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029. 불가사리(2)
오전에 들었던 말에 의하면 철웅은 정기적으로 유원지를 순찰한다.
주요 코스는 유원지의 입구와 출구.
밖으로 도망치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 보기 위함이라지만, 실상은 그냥 심심풀이로 돌아다니는 거라던가.
애초에 입구나 출구로 도망치려고 하면, 다른 몬스터들이 막아서며 철웅에게 곧바로 보고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럼 몬스터가 막아서는 사이 철웅이 오게 되니 도망칠 수 없다.
나는 철웅이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에서 계속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분은 된 거 같은데.”
분명 정오에 자주 모습을 보인다고 했으니 올 때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괴물의 기척이.
“드디어 왔나.”
멀리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철의 거인.
얼핏 보면 골렘과 비슷하지만, 무생물적인 느낌이 강한 골렘과 달리 불가사리는 생명체의 느낌이 강했다.
전신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괴수라고 할까.
상대하는 것도 골렘보다 불가사리 쪽이 상대하기 힘들었다.
쿵.
쿵.
쿵.
무겁게 울리는 지면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철웅 역시 그런 나를 눈치 챈 듯, 무거운 머리를 움직였다.
“흐음?”
녀석은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을 보고 도망치지 않는지 의문스러운 눈치다.
“미친놈을 죽이는 건 재미가 없는데 말이야.”
심히 실망한 얼굴로 철웅이 중얼거렸다.
‘하여간 같은 지역에 있는 놈들이 아니랄까 봐 똑같네.’
녀석은 플레이어가 겁에 질려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겠지.
전생에 그런 녀석은 수도 없이 봤다. 카라스 역시 그런 부류였고, 철웅이라는 놈도 분명 비슷한 녀석이리라.
“오늘 처음으로 내 눈에 띈 보답이다. 고통 없이 죽여주지.”
코앞까지 다가온 철웅은 천천히 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특별한 말도 없이 나를 향해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콘크리트로 된 지면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튕겨져 날아갔다.
물론, 나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한 후, 녀석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단단해.’
혹시나 금속을 먹기 전이라면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리였다.
이정도로 단단한 걸보면 이미 금속을 섭취하고 움직이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꽤 신중한 성격이군.’
굳이 금속을 섭취하지 않았어도 철웅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었을 거다.
그럼에도 이정도의 방어력을 항시 유지하고 있다는 건 녀석이 꽤 철두철미한 성격이라는 증거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창우에게서 일일이 보고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겠지.
“호오, 피해?”
철웅은 내가 훌쩍 물러서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다만, 설마 이 정도의 플레이어가 있었을 줄은 몰랐군. 하긴 그러니 내 앞에 태연히 모습을 드러낸 거겠지.”
녀석이 뭐라 말을 하건 말건, 나는 손에 쥔 검을 흔들었다.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한 검이었지만, 철웅의 방어력을 뚫기는 무리였다.
“재미없는 놈이군. 조금은 말을 하는 게 어떠냐.”
녀석은 실실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와 같다.
녀석의 움직임도 전력이라기보단 놀이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나는 오늘 녀석의 전력을 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까.
“덤비기나 해라. 말이 참 많네.”
“……건방진 것.”
실실 웃던 철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구나!”
그제야 철웅은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좋아, 도발은 제대로 먹힌 모양이군.
‘그럼 이제 제대로 확인을 해보실까.’
철웅의 주먹이 내 몸을 스치며 거친 파공음을 냈다.
지면에 격돌하면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콘크리트가 부서져 나갔다.
캉! 캉캉!
나는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공격했다.
관절부위나 눈, 입이 벌려진 순간 검을 쑤셔 넣어보기도 했고, 고간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쯧.”
오리하르콘으로 코팅된 무기가 상하지 않은 걸보면 철웅이 현재 먹은 금속은 오리하르콘보다 단단한 금속은 없었다.
녀석의 몸을 부수지 못한 건 내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도는 내가 훨씬 빨라.’
철웅과 싸우기 위해, 나는 현재 찍을 수 있는 최대치까지 능력치를 찍었다.
즉, 카운터 스톱이 풀리자마자 다시 카운터 스톱 상태에 돌입한 거다.
현재 내 능력치는 올 E(100).
지금 존재하는 어떤 플레이어보다 높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철웅에게는 생체기하나 줄 수 없었다.
‘정말 거지같군.’
이 정도면 거의 나를 엿 먹이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리하르콘 무기를 들고, 한계까지 능력치를 찍어도 전혀 데미지가 안 박히다니!
예상은 했지만 그냥 죽이지 말라는 거지.
‘이러니 플레이어들이 녀석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지.’
오히려 이 정도면 능력치가 너프된 카라스보다 강한 거 아냐?
‘아니, 잠깐만.’
센티넬인 철웅이 이 정도라면 이 지역을 지배하는 카라스의 능력치도 더 상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정말 1회차 계승 패키지 외에는 답이 없겠는데.
‘하필 퀘스트가 달라져서.’
본래 목표는 도장 다섯 개를 받아 퀘스트를 빠르게 클리어한 후, 바로 카라스를 죽이는 거였다.
하지만 퀘스트가 변한 이상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놈!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 구나!”
“네가 느린 거겠지.”
“반드시 죽여주마!”
주먹을 횡으로 휘두르자, 궤적에 있던 바이킹의 기둥이 부러졌다.
거대한 배가 기울어지며 나와 철웅을 덮쳤다.
쿠구구궁!
뿌연 연기를 내며 부러지는 놀이기구의 모습에 나는 재빨리 몸을 뺐다.
“이노오옴! 어디냐! 어디로 간 것이냐!”
콰쾅! 콰콰쾅!
분개한 철웅이 자신의 머리 위로 쓰러진 바이킹의 잔해를 헤집으며 소리쳤지만, 나는 그 틈에 조용히 녀석에게서 멀어졌다.
‘미안하지만 볼 일을 다 봤다.’
지금 내가 가진 아이템과 수단으로는 철웅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방어력을 관통할 만한 스킬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으니까.
녀석을 죽이기 위해선 심플하게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공격이 필요했다.
“정리하자면…….”
멀리서 날뛰는 철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애꿎은 어트럭션들이 철웅의 손에 하나씩 부서지고 있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거지.”
답은 간단하다.
당장 녀석을 죽일 방법이 없다면, 이제부터 만들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었다.
***
“민아 씨와 세한 씨는 혹시 남매 사이입니까?”
“예?”
4구역, 굴 안에 누워 가져온 잡지를 보고 있던 민아는 창우의 말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게 대체 뭔 개소리란 말인가.
“성부터 다른데 남매일 리가 없잖아요.”
“아, 그 그렇죠. 근데 사이가 무척 좋으셔서 남매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어이없네. 남매면 오히려 사이가 좋을 리가 없잖아요?”
민아는 그렇게 말하다 지금 무기를 만들고 있을 시우를 떠올렸다. 확실히 창우와 시우는 형제치곤 무척 사이가 좋은 느낌이었다.
“형제가 사이가 좋다니 이상한데. 오히려 그쪽이 형제가 아닌 거 아니에요?”
“아, 아닙니다! 저희는 확실히 형제라고요!”
이번에는 창우가 펄쩍 뛰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 탓에 주변 플레이어들이 시선이 창우와 민아에게로 향했다.
창우는 눈은 보이지 않지만, 따끔거리는 등에 헛기침을 했다.
“그럼 세한 씨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죠?”
“제가 은행을…… 아니, 그게 아니라. 어쩌다 우연히 만났어요. 그때는 옆에 무서운 언니도 있었는데.”
“무서운 언니?”
“있어요. 세한 오빠 말고는 죄다 벌레처럼 보는 언니.”
민아는 지수를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고요한 눈동자만 떠올려도 오한이 생겼다.
그래도 나중엔 자신이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럭저럭 잘 대해주긴 했다.
‘나름 동료 취급은 해준 건가? 음, 모르겠네.’
나중에 다시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혼자 어디론가 가긴 했지만, 지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지수와 마주친 사람들이 문제지.
“그렇군요. 세한 씨는 평범한 사람 같지 않아서요. 저는 볼 수 없지만 분명 대단한 플레이어시겠죠. 도장도 네 개나 받으셨고.”
“저도 도장 네 개인데요.”
“헛, 그렇긴 하죠. 민아 씨도 대단해요. 시우와 세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요, 그럼요.”
민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한만 아니면 확실히 자신도 한가닥했다. 도장은…… 세한의 도움이 크긴 했지만 애초에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세한이니 조금은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암, 그렇고말고.
“뭐가 그런데?”
“까, 깜짝아!”
“뭘 그렇게 놀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민아가 화들짝 놀랐다.
언제 왔는지 세한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옷에 잔뜩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또 어디서 뭔 일을 하고 오셨네.’
민아는 그런 세한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좀 인기척은 내고 다녀!”
“특별히 숨긴 적도 없다만.”
거짓말하고 있네.
민아는 입수를 뾰루퉁 내밀었다.
세한은 눈에 약간 다크서클도 있고 얼굴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인상이다.
그렇다보니 묘하게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다.
보여준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무시당하는 건 그런 인상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다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인기척을 내지 않고 걸어 다녔다.
옷도 검은색인지라 밤에는 바로 옆에 있어도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잠시 세한 씨 이야기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요?”
“별이야기 아니야. 그냥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만나긴 어떻게 만나. 네가 은행 털다가 나한테 걸린 거지.”
“와악!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내가 범죄자 같잖아!”
사람들도 내쫓고 경찰인 척하며 은행을 털려했으면 범죄자 아닌가?
세한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돈은 쓸모도 없고 남을 해친 것도 아니니 사실상 민아의 삽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후후후, 정말 사이가 좋으시군요.”
“으으, 뭐라고 하고 싶은데 할 수도 없네.”
눈이 삐었냐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창우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도덕성이 있긴 했구나.”
“당연하잖아!”
민아는 빽 소리를 지른 후, 휙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조금 삐진 모양이다.
‘나중에 적당히 달래주면 되겠지.’
예를 들어 적당한 아이템을 하나 준다던가.
민아는 무척 까칠한 성격 같지만 사실 굉장히 쉬운 녀석이었다.
“창우 씨. 괜찮으면 잠시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할 말이 있는데 여기서 하긴 좀 그래서요.”
세한의 말이 꽤 의외였던 듯, 창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예, 전 괜찮습니다.”
창우는 지팡이 대용으로 검을 집어 들며 느릿하게 일어섰다.
“저쪽으로 가죠.”
세한은 창우가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걸었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창우는 그런 세한을 똑바로 쫒았다.
“세한 씨,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풀숲 근처로 오고 나서야 세한의 발이 멈췄다.
본래라면 맹수들이 머물던 장소지만, 지금은 동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면 되겠네요.”
“대체 하실 말이 무엇이기에…….”
“창우 씨.”
“예.”
창우는 지극히 무해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세한이 이런 곳으로 자신을 데려왔다는 것에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다.
“혹시 철웅에게 정보를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모습이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슈아악!!
바람을 가르며 내질러진 검의 소리.
시퍼런 칼끝이 세한의 눈앞에 우뚝 멈춰 섰다.