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030. 불가사리(3)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아는 법이 있죠.”
“여유로우시군요. 제대로 답변하지 않으신다면 전 당신을 해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태까지 가볍고 선량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창우는 없었다.
한없이 차갑고 냉랭한 기운만이 남아있었다.
“절 해친다, 라…….”
세한은 엄지로 턱을 쓸었다.
“사실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뒤로 물러야겠습니다.”
“무슨 뜻이죠?”
“한번 재주껏 덤벼보란 말입니다.”
세한은 입가를 삐뚜름하게 치켜 올리며 웃었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좀 봐보게.”
물론, 그 웃음은 창우가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쉬이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우의 칼이 휘둘러졌다.
검의 예기가 살을 애일 듯 시렸다.
‘제법 괜찮은데?’
창우는 아바타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척이나 강했다.
특히 검술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뛰어났다.
마치 눈이 보이는 것 같은 세밀한 검술이다.
‘설마.’
세한은 한 가지 스킬이 떠올랐다.
천살성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희귀한 스킬을.
‘심안(心眼)인가?’
보통 무에 극에 달한 자가 익히게 되는 스킬이다.
하지만 창우는 확실히 놀라운 실력을 지녔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애 때문에 특수한 스킬이 발현된 게 아닐까 추측됐다.
‘그러고 보면 전생에도 그런 이가 있었지.’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던 이가 시각이 극도로 발달하며 스킬로 발현된 경우가 있었다.
이것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오만하게 말했던 것 치곤 겨우 피하기만 하는군요.”
아슬아슬하게 피한 탓에 창우는 세한이 겨우겨우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것이라 인지했다.
그것도 당연했다.
창우는 자신의 검에 무척이나 자신이 있었다.
심안이라는 스킬과, 단련된 자신의 검술은 신의 아바타가 된 이들조차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할 생각이 없다면 전 여기서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검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허리를 향해 휘둘러지던 검이 뱀처럼 휘며 단숨에 세한의 목덜미를 노렸다.
“오.”
그 매서운 검술에 감탄하며 세한은 중얼거렸다.
“검술은 이 정도고…….”
캉!
단번에 세한의 목을 잘라낼 줄 알았던 검이 멈췄다.
휘둘러지던 검의 칼날을 세한이 잡았기 때문이다.
단 두 손가락으로.
“……맙소사.”
창우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잡혔다고? 자신의 검이?
그것도 겨우 두 손가락에?
“한번 빼보시죠.”
그런 창우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전혀 관심 없는지 세한은 태평하게 말했다.
“능력치는 어느 정도인가 테스트해 보게.”
“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창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심안이 보내온 정보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겨우 두 손가락에…….’
자신의 검이 잡혔다.
힘을 줘 봐도 검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마치 두터운 바위틈에 검이 끼어버린 것 같았다.
“큭!”
“대략 힘은 E 50정도인가?”
세한은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이해할 수 없다.
휘둘러진 검을 잡은 것도 이상한데, 고작 두 손가락에 잡힌 칼날을 빼낼 수가 없다니.
마치 접착제로 붙인 양, 세한의 손에 잡힌 칼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까 보니 민첩은 대략 60에서 70사이.”
이 정도면 아바타가 아닌 플레이어 중에선 굉장히 높은 수치이지 않을까.
대신 다른 능력치가 바닥을 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말하자면 힘과 민첩에 올인한 상태라는 거지.
‘지수보다는 못하겠지만.’
멀티 플레이 패키지의 효과로 지수는 세한이 얻는 포인트를 일정량 가지고 가고 있었다.
거기에 아이템도 세한이 모두 지원해준 탓에 얻는 포인트는 모조리 능력치에 쏟아부어, 웬만한 아바타들도 압도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툭.
“다, 당신은 대체…….”
손을 놓자 창우의 몸이 기울어졌다.
검에 힘을 주고 있던 탓에 순간 균형을 잃은 탓이다.
하지만 세한은 창우가 재차 자세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하압!”
창우는 재차 자세를 잡고 세한을 향해 덤벼들었다.
뱀처럼 날아드는 칼날을 향해 세한이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튕겨냈다.
“이 무슨!”
“제가 아이템이 좀 좋거든요.”
암야의 사수를 쓰러트리고 얻은 암야의 장갑, 그것에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씌웠으니 창우의 검으로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애초에 세한은 무기를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앙!
“헉, 허억. 헉.”
전심전력으로 검을 휘둘러도 세한에게는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창우를 보며 세한은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대단한 실력이네요.”
감탄하듯 말하는 세한의 말에 창우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누가 누구보고 대단한 실력이라고 하는 것인가.
“……당신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비꼬는 창우의 말에 세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이 시점에서 자신보다 강한 플레이어는 없다.
그러니 애초에 비교가 잘못됐다.
‘민아랑 비교하면 민아보다는 강할 것 같고.’
지수와 창우를 비교하면 지수가 우위에 있다. 심안도 대단한 스킬이긴 하지만 천살성과 지수 본인의 재능이 워낙 뛰어난 탓에 창우가 이기긴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민아랑 비교하면 창우가 더 뛰어났다.
신의 아바타인 민아보다 창우가 강하다는 건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민아는 전투는 곁다리지만.’
창우와 지수가 딜러라면 민아는 유틸계 서포터다.
단순 전투로 비교하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거기에 기본적인 전투 실력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고.’
센스가 있다고 할지.
확실히 미래의 탑플레이어는 떡잎부터 남다르다.
“그런 실력으로 왜 철웅에게 정보를 보내는 겁니까?”
“…….”
창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검을 꽉 움켜쥘 뿐이다.
“시우 때문입니까?”
검을 쥔 손에 한층 힘이 들어갔다.
그제야 세한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그랬던 거다.
“철웅이 자신을 돕는 대가로 시우의 생존을 약속했군요.”
“……예.”
창우는 쓰게 웃었다.
“처음 철웅에게서 도망치던 날. 저는 혼자서 그를 상대했습니다. 아니, 상대라기도 뭣하군요. 녀석은 놀이 상대로 저를 지목했을 뿐입니다.”
창우는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던 순간 닥친 비극을.
부모님이 눈앞에서 살해당하자 창우는 어떻게 해서든 시우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철웅을 막아섰다.
“결과적으로 무리였습니다. 그 싸움에서 전 시각을 빼앗겼죠.”
홀로 남아 죽음을 각오한 그때, 철웅은 창우에게 한 가지를 제의했다.
자신의 수족이 되어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대신 시우의 생존은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말에 창우는 어쩔 수 없이 철웅과 손을 잡아야만 했다.
그때 느낀 철웅의 힘은 정말 그 자체였으니까.
“그놈은 무슨 수를 써도 죽일 수 없는 괴물입니다. 그러니 저는 시우만은 반드시 살리고 싶었습니다. 설령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얼마동안 정보를 보냈던 겁니까?”
“사파리에 온 이후 계속입니다. 대부분은 사람들의 동향에 관한 이야기죠.”
창우는 거기까지 말한 후,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뭐가요?”
“이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실 건지 묻는 겁니다.”
여태 스파이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 창우는 더 이상 다른 플레이어들과 있을 수 없었다.
어쩌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자신만이라면 상관없었지만, 시우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두려웠다.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은 없는데요?”
“예?”
“사파리에 온 이후의 정보만 제공했으니 아직까지 특별히 피해를 끼친 건 아닌 것 같고. 도리어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수 없을까 생각되거든요.”
“이 상황을 이용한다고요?”
이것을 대체 어떻게 이용한다는 말인지 창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대로 녀석이 어떻게 행동알지 저희가 알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죠.”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창우를 보며 세한은 턱을 쓸었다.
“정확히 녀석의 목적이 뭐죠? 지속적으로 정보만 얻고 그대로 방치했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잖아요?”
“아마 아직 추가인원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겁니다.”
“추가인원?”
“네. 아시다시피 이 유원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카라스라는 놈의 놀이에 희생되는 사람들이죠. 주요 구역은 사파리에서 한참 떨어진 유원지 상단부에 있는 어트럭션 지역입니다. 플레이어들이 아닌 일반인들을 모아둔 장소죠.”
창우의 말에 세한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의 사람이 줄어들면 사파리에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온다는 거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도망치려는 기색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죠. 들은 바에 의하면 아마 조만간일 것 같습니다.”
“조만간?”
“예, 대략 일주일 후에 움직일 것 같습니다.”
역시 나머지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건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시간싸움이군.’
녀석이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준비를 끝내야 한다.
그나마 창우를 통해 정확한 시간을 들은 게 다행이었다.
세한은 그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만약 언제 움직일지 몰랐다면 계속 미적거리며 움직였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녀석이 움직인다면 세한의 퀘스트도 상당히 차질을 빚을 게 분명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만약 녀석과 싸운다면 그때겠네요.”
“싸운다니요! 세한 씨가 강한 건 알지만 녀석은 격이 다릅니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아까 만나고 왔으니까요.”
“……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창우는 입을 쩍 벌렸다.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만나고 왔다고? 그 철웅과?
“확실히 몸이 단단해서 저도 당장은 못 죽이겠더군요.”
“그, 그렇죠.”
“어디가지나 당장 죽이지 못한다는 거지. 죽일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세한의 태연한 말에 창우는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세한의 말은 마치 철웅을 죽일 수단이 있다는 것 같았으니까.
“창우 씨는 여태 하셨던 일을 계속하시면 됩니다. 다만 저에게도 정보를 주시면 고맙겠네요.”
“그럼 세한 씨는…….”
“그건 돌아가서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묘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세한의 말에 창우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철웅을 그가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아, 물론 시우에게는 모든 이야기를 하셔야 합니다.”
“예? 시우에게요? 대체 왜죠?”
창우의 얼굴이 재차 새파랗게 질렸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 시우를 위해 철웅에게 정보를 팔았던 것이었으니.
다른 사람보다 시우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면 이번 일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철웅을 죽이기 위해선 다른 누구보다 송시우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
나와 창우는 곧바로 민아와 시우에게 돌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둘에게는 미리 이야기를 해두는 편이 좋았으니까.
민아는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나지막한 한숨을 쉬며 수긍했지만, 시우의 경우에는 반응이 격렬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해도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이야기가 끝난 지금은 창우를 추궁하기 바빴다.
“왜 진작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데!”
“미안하다. 네게는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
“만약 형마저 잘못되면 나는 어쩌라고. 그런다고 내가 기뻐할 거 같아?”
“……미안.”
한창 신파극을 찍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며 민아가 중얼거렸다.
“이래서 오빠가 저 둘을 지켜보고 있으라고 했구나?”
“그래. 뭔가 느낌이 쎄하더라고.”
“정말 감이 좋다고 할지. 아니면…….”
민아는 머리를 살며시 기울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고양이처럼 나를 요모조모 살피던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떨어졌다.
“뭐, 나로선 나쁠 건 없으니까. 그보다 이제 어떡할 거야?”
“당연히 그놈을 죽여야지.”
“누구를? 설마 그 철웅이라는 괴물을?”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실 거 같았어. 그럼 나는 퀘스트나…….”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도장 받으러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철웅 녀석이 나를 찾아다니고 있을 테니까.”
“대체 이 사람은 밖에서 뭐하고 온 거야?”
뭐하긴, 그 녀석과 한판 싸워보고 왔지.
한창 속만 긁고 도망친 터라 분명 나를 찾아다니고 있을 거다.
이런 때에 밖에 돌아다니면 아무리 민아라도 목숨이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