린애에게까지 그럴 줄은 몰랐네.”
“너 얘랑 3살밖에 차이 안나.”
“……뭐?”
민아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시우를 돌아보았다. 시우는 갑자기 민아가 자신을 보자 어색하게 웃었다.
“저 중학교 3학년이에요.”
“너 진짜 완전 동안이구나. 초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역시 민아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애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보다 이민아.”
“왜?”
“여기에 결계 좀 설치해 봐.”
“무슨 결계?”
“사람 물리는 결계. 너 사용할 수 있지?”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세 번째 퀘스트이니 신으로부터 새로운 스킬을 받았으리라 생각했다.
민아의 주요 능력은 사람을 교란하는 계열의 능력.
그중에서도 탑클레스의 신의 후원을 받는 아바타다.
이것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는 기껏해야 동권 정도지만, 솔직히 민아 쪽이 격이 더 높다.
동권은 신보단 본인이 머리가 좋은 경우지.
물론 동권보다 민아가 못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순수 재능이라면 동권은 상대도 안 된다.
단지 동권은 극히 비열하고 나쁜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다 보니 본인의 신과 상성이 좋다는 것뿐이다.
“자, 이 정도면 됐지?”
“충분해. 근데 무슨 스킬이냐?”
“뭐야, 알지도 못하고 쓰라고 한 거야?”
민아는 손가락을 들어 이 근방에 선을 그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삼각형 형태의 공간이 되었지만, 물건을 제작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건 공간박리(空間剝離)라는 스킬이야. 이 근방은 주변에서 도려낸, 일종의 컷아웃이 되는 거지.”
“다시 돌아오려면?”
“내가 지정한 인원은 도려내지지 않은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 평범하게 오면 돼.”
아마 민아는 변신을 통해 적진의 가운데네 진입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런 스킬을 신으로부터 받은 모양이다.
‘뭐야, 이 사기 스킬은?’
어찌 보면 무협소설에 나오는 진법과 같지만 아예 공간자체를 괴리시켜버린다는 점에서 급이 달랐다.
전생의 이민아를 알기에 남들의 시선을 피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러니 이민아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누구도 못 찾지.
이래서 신의 아바타가 되려면 최상위 신에게 되어야 한다는 거다.
“자, 받아. 이걸 녹여서 무기를 만들면 될 거야.”
“헉!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난 거에요?”
“던전 좀 돌면 이정도 쌓여.”
나는 던전을 돌며 나온 필요 없는 무기들을 시우에게 건넸다. 그다지 질이 좋은 무기들은 아니었다.
“그럼 이걸로 뭘 만들면 되는 건가요? 검? 아니면 창?”
일반적인 무구를 이야기하는 시우에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말고. 넌 그런 검이나 창으로 철웅을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그럼 다른 무기가 있나요? 활은 당연히 통하지 않을 테고, 그럼 둔기류? 둔기류라면 확실히 괜찮을 지도…….”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내가 설계도를 줄 테니까, 이걸 좀 부탁해.”
“이거?”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설계도를 꺼냈다.
이건 전생에 내가 다른 대장장이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 본 무기였다.
내가 가장 애용했던 무기중 하나이기에 설계도 정도는 금방 그릴 수 있었다.
“……이건 대체 뭐예요?”
설계도를 본 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에는 없었던 무기인 모양이다.
그야 신화시대에는 없었던 무기니까.
“파일 벙커(Pile Bunker).”
불가사리를 죽이기에 이만한 무기가 또 없었다.
***
“후우.”
철웅은 현재 심기가 불편했다.
벌써 일주일째 한 플레이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당연히 도장을 받으러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몬스터들을 풀어 자신과 싸웠던 플레이어를 찾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파리에도 없는 것 같고…….”
처음 생각났던 건 사파리에 있다는 도장 네 개를 받은 플레이어다.
하지만 창우를 통해 이야기해보니 인상착의가 달랐다.
하늘로 치솟은 건지, 아니면 땅으로 꺼진 건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철웅 님!”
거대한 곰 인형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아장아장 뛰어 들어왔다.
말이 아장아장이지 덩치는 3미터가 넘는 괴물이었다.
“무슨 일이지. 카라스 님의 호출인가?”
“예, 옙!”
덜덜 떨며 이야기하는 몬스터의 말에 철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여간 귀찮은 일은 언제나 나에게 시키는군.”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다.
만약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해도 오늘이나 내일 움직일 생각이었다.
‘간만에 좀 놀 수 있겠군.’
마음 같아선 매일같이 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유원지에 있는 사람들이 금방 씨가 마를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카라스가 자신을 추궁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일정 구역을 순찰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처럼 카라스의 요청이 있을 때만 움직일 수 있었다.
철웅은 걸어 다니는 재해에 가까웠으니까.
“좋다. 그럼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예?! 하지만 다른 몬스터들을 준비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요…….”
“상관없다. 나 혼자로 충분해.”
쿵!
육중한 발을 구르자 지면에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몬스터는 그런 철웅의 말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물론입죠.”
“그럼 카라스 님에게는 바로 사람을 구해온다고 전하도록 해라. 저녁에 돌아오도록 하지.”
“옙!”
무거운 몸을 움직여 철웅이 발걸음을 내딛자 연신 지면이 울렸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있는 장소로 홀로 향하는 철웅이었지만 몬스터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감히 어떤 플레이어가 철웅 님에게 생채기나 낼 수 있겠어?’
일반적인 몬스터도 아닌 지역을 지배하는 센티넬.
만약 카라스가 없었다면 이곳의 왕이었을 몬스터다.
단순한 보스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존재를 일개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는 알지 못했다.
지금 막, 철웅을 죽일 무기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